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로  울어라

 

 

 

 

 

       사과는 중력에게 할 말을 잊었다

       네가 놀라

       벌린 입술

 

 

 

       아이들은 찜통 속의 흰 빨래처럼

       시끄럽게 구는 법을 잊었다

 

 

       뒤로 걷는 노인들이

       산책로에 접착면을 흘리고 지나갔다

 

 

       기다란 빛이 쩍 달라붙었다

       표백된 아이들

       알고 싶은 것보다

       궁금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았는데

 

 

       아이들이 쩍 달라붙었다

       야외가 준비한 조심성은 쓸모가 없어졌다

 

 

       너는 쩍 벌어졌다

       사과는 중력에게 할 말을 다하고

       빛을 먹으면 기쁨도 뚱뚱해지는 것 같지 않아?

       대낮의 복판으로 떨어졌다

 

 

       숨죽여 웃어라

       크게 울어라

       적도에는 아직도

       울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P.88 )

 

 

 

         -유계영 詩集, <온갖 것들의 낮>-에서

 

 

 

 

 

 

          기척

 

 

 

 

 

        가을 숲에서 툭,

        두리번거리던 알밤이 떨어진다

        청설모 그림자가 먼저 다가선다

        내 시선에도 그림자가 생긴다

        서로 닮아가는 무게이니

        고요의 눈썹을 달고 있다

        참나무잎이 낙하하여

        풀숲에 떨어진다는 것이

        내 안에 눕늗다

        숨소리가 마중나간다

        그 짝짓기에는 높낮이도 없이

        서로의

        손가락이 가지런히 닿아서 젖는다  (P.83 )

 

 

 

            - 송재학 詩集, <검은색>-에서

 

 

 

 

 

 

               끓는 사과

 

 

 

 

 

             이 가을 가장 뜨거운 것은 사과 씨앗이다

 

 

             어제의 사과에서 몸을 받아 오늘의 사과를 만들어낸 둥근

             목숨 스스로 곡진하여

 

 

             그 열기 어찌할 수 없어 껍질째 빨갛게 끓는다

 

 

             밀양 얼음골 십만여 평 사과바다가 씨앗 하나로 창창히

             깊어지고

 

 

             씨앗 하나로 뜨거워져 넘친다.  (P.17 )

 

 

 

               -정일근 詩集, <소금 성자>-에서

 

 

 

 

 

 

 

                사과나무

 

 

 

 

 

 

               아침마다 사과를 먹는다. 몸속에 사과가 쌓인다. 사과가

               나를 가득 차지하면 비로소 사과는 숨진다. 사과가 숨질 때

               나는 사과나무를 본다. 사과나무는 아름답다.

 

 

               때론 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먹은 사과들이 내

               게서 탈주하는 것이다. 어제를 살해한 오늘의 태양처럼 빛나

               고 향기 나는 사과들. 사과는 사과나무를 불태운다. 사과나

               무는 아름답다.  (P.17 )

 

 

 

                  -이수명 詩集,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에서

 

 

 

 

 

 

 

                   사과꽃

 

 

 

 

 

 

               비 맞는 꽃잎들 바라보면

               맨몸으로 비를 견디며 알 품고 있는

               어미 새 같다

 

 

               안간힘도

               고달픈 집념도 아닌 것으로

               그저 살아서 거두어야 할 안팎이라는 듯

               아득하게 빗물에 머리를 묻고

               부리를 쉬는

               흰 새

 

 

               저 몸이 다 아파서 죽고 나야

               무덤처럼 둥근 열매가

               허공에 집을 얻는다.  (P.11 )

 

 

 

 

 

                          -류근 詩集, <어떻게든 이별>-에서

 

 

 

 

 

 

 

                     너무 일찍 온 저녁

 

 

 

 

 

                 누군가 이 시간에 자리를 내주고 떠났다

                 아무도 세속의 옷을 갈아입지 못한 시간

                 태양은 한 알의 사과가 된다

 

 

                 사과와 사과

                 뉘우치지 못해 어떤 이는 깊게 울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검은 물을 길어 창문을 넘

                 어오기 전

                 누군가는 태양을 과도로 깍았다

                 태양 한 조각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 방안에 같이 사는 거미에게

                 태양 한 조각 거미줄에 걸어주며

                 점점 컴컴해지는 내장을 태양 조각으로 밝히고

                 있다

 

 

                  내장의 구멍은 후세로 난 길

                  안이 밝아지고 바깥이 어두워질 때

                  태양을 대신할 천체의 둥근 공들은

                  태양을 한 점씩 먹고 거미줄에 걸려 환하다

 

 

                  그 저녁, 너무 빨리 와서

                  나를 집어먹은 짐승은 나다.

