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그 해 여름
김성문 지음 / 서울문학출판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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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여 시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다 쏟고 이제 그 모든 것이 내 살인양 몸에 베어져 버린 이때에 남편은 멀리 떠나고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을 부담스럽다며 멀어지고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나만의 시간을 어떡게 보내야하나?하는 갑자기 생겨버린 시간들을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시간 바로 중년의 여성인 듯하다 그런 중년이 되어버린 수연! 물론 수연의 중년은 다른 대다수의 중년과는 다른모습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녀는 쉰네살의 목사 미망인이고 아버지와 같은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는 아들이 있다. 

남편의 묘지를 방문한 수연에게 다가온 윤석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가슴이 떨려올 뿐이다. 그를 바라보는 수연의 마음은 봄바람처럼 부드러웠고 시간이 갈수록 석주를 향한 수연의 마음은 때양볕 여름처럼 들뜬 모습으로 변해 갔다. 목사의 미망인이라는 목사의 어머니라는 무료 배식을 통하여 얻어진 사모님이라는 모습도 교회의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의 시선들도 석주를 향한 알 수 없는 끌림을 막기엔 부족했다. 아니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게 만들어 버렸다.어쩌면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들려주시던 견우와직녀를 제일로 좋아하는 수연에겐 석주와의 사랑(?)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단종 되어서 부품도 소모품도 구할 수 없는 만년필을 간직한 석주,화염과 불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달려 들어가 수연을 구출한 석주, 그로인해 석주는 성악가의 길을 버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마음을 준 지리산의 그녀(산수련), 그러나 잊을 수 없었고 그녀의 피아노를 간직하며 마음을 다잡는가 싶었지만 이제는 찬규로 인해 사랑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쉰한살의 수연은 남편을 잃기엔 너무 빠르고 여자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이상한 나이에 평생을 자신만을 위해 숨 쉬어준 남자 석주의 고고학자가 유물을 대하는 사려깊고 날카롭고 이성적인 동시에 따뜻한 감정이 깃든 시선을 받게된다.주위의 시선과 아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며 머뭇 거리는 수연을 유일하게 잘한다는 조용히 기다려 줄 것이라는 석주, 그리고 수연을 사랑했지만 신을 향한 사랑에 평생을 바쳤던 찬규, 찬규를 너무나 닮은 아들 동우,수연에겐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세남자, 찬규와 석주와 동우 그들은 하나같이 고집불통 바보들이었다.

나에게도 슬슬 다가올 중년의 나이, 결혼 초창기에 설레였던 감정들이 생활속에서 무뎌지고 정으로 변해버린 중년의 위치, 어쩌면 중년의 여성들에게 한번쯤은 꼭 다가오길 기대하는 순간이 바로 석주를 향한 사랑(일탈)을 선택한 수연의 사랑이리라. 내가하면 사랑이고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선을 넘어선 사랑.아무리 많은 취미생활을 하여도 해소되지 않을 감정들 그렇다고 수연처럼 찬규처럼 석주처럼 예쁜사랑으로 포장 되어질 건더기는 없을지라도 중년의 여성들이여 자포자기는 금물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충분히 귀하였고 남은 앞으로의 삶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임을 잊지말자. 옥분 할머니처럼 당당해지는 노년을 맞이하기 위하여라도 자신을 최고로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이 될 수있다고 다짐하자. 중년의 여성들은 교양필수처럼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전공필수처럼 이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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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다 - 해산우고
이은춘 지음 / 자연과인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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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비는 정말이지 좋아하는데 한자(한문)는 두팔 걷어부치고 도망가듯 치를 떨며 싫어하는 나에게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님이라는 전주이씨 덕천군의 후예이신 해산 이은춘 공님을 만나게 되니 어찌할바를 모르겠다는게 첫 만남의 심정이었다. 한문을 많이 알아서 술술술 읽어 나가고 그뜻을  옳은가고 음미하여 어렵게 한학을 공부하신 분을 통해 해석해 둔 내용들을 읽기 전에 말씀하시고자 한 것들을 가슴에 느낄 수 있었다면 더 깊은 감동이 전해 졌을텐데 아쉽게도 나에겐 너무나 먼 한자(한문)여서 그 뜻을 풀이하면서 읽기 보다는 문중,장손,일가,정자등 요즈음에는  흔히 쓰지 않는 용어들이겠지만 어릴적 많이 듣던 말이라 거기까지 다가갔다고 안도함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갓 쓰시고 곰방대를 들고 앉으신 모습이 전혀 낮설지 않은 모습이라서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 내 아이들에게 비칠 이 모습은 단지 옛날 사람 중 한분 일것이라 생각케되니 너무 죄송스러웠다. 유교집안 씨족마을에서 자란 나에게 일가들은 멀지 않은 친척이고 동네 어르신이었다. 삼년탈상을 하며 조석을 올리던 풍습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보고 자란 티가 몸에 베어 있는것도 같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때 문중에서 호(학산이셨다)가 내려오고 5일장 내내 그 깡시골에 도포,갓 봇짐삼아 전국에서 올라오셨던 기억 아직도 생생하다.만장록은 생소하지만 제를 지내는 모습이나 마을 구석구석에 있는 정자들이 더 없이 친근해서인지 어르신께서 읊으신 시들이 낮설진 않았다.한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어쩜이리도 은율에 맞게 잘 지으셨는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한문으로는 해석이 불가하지만 우리말로 풀이해 둔 글을 읽으면서  해산 이은춘 공님은 참으로 감성이 뛰어나신 분이시구나 느끼고 아스팔트 숲에서 자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런 감성들이 전해질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창원이라는 시골에 계시면서도 나라의 크고 작은 일들을 알고 그 날들을 기념하여 시를 읊으신 모습이 나 아닌 가족에게조차 신경 쓰기를 귀찮아하는 요즘시대의 사람들에게 참다운 "어른다움"을 잘 보여주시는 것 같아 더없이 감사하다. 

