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박제이 옮김 / 문학수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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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과목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수학'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멋쩍게 웃으며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수학이라는 단어를 맞닥뜨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려운 것'이다. 답이 정해져 있어 좋았던 수학이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려웠고 싫어졌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느꼈을 것이다. 수학은 범접하기 어려운 교과였다는 걸. 수포자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생활에서 가장 쉽게 사용하고 가장 밀접하게 활용하는 분야는 수학일텐데 왜 나에겐 수학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게 느껴지게 된 걸까. 정해진 방법대로, 공식을 외워 문제를 해결해 정답을 맞춰나가는 그런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가 없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제목 때문이었다. <수학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는> 이란 제목은 마치 '수학을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 그래도 조금은 재밌을 걸?'하며 나를 살살 꼬드겼다. 어렸을 때 조금은 좋아했던 수학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렇고.

이 책은 저자인 니노미야 아쓰토가 담당 편집자인 소데야마 씨와 함께 11명의 수학자를 만나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교수에서부터 교사, 천재 중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만의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다.

수학자, 이름만 들어도 깐깐한 대학 교수 느낌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내게 박혀있던 하나의 편견이었다. 실제로 수학자를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뭔가 날카로운 눈매에 안경을 쓰고 있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으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일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아니었다. 교사와 개그맨의 꿈을 합쳐 수학을 가르치는 다카타 선생님, 어른을 위한 수학교실을 운영하는 호리구치 씨 등 자신만의 길을 찾아 수학을 연구하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도 수학자였다.

저자와 인터뷰이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 당시 대화를 그대로 옮겨두듯 서술한 책이라 나도 함께 그 자리에서 여러 수학자들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궁금한 것, 의문이 드는 질문들을 저자가 수학자에게 전달해주는 부분도 많아 신기하기도 했다. 정말 수학에 대한 편견을 가득 가진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가식적이지 않고 정말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나온 전문 지식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이 가진 수학에 대한 사랑과 열망은 너무나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내가 겪었던 입시 수학이 미워질 정도로 말이다. 단지 풀고 정답을 맞히는 단순한 기계적인 사고가 아닌 내 스스로 질문하며 탐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고 정리해나갔다면 나도 이들처럼 수학에 모든 걸 바치지는 않았을까?

수학자들이 말하는 수학은 같은 결이 있었다. 수학은 결국 모든 것이라는 것. 수학을 공부하는 건 인간을 공부하는 것이고 모든 대화와 상황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수학은 자연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나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 냈기 때문에 하나의 관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분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표를 몰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수식을 몰라도 수학을 즐길 수 있다. 단지 '왜?'라는 질문을 시작하면 그것이 수학이라는 지바 교수의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즐기는 데엔 다른 건 필요 없다. 즐기고자 하는 마음과 그것에 뛰어드는 용기,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수학 공식을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수학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수학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았을 뿐이지.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며 내가 너무 편협하게 수학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수학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요즘에서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풀어보게 하고, 놀이를 하며 좀 더 즐겁고 탐구하며 수학을 배우게 하고는 있다. 하지만 정해진 내용과 분량이 있고 그 나이 또래에 바라는 목표가 정해져 있는 지금의 교육에선 그 틀을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공식이 중요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수학의 특성 중 하나인 '추상성'이 오히려 수학의 감동을 없어지게 만든다는 다카세 씨의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갔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의 교과서를 스토리텔링으로 실생활과 관련 있게 계속 만들고 있지 않나. 단순한 문자로 치환하지 않고 우리 삶에서 수학을 경험할 수 있게 말이다.

진정한 수학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 사람이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한 후치노 씨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은 내가 즐기는 수학이 진정한 수학이라는 것이다. 과연 나는 내 삶 속에서 수학을 즐기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 11명의 수학자들처럼 수학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제목과 같이 수학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술술 읽히는 책이라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읽으면 인식 전환에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뭐, 조금은 수학이 재미있어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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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배속으로 월급 독립 - 포리얼과 함께하는 자동수익 월 천만 원 프로젝트
김준영 지음 / 베가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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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꾸는 경제적 자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적 자유이지 않을까. 하지만 누구나 꿈꾸지만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는 없는 게 경제적 자유이다. 아침에 피곤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나와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며 일을 한다. 더 피곤해진 몸뚱이를 침대에 누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들을 견디게 해주는 건 월급날에 통장에 찍히는 월급 때문이다.

