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꽃이 피면 꽃이 핀다가 아니라 눈이 내린다고 말하는 마

      을이 있다

 

 

      꽃이 지면 꽃이 진다가 아니라 눈이 그친다고 말하는 마

      을이 있다

 

 

      그 마을의 오래된 아낙들은 꽃이 필 즈음, 아니 눈이 내

      릴 즈음

 

 

      장독대 숫눈을 닦고

 

 

      겨우내 닫아놓았던 독을 열어 하늘과 제 얼굴을 비춰 보

      면서

 

 

      하얀 웃소금을 그 위에 한 번 더 쳤다  (P.67 )

 

 

 

 

 

 

 

         꽃나무를 나설 때

 

 

 

 

 

 

       산길에 혼자 피어 있던 개살구꽃이 그새 지고 있다

 

 

       갓 나온 잎새가

       꽃의 얼굴을 대신해 나를 맞는다

 

 

       계시냐?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

       돌아서야 했던 저녁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야 했던

       저녁

 

 

       우린 모두

       아주 깨끗하고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지

 

 

       꽃이 가고 없어 대신

       어린 잎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P.73

 

 

 

 

 

 

          얼음옷

 

 

 

 

 

        미처 거두지 못한 배추들이

        추레한 행색으로 겨울밭 한가운데 앉아 있다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는지

        누렇게 해진 옷 속으로 또 몇 겹의

        낡은 옷이 얼비친다

        한 겹, 두 겹, 세 겹, 네 겹....

        몸은 얼어 있고

        옷은 종이장처럼 얇아져 있다

        삼동(三冬)을 나기 위해 배추는 지난 가을부터

        푸른 잎사귀의 옷을 껴입었다

        머리띠를 둘렀다

        남의 옷을 벗겨가는 종자(種子)는

        인간뿐이다

        배추 속 한가운데 어린 배추가

        목숨처럼

        웅크리고 있다  (P.111 )

 

 

 

 

         -고영민 詩集, <구구>-에서

 

 

 

 

 

 

 

            오리부부나무

 

 

 

 

 

 

           아주 옛날, 오리 부부가 살았습니다

           남편 오리는 언제나 붕어와 풀씨를 물어다줬습니다

           비바람이 치면 보자기처럼 날개죽지를 펼쳐 품어줬습니다

           몇 년이 지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세월

           점점 몸이 말라가다가 남편 오리도 끝내 숨을 거뒀지만

           자신이 죽은 것조차 모르는 남편 오리는 또

           아내 오리를 위해 붕어와 풀씨를 물어다줬습니다

           들고양이나 족제비가 나타나면은 목숨을 걸고 지켜줬습니다

           저수지처럼 마를 줄 모르는 사랑, 넘쳐서 하늘에 닿았는지

           밤마다 별들이 소리없이 눈물을 쏟다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세월

           그 자리엔 한 쌍의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오리부부나무라 불렀습니다

           비바람이 치면 날개죽지로 품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밀며 오리 궁둥이같이 기우뚱기우뚱

           하늘을 향해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P.11 )

 

 

 

 

 

 

             구름 위의 식사

 

 

 

 

 

             두고 온 건 집만이 아니었다

             구름 위 돗자리를 펴고 앉어

             한 잔의 수유차와 난 몇 조각으로도 배가 부른 사람들,

             까를 산정(山頂) 가득 흘러내리는 저 웃음소리들

 

 

             너무 오래 되어 좀이 슨 미움은

             지나는 바람의 서랍 속에 쳐넣으면 되었다

             가슴까지 피었다가 만 한 송이 꽃 같은 그깢, 미련 쯤

             뚝 꺽어 집 앞 강가에 흘려보내면 되었다

 

 

             마음의 빨랫줄에

             옷 한 벌 걸려 있어도 오를 수 없는 곳

             깃털이 되어야 비로소 오를 수 있는 곳

 

 

             해피 벨리*

 

 

             끝내 새 울음소리 산마루를 다 넘어갈 때까지

             기다려주질 못하고 서둘러 내려가는 내 발자국 뒤로

 

 

             걸망처럼 지고 가는 건 웃음소리밖에 없는 사람들이

             구름 위에서 더 높은 구름 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다  (P.69 )

 

 

 

                  *해피 벨리: 인도 북부 무수리 고원 지대에 위치한 티베트인 마을

 

 

 

 

              -함명춘 詩集, <무명시인>-에서

 

 

 

 

 

 

 

 

 

 

 

 

 

 

 

 

시인의 말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명춘아, 너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 줄 아니?"