한문이 좌르륵 터져나오는 책이라고 어렵다는 선입견은 멀리하시고 이은춘 공님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고 우리의 어르신들의 삶에 대해서 그 분들의 사상에 대해서 다시한번 되집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알기를 원한다. 특히 차세대 주자인 우리의 아이들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의 것을 잘 알아야 우리의 뿌리가 든든해 질 수있고 그래야만 다른문화를 접했을때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반듯하셨던 모습 후대를 위한 유고집을 펴시기를 유언하시고 잘 살으라고 울지말라 당부하신 말씀에 고개숙여 예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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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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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으로 산지가 어언 몇년이던가? 강산이 몇번?은 변할 정도의 시간을 서울 사람으로 살았던 나,그럼에도 정작 서울을 잘 모른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내가 가는 그 길만 주구장창 걷고 달리고 버스며 지하철이며 늘 다니던 그길 이외에 간적이 없는듯하다 아주 가끔은 티브이 속에 나오는 서울이 어디에 있나? 싶을때도 있으니 할말 없다.내가 아는 서울이 이렇게나 이뻤나? 고즈넉했나?신비로웠나?아픔이 묻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스케치가 초등학생들이 그리는 몽당연필 같은 땅딸막한 모습도 아니고 내 눈에는 완전 미술계의 특급 교수님같은 정말이지 소소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그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너무나 빽빽하게 전해지므로 감히 그림재주 없다는 말은 완전 겸손의 극치처럼 들렸다.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서울의 한켠을 밟고 다녔는데 스케치로 보는 서울은 색다르고 어디지?하는 호기심이 바로바로 생기기에 충분했다.  발품 팔아서 한 일은 다른 어떤일보다 더 정감이가고 정성을 들였으므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우리네 마음이 스케치 한장한장 아니 한컷한컷이 정말 발품팔아 여기저기 기웃거려 돌고돌아 겨우겨우 찾아서 스케치한 땀방울이 보일듯히 감격스럽다. 어느것은 우리의 손때가 켜켜이 묻어서 아도 닦아도 닦아도 흔적이 남는듯해 보이고 어떤 곳에선 나도 모르게 이게 뭐야(하찮아서 그런것이 아니라)하는 전혀 생소한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두어야할 듯한 스케치도 많았다. 
우리가 흔히 많이 이야기하는 경북궁, 명동, 종로,인사동, 광화문, 청계천(새로이 단장한 청계천을 떠올리지만)혜화동, 효자동,숭례문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 머릿속에 전혀 없는 수진궁,정동,우정총국,경교장(가슴아픈 비극이다.현대병원의 출입문으로 쓰이고 있다),딜쿠샤(꼭 일본말 같지만 힌두어이며 이상향이란 뜻이다)는 생소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그대로 보존된 것 보다는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콘크리트 이정표로 알림판으로 달랑 정말 성의 없이 만들어진 그러면서 꼭꼭 가려져서 관심가지고 찾으려고 해도 힘든 그런 우리의 역사가 가슴아프다.우리의 아니 나의 무관심이 가슴아프다.

역사를 보존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현재의 편리함을 우선시하게 되다보니 아무리 국보로 지정하고 유네스코에서 지정을 하여도 우리 마음이 신경을 쓰지 않는듯하다 한권의 국사책 같은 이 귀한 책을 소설책 대하듯이 흥미 위주로 읽고 덮고 잭장 깊숙히 쳐박아 놓아 버린다면 왠지 우리조상들이 통곡을 할 것같다. 그래서 더 나의 손때를 묻히고 싶어진다. 이렇게 쓰다듬어 주면 그시절의 아픔들이 쓸어내려갈 것처럼 말이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우리의 역사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나 아닌 모든것에 무관심한 우리들이 나 자신을 대하듯 귀하게 바라봐 주어야만 할 나 자신이 될 수있는 이야기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누구라도 필히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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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2011-04-15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소설로 읽는 성경속 여인들의 사랑과 야망 2
박요한 지음 / 성안당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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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여인들은 몇몇을 빼고는 일명 우리나라의 현모양처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늘상 생각했었다 소설이긴 하지만 제목을 보는 순간 아~맞다 그때 그시절에 사는 여인들도 "여자"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속 여인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사람일 뿐 왠지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고 진한 역사의 냄새만 품고 있으며 특히나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지식적으로는 들은 풍월로는 남여가 존재 했지만 언제나 늘 우리나라의 어머니상 같은 푸근하고 펑퍼짐한 여인네를 머릿속에 정례화 시켜 두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나 많은 어여쁜 여인들이 등장 함에도 말이다. 오늘 만나볼 여인들의 중심에는 "다윗"이라는 한시대를 평정했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듬뿍 받은 그러나 그도 인간으로 남자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남성성과 왕이 되기까지 그리고 왕이 되어서의 여정들과 그의 삶 속에서 함께한 여인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로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 다윗의 대표여인들을 만나본다. 

