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셀카로 자기 얼굴을 찍는 것이 대유행입니다. 팔을 뻗은 거리 안에서 사진발을 잘 받는 얼짱 각도를 유념해 두는 건 물론이고, 자연스러운 포즈나 표정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인터넷 상에서 어떤 분이 명화에 나오는 자화상과 흡사한 모습으로 자기 얼굴 사진을 찍어 올린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화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원화와는 또 다른 위트와 참신성이 느껴지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비밀과 미스터리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건 아무래도 자신, '나'일 것입니다. 나에 대한 신비, 그 비밀스러움,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그 뭔가를 통해 거기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점검합니다. 화장실 안에 있는 거울 일 수도 있고, 음식점 식탁에서 밥을 먹기 위해 집어든 숟가락 뒷면일 수도 있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의 반짝거리게 닦아 놓은 벽면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타인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이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저 사람 눈에는 내가 과연 어떻게 보이는 걸까. 무엇 때문에 내 얼굴을 그토록 유심히 바라본 것일까. 은근슬쩍 어딘가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훔쳐보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김미진 <거울의 저편-2>oil on canvas 53×46cm 2013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어쨌거나 매일 보는 얼굴입니다. 이목구비는 제대로 붙어 있는지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겠죠. 화장은 들뜨지는 않았는지, 머리카락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 본질과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자극합니다.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그 자리에서 물 속만 들여다 보다가 수선화가 된 남자도 있다지요. 화가들 중에도 자기 얼굴에 집착했던 몇몇 작가들이 있는데 렘브란트와 고흐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 자화상> 1640년 작품

 

바로크 시대 빛의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사람의 내면, 그 내적인 정서 표현에 남다른 재능을 펼쳐보였습니다. 비슷한 영화를 봐도 뭔가 진하게 감겨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감독이나 배우만의 펼쳐 보일 수 있는 독특한 느낌 같은 게 생생이 살아서 관객의 마음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바로 그런 화가였습니다. 같은 얼굴을 그려도 그의 작품은 뭔가 달랐습니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오랜 생애 동안 제작한 60여점의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화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는 모든 내적 단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자화상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실험적인 단계’ ‘극적으로 분장한 단계’ 그리고 ‘솔직하고 자기 분석적인 소박한 단계’입니다.

 

위의 그림은 두 번째 단계인 성공한 상인처럼 치장한 렘브란트의 모습입니다. 렘브란트라 성공한 화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제작한 작품이죠. 두둑하니 살이 오른 자만심에 찬 모습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두꺼운 천으로 된 옷에는 족제비 털 같은 게 달려 있고 모자도 값비싼 털이 부슬부슬 하니 꽤나 세련되면서도 귀품 있어 보입니다.

 

<렘브란트 자화상>1661년 작품

 

그로부터 21년 후에 그린 그의 자화상은 뭐랄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소박한 성자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리에도 화려한 모자 대신 흰색 천으로 대충 감은 듯한 터번을 두르고 있고 손에는 낡고 오래된 책을 들고 있습니다. 젊어서 나름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는 나이 들어 재정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 아주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그림을 그린 족족 빚쟁이들이 와서 들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 주변 환경 탓인지 그림 속 모습은 아주 순수하면서도 겸허한 인상을 풍깁니다. 소박한 옷차림, 순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두 눈에는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정조차 느껴집니다. 여담이지만 두 그림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네덜란드에 처음으로 설탕이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단 것을 너무 즐긴 탓에 치아 상태가 아주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작은 사진을 찍은 거라 그런지 포커스가 부실한 상태입니다.) 

 

얼굴은 여러 가지 회화기법을 실험하기에 아주 유용한 대상입니다. 고흐 역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줄기차게 자기 얼굴을 그려댔습니다. 열악한 경제 여건 탓에 따로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덕분에 우리는 그의 자화상들을 통해서 작품 성향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어떤 방식으로 무르익어 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1886년 파리에 도착한 고흐는 4년 동안 40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네덜란드 거장들의 방식으로 그린 첫 번째 자화상은 당시의 관습과 유행을 따르고 있습니다. 머리에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사색에 잠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돋아 오르는 인물 모습이 렘브란트 화풍과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표현적인 색채와 붓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같은 해에 그린 자화상이지만 이미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 짧은 붓질과 순수 색채에 대한 열정 빛에 대한 예민한 감각들이 엿보입니다. 그저 밀레를 좋아했던 소박한 화가였던 그가 초기의 신고전주의 화풍에서 인상파를 넘어 어느새 자신만의 표현주의 세계로 한 발 들어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년

