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가 낯익다.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살피는 일이고 늘 얘기하는 내용이다. 내 몸이 아프고 약하고 잘 다쳐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것이 내 수업 목표이다. 사람들이 자기 몸을 잘 살피고 아프지 않았으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못된 움직임이 통증을 만든다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
운동하고 있나요, 근육을 학대하고있나요?
통증을 이겨내며 운동하면 점점 더 아프다
근육통은 알고 보면 대부분 근막통이다.
잘못된 움직임과 자세가 통증을 부른다
부상보다 위험한 것이 일상생활이다.
통증을 줄여주는 움직임 회복 전략
내 몸 가동범위를 파악하라
자신만의 호흡을 되찾아라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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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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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을 들춰보더니 언니가, "이 책 읽은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네." 

나는, "기억나지 않기 어려운 내용인데." 

그렇다. 한번 읽으면 혀를 내두를 만큼 센(?) 얘기들이라 시간이 지나더라도 조금은 기억날 듯하다.


그 바쁜 와중에, 잠잘 시간도 부족한 나날 속에서 어떻게 이런 글들을 써내려 갈 수 있는지 작가가 존경스럽다. 어쩌면 기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매 순간 순간 자신을 옥죄는 긴장감을 달고 사는 삶이 펜을 들게 하는 거겠지. 자기 실존을 느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겠고. 


늦은 밤 불 켜진 응급실에서 터지는 비명과 울음소리, 급박하고 요란한 움직임들을 상상하면 역시 갈 곳이 못 되지 하고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다. 실제로 엄마가, 남편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으니. 그런 그곳에서 매일매일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난 뒤에도 자신이-정신이, 신경이- 온전히 살아남은 것을 확인하는 것이 일과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온전하다는 말은 잘못이겠다. 어찌 온전할까. 


죽음과 고독과 허무와 끝내 지우지 못하는 상흔과 회한...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간에서 힘겹게 싸우면서도 잠깐씩 웃게 하는 여유가 있다. 책 앞 부분은 온통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 얘기라 우울한 내용인 줄만 알았다가 중간중간 웃음이 터지는 부분-숨 넘어가게 큰소리로 꺽꺽 웃었더니 조카가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해서 그 부분만 읽어보라고 했다.- 을 읽으며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가 참 고와(?) 보였다. 자신을 붙들 끈을 놓지 않으려면 꽤 많이 노력해야 하고 또 그것이 그 일을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겠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글들이다. 


환자 고통을 줄여주고 보살펴주려는 의료인들이 대부분인 줄은 알지만 의료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다. 말짱하고 따뜻하던 사람도 병원에서 일을 하면 계산이 빠르고 냉정하고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보고 굳어진 뒤틀린 생각이다. 작가가 한 자 한 자 처연하게 써내려 간 글이 내 편견을 깨뜨렸다. 모든 의사가 이 사람 같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러면 누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겠냐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감탄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이 사람이 선택한 인생인데도 내가 괜스레 빚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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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줌으로 요가수업을 시작했다. 언니가 요가를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지속하는 이유도 언니가 요가를 그만두지 않기 바라서다. 내가 천하뺀질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만큼 언니는 너무나 뺀들(?)거려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빠졌다. 대신 성실한 사람들만이 꾸준히 요가를 해왔다. 그분들이 내 요가 스승인 셈이다. 그분들 덕에 이번 요가원 수업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분들에게 수업료를 지급해야 할 듯하다.

오랜만에 서울에 와 언니집에서 요가수업을 하다보니 뺀들씨도 수업을 째지 못해서 옆에서 수업을 받았다. 태양경배 자세는 몸풀기로 처음에 여러 번 하는데 꽤 되다. 보통은 첫 회만 같이 하고 다음 회수부터는 사람들 자세를 보는데 언니 혼자 하면 지칠까봐 끝까지 같이 했건만 언니는 ˝하이고 되다˝ 하면서 중간 중간 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다. 수업 마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왜 그렇게 돌아댕겨?˝라고 했는데 언니가, ˝니가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하라며?˝ 앗. 언니 말이 맞다. 그러니까 수업할 때마다 ‘무리하지 말라‘고, ‘힘들면 그냥 쉬라‘고 말해놓고.
언니는 자유롭고 나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구나.