사울왕의 둘째딸 미갈(그녀를 얻기 위해 다윗은 블레셋사람 양피 200을 사울에게 바쳐야 했다)과의 결혼과 그녀가 조강지처이면서도 첩으로 밖에 살 수 없었던 이유와  "어리석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련한 나발(자기의 목숨보다 재산을 더 중히 여기고 결국 죽게된다)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나의 아버지가 기뻐하신다)의 현숙한 모습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까지 잊혀지지 않을 다윗의 간통사건(전쟁중에 있는 신하의 아내를 탐하고 그 신하마저 죽이게 되는)의 주인공밧세바와의 얼룩진 만남까지 다윗의 여인들의 파란만장한 모습들을 일인칭 다윗이 아니라 일인칭 여인들의 이야기로 풀어 내려가고 있는 이 글은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선민사상 속에서 전쟁 중에도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다윗의 고뇌와 권력 앞에서 가질 수 있는 여인들의 위치같은 다윗 치정에 빼놓을 수 없는 여인들과 그들의 사랑과 야망이 어우러져 있다.공주 미갈의 남편이었던 발디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고 나발과 우리야장군은 또 어떤가 어찌 되었든지 간에 다윗의 흑심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게 된 인생들도 나온다.

하나님께 전쟁 중에서조차 그 많은 시를 읖조리던 다윗이 가정파괴범의 범주에 들어간다니 그 시대 상황을 아무리 이해 한다고 해도 참 난감할 수밖에 없다.그럴지라도 전쟁 중에도 고난 중에도 늘 긍정적이었다는 다윗의 성품이 여색을 즐기던 다윗의 생활이 100%  공감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의 일은 당사자 이외에는 누구도 모른다는 함부로 말 할 수 없다는 기본 생각을 다시한번 다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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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른이 되려나 봐요 - 스페인 아펠레스 메스트레스 상 수상
마리아 마르티네스 이 벤드렐 지음, 카르메 솔레 벤드렐 그림, 김미화 옮김 / 풀빛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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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 아빠 품에서 태어나 뒤집고 기어다니다가 어느순간 아장아장 걷고 엄마아빠와 맞잡은 손을 놓고 혼자서 뛰어다니면서 성장통이라는 신체적인 아픔을 동반합니다.아픔이지요. 심할경우엔 걷기를 싫어하고 주저앉아 울기까지 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성장통을 계기로 아이는 키가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성장통에 시달릴때 엄마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팔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주는 것 뿐입니다. 오늘 어른이 되려고 하는(신체적이기보다는 마음적으로 한 생명체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단계인) 마르타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울보이고 아파서 자리에 누운 엄마가 아침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땋은 머리라고 속삭이는 활금빛 머리카락을 허리근처에까지 치렁치렁 기른 아이입니다. 엄마가 아파서 황금빛 머리카락을 아침마다 고모가 잡아당겨 빗기며 땋아주지만 엄마처럼 고모에겐 마르타의 머리손질이 소중하지 않은 일이고 어쩌면 귀찮은 일인 것을 압니다. 여름휴가를 계기로 마르타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싹뚝 자르게 됩니다.시간과 함께 마르타의 짧은 머리는 익숙해져서 혼자서도 머리를 빗으며 즐거워하게 됩니다.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 슬퍼하는 마르타에게 사람들은 슬프고 측은하게 불쌍하게 바라보면서 짧은 머리를 한 마르타가 엄마를 꼭 닮았다고 말해줍니다.슬픈 와중에 마르타는 엄마와 닮은 자신이 너무 좋습니다.이제 마르타는 울보에서 조금씩 조금씩 벗어나는가 봅니다. 거울을 보며 엄마 미소를 볼 줄도 알고 저녁이면 엄마별을 찾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손으로 만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느낌을 간직한 그림들과 동화속 폭신폭신한 하트구름 속에서 무지개 이불을 덮은 듯한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제 어른이 되려나 봐요"는 동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잇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눈물의 의미와 사랑을 미사어구 없이도 마르타의 간략한 생활로 그대로 스케치 된 느낌입니다. 아이를 둔 부모님이 그리고 어른들이 읽어서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마음밭을 가지시기 전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풍요로움 속 아이들의 동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런 아이들의 눈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기를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을 그 자체로 인정해 줄수 있기를 어른들의 잣대에 아이들을 꾀어 맞추시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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