                  태양의 마지막 조각을 구멍 뚫린 하늘에 올렸네

                  젖은 내장도 어둠 속에 걸어두었네

 

 

                  그렇게 한 저녁은 모래뻘 바지락처럼 오고

                  바지락 껍데기를 뭉개고 가는

                  트럭의 둥근 바퀴밑 어둠 속

 

 

                  쓰게 쓰게 그렇게

                  조개들은 먼 무덤을 부르다가 잠든다  (P.62 )

 

 

 

 

 

 

                     농담 한 송이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P.11 )

 

 

 

 

 

                               -허수경 詩集,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중

 

 

 

 

 

 

 

 

 

 

 

 

 

 

 

 

 

 

 

 

 

 

 

 

 

 

  

 

 

 

 

 

 

 

 

 

 

 

 

 

 

 

 

 

 

 

 

 

 

 

 

 

 

 

 

 

 

 

 

 

 

 

 

그대가 올 한 해, 땀 흘려 길러 보내 주신 사과의 즙으로 어제도 오늘도  2:1 비율의 '사과소주'를 만들어 마시고 있습니다.

11월 된서리 내리기 전, 7만 여개의 사과를 따셔야 한다는 그대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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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0-29 23:03   좋아요 1 | URL
큰 소리로 울어라!!
마음이 시큰하여져 정말 큰 소리로 울고픈 밤입니다^^

appletreeje 2015-10-29 23:10   좋아요 2 | URL
정말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큰 소리로 우는 일조차
힘들어진 세상 같습니다.
언제 큰 소리로 맘껏 울고픈 밤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2015-10-29 2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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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9 2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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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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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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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30 07:06   좋아요 0 | URL
멋진 사과술 즐겁게 담그셔요.
사과술을 담그며 노래를 부르면
그 맛은 한결 깊어지겠네요 ^^

appletreeje 2015-10-30 08:22   좋아요 1 | URL
예~즐겁게 만들었습니다~^^

한수철 2015-10-30 09:45   좋아요 1 | URL
저도 `기척`을 좋게 읽었습니다.

가끔 등산을 할 때마다 도토리를 입으로 까먹고 있는 청설모와 다람쥐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럼 저는 지나가지 않고 계속 올려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이야기 같은데, 청설모는 제가 쳐다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다람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혹시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다람쥐보다는 청설모가 맞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 보는 것입니다.

아무려나 메일을 확인하다가, 나무늘보 님의 필명이 보여 모처럼 방문을 했습니다. ^^;

격조했습니다!

appletreeje 2015-10-30 10:14   좋아요 1 | URL
예~ 격조했습니다! ㅋㅋ
예전에 한수철님께서 산에 가시어, 청설모에 관해
쓰신 글들이 생각납니다~^^
`순구`도 보고 싶습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불금` 되세요~~~^-^

2015-10-30 1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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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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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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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0 2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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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

 

 

 

 

 

   밤늦도록 우리는 지난 얘기만 한다

   산골 여인숙은 돌 광산이 가까운데

   마당에는 대낮처럼 달빛이 환해

   달빛에도 부끄러워 얼굴들을 돌리고

   밤 깊도록 우리는 옛날 얘기만 한다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따지지 않는다

   산비탈엔 달빛 아래 산국화가 하얗고

   비겁하게 사느라고 야윈 어깨로

   밤새도록 우리는 빈 얘기만 한다 (P.70 )

 

   신경림

 

 

 

    -신현림의 라이팅북, <글쓰고 싶은 날>-에서

 

 

 

 

 

        건달불

 

 

 

 

 

     1887년 경복궁에서 처음 켜진 전깃불은 물불이거

     나 묘화(妙火)였다 향원정 연못의 물을 이용한 화력

     발전이었기에 물불이라 했고, 기묘함 탓에 묘화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자주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하릴없이 애를 태워 건달불이라는 비웃음도 얻었다

     게다가 이 전깃불은 대국이 아니라 오랑캐의 물건이

     라던.