 

내가 말했다.

"음, 사랑이요 아니 믿음이요."

 

작가 최인호가 말했다.

"아니다 죽는 거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2015년 11월

함명춘

 

 

 

 

 

      오늘도 부질없이 속이 훤히 보이는 '억지춘향' 같은 말들이 공중을 뛰어 다니는

      모습들을 보았다.

      어제 오늘 내리던 비가 그치고, 지금은 수더분하고 수수한 밤이 왔다.

      그래서 나도 정직하고 맑은 말들의 이야기를 듣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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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4 2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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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4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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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0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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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0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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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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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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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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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1-15 16:35   좋아요 0 | URL
아침도 저녁도 지나고 밤이 오면
모든 앙금도 다툼도 부디 그치고
사이좋게... 아니 저마다 곱게
잠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appletreeje 2015-11-15 18:26   좋아요 1 | URL
예~ 숲노래님께서도 곱고 편안한 밤 되세요.^^

2015-11-16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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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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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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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1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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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고 있는 책들...

 

 

 

 

 

 

 

 

 

 

 

 

 

 

 

 

 

 

 

 

 

 

 

 

 

 

 

 

그리고, 옆에 모셔 두고...어서 읽어주기만 기다리는 책들...

 

 

 

 

 

 

 

 

 

 

 

 

 

 

 

 

 

 

 

 

 

 

 

 

 

 

 

 

 

 

 

 

 

 

 

 

 

 

 

 

 

 

 

 

     국경 없는 농장과 스마트폰

 

 

 

 

 

     도시 근교 원예농장에서

     베트남 여인과 네팔 여인이

     농장 사장한테 손찌검 당하는 장면을

     캄보디아 여인 썸포아 씨가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었다

 

 

     베트남 여인은 포장을 잘 하지만

     일손이 느리다 해서

     네팔 여인은 일손이 빠르지만

     포장을 거칠게 한다 해서

     농장 주인이 툭하면 검지로 가슴골을 찔렀다

 

 

     그게 사실 성추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농장 주인이 무슨 행악을 할지 몰라

     썸포아씨는 못 본척 했지만

     베트남 여인과 네팔 여인이 근무지를 옮길 때

     스마트폰 사진이 무단이탈이 아니라는

     증거로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썸포아 씨는 이전에 다니던 원예농장에서

     술 취해 함부로 껴안는 농장 사장을 밀쳤다가

     여러 달 봉급을 받지 못해 제발로 도망친 뒤로

     지금까지 불법체류자로 숨어 일하는 중이었다  (P.36 )

 

 

 

        -하종오 詩集, <국경 없는 농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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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11-11 09:43   좋아요 1 | URL
책탐이 너무 근사하고 아... 꽃도 너무 예뻐요~~ 나무늘보님을 기다리는 책 중에 <국경 없는 농장>이 제일 눈에 띄어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appletreeje 2015-11-11 10:31   좋아요 2 | URL
책탑은 밀린 숙제처럼 가끔 한숨이 나오고....어제의 꽃들은 더욱 화사하고
예뻐서 행복했어요~
<국경 없는 농장>은 가족끼리 농사짓던 농장, 품앗이나 두레로 이어지던 농촌에서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 가족농이 없어지고, 기업농이 경쟁적으로 농업을 이어갈 것이고, 인건비가 싼 이주노동자들이 시골에서 농업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야기예요.

