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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애니 체니 지음, 임유진 옮김 / 알마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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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예전에 ‘그것이 알고싶다’의 유명한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의 <나는 매일 시체를 보러 간다>를 본 적이 있다. 부정적이던 죽음에 대한 인식, 시선을 긍정적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 이 책도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전혀 다른 내용의 책이었다. 다 읽은 후 책 제목을 다시 보니 정말 섬뜩했다. 말 그대로 시체를 부위별로 파는 ‘시체 매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가족에게 가슴 아픈 대상인 누군가의 시신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물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상품이 된다.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 역시, 모 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기증을 했기 때문이었다. 1년 6개월 간 시신 해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가 하필 기증된 시신으로 온갖 논란이 있었던 날들이라 땅을 치고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들어서.. 우리 엄마의 시신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을까?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화장을 한 뒤 나온 뼛가루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 시체를 대량으로 태운 후 나온 가루를 대충 섞어서 넣었다는 것이다. 내가 받았던 엄마의 뼛가루도 설마...? 이 책의 배경은 미국의 여러 주가 중심이 되는데 한국에도 이미 어둠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의심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는 시신 기증을 하고 싶지 않더라. 그만큼 충격적이고 구역질나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호의가 돈벌이 수단이 되는 적나라한 이야기. 이게 소설이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는 것이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체 매매에 대해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나에게도 쉽게 알려주는 책. 시신기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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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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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너무 어려웠지만 문장이 예뻤던 <태고의 시간들>

이 책을 읽게 된 건 2018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 작가님의 작품이기에 도전해보았다. 내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떻게든 완독을 하긴 했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내겐 아직 어려운 책이구나’, ‘문장이 굉장히 예쁘구나’, ‘나의 읽기 능력이 늘었을 때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이 세 가지이다.
폴란드 출신의 ‘올가 토카르축’ 작가님이 쓴 작품인데 번역도 나름 잘 되어 있다. 번역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이야기의 구성이 굉장히 특이한데 소제목은 ‘어떤 존재의 시간’으로 통일되어 있고 굉장히 많은 인물과 물건이 나온다. 묘사가 섬세해서 풍경, 사건 등이 머릿속에 저절로 펼쳐진다. 각각의 글이 독립적인 것 같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크워스카’. 독보적인 여성캐릭터이다. 태고에서 신과 연결이 된 존재인 듯 싶다. 크워스카의 딸인 루타도 역시. 자유로운 영혼, 내 갈 길은 내가 찾는다! 이런 느낌?
대부분 여성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굳이 알고 싶지 않고 역겨운 부분들도 많이 나와 패스.
뒤에 옮긴이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을 속 시원히 풀어줘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도 언젠가 어려운 책도 훌훌 읽는 독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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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조예은 지음 / 마카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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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옮기는 자, 시프트

항상 독서달글에서 추천받은 책을 보다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책. 그렇기에 나에게 맞을지 걱정이 되었다. ‘책 끝을 접다’ 블로그에서 처음 보았다. ‘고통을 옮길 수 있는 자’ 시프트, 신선한 소재였다. 알고 봤더니 전에 읽었던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을 쓴 조예은 작가님의 책이었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도 굉장히 소재가 참신했는데 약간 아쉬운 점이 있어서 <시프트>도 그러진 않을까 걱정했다.
이 책에 대한 감상평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만족”이었다. 참신한 소재,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구성, 간결한 문체 등 정말 만족스러웠다. 책태기에 빠져 있던 나에게 다시 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책. 펼쳤던 그 순간부터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간단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형사인 이창은 어렸을 때 희귀병을 앓고 있던 누나에게 신의 축복을 준 교주를 찾아 나선다. 그 교주는 ‘천령교’라는 종교의 교주였는데 어떤 고통이든 없애주는 의식을 하며 신자들을 끌어들인다. 신기하게도 질병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상처조차 사라지게 하는 이 의식에 신자들은 너도나도 참여하고 싶어 자신의 재산을, 가정의 행복을, 자신의 인생 자체를 바친다. 이창의 아버지 역시 딸의 희귀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가져다 바친다. 의식에 선정된 이창의 누나는 정말로 병이 다 사라지게 된다. 병이 나은 이창의 누나는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결국엔 여행을 가다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문제는 이 아이 역시 누나의 희귀병을 앓고 있던 것. 이창은 누나의 죽음이 자신과 관련 있음을 알고 조카인 채린이의 병을 낳게 하기 위해 교주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교주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되고 좌절에 빠진 이창은 교주의 몸에서 교주가 걸리기 힘든 병이 걸려있음을 알게 된다.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된 이창은 교주의 아들이라 불렸던 ‘란’을 찾는다.