     납작하니 낡은 등이 나에게 왔다 묘화라는 시치미

     에는 에디슨 전등 회사의 상표도 짐짓 끼어들었으니

     그게 젊은 날 내 곁에서 깜박거리는 백열등의 계보

     인가 복화술 하는 나를 보며 묘화의 텅스텐 눈썹은

     찡그릴 뿐 쉬이 불을 켜지 못한다 혹 잠깐 불을 밝혀

     도 방은 여전히 어둡고 묘화의 내부만 터럭 한 올까

     지 환하다 백년을 기다려도 건달의 속내는 무심하

     니 건달불 없이 하, 시절을 구불구불 지나온 사람의

     심정과 마찬가지더라  (P.37 )

 

 

 

        -송재학 詩集, <검은색>-에서

 

 

 

 

 

 

 

 

 

 

 

 

 

 

 

 

 

 

 

 

 

 

 

 

 

 

 

 

 

 

 

 

 

 

 

 

 

       치즈토마토햄버거와 뜨거운 커피를 먹으려 꺼내 놓고, 새로 받은 책의 내부를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시간/ 새도 아니고 나뭇잎도 아닌 낯선 노래들이 수런수런

       모여' 드는 모습을 골몰히 들여다 보며, 아름답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슬프고 맛있

       는 책들 덕분에, 나비족이 되어 오늘도 백일몽을 꾼다.

       '티스푼 같은 나비의 두 날개를 펴본다/ 날개가 전부인 고독의 구조가 단단하다

       찢어지지도 접히지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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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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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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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0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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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14: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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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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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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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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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6: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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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18: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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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5 17: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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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0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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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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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2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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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기억의 반을 세월에게 떼 준 엄마가 하루 종일

       공중에게, 공중으로, 전화벨을 쏴 댔다 소방 호스처럼

       폭포를 이룬 소리들이 공중으로 가서 부서졌다

 

 

       휘몰아치는 새 떼들

 

 

       머리 위에 우두커니 떠 있는 공중, 나는

       공중에 머리를 박고 공중에 대해 상상하다가 공중을 증

       오하다가

       털신처럼 깊숙히 발 밀어 넣고 공중에서,

       공중을, 그리워하다가 들이마시다가

 

 

       깊은 밤 네 창으로 가기 위해

       내 방의 불을 켠다

       네 불빛과 내 불빛이 만나 공중 어디로 가서

       조개처럼 작은 집이라도 짓기나 한다면

 

 

       이것은 연애가 아니라 공중을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방식 

       모든 공중에, 모든 공중을, 의심하거나 편애하거나

       생략하기도 하면서

 

 

       휘몰아치는 저 새 떼들  (P.11 )

 

 

 

 

 

 

          구부린 책

 

 

 

 

 

        켜켜 햇빛이 차올라 저 나무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을 고요히 지켜보던 어린 나방은 마침내

        날개를 펴, 공중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바스라질 듯 하얗게 삭은 세월이 우체국을 세워 올렸을

        것이다

 

 

        숲과 별빛과 물풀들의 기억으로 악어는 헤엄쳐 나가고

        행성은 궤도를 그리며 우주를 비행했을 것이다

 

 

        천만 잔의 독배를 마시고 나서 저 책은 완성되었다

 

 

        자, 이제 저 책을 펴자

        잎사귀를 펼치듯 저 책을 펼치고 어깨를 구부리듯 저

        책을 구기자

 

 

        나무의 비린내와 꽃과 어린 나비가, 악어와 우체통이 꾸

        역꾸역 게워져 나오는 저 책

        저 책을 심자

 

 

        저녁의 우주가, 어두운 허공인 내게 환한 손을 가만히

        넣어 줄 때까지  (P.14 )

 

 

 

 

 

 

            만년필

 

 

 

 

 

          먼 바다에서 보낸 당신의 엽서를 받았다 그곳의 소인이

          찍힌 엽서가 당도하고 나서 만년필은 잉크를 쏟아 내기 시

          작했다

 

 

          어머, 하고 놀라는 내 입술에서 그것은 뚝뚝 떨어져 네

          리고

          물고기 아가미에서 뻥긋뻥긋 그것은 쏟아져 나왔다

 

 

          창밖에는 고개를 숙이거나 자괴감에 빠진 달빛들이 수

          북했다

 

 