 

고흐의 자화상은 내면의 인생 드라마를 극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그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스스로 귓불을 자른 사건 이후 병원에서 퇴원한 뒤 처음 그린 자화상입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림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가 전혀 없었던 한 남자의 모습이 한 장 그림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충치 먹은 치아를 숨겼지만 그는 정면으로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35세인 그의 모습이 꺼칠하니 60대 노인네 같은 몰골입니다. 35세의 얼굴이 이러했다면 과연 어려서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19세의 빈센트 반 고흐> 사진

 

모순된 감정에 괴로워하고 불안에 잠겨 있던 10대 시절, 무뚝뚝하고 성미 고약했던 한 청년이 보입니다. 그래도 제법 둥글넓적하니 투실한 볼 살과 건강미 넘치는 모습입니다. 고흐는 결국 전도사의 길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이 바라던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갉아먹었습니다.

 

1889년 아를의 겨울은 차고 매서웠습니다. 한기만이 감도는 1월 어느 날, 노란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이젤 앞에 앉아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거울 속 세계는 일견 이쪽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다른 리얼리티에 의해 구축되어 있습니다. 얇은 판유리 안의 또 다른 세상, 그 안에 있는 한 남자가 고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실의 꿈과 희망, 그안에 내제된 갈망과 절망의 접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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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양평>oil on canvas 61×50cm 2013

 

화가의 자화상은 자아 탐구에 대한 절대적인 욕구, 이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내면의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비밀을 반사하는 만화경 중에 호수나 강가에 비친 수면도 이 세상을 반사하는 또 다른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거기에 떠오른 존재의 떨림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럭저럭 괜찮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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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어느날,고촌>oil on canvas 92×73cm 2012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과 경기도가 만나는 도시 외각 지역인데 깊은 밤에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이 적막하기만 합니다. 창밖 저 아래로 신호등 불빛만 깜빡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입니다.

 

지난여름에 작업실 창밖 풍경을 수채화로 한번 그린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여름철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흑백의 대비가 강조된 도로변 주위 풍경과 그로인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겨울 능선이 흡사 단색조의 추상화를 연상시킵니다.

 

 캔버스에 그린 <어느 겨울날, 고촌>은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입니다. 아직 완성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손을 델수록 그림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일단 중단했습니다. 누군가 이 그림을 제 눈앞에서 한 십 년쯤 치워주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일단 여기에 올려놓고 심사숙고할 생각입니다.(결국 그림을 다시 작업했습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3번째 스테이지 그림입니다. '스테이지'란 몇번째 작업이냐는 뜻인데 앞으로도 몇번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작업한 나머지 그림 3개도 올해를 마무리 하는 의미에서 한꺼번에 선보입니다.

 

어느새 2012년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이렇게 한해를 흘려보내는 게 섭섭해서 어제 밤에는 모처럼 밖에 나가 저녁도 먹고 영화도 한편 보았습니다. 줄곧 집에서 다운 받은 영화만 보다가 새로 개봉한 극장 영화를 보니 몰입도도 높고 감동도 더 진한 것 같았습니다.

 

<길, 리치몬드(3)> Watercolor on paper 34×23.5cm 2012

 

어제 본 영화는 레미제라블입니다. 빵 하나를 훔친 이유로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해야 했던 장발장 얘기는 누구나 다 알 것 입니다. 영화 속 플롯은 '사랑'과 '구원'이라는 두 개의 주제로 큰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방면된 후 또 다시 도둑질을 하다 붙잡힌 장발장은 신부의 은혜로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평생 사랑으로 보답하며 살아갑니다. 감옥에서부터 장발장을 괴롭히고 출옥한 후에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형사 자베르(?)는 장발장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그런 치욕스러운 구원,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자기 영혼이 죽였다면서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립니다.  