하지만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재밌는 것과 맛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늘어나는데 내 월급은 그만큼 늘어나질 않는다. 어느 순간 텅장이 되어버린 내 잔고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고민을 하지만 겸직이 되지 않는 직업의 특수성과 지치고 피곤한 현실은 이 상황에 날 안주하게 만든다.

그러던 중 만난 김준영 저자의 <2배속으로 월급 독립> 이라는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은 저자가 '돈'이라는 목표를 좇아 부단히도 열심히 살았으나 스트레스와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퇴사를 하게 되고 진정 원하던 자유로우면서 돈을 버는 자동수익 시스템을 구축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본인의 성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시행착오 없이 돌아가지 않고 본인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책이라고 한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는 중에도, 내가 잠을 자고 있는 중에도 자동수익 시스템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이 일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상에서 진행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현재에 온라인은 하나의 시장이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인터넷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전문적인 기술이 갖춰진 사람들이나 할 수 있었던 콘텐츠 사업을 이젠 누구나 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저자는 말한다. 전문성이라는 단어에 큰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충분히 콘텐츠를 만들 능력이 되지만 나의 경험과 지식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경험은 가치가 있으며 누군가에겐 큰 정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사소하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어렵고 큰 일이라 유튜브나 다른 블로그 등을 참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문제에 대한 해답, 정답을 내가 알고 있다면 그 누군가를 타깃으로 콘텐츠를 제작하여 나의 인포디언스를 늘려나가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을 보다보면 중간중간 나의 콘텐츠를 찾을 수 있게끔 유도하는 질문이 있고 답변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사실 난 아직 한 칸도 못 채웠다. 거의 30년을 살아가면서 이렇게나 내가 알고 있는 것,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게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나도 소비적인 일만 하고 있었고 누구도 내 생활에서 얻을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걸까 싶으면서도 진짜 없는 거 같은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민과 고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내 목표는 여러 경험을 해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웹툰과 웹소설을 즐겨보니 감상평이나 추천목록 등을 작성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줌바댄스도 배우기로 했으니까 초보 줌바댄서를 위한 영상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상위 0.1%가 돼야만 남에게 정보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신보다 정보를 덜 가진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당신의 관객이 될 수 있다.

p221

나만의 자동수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콘텐츠를 좀 더 고민해보고 이 책에 나온 프로세스대로 실행하다보면 소소하게라도 여유자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물론 직업의 특성 상 가능할지, 또 다른 절차를 거쳐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현재의 월급에만 목숨을 걸고 퇴근 이후의 시간을 없는 시간처럼 날리는 것보다 좀 더 생산적이고 유의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앞으로 더 발전할 온라인 콘텐츠 사업에 관심이 있거나 현재의 월급 외의 수입을 얻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순식간에 후루룩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여러 번 읽어보면 더 좋을 책이다.

올해 안에 나도 이 빈 칸을 모두 채워서 작은 콘텐츠 한 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여러 경험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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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이도 술술 읽는 친절한 경제책
박병률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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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세상에 '돈'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영향은 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고민과 불안은 대부분 돈이 없어서 생기는 것들이다. 내 집을 가지고 싶으나 천정부지 치솟은 집값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금리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로또와 소액으로라도 해볼 수 있는 주식이지 않을까. 로또는 너무나도 간편하다. 로또 판매점에서 5천원을 들고 사오면 되니까. 하지만 주식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돌아가는 경제 상황을 반드시 알고 기업의 가치와 현재 상황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주식 유료방을 들어간다 하더라도 내 실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뭣도 모르고 따라하기만 했으니 나 혼자서 수익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내게 필요한 건 나 스스로 경제에 대해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듯이 평소에 경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경제 박사가 될 수는 없다. 경제신문도 뒤적여보고 유튜브도 봐보려고 해도 어려운 단어들과 개념들, 여러 복합적인 사건들과 관련된 이 사회의 경제는 내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흥미가 떨어지고 뒷전이 된다. 결국 또 포기한다. 그리고 5천원을 들고 로또 판매점으로 향한다.