          사실, 몇몇 사람들과 만년필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이 있

          다 이미 지나간 시대의 불편한 유물이라는 의견과 죽음의

          한 속설을 부록으로 달고 있다는 것 따위, 그러나 나는 만

          년필을 통해서 당신에게 건너가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핥는 태양의 혀에서 그것은 녹아내리고

          당신이 없었던 시간의 길가에서 그것은 흘러내렸다

          검은 바다 겹겹

 

 

          제 삶을 변명하고 싶은 문장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P.44 )

 

 

 

 

 

 

 

              아침의 한 잎사귀

 

 

 

 

 

 

            꽃을 줄 걸 그랬네, 별을 줄 걸 그랬네,

 

 

            손가락 반지 바닷가 사진기 비행기표, 너에게 못 준 게

            너무 많은 뜨거운 날도 가고

            낙타 사막 비단길 안나푸르나 미니스커트 그리고 당신,

            가지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겨울도 지나가네

 

 

            현(鉉)을 줄 걸 그랬네, 바이올린을 줄 걸 그랬네,

 

 

             순록의 뿔 구름의 둥근 허리 설산의 한나절, 그리고 고

             봉밥

             아랫목 여객선 크레파스 세모난 창, 너에게 못 준 게 너

             무 많은 아침의 호숫가에서

 

 

             말들이 튀밥처럼 싹을 틔울 때, 나는

             시리고 아픈 세목들을 받아서 적는다네 손가락이 아프

             도록 쓰고 또 지운다네

 

 

              너에게 주고 싶은 한 우주, 이 싱싱한 아침의 한 잎사귀  (P.77 )

 

 

 

 

             -송종규 詩集,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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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0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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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07: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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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08: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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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08: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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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0-14 09:10   좋아요 0 | URL
꽃이 너무 이뻐요. 하나의 작품같아요 애플트리제님 ㅋㅂㅋ. ` 구부린 책`이란 시를 읽다보니 책이 나무가 된다던 외국 기사가 떠올랐어요. 제 기억으론 아이책이 였는데 선생님과 함께 읽고 땅에 심으면 나무가 된다던, 아마 아르헨티나 였던듯 가물거리지만 ㅎ 무튼 `천만 잔의 독배`가 와닿네요^~^

appletreeje 2015-10-14 10:12   좋아요 1 | URL
예~어제 도착한 꽃들이 참 예뻤어요~
특히 저 아련한 핑크의 `blushing bride`는 눈을 마주칠 때마다 더욱더.^^
선생님과 함께 읽고 그 책을 땅에 심으면 나무가 된다는 이야기~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야기네요~!!^^
언제나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해피북님 덕분에~ 오늘도 행복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도 `천만 잔의 독배`가 와닿아요~~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5-10-14 11:20   좋아요 0 | URL
가을을 띄우니 가을이 날아가고
겨울을 보내니 겨울이 흘러가요

즐거운 노래가
고요하게 흐르면서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갯짓을 합니다

appletreeje 2015-10-14 13:51   좋아요 1 | URL
숲노래님 시같은 댓글로 한층~ 즐거운 노래가
고요하게 흐르며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개짓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

2015-10-14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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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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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0-14 14:10   좋아요 0 | URL
꽃보고 예쁘다 감탄하며 읽어내려오다가 (저도 받은 꽃이면서 ^^),
아래 <삶을 변명하고 싶은 문장들...>이라는 구절을 읽고서 가슴이 쿵!했답니다.
<변명하는> 도 아니고, <변명하고 싶은> 이라니 읽으면 읽을 수록 의미 심장하네요.
시인들은 무슨 특별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나봐요.

appletreeje 2015-10-14 14:31   좋아요 1 | URL
저도 꽃 받으면서~나인님께서도 받으시겠구나,하며 더욱 행복했어요~~
이번 꽃은 블러싱 브라이드가 각별하게 예뻤지만~리샨과 소국들의 조화로
더욱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변명하고 싶은 문장들..>은 저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어요..
나머지 오늘 시간들 내내...생각할 일이 참 많을 듯 싶어요.
시인들이란 정말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들.
편안하고 좋은 오후 되세요. *^^*
늘 고맙습니다~

2015-10-14 1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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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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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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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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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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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7 2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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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16: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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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7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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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7 1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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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7 2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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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지의 세계

 

 

 

 

 

          저녁에는 양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희지는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었다

 

 

          무사히 양들이 돌아온 것을 보면

          희지는 만족스럽다

 

 

          기도를 올리고

          짧게 사랑을 나눈 뒤

 

