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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 스포주의
유쾌하고 가슴 아픈 인생 이야기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동생이 읽고 싶어하던 책이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먼저 완독했지만.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따끈따끈한 새 책으로 보게 된 책!
책에 대한 총평은 매력적인 베르트에 취해버렸다!
그의 아프면서도 유쾌한 인생이야기가 마치 할머니가 머리 맡에서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느낌이었다. 수사관인 앙드레가 파란만장한 그의 이야기에 녹아들 듯 나 역시도 흠뻑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세 여자가 살았던 집에서 어머니는 나가고 할머니인 ‘나나’와 함께 살아가던 베르트. 안정적인 삶을 위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뤼시엥과 첫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뤼시엥은 베르트의 성적 매력에 끌려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결혼하고 첫날 밤이 되자 능숙한 베르트에 음란마귀가 낀 여자라며 비난한다. 얼마나 이중적인가. 본인과 나이차이가 많은 여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며, 아무 관계가 아닐 때는 가슴, 몸매 온갖 품평을 다 하곤 막상 결혼하니 꽉 싸매게 한다. 자기의 평판에 문제가 생길까 베르트를 길들일 생각을 하고 결국 자기 마음대로 안되자 폭력을 쓴다.
‘부족한 지성을 크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선조들의 방식이었다. 남자들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굉장히 인상 깊은 구절이다. 결국엔 베르트는 남편을 살해하게 되는데 그때서야 행복하게 웃는다. 삽을 들어 뤼시엥을 묻어버리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더라.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간격을 폭력으로 메운다. 신체적 폭력이든 언어적 폭력이든, 또는 감정의 폭력이든.
베르트는 여러 번의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폭력으로 남편들을 다 삽과 총의 심판을 받게 한다.
또, 나치의 어린 청년에겐 강간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작은 생식기를 가진 남편에게도.
가장 짜증났던 남편은 예술가였던 사람.
여자로 사는 게 얼마나 편하냐며 이해 못할 말을 하는 사람. 진지하게 말을 하니 생리 하는 거 아니냐며 뭐라 하는 사람. 말을 안하겠다.
그에게도 멋진 사랑이 찾아오는데 루터라는 흑인인 미군이다. 베르트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난 이 사람도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한다. 본국에 자기 와이프와 8살 딸이 있으면서도 베르트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엔 베르트를 떠난다. 15년 뒤에 다시 찾아오지만, 물론 자기 부인이 죽고 난 뒤.
어쨌든 이 루터는 흑인이기에 깜둥이라며 동네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한다. 결국 인종차별로 끝을 마감하게 된다.
베르트는 굉장히 진취적인 여성이다. 페미니즘 서적을 보며 여성으로서 겪은 부당함에 맞서 싸워가는 유쾌한 사람. 그리고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
그의 마지막 모습도 너무나도 베르트 같아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다. 과연 누가 그의 삶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가 지속적으로 받아온 폭력, 학대에는 관심이 없고 결과론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이 백발의 범죄자의 삶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종 차별, 가정폭력 등 사회문제를 유쾌하면서도 거친 그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만큼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엄청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