란에게는 고통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이 능력은 사실 란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형인 ‘찬’의 능력이었다. 연쇄아동납치 사건의 범인이었던 교주와 교주의 동생은 찬의 능력을 알고 난 뒤 천령교를 세워 찬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찬의 능력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옮겨오고 그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병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교주는 찬의 동생은 란을 인질로 삼아 강제로 일을 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자잘한 상처, 흉터를 옮기다 앉은뱅이의 다리를 고쳐주거나 큰 병을 옮기기 시작한다. 찬이 능력을 발휘할수록 찬의 몸은 급속도로 망가져간다. 교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찬을 위해 찬이 옮겨 가지게 된 병을 대신 받아줄 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대부분 죽어간다. 찬의 손에 의해서. 란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형이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란은 그런 형에게 자신이 짐 덩어리임을 깨닫고 모난 말을 하게 된다. 하필 그 날 의식에 선정 받지 못한 누군가가 란을 죽이러 온다. 칼에 찔린 란. 한편 찬은 이창의 누나의 희귀병을 받게 되고 란을 만나러 온다. 칼에 찔려 있는 란을 위해 자신이 란의 고통을 받고 자신의 능력을 란에게 건넨다. 그리고 찬은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란은 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 교주와 교주의 동생을 찾아 나선다.
제목인 시프트는 ‘옮기다’라는 뜻의 영어단어이다. 이 단어만큼 이 책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또한 표지를 살펴보면 피가 묻은 작은 손이 큰 손을 덮어주고 깍지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처음에는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읽고 나니 피 묻은 손은 자신의 동생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동생을 위해 뭐든지 했던 찬이의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손은 찬이의 희생을 통해 어른이 되어버린 란의 손. 란을 위해 어린 찬이 손을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마음 아팠던 ‘찬’과 ‘란’의 이야기. 이름조차 찬란이다. 찬란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아이들에게 이 이름은 더 극적인 효과를 주었다. 찬이 죽은 란에게는 빛을 잃은 것과 같겠지.
만약 나였다면, 내 가족이 희귀병에 걸려 죽어간다면 나 역시도 찬에게 달려가 매달렸을까? 찬이 아프든 말든 내 가족을 위해 찬에게 희생을 강요했을까? 내게 찬과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찬과 같이 나도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병을 옮겨 받을 수는 있어도 병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어서 결국엔 시름시름 앓아 죽었을 것 같다.
열린 결말로 끝이 난 이 이야기의 끝은 내게 더 큰 여운을 주었다. ‘란’이 찬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볍게 읽기엔 무겁지만 흡입력이 좋아 나도 모르게 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 책을 다른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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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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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죽음의 게임

주변 친구들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말한 영화이자 책이었던 헝거게임. 도서관에서 무슨 책을 빌릴까 고민하다가 헝거게임을 빌렸다. 오래된 책이면서도 인기가 많았던 게 느껴지는 허름한 책이었다. 알고 보니 헝거게임은 시리즈물이었다. 아뿔싸! 미리 다음 권을 빌리기 위해 시리즈를 검색해봤으나 1년 이상 누군가가 빌린 뒤 잠적... 너무하다 정말.
어쨌든 빌린 헝거게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읽고 난 뒤 총평은 정말 재미있다는 점?
주인공인 캣니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그는 굉장히 당차고 멋진, 똑똑한 여자아이였다. 캣니스에게 누가 빠지지 배길 수 있으랴.
헝거게임은 반란을 일으킨 13구역에게 캐피톨이 주는 벌 같은 개념의 유흥거리이다. 물론 캐피톨 사람에게만 유흥이지, 12구역(13번 구역은 파괴)의 사람들에게 생존을 건 게임이자 캐피톨에게 대항할 마음조차 없애는 장치이다. 매년 청소년기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한 곳에 몰아넣고 우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다. 캐피톨 주민에게 관심을 받을수록 생존율이 높아지며 모든 구역의 아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게임에 임하게 된다.