 

          희지는 저녁을 먹는다

 

 

          초원의 고요가 초원의 어둠을 두드릴 때마다

          양들은 아무 일 없어도 메메메 운다

 

 

          풍경이 흔들리는 밤이 올 때

          목양견 미주는 희지의 하얀 배 위에 머리를 누인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익힌 콩과 말린 고기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것이 희지의 세계다

 

 

          희지는 혼자 산다  (P.18 )

 

 

 

 

 

 

 

             멍하면 멍

 

 

 

 

 

 

           멍하면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가요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시에는 개나 새가 나오고 무슨 개고 무슨 새인지는 알기

           가 어렵고

           그건 누구 잘못인지 모르지만 다 잘못했어요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고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고

 

 

           그렇게 모두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면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가요

 

 

           시에서는 누가 죽고 누가 울고 모두 다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잘할 수도 있는데

           안 그랬어요

 

 

           반성하는 의미에서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가요

 

 

           새가 시라는 은유는 몰라요 시가 개라는 은유도 몰라요

           누군가 시를 쓴다면 그건 그냥 시예요

 

 

           누군가 새를 썼더니 새는 날고 울다 천 리를 날아

           시가 되어 앉았다는 고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멍하면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처럼요

 

 

           잘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기로 했어요

           그냥 멍 짖어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작은 새가요

 

 

           자꾸 멍하면 좋아요 아주 좋아요  (P.13 )

 

 

 

 

 

 

               비의 나라

 

 

 

 

 

 

              마른 그릇들이 부엌에 가지런히 놓여 있을 것이다 찬장

              에는 말린 식재료가 담겨 있을 것이다 식탁에는 평화롭게

              잠든 여자가 있을 것이고

 

 

               "상황이 좀 나아지면 깨워주세요"

                그렇게 적힌 쪽지가 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너는 이 모든 것이 옛날 일처럼 여겨질

              것이다 밝은 빛이 부엌을 비추고 있고 먼지들이 천천히 날

              아다닐 것이다 그런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여기서 일어났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선하고 선량한 감정들이 너의 안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기쁨 속에서 너는 국을 끓일 것이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

              고 국물을 우려낼 것이다 흰쌀밥에서 흐린 김이 피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 너는 무심코 만

              지는 것이다

              평화롭게 잠든 사람의 부드러운 볼을

 

 

              너는 흠뻑 젖어 있다

              너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P.30 )

 

 

 

                 -황인찬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

 

 

 

 

 

 

 

 

 

 

 

 

시집이 들어가는 앞쪽에,

'이자혜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 시를 쓰려다

그만 착각을 하고 말았다.'는  시인의 말이 나온다.

 

 [미지의 세계]는

 

자전적인 것/그렇지 않은 것, 현실/그것을 재가공한 것, 특정한 사건과 계층을 찌르는 것/무관히 넓게 그려진 것, 수동적인 것/공격적인 것이 혼재하는 <미지의 세계>는 연재가 진행중인 지금 여전히 제목처럼 ‘미지의 것'으로 가득하다. 

 

 

이자혜의 '미지의 세계', 시인의 '희지의 세계', 장이지의 해설이 두루 모아진.. 히키코모리적인 세계, 학교와 시니시즘이 김수영의 [절망]을 패러디한 [멍하면 멍]에서처럼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고/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고"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반성해야할 것으로 몰아가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미지의 세계처럼 희지의 세계로 발랄하고 재미있게 노래한다. 덕분에 '폐쇄회로의 시니시즘'에서 또 다른 '시시하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 함께, 잘 놀았다.  멍하면 멍 짖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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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1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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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1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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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06 18:57   좋아요 1 | URL
멍 하면 멍 하듯이
좋아 하면 좋아 하는 노래가
살살 흘러나올 테지요

appletreeje 2015-10-06 19:02   좋아요 1 | URL
예~ 멍하면 멍 하듯이
좋아 하면 좋아 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 싶습니다~^^

2015-10-06 2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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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2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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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2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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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06: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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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1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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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1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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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8 1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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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9 07: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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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9 17: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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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0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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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0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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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0 1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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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0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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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1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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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1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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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1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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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1 2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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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글링

 

 

 

 

 

     내 손은 두개뿐인데

     잡아야 할 손은 여러개이다.