내게 필요한 건 정말정말 쉽고 쉬운 경제 입문서였다. 그리고 우연찮게 이벤트를 통해 그 책을 만났다. <주린이도 술술 읽는 친절한 경제책>은 정말 술술 읽혔다. 80가지의 질문과 1~2장 정도의 답변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루해질 만하면 한 질문이 끝나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대화식으로 풀어가는 답변은 다양한 예시와 실제 사례를 통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기 사소한 질문들부터 전문적인 질문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카드결제와 현금결제, 신혼부부 혜택을 받을 때 신혼부부의 정의,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 이자에 대한 내용, 엔화가 안전자산은 까닭, 선물과 옵션, 파생상품의 의미와 위험성, 환율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 환전 수수료에 대한 내용 등 생활 속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아 더 흥미를 끌기도 했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흥미를 잃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한 번 책을 잡으면 멈출 수 없이 주루룩 읽게 된다.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이 짧아 걱정되었었는데 경제 초보자에겐 딱 이 정도가 흥미를 잃지 않고 최대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양과 충분한 설명이었다. 경제책을 이렇게 후루룩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인 듯하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가끔 보이는 오타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아 크게 무리는 없었다.

경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경제 초보자에게 아주아주 적합한 책! 경제 상식에 한 걸음을 내딛게 도와주고 책에 나오지 않은 부분들을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책이다. 사실 2탄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맘에 쏙 들었다. 나처럼 새해에 경제 공부를 시작할 초보자들이 읽으면 정말정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월급 1+1을 향해 다시 한 번 이 책을 재독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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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붕대 스타킹 반올림 31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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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성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가? 많은 사람들은 동일한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전혀 아니라고. 누군가의 더럽고 추악한 욕망은 성인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어리고, 더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까지 손길을 뻗는다. 누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얼음붕대 스타킹>은 명문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니는 열일곱 살 선혜의 그 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적이 드문 골목을 지나 고시원을 가는 중에 술 취한 남자 2명에게 성추행과 폭력(성폭행 미수)을 당하고 가까스로 도망쳤으나 자신에게 남은 기억과 누군지 모르는 가해자, 또 다른 가해를 하는 주변인들에 의해 차갑게 얼어 붙어버린 선혜가 자신의 스위치를 찾아 자신을 감싸던 얼음붕대와 자신을 보호해주던 검은 스타킹을 벗어버리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차가워진 선혜의 마음이 내게 너무 와닿아서일까. 내 마음도 차가워져 책을 한 장 넘기는 게 매우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불행을 타인을 망가뜨리며 해소하려는 미친 가해자들과 불확실한 증거라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할 것 같다며 피해자 앞에서 혀를 끌끌차는 경찰, 그렇게 숨기고 싶어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허락도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 친구에, 하나의 가십거리로 여기며 소문을 파헤치고 허위 소문을 퍼뜨리는 친구, 절대적인 내 편일 줄 알았던 엄마의 회피와 무신경함. 선혜의 시점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인지 마치 내가 겪은 것 같이 이입하며 읽었다.


 생각해보면 우린 성추행을 좀 더 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내 주변은 말이다. 강간당한 게 아니니까. 아마 그만큼 성추행이 더 만연하게 일어나기 때문이겠지. 그 정도는 마치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성폭행뿐 아니라 성추행, 성희롱, 언어적 성폭력 등도 겪은 사람들은 그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나 역시도 직장을 다니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늙은 남자가 내 허벅지를 쓸었던 일, 등을 만진 일, 주말에 개인적으로 연락와 데이트하자는 등의 일들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주변에 말을 꺼내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넘어가자.’라는 반응을 겪어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 


 결국 이런 문제는 1차적인 원인, 가해자들이 문제다.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들을 인간으로 대접해줄 필요가 있는가?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왜 웃으며 살아가는가. 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가.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 죄를 지었으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또한 남의 상처를 희화화하며 장난치는 사람들에게도 그에 따른 처벌이 있어야 한다.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사람들. 피해자를 걱정하는 척하며 피해자를 까내리는 일이나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말을 하는 것 모두. SNS가 발달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일이다. 