주인공인 캣니스는 12번 구역에서 지내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추첨기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대가로 곡식을 배급받는다. 캣니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동생인 프림을 지키고자 프림의 이름으론 절대로 배급을 받지 않았다. 수천 장 중에 1개, 캣니스의 동생인 프림이 추첨되고 만다. 캣니스는 그런 프림 대신에 자신이 헝거게임에 참여하겠다며 자원한다. 12번 구역의 조공인은 캣니스와 캣니스에게 따뜻한 빵을 건네준 피타가 선정된다.
캣니스는 굉장히 영특한 아이다. 기억력이 좋고 누군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며 실행력이 뛰어난 여자아이. 분노에 찰 때는 가끔 자제력을 잃고 하지만 뭐 어떠랴. 사건이 발생하는 내내 캣니스의 활약상이 두드러져서 읽는 내내 흥미를 잃지 않았다. 어느 순간 1권을 다 읽어버리고 2권을 찾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캐피톨 사람들의 기술은 어디까지 진화했는가?’였다. 머테이션인 괴물을 만들어내고, 폭발로 잃은 귀를 재생시키며 날씨를 조종하고 매년 다른 환경의 공간을 만들어 게임을 하는 것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웠다.
어린 아이들을 극한 상황을 몰아넣고 생존여부에 따른 내기를 하는 캐피톨 사람들이 참 야만적이구나 싶다. 누군가는 그 상황을 타개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을까? 어떻게 보면 가상의 일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비슷하게 헝거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여자 캐릭터가 주연이 아니면 책이 잘 안 읽힌다. 남자 캐릭터의 서사는 뭔가 잘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캣니스처럼 당찬 아이든 평범한 아이의 이야기이든 잊혀진 독립운동가든 여성 중심의 서사가 주가 된 책들이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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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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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이제야 언니에게

굉장히 슬프다는 평을 받은 책이었다. 그리고 정말 슬펐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야만큼은 아니겠지.
얇지만 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처음에는 ‘이제야’라는 의미가 ‘이제서야’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시점이 제야의 시점에서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야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이제야 언니에게 전하고 싶은 작가의 말은 아니었을까.
2008년 7월 14일. 제야의 시간은 이 날을 기점으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당숙이란 인간도 아닌 놈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 멈춰버린 시간을 부숴버린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용기를 낸 제야에게 돌아온 건 ‘여자애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남자에겐 여자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여자들이 문제다.’, ‘다 큰 여자애가 무서운 줄 모른다.’,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등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변명하길 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은 제야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잘못을 한 사람은 승승장구하고 피해자는 주변을 피해 숨고 홀로 고통을 받으며 자신을 탓하고 자신을 비난한다.
제야가 경찰을 찾아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말한다. 하지만 경찰의 대처는 정말 최악이었다. 내가 옆에 있었다면 주먹을 날려버리고 온갖 욕을 다 했을 것이다. 제야에게 부모 역시도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내 곁에 제야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제야의 주변 사람들처럼 제야를 몰아세우고 변명을 원하고 제야의 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제야의 편에 섰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 역시도 그를 동정하고 피해자로서 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군가는 내게 당당하라고 하겠지. 주눅 들지 말고 떳떳하게 살라고 말하겠지. 그런 말도 역겹다. 누구도 내게 떳떳해져라 당당해져라 말할 수는 없다.’ - p132
교사로서 저렇게 말했을 것 같다. 나도 제야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주변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안아줄 수밖에 없는 무력한 한낱 인간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제야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끔찍할 그 경험을 용기 내어 먼저 꺼내주는 사람들도 있다. 한동안 미투 운동이 활발했을 때 많은 성범죄자들이 곳곳에 숨어 지내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고죄를 염불하며 피해자들을 재단하고 욕하던 몇 사람들은 과연 공감능력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싶었다. 가해자들은 사과 한 마디 없이 자살을 하거나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평소 같이 지내거나 자숙하는 기간이 잠깐 가지거나 그 정도였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힘듦조차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아간 만큼의 벌을 받지도 않는다. 남성이 가진 권력이라는 게 이렇게나 강한데 여성상위시대니 뭐니 하는 거 보면 같잖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제야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 모든 것은 가해자가 잘못한 것이라는 걸.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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