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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배신 - 아직도 공감이 선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폴 블룸 지음, 이은진 옮김 / 시공사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공감의 편견을 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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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공감'이라는 감정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다. 우선 저자는 공감과 연민을 구분한다. 연민은 동정심으로 타인의 감정을 깊숙이 받아들이지 않은 감정이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사례와 추론을 통해 독자가 새로운 관점으로 공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특히, 이 책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진보는 공감이라는 감정과 깊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감이 썩 좋은 감정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대부분 공감이라는 감정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모습을 연상한다. 공감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며 경험을 공유해 사회를 발전시키고, 공감을 할 수 있기에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공감할 수 없으면 세상은 삭막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공감의 장점을 완전히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공감의 단점이 장점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 비효율적이고 폭력적인 공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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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공감은 비효율적이다.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같이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은 공감하며 기부를 하고 애도를 보낸다. 하지만 그런 안타까운 사고보다 더 심각한 사고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공감은 제약적이기 때문에 자신과 거리가 있는 관계에는 느끼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심 없다는 것만 봐도 공감의 제약은 상당하다. 저자는 아프리카 기아, 팔레스타인 분쟁 등에 대성당 화재 때 모인 기금이 사용됐다면 더 많은 사람이 가난에서 구제 받거나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공감이 아닌 연민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다.
또한, 공감은 정치적으로 선동에 많이 이용된다. 대중은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도 소수의 피해자에게 공감하며 동조한다. 문제는 대부분이 정치적 목적에 의한 선동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 않았어도 여러 사건·사고에 휩쓸린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슬퍼하며, 때로는 기뻐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가 공감이라는 감정 때문이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단결하며 큰 성공을 이룩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감은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공감은 한 사회를 광기로 물들이는 데 이용된다.
공감의 단점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나치다. 당시 1차 세계대전 패배로 독일 경제는 처참했고,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은 금융, 고리대금업을 하며 부유한 경우가 많았는데, 나치는 불평등에 대한 반감을 독일 전국에 퍼트렸다. 선량하던 독일 시민은 공감하며 유대인에게 적대 감정을 품기 시작했고, 나치는 성공적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홀로코스트다. 나치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독일을 광기에 물들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2019년 반일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국민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전국적인 불매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일본 정부의 안하무인 태도로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노역 할아버지에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했든 공감에는 폭력적인 행동이 뒤따른다. 일본인 여행객을 폭행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본 기업 자동차를 파괴하는 등 반달리즘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 광우병 사태 등 많은 사건에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났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 이성이 필요한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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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공감을 통해 얻는 혜택보다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에 장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연민과 이성 등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충분히 사람은 이타적이라는 것이다. 인터넷과 SNS 덕에 여러 선동이 판을 치는 지금 저자의 주장처럼 차분한 시선이 필요한 순간은 아닌가 싶다. 공감에 현혹돼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 사견으로, 인간에게서 공감이라는 감정을 배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제는커녕 통제조차 어렵다. 공감은 하나의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