 

 

<집, 리치몬드(5)> Watercolor on paper 34×23.5cm 2012

 

카메라 앵글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자유를 쟁취하고자 투쟁하는 젊은 청년들의 얼굴에도 포커스를 맞춥니다.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일반 서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가혹한 운명이야 말로 가장 큰 핵심, 영화를 지탱하는 모든 것인지 모릅니다.

 

민초들의 삶은 여전히 버겁고 가혹합니다.  우리가 피흘려 획득했다고 믿고 있는 자유는 때론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시야를 가리고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같이 각박한 시대에 장발장이 추구했던 사랑과 희생만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보다 나은 게 뭐가 또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램프가 있는 정물>oil on canvas 92×73cm 2012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의 신호등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습니다. 모두 뜻 깊은 연말연시 맞이하시기를...내년에는 더 많이 사랑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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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지붕-리치몬드 타운(2)> Watercolor on paper 50.5×37cm 2012

 

요즘에는 계속 오일 페인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화는 중간 중간 물감을 말려가면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돌려가면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지금 다루고 있는 캔버스가 한 예닐곱 쯤 됩니다. 오늘 올리는 그림은 유화 작업을 하는 틈틈이 작업한 것입니다. 캔버스들마다 물감으로 젖어있을 때는 이렇게 수채화 팔레트를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도 어느새 다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기를..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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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치가 있는 집, 리치몬드 타운(1)> Watercolor on paper 50.5×37cm 2012

 

스테이튼 아일랜드는 뉴욕 맨해튼 남쪽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 자그마한 섬입니다. 뉴욕의 다섯 번째 구지만 옛날식 가옥과 거리 풍광이 80년대 초반 미국의 전원도시를 떠올립니다. 느긋하면서도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맨해튼에서의 팍팍함과는 전혀 다른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페리 선착장에서 버스로 45분쯤 걸리는 리치몬드 타운은 특히나 예전에 퇴역 군인들이 모여 살면서 생긴 동네라고 하는데 지금도 개발을 늦춘 채 당시 거리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섬에 도착한 직후, 터미널에서 버스를 하나 놓치고는 작은 읍내처럼 생긴 시내를 이리저리 배회하다 다른 버스를 타고 정오 무렵 리치몬드에 당도했습니다. 버스는 나 혼자만을 남겨둔 채 낙엽들이 또르르 굴러다니는 2차선 도로를 따라 쏜살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약간 차멀미를 했던 것도 같습니다. 주위에는 사람의 인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딱히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풍경이나 지표 따위도 없었습니다. 찬바람만 휘휘 감기는 11월 오후 녘 풍경이 꽤나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괜히 볼 것도 별로 없는데 여기까지 온 건 아닌지,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는 언제나 되야 다시 오는 것인지, 낯선 장소에 대한 길치 특유의 경계심으로 마음은 점점 위축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휑한 길바닥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길 건너 도로변 저쪽에 있는 그 낡은 집이 문득 저의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 집 창가에 켜져 있는 불빛 하나에도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집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귀속시키는 뭔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듯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집, 자신만의 ‘드림 하우스’를 꿈꾸기도 합니다. 생활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본인의 개성과 특성까지 모두 고려한 집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집이 집주인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꿈에 그리던 드림 하우스에 살게 되었다 해도 그 집 울타리 안에 자신만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는 일 또한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이 세상 집들은 모두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고 태도이고 몸짓입니다. 그래서 집은 그 사람의 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한 노동의 가치로 그 집을 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집은 자신의 소유물이고 분신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사물이나 사람에게도 그에 걸맞는 인연이 따로 있듯이 집들도 그 나름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살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면 첫눈에 내 집이다 싶은 집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 안목이 뛰어나다는 생각에 절로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러나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착각 일지 모릅니다. 사람이 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집이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리치몬드 타운에 도착한 직후 버스 정거장 근처에서 발견한 그 포치가 있는 오두막집은 오래된 영화 속에 나오는 전통적인 미국식 시골집 같은 인상을 풍깁니다. 시대 유행에서 한참이나 뒤쳐진 구시대 유물 같은 모양새지만 한편으론 세월의 완고함, 집주인 노인네의 줏대 같은 것이 느껴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화창하고 따스한 계절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상황이었을지 모릅니다. 마당가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집 앞 포치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집 근처 어디에서도 사람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저 풍경 속에 그 집만이 깊은 침묵에 잠겨 있을 뿐입니다. 문을 꼭꼭 닫아 건 채 겨울잠에 빠져든 그런 적막한 모습으로.