책읽는나무 2015-11-11 09:50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계속 올라오는 <죽는게 뭐라고>책을 눈여겨보는중이어요
님도 독서중이시군요^^
저는 현재 읽고 계시는 책 세 권이 눈에 띄네요^^

appletreeje 2015-11-11 11:04   좋아요 1 | URL
<사는게 뭐라고>에 비해 페이지수도 적고 얇지만, 아무래도 죽음을 앞두고
작가가 적어 나간 책이라 그런지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지만...`죽음`에 대해 다같이 각자 생각할 만한 책같습니다.^^
특히 의사인 히라이 선생과의 대담이 좋더군요~
읽고 있는 책 중에선, <꽃, 피어나다>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책 읽는 나무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yureka01 2015-11-11 10:09   좋아요 1 | URL
가지고 있는 책이 두권이나 중복되네요 ^^..

appletreeje 2015-11-11 10:54   좋아요 1 | URL
제가 갖고 있는 책들이, 다른 알라디너님들께서도 함께 관심있게
읽고 계시는 책들이라~ 유레카님의 책과도 중복되나 봅니다~^^

2015-11-11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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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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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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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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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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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5: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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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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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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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1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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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11-11 19:15   좋아요 0 | URL
고영민 시인이 새 시집을 내셨군요! 담고...(장바구니에),
민중을 기록하라 책 표지 사진은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장면이지요. 에효.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엔 여성작가들이 단연 우세하네요. 이기호 작가만 빼놓고 전부! ^^ 좋아하는 이름이 많이 보여요.

저는 지금 개운죽을 놓고 고민하고 있어요. 집에 있던 둥근 플라스크에 꽂아두긴 했는데 아무래도 뿌리가 바닥에 닿지 않게 두어야 뿌리가 좋아할 것 같아서 어떤 장치를 해야할까 궁리 중이랍니다.

appletreeje 2015-11-11 19:48   좋아요 1 | URL
예~ <사슴공원에서>이후 3년만에 새 시집을 내셨어요! 전작 시집들에 비해
분위기가 단단해지신 것 같아요.^^
정말 <민중을 기록하라>의 책 표지 사진은, 너무나 익숙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지요...ㅠㅠ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은, 저도 좋아하는 이름들이 많이 보여 아직 초반만 읽고
있지만 기대를 하며 다른 작품들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운죽, 하이드님 말씀처럼 두유병에다 꽂아 두었어요~
길이도 적당하니 괜찮았어요.^^

hnine님, 반가운 댓글 감사드리며~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2015-11-11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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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1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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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1-12 03:54   좋아요 0 | URL
책상맡에 책꽂이를 잘 짜셔야겠어요.
쌓아만 두면
못 읽더라구요.
책꽂이를 놓고 책등이 다 보이도록 해야
비로소 눈에 들어와서 읽을 수 있고,
책등이 안 보이고 쌓이는 책은
그야말로 몇 해 동안 그냥 쌓인 채 있기도 해요... -_-;

appletreeje 2015-11-12 06:25   좋아요 1 | URL
저렇게 쌓여 있는 책들은, 제가 요즘 읽어야 할 책들과 읽고 있는 책들이에요.^^
다 읽은 후에는 책장 책꽂이에 옮겨 놓고, 또 새롭게 읽을 책들을 곁에 두고요~
책등이 보이면 왠지 어수선해, 저는 일부러 저렇게 책등 안 보이게 쌓아 놓아요.
지금 읽는 책이라 어떤 책인지~책등 안 보여도 다 알지 않을까요~?^^ㅎㅎ
사람마다 책 읽는 습관이 다른데, 제가 좀 별스러워 숲노래님 보시기에 염려가
되셨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2015-11-12 17: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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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18: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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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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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0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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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1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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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14: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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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5-11-13 17:34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작품성 백퍼인 꽃화보페이퍼를 올리시는데.. 꽃집 창업하신건 아닐테고 협찬??^^

appletreeje 2015-11-13 17:53   좋아요 1 | URL
아이쿠~!!!!!!!!!!^^
하루종일 비가 내려, 막걸리에 친구가 직접 줏어다 말리고 방앗간 가고
또 앙금 거르고 다시 말려 만든(도토리묵이 내 입까지 들어오기까지의 공정이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도토리묵 먹고 돌아 오니~~이렇게 반가운
말하자면님의 행차!!!시라니욤~~ㅎㅎㅎㅎㅎ (실성?^^)
꽃사진페이퍼,는용~~ 하이드님 꽃구독을 하면서 한 달에 삼 주에 걸쳐 받고 있는데, 꽃님들이 너무 예쁘고 아름답고 향기로워~~즐거움에 못이겨 올렸어요~ㅋㅋ

