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스러울 때 희망을 갖기 보다 좌절하기 쉬운 내가 과연 하늘이 무너질 만한 어려운 상황에 솟아날 구멍을 찾아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인다. 행동이 먼저인 사람들 앞에 서면 말만 앞서고 머리만 굴리는 내 모습이 들통날까봐 쫄아든다.
˝해방술잔˝ 이라는 노래 가사를 가끔 떠올린다.
˝~비겁의 술냄새 난다면 혓바닥만 놀리고 머리통만 빠개는 빌어먹을 술을, 술을 끊겠다.~˝
술을 먹지 않아도 나는 말로만 쫑알대고 말없이 움직이는 사람에게 홀리고 만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사람들과 거리를 느끼는데도 행동과 실천에 대한 강박 때문에 가까워지려고 무모하게 시도한다. 게으른 변명일 뿐이지만.


"괴롭긴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더군요. 괴로움은 인간을 죽이지 못 하지만 절망은 인간을 죽이는 흉기죠.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은 살아왔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죽었어요."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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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별 뜻 없이 쓰는 말과 글을 조금 더 신중히 다듬어야지 하고서는 미루다가 습관대로 말을 뱉고 글을 쏟는다. 수업준비하면서 대충대충 줄기만 잡는데 대본 쓰듯 철저하게 고쳐쓰고 여러 번 읽어야겠다고 다지기만 한다. 배우들이 대본 읽고 외우듯이 내가 하는 것도 다를 바 없다고 나도 그리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지. 그러다가 한 두 번은 꼭 말을 버벅거리고 만다.



스무 자도 되지 않는 파편 같은 글자들, 문장을 이루지도 못하는 글자들이 나의 삶을 옥죄어 왔다. 그때 나는 알았다.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 모든 군인들은 문장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탄도 포탄도 아니었다. 그것은 글이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는 한 줄의 글로 족했다. 몇 개의 단어와 숫자, 구두점에 의해 소년들은 병사가 되고, 전장으로 이동하고,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인두처럼 달구어진 총탄에, 차가운 적의 총검에, 고막을 터뜨리는 폭발음에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 채 죽어 갔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문장이 두려워 들고 있던 디킨스를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디킨스는 나약해 보였다. "아." 정물처럼 서 있던 어머니 엄지에 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 앞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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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가볍다. 

재밌다는 후기가 많아 기대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 인지. 어린 선수들이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었겠다. 이상에 가깝고 미쿡이라서 가능할 듯하고 우리나라라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소설 주요 인물들이 죄다 비서여서 오랜만에 몇 년 전 비서로 일하던 시절이 기억났다. 상사에게 존중받지 못하는-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비서를 자기와 동등한 주체로 여기지 않는- 것에 공감한다. 내 첫 번째 상관이 그랬으니까. 비서는 그냥 자기 지위에 걸맞은 도구(?) 쯤으로 여겼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 안되고 있는 듯 없는 듯도 아니고 그냥 없는 듯 없는 듯한 게 좋은 존재였다. 비서 노릇 비슷한 것도 정보 부서 사람들이 죄다 했고 나는 그냥 부속실을 지키며 결재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정도가 다였다. 나중에 그 기관장은 결국 비위를 저질러 좌천되었다던가? 옷을 벗었다던가? 그랬다. 


그와 반대로 두 번째 상관은 지나치게 내게 의존(?)해서 자기 아들 예식이 끝난 뒤 감사인사 카드를 일일이 내게 쓰게 할 정도였다. 뭐 이런 것까지 다 시키나 툴툴거리며 문구를 궁리했다. 뭐가 궁금하면 전부 내게 묻고, 재미있는 책도 골라주어야 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쉬웠지만. 행사 때 발표할 인사말조차 내가 교정해주어야 했다. 그런 건 으레 정보 부서에서 하는 일인데. 내꺼 사는 김에 마트 매대에서 파는 5천원 짜리 페도라 모자를 사줬는데 마음에 들어해 자주 쓰고 다녔다. 5천원 인 줄 몰라서였겠지만. 성격이 너무 불같아서 직원들이 다들 힘들어했다. 물론 나를 가장 힘들게 했지만 우리집 둘째언니 ㅅㅇ 보다 한 수 아래(?)여서 나는 꽤 적응을 잘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상관을 가리킬 때는 남자 ㅅㅇ이라 칭하곤 했다. 내가 두 번째 상관에게 존중받는다고 느낀 것은 내가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해지 6개월을 앞둔 즈음 그 상관이 먼저 다른 곳으로 발령받았는데도 내 계약 연장을 상급기관에 세 번이나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이다. 사람 참 성가시게(?) 했지만 그래도 한 인간으로 존중받았다. 


소설 소개글에는 통쾌하다고 평해두었는데 뭐 그렇게 통쾌하다거나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래도 돼? 하는 의문이 들고 뭔가 시시하고 허술하다. 책을 꺼내며 언니에게 재밌었냐고 물었는데 재밌다고 대답하는 언니 말을 잘 걸러 들었어야 했는데. 아마 읽은 지 오래돼서 잘 기억나지 않았을 거다. 집에 읽을 만한 책도 없고 마침 도서관 휴관일이이서 도서관까지 갔다가 허탕치고 온 내게 재미없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뭐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한 듯하다. 


내용이 얕고 가볍고 그다지 통쾌하지 않다. 납득도 잘 안 가고. 인물들이 다들 너무 쉽다. 너무 쉽게 수긍하고 너무 쉽게 일을 벌리고 수습은 하지 않는다. 인물들 편하게 수습이 자동으로 되어주는(?) 전개라 작가가 막연하게 써 내려갔으리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학자금 대출로 피 말리는 압박감을 느껴본 이에게 한줄기 시원한 꿈처럼,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도로 잠깐 지나가는 위안을 줄 수도 있을랑가. 크라우드 펀딩처럼 좋은 취지로 하는 기부방식을 다양화해 손톱 만큼이라도 부를 재분배한다면 그게 어딘가.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을 거대한 몸체를 가진 괴물이라 해도 먼지 만큼 작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힘으로. 얼마가 걸려도, 살아있는 한 내가 죽더라도 또 다른 이들이, 그 뒷세대들이 한 발짝 내딛다 보면 언젠가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겠지. 내게는 시답잖은 소설이지만 그런 희망 하나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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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나 이 구절을 읽다가 문득 익숙하고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가만 떠올려 본다.
뭔고 하니 노란색 허니콤보 치킨 냄새다.
언니네 와서 거의 처음으로 치킨을 안 시켜먹었더니 금단증상처럼(?) 노란색이라는 글귀만 봐도 치킨이 당기나보다. 언니가 요즘 너무 살쪄서 입이 심심하다고 끄떡하면 뭘 집어먹으려 할 때마다 옆에서 뜯어 말리고 있는데 이 밤에 환청 대신 환후라고 해야하나. 이런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

형광빛 도는 노란색 장식물이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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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인공인 티나식 KISS 뜻이 괜찮다. 단순한 문장, 단순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나한테 딱이네. 머릿속도 좀 단순해져야 하는데. KISS는 역시나 좋구나.

무조건 간단히, 이 멍청아(Keep It Simple Stupid)‘, 줄여서 KISS‘는 내가 키스할때에도 적용하는 원칙이었는데,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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