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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기는 법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지음, 필립 프리먼 그림, 이혜경 옮김, 매일경제 정치부 해제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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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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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케로가 전하는 정치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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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통령에 해당하는 집정관 선거에 출마하는 형을 위해 당선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조언한다. 학문이 정형화되지 않았던 시기라 이론의 형태가 아닌 회화체로 교훈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음모술수가 난무하던 공화정 말기에 어떻게하면 당선될 수 있을지 이야기하기 때문에 현대 선거를 보는 듯하다. 저술 시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한창 성장하던 로마 공화정 말기다. 기원전에 쓰인 책이기에 역자가 아쉬움을 표현할 정도로 소실된 자료가 많다. 분량이 많지 않으며 꼼꼼히 읽어도 2시간에 다 읽을 수 있다.
고대 로마 라틴어를 하버드 교수가 영어로 1차 번역했으며,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에서 한글로 2차 번역했다. 당시 저자가 처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간에 역자가 당시 로마의 정치와 사회를 설명해준다. 키케로의 조언을 한국식으로 해석해본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의 해제를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키케로가 전하는 교훈을 배워보자.
 | 키케로, 그리고 마키아벨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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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는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당선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을 확실하게 관리해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거나, 평소에 소외되는 투표층까지 아군으로 만드는 틈새 전략까지 다양한 방법을 조언한다. 눈에 띄는 건 키케로의 조언이 철저히 '현실적'이라는 거다. 유권자의 불가능한 요구를 거절할 바에는 거짓말을 하라고 조언하는 등 현실을 반영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거다. 경쟁자의 약점을 물어뜯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선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인기 투표의 성격을 띤다는 걸 고려해, 여러 계층과 우호 감정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분과 은혜 갚기를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는 거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금서로 지정될 정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오랜 기간 받아왔다. 'Machiavellian'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권모술수를 부리는'라는 게 보여주듯,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돌멩이를 맞아왔다. 마키아벨리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정당성과 도덕성은 뒤로 재낀 현실적인 정치 판단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금지됐지만, 유럽의 군주들이 숨어서 몰래 학습하도록 하는 매력이 있었다. 종교와 철학이 이야기하는 도덕과 군주들이 직면한 현실이 너무나 멀었지만, 마키아벨리의 현실적인 조언이 피부로 닿았기 때문이다. 흙 속에 파묻혔다고 다이아몬드가 돌멩이가 되는 건 아니듯, 르네상스를 거치며 그의 사상은 재평가받는다. 지금 마키아벨리는 현대 정치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선한 존재만 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악한 존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 공정과 불공정, 평등과 불평등 등 온갖 모순이 공존하는 세계다. 키케로와 마키아벨리가 플라톤 등 다른 정치철학자와 다른 점은 이를 인정하는 데 있다. 다른 정치철학자가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할 때, 이들은 당장의 현실 속에서 최선을 찾았다. 어떤 방식이 더 중요한 지는 신도 모른다. 다만, 하늘만 보며 길을 걷다가는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땅만 보며 길을 걷다가는 길을 잃는다. 신이 존재한다면, 가끔 하늘도 보고 땅도 보면서 걷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