오늘은, 비가 종일 오니까~~말하자면님께서도~~것도 `불금`이니까!!!
맛난 안주에 일 잔, 하시고 계시겠죠~?^^
여튼, 말하자면님 덕분에~더욱 `불금`에 박차를 가해야겠습니당!!!ㅎㅎㅎ
˝건배!!!!!!!!!!!!!!!!!!!!˝
편안하고, 좋은 저녁 되세요~~~^-^

컨디션 2015-11-13 19:45   좋아요 0 | URL
제 안주는 뭐별거없지만 불금을 태우기에 전혀 지장없소이다 ㅎㅎ 트리제님의 화끈한 건배사 때댕큐♥

appletreeje 2015-11-13 20:05   좋아요 1 | URL
미투!!!!!!!!!^^~~˝해피 불금!!!!!!!!!!!!!!!!!!!!!!!!!˝~~~~^0^

2015-11-14 1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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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4 1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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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4 1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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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4 1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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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1-18 13:09   좋아요 0 | URL
책과 꽃이 이리 잘 어울리니
참 근사합니다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오늘 함 그려봐야겠어요

appletreeje 2015-11-18 19:34   좋아요 2 | URL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하늘바람님, 편안한 저녁 되세요 ^^

하늘바람 2015-11-18 19:44   좋아요 1 | URL
언니 저도 언니 덕분에 햄볶는 가을 입니다.
따뜻한 밤 되셔요
 

 

 

 

 

 

      노란, 은

 

 

 

 

 

     역사의 빛깔

     사랑스럽게 물결치는 슬픔의 빛깔

     저 나무 갈피의 빛깔. (P.4 )

 

 

 

 

 

 

      어둠 속에 몸이 울릴 때*

 

 

 

 

 

      밝은 몸은 보지 않지요

      그사이 꽤 여윈 것도 개의치 않구요

      어떻게 생겼는진 알까 몰라요

      존재 자체만 생각한다구요

      살아있는 말이던가요. (P.165 )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의 변형

 

 

 

 

 

         성장

 

 

 

 

        채 다 울지 못하고

        크는 나무를

        본다.  (P.201 )

 

 

 

         -오정진 <노란, 깊은>-에서

 

 

 

 

 

 

 

           가렴주구

 

 

 

 

            폐지 줍는 노인에게 삥 뜯기

            컴퓨터만 있어도 TV 수신료 받아내기*

 

 

            그래도 1번?

 

 

            여기는 좀비세상.  (P.8 )

 

 

             *KBS는 2013년 12월 17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 수신료 부과

             대상을 TV수상기에서 TV수신카드가 장착된 컴퓨터, 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PC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정책건의서를 함께

             냈다.

 

 

 

 

 

               인권의 어떤 존재양식*

 

 

 

 

 

                모로 길을 비키는 우리를 올려다볼 때

                말갛게 인권이 움튼다

 

 

                온식구가 베란다의 상추꽃을 들여다볼 때

                쑥쑥 인권이 자란다

 

 

                배달받고서 바로 문 닫지 못할 때

                수줍게 인권이 돌아본다

 

 

                장바구니를 걸고서는 행상 앞을 빙 돌아갈 때

                저 만치서 인권이 걷는다

 

 

                자동세차 후 걸레질하는 분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남아서 인권이 서성인다

 

 

                중국집에서 "고추잡채 맛있겠다"던 할머니를 떠올릴 때

                꼬옥 인권이 품는다

 

 

                꼬꼬가 야옹이들과 왁자 놀 때

                꺄르르, 인권이 구른다.  (P.23 )

 

 

                  *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인권영화' [어떤 시선]에 분노한 어느 날들.

 

 

 

 

 

 

 

                       책 이야기

 

 

 

 

                   당신도 기억하는 항구도시의 스피노자와

                   그의 존재에의 긍정과 사랑을 좇는 [공통체]*

                   [율리시즈]**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느낌,

                   조지 오웰이 말하는 '보통 사람들의 품위'.  (P.167 )

 

 