     애써 친절을 베풀면서

     쉬운 사람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사람처럼

     내가 잡아야 할 손들은 뚱한 표정을 하고 있다

 

 

     너무 빨리 돌아가는 회전문 안에서

     우리의 스텝은 배배 꼬이고 뒤엉킨다.

     회전과 와류를 빠져나가지 못해

     우리는 빨래처럼 잔뜩 뒤엉키며 물이 빠진다.

     아무나 막 목을 조르고 싶다.

 

 

     남을 웃길수 있는 능력을

     남에게 웃음거리가 됐다로 번역하면서

     우리는 자존심이 상한다.

     슬픔을 팔고 있다는 수치의 감정이

     우리를 화나게 한다.

 

 

     손안에 쥐고 있는 얼음처럼

     차가움에서 시작해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

     내 손은 두 개뿐이지만

     여러개의 손을 잡고 있다.  (P.10 )

 

 

 

 

 

 

          부끄러움을 찾아서 2

 

 

 

 

 

        고향 친구 빙부상에서 제수씨에게 습관적으로

        안녕하시냐고 물었던 나도 안된 인간이지만

        이즈음의 삶이라는 것도 부황자국 같다.

        살겠다고 제 피를 뽑은 자리의 피멍처럼

        죽을 힘으로 살고 사는 힘으로 죽는다는 생각.

 

 

        생각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결국은 생각이 없어지는 방식으로,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지지도 못하고 매달린 목련의 부황 자국 같은 얼굴.

 

 

        물에 빠져 죽은 나비를 애도하며 이옥(李鈺)은 썼다.

        산꽃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나니, 누구를 위하여 어지럽

        게 붉은가?

        꽃놀이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일가족의 뉴스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로 차와 함께 찌그러진 사람들 멀리

        아직 꽃들은 울긋불긋하다.

 

 

        한주에 세번 문상을 하고 나서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깨닫는 일은 공교롭고 새삼스

        럽다.

        죽음은 너무나 당연해서 생략 가능한 문장 같지만

        생략된 것을 더듬을 때마다 가슴이 눌린다,  (P.30 )

 

 

 

 

 

 

 

            천국의 아이들 2

                 이영광 형께

 

 

 

 

 

 

          자기가 제일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지

          옥일 테지.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은 없고

          아픈 사람들도 가끔은 아프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가르르 호호호 꽁지 빠진 새들처럼 웃고 난리다.

 

 

          점잖게 앉아서 염치를 만들어내는 이 능력자들이

          아무도 안 아픈데 혼자 다 아픈 이 능력자들이

          어젯밤에 다녀온 곳은 차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곳

          이라서

          비록 마음 한 자리 불탄 비닐처럼 흉칙하게 얽었어도

          한세상 장난처럼 농담처럼 지나갈 수는 없는가.

 

 

          세상엔 상처 잘 만들어서 상 받는 사람도 있고

          덕분에 이렇게 술추렴하면서 울혈을 푸는 사람도 있다.

          상처는 상처로만 열린다.

          잔뜩 풀어 헤쳐논 이 상처들은 다 뭔가.

          요즘은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

          는데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고,

          조금 웃고, 조금 끄덕이고, 들렸다 가라앉앗다 하면서

 

 

          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시 쓰는 사람이다.

          여기 통증은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는데

          봉인된 저 상자는 누가 무엇으로 열었는가.

          하긴 아픈 사람만 봐도 같이 아픈 곳이 천국일 테지.  (P.68 )

 

 

 

 

 

 

 

           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

 

 

 

 

 

           가족이라는 게 뭔가.

           젊은 시절 남편을 떠나 보내고

           하나 있는 아들은 감옥으로 보내고

           할머니는 독방을 차고앉아서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삼인 가족인 할머니네는 인생의 대부분을 따로 있고

           게다가 모두 만학도에 독방 차지다.

           하지만 깨칠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삶이다.

           아들과 남편에게 편지를 쓸 계획이다.

 

 

           나이 육십에 그런 건 배워 뭐에 쓰려고 그러느냐고 묻자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다고

           지그시 웃는다. 할머니의 그 말을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다로 듣는다,  (P.102 )

 

 

 

 

 

 

             -이현승 詩集, <생활이라는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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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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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2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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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3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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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03 06:46   좋아요 0 | URL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꿈꾸며
오늘 아침도 엽니다. 고맙습니다.

appletreeje 2015-10-03 09:21   좋아요 1 | URL
예~저도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2015-10-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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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3 1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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