누군가에게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유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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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힘을 다해 길을 나선 이가 이해가 되면서도 당한(?) 사람은 너무나 억울할 일이다. 하지만 숱한 세상 일에 가치판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가릴 수가 있을까. 누구도 막을 수 없던 일에 분노한다고 해서 일그러진 현실이 다림질한듯 펴질 리가 없잖아. 뭔가 질기고 단단히 얽힌 연으로 일어난 일이었으리라 짐작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삶과 죽음과 운명을 늘 생각하는 듯 보인다. 요가처럼 읽힌다. 옳고 그름 너머에 있는 평정과 고요. 그것이 바로 명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생과 우연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죽기 전 마지막 일상을 누린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그가 마지막으로 욕심내 누린 하루를 비난해야 하는가. 그에게는 곧 떠나버릴 세상일 뿐이며 죽음 후에 남겨질 세상에 관해 망자는 관심이 없다. 그 세상이 자신 때문에 몇 명이고 죽어버릴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에게는 그럴 의도도 없었다. 욕심이 있었을 뿐이다. 자신이 투쟁해서 얻어온 생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싶은, 지극히 평범하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상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 어차피 그것을 비난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비난은 나를 향해 있는가. 아니 그건 우연에 가깝다.
나의 결정이 혹여 또다른 죽음까지 초래한 헛된 격려였다 해도 그것은 도의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범위의 우연이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그렇듯 나는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굴레와 속박속에서 지내야 하므로 이 일에 관하여 두고두고 생각해야 한다.
억울한 한 죽음이 있었고, 다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도저히 어떠한 책망이 불가능한, 피칠갑한 모습의 잔혹한 죽음이었다. 우리는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얽힌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어떤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죽음에 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가볍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선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을 표하거나 어면 죽음은 응당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스물네 개의 갈비뼈와 폐부가 전부 으스러진 죽음에 관해서, 그리고 전신이 악성 종괴로 되어드는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그 처참한 시체만을 눈앞에서 볼 뿐 아무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죽음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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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책장에서 찾은 두 번째 책이다. 몇 년 전에 언니 책장을 내가 다 정리해버려서 남은 책이 거의 없다. 이제 언니는 책을 사지 않고 빌려서 본다. 정작 내 책장은 정리하지도 못하면서 남 책장을 비워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지. 매순간이 응급인데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 매번 맞는 선택을 해야한다면 그 압박감을 어떻게 감당할지.

몇 년 전 남편이 빗길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다는 연락받고 응급실에 도착한 순간 바로 뒤에 요란한 소리를 내던 구급차가 멈춰섰다. 그게 남편을 실은 차였다. 몇 군데 부러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장기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구급차 싸이렌 소리 강박증이 생겼다. 그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누군가 많이 다쳤겠구나 싶어 마음이 불편해졌다. 날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는 직업군은 어떻게들 사는걸까.


나는 그를 죽게 놔둔 무책임한 의사이자,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자라는 사실 가운데서 방황했다. 그를 진료했던 순간을 아무리 복기해봐도 그를 도저히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떳떳하게 살아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명징한 우울과 죽고자 하는 강렬한열망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것은 비참함.
이 예정되어 있는 나의 운명을 암시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곧 나는 마음속에서 불처럼 번져나가는 우울과 열망을 느꼈다.
우울은 확실히 다양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깊은 우울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깊이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깊이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때처럼 죽고자 하는 열망에 깊이 시달린 적이 없었다. 그 안에서나는 얼굴이 반만 남은 사람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했다. 일은 계속해야 했고,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으며, 나는 그들의 가면을 혼자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끊임없이 두려워했다. 이 이야기는 내게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치명적이었기에, 나는 평생 이 일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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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05-09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의사 이름을 SNS를 넘나들며 몇 번 본 기억이 나네요.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책도 냈군요.

남편께서는 잘 회복하셨겠죠.
저도 다행히 잘 회복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후유증도 줄어들고 있음을 느껴요.

사고 이전과는 달리 삶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는 일상이 되었어요.
끔찍한 사고였지만, 시간을 되돌려 그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못하니,
그걸 계기로 나 자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samadhi(眞我) 2022-05-14 13:57   좋아요 0 | URL
네 잘 회복해서 말짱하게 걸어다닙니다.
감은빛님 회복하셨다니 반가운 일이네요.
너무 안 나아지셔도 될 듯하지만^^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