                    * 안토니오 네그라마이클 하트, [공통체: 자본과 국가 너머의 세상],

                      사월의책, 2004.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오정진, <쓰지않은 일기 : 100 days>-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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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1-04 03:13   좋아요 0 | URL
어느덧 노랑이 저물면서 차분하게 쉬는 겨울이 코앞이로군요.
포근한 볕을 품는 하루 누리셔요

appletreeje 2015-11-04 10:58   좋아요 1 | URL
숲노래님께서도
포근한 볕을 품는 하루 누리세요^^

2015-11-04 0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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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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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5-11-04 08:14   좋아요 0 | URL
요즘 딱인 시집이네요

appletreeje 2015-11-04 11:04   좋아요 2 | URL
그런가요? ㅎㅎ
하늘바람님, 오늘도 예쁜 아기들과 좋은 하루 되세요~

2015-11-04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5-11-04 11:08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 무지 좋네요
저는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기분이 더 업입니다

appletreeje 2015-11-04 11:26   좋아요 1 | URL
중요한 미팅 꼭! 만족하실 만한 좋은 결과 있으시기를 빕니다~~

하늘바람 2015-11-04 11:08   좋아요 0 | URL
신선한 하루 되셔요ㅈ님

appletreeje 2015-11-04 11:26   좋아요 1 | URL
네~하늘바람님께서도 신선한 하루 되셔요 ㅅ님 ㅋㅋ

하늘바람 2015-11-04 11:28   좋아요 0 | URL
넘 감사해요 님

appletreeje 2015-11-04 11:38   좋아요 1 | URL
저도 감사해요 ^^

2015-11-04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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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국수 빚는 저녁

 

 

 

 

 

      너에게 가는 두근거리는 악보다

 

 

      홍두깨 대신 소주병으로 꽁꽁 뭉친 구름을 밀어보자

      아니 저것은 눈덩이고

      하룻밤의 약속이었던 것

 

 

      끈끈히 달라붙는 저녁을 떼어내면서

      수년 전 어느 외진 마을의 흐느낌을 밀가루 반죽에 밀어

      넣는다

      눈이 날리다 그쳤다 한다

 

 

      한 여자의 무거운 밤이 날아가 언 강에 떨어진다

      그걸 받아 결심한 강이 쩌렁쩌렁 울린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두께로 눈앞의 생이 초설처럼 웃

      는 곳

      말랑거리는 구름의 속삭임과 오래 뒤척여 납작해진 밤의

      표정이 뒤섞여

      노래의 흰 뿌리들이 풀려 나온다

      잘게 썰어 반듯해진 마음의 다발들

 

 

      후루룩거리며 남자가 먹는 건

      한 여자의 븕은 벼랑으로 빚은 나직한 평화

 

 

      너에게 닿아 끓고 있는 밤이 오래도록 저물지 않는다  (P.90 )

 

 

 

 

 

 

         농성장

 

 

 

 

 

      시청 앞이 발생한다 어둠이 있어 눈 밝은 문장이 지나가

      고 툭툭 끊어지는 쉼표는 고독의 방식을 고수한다 저곳은

      너무 환하여 어두운 바깥이다 나는 시청 앞을 외투처럼 입

      고 겨울 밖으로 재치기와 함께 튀어 나간다 재채기는 바닥에

      깔아놓은 바닥을 완성한다 잘 찢어지는 어제의 햇볕이거나

      엉덩이 밑에서 새로 태어나는 차가운 행성이다 붉은 띠를

      두른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태양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꽃

      잎으로 떨어진다 길 가는 사람은 길 안에 있지 않아서 어

      제 저녁 잃어버린 핸드폰 같다 어디선가 혼자 울고 있거

      나 혼자 걸어가는 가로등이다 너무 선명하여 잘 보이지 않

      는 색깔이거나 너무 커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앉아 있

      다 밤의 외연은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동쪽 가시나무 끝에

      서 사라지고 지워지는 것이어서 오늘도 땅속을 기어가던 목

      소리들은 붉고 뜨거운 끈으로 광장을 묶고 있다 비로소 얼

      굴이 태어났나 비로소 오늘이 만들어져 오늘이 되었나 시

      청 앞이 발생한다  (P.109 )

 

 

 

 

 

 

           북극 거미

 

 

 

 

 

        사과가 붉은 것은 햇볕의 농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손은

        순록의 뿔이 된다 다 안다는 듯 아이가 물방울처럼 웃는다

 

 