 언제쯤 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오긴 올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죽을 때까지 없을 것만 같다.

 

 # 살려달라는 말이 아주 무겁다.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책을 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웃던 모든 일이 포함된, 슬픔과 기쁨과 절망과 희망을 모두 담고 있는 말. 여태껏 소중한지 몰랐지만 지금은 모든 단어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망설이지 않고 ‘살아 있다’를 고를 것이다. - p25

 

#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온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지닌 빛과 어두움을 모두 알아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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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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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사람이 가진 특징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아마 '미술'과 '음악'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다양한 분야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예술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다. 한때 나도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클래식도 들어보고 미술 작품을 한 번 들여다보기도 하고 미술관도 찾아가보고 그랬었다. 하지만 웬걸, 솔직히 내겐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었다. 이게 무엇을 표현하는 건지, 작가는 누구며 어떤 시대 배경을 담은 건지 하나도 모르니 '음, 예쁘군. 멋진 그림 또는 곡인걸.' 이런 짧은 감상평만을 남기고 뒤돌아버린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였기에 관련 책을 여러 권 사보아도 첫 부분만 열심히 읽고 뒷부분은 깨끗한 문제집같이 한 곳에 쳐박혀두게 되었다. 클래식은 그래도 귀가 있으니 들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기라도 하는데 미술은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웠다. 까막눈이 된 기분...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아주 부담 없이 미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365점의 명화와 함께 관련 지식들을 1페이지로 구성하여 뭔가 지루할 때쯤 끝나버린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을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까지 제공해주기도 해서 좀 더 동기부여가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매 요일마다 각각 다른 분야(작품,미술사, 화가, 장르와 기법, 세계사, 스캔들, 신화와 종교)의 지식을 다루고 있어 작품을 더욱 폭 넓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프레스코 등 다양한 종류의 미술 작품들이 나와 있고 그 작품마다 담겨 있는 작가의 사상, 생각, 그 당시의 시대상 등을 가벼운 듯하면서도 핵심을 콕 집어서 설명해주는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책 내에서 유기적으로 참고하면 좋을 부분들을 표시해주는 것도 마찬가지. 페이지의 하단에 그 주제에 맞는 짧은 지식들도 아주 재미있었다.

미술 작품이 실려있는 책이다보니 얼마나 그 작품을 페이지에 녹여낼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생각보다 색감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감상하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종이가 반질반질하니 손 넘김도 좋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생소했던 여자 작가님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로사 보뇌르의 이야기는 많이 흥미로웠다. 여성 최초로 살롱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고 당시 남자들만 입던 바지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웃기게도 남자 차림을 하고 있으면 누구도 성가시게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당시의 남성의 옷차림을 했다고 하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탈코르셋 느낌? 노년까지 여자분들끼리 함께 지냈다고 하는데 내 워너비 생활을 하신 로사 작가님. 좀 더 찾아보고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확실히 아직 배경 지식이 부족하여 온전하게 즐기기에는 무리가 좀 있어 아쉬웠다. 그리스 신화나 세계사, 유명하지만 나는 모르는 미술 작품 등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아보였다. 그래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하루 한 페이지 정도, 궁금한 것을 더 찾아가는 시간을 합해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니  심리적인 부담이 줄어드는 건 나처럼 끈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장점이지 않을까? 하나씩 또는 몇 개씩 체크리스트에 체크해나가니 뭔가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365점의 작품을 시작으로 더 다양한 미술 세계를 맛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회를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물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코로나19로 인해 당장 미술관을 찾아가는게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데 이 책을 통해 방에서 다양한 명화 작품을 즐길 수 있어 미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싶지만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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