        전화번호를 지우고 주소를 지우고 마지막 저녁의 표정도

        지운다

        새롭게 얼굴을 내민 아침의 각도가 거미줄에 걸려 있다

        거미줄에서 부서지던 햇살들이 폭설로 흩날리던 밤에 나는

        공중의 혈맥을 더듬던 금빛 거미를 찾는다

 

 

        어제 살았던 아침을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씻어내다가 어

        느덧 나는 국경의 눈보라가 된다 열두 시간 전에 이국의

        골목에서 듣던 노래였다

 

 

        사라진 손으로 귀에 도착하지 않은 북극의 물소리를 만지

        는 밤

 

 

        툰드라의 측백나무로 서서 여자의 몸에서 자라는 달을

        본다

 

 

        나는 들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밤의 중심에서 밤을 포획하

        는 금빛거미를 찾는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손을 잡고 눈

        먼 남자가 천천히 걸어온다 검은 남자의 수 세기를 지나 베

        링해의 어두운 해안에 닿는 저녁

 

 

        내 안의 거미가 긴 다리를 뻗어 얼음 같은 그믐달을 잘게

        씹어 먹는다  (P.24 )

 

 

 

 

 

 

             - 홍일표 詩集, <밀서>-에서

 

     

 

   

 

 

 

 

 

 

                                                     

 

문예중앙시선 40권. 홍일표 시집. 시인은 이전 시집 <매혹의 지도>에서, 눈앞에 보이는 대상과 그 대상에서 촉발된 상상 속 '이면의 무늬'를 시 속에 부려놓으며, 감각과 수사와 서정이 경계 없이 펼쳐지는 '매혹의 지도'를 펼쳐 보였다. 3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시집 <밀서>에서도, 세상의 존재들에 대해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시간과 대상, 존재와 자아를 빨아들이는 저 '검은' 공간,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외롭고 쓸쓸한 고투를 펼쳐나간다.

"사물의 지루한 정면을 부수어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그곳에는 비록 "벼락과 질풍노도가 있으며, 광기와 혼돈이" 가득할지라도, 시인은 그가 고안해내는 특유의 시적 발화로써 저 깊고 낯선 공간, 광막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저 광막한 미지의 영역으로의 여행은 "존재와 시간을 달리 보려는, 시라는 이름의 또 다른 희망이며, 존재의 이유를 죽음의 내부에서 찾아 나선 한 시인이, 이 세계와 자연을 주시하면서 고안해낸 고유한 실존의 색깔"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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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31 05:23   좋아요 0 | URL
우리가 눈을 감아도 모두 다 볼 수 있는 줄 안다면
마음으로 서로 읽고 헤아리면서
즐거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리라 느껴요

appletreeje 2015-11-01 22:32   좋아요 1 | URL
예~ 마음으로 서로 생각하며 아끼고 헤아린다면
언제나 즐거운 마음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요~^^

달걀부인 2015-10-31 06:51   좋아요 0 | URL
시...너무너무 좋네요.

appletreeje 2015-11-01 22: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달걀부인님~~^^

2015-10-31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2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31 14: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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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2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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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1 18: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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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2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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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2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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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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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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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1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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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2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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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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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가 몰려오는 저녁

 

 

 

 

 

      별들이 앉았다 간 네 이마가 새벽 강처럼 빛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는 아마, 몇 개의 국경을 넘어서

      몇 개의 뻘을 건너서 온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우주 밖 어느 별을 거쳐서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 허공에 찍힌 별들의 얼룩 때문에

      누군가 조금 두근거렸고 누군가 조금 슬퍼져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는 것

      우리가 오래전에 만난 나무들처럼 마주 보고 서 있을 때

      그때 마침 밤이 왔고 그때 마침 술이 익었다는 것

 

 

      나는 네 나라로 떠나간 사람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가 알고 싶지만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술이 익은 항아리 속으로 네가 들어가고 나서, 나는

      아주 잠깐 소리 내어 울었던 듯하다

      새벽 강처럼 빛나는 저녁의 이마 위에 누군가 걸어 놓고

      떠난

      모자, 만년필,그 리고 저 많은 빛줄기들 그 아래

 

 

      꽃이 핀다, 술이 익는다, 방어가 몰려온다  (P.48 )

 

 

 

 

 

          -송종규 詩集,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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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1 1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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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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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0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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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0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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