 

집 앞 2차선 도로는 비교적 한가한 상태지만 그래도 차량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밤낮 없이 문밖에서 들리는 찻소리를 견뎌내는 일이 무척 성가시고 때론 고통스럽기조차 할 것입니다. 누가 이토록 시끄러운 도로 옆에 집을 세운 걸까요. 여기 밖에는 마땅히 집을 지을만한 장소가 없었던 걸까요. 집은 그런 질문 따위 대꾸조차 하지 않습니다. 집은 그저 거기에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집은 저마다의 세월과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여기에 아스팔트길이 깔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길 옆 오두막집은 오늘도 묵묵한 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집 울타리 사이로, 창문 틈으로, 지붕 위로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사람들이 떠나간 뒤에도 그 오두막집은 침묵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치 할 말이 아직 남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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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 캔버스에 유채 55X46cm 2012

 

온종일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무척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겨울입니다. 지난여름 양평으로 야외스케치를 하러 갔던 게 어제 일 같은데 벌써 두 계절이 흘러가버렸습니다. 그리고 12월...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한 해가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인생은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만 복잡합니다.

 

뉴욕을 다녀온 후 죽었던 세포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성이 어찌나 강하던지 한동안 혼미한 상태에서 미로 속을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림 몇 장을 망치고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새로운 다짐을 하고는 정물화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문 밖에 내놓았던 탁자를 끌어다 놓고 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는 벚꽃 화병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배경이나 장식 없이 그냥 화병 하나에만 집중했습니다.

 

오늘 올린 '벚꽃'은 다 완성했다고 할 수 없지만, 과연 내가 생각하는 완성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에 일단 중단했습니다. 작업 할 당시에는 그 상황에 너무 밀착되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은 소설 작업도 초고를 쓰고는 석 달 가량 서랍에 집어 넣은 채 방치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림도 마찬가지 입니다. 너무 오래 내버려 두면 곰팡이가 피겠지만 가끔씩 열기를 삭히는 선에서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블로그가 있어서 심심한 줄 몰랐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에 갔을 때 거기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 처음으로 제 글에 댓글이 달린 걸 보고는 무척 기뻤습니다.(소심한 답글, 양해 바랍니다. 워낙에 그런 데는 서툴고 익숙지 않은 터라..) 예전 작가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혼자 작업하며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그런 분들에 비하면 지금은 송구하다 싶을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작업에 따른 고충이야 피차일반이겠지만 이렇게 컴퓨터 안에 가상 갤러리도 만들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소통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고맙고 소중합니다. 

 

오늘 하루도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내일을 뭘 그릴까, 좀 더 사이즈를 키워야 하는 건 아닐까, 저는 지금 그런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화가들은 어느 면에서 현실 제도에 끌려다닌 면이 많습니다. 후원자의 눈치도 봐야 하고 그림을 주문한 고객의 입맛과 특성까지 모두 파악해야 했으니까요. 요즘 작가들은 그에 비해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그런 자유를 주제 삼아 작업하기도 합니다. 그런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합니다. 과연 '자유'라는 건 뭘까요. 새롭게 도전하게 만들고, 가슴을 뛰게 하고, 뭔가를 도발시키고, 추진하는 동력...때때로 저는 이 '자유'가 두렵고 무섭기만 합니다.

 

예전의 화가들은 운신의 폭이 좁긴 했지만 자신이 뭘 그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회 벽화를 그릴 때는 성경을 보면 되고, 고객의 얼굴을 그릴 때는 그냥 그리라는 대로 멋진 이목구비와 옷감의 질감처리, 장신구의 반짝임에만 신경 쓰면 되었지요. 그러나 현대 작가들에게는 끝없는 자유의 확산 뿐만 아니라 추락의 자유까지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스스로 후원자이자 고객이 되어 자신에게 오더를 내리는 상황이 결코 녹녹하지 않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이 가져다 준 자유의 선물은 너무 달콤해서 때론 치명적입니다.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건 그만큼 오류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방이 뿌연 안개처럼 흐려 있습니다. 이런 진공 상태를 어떻게 감당해야 좋을까요. 저기 어딘가에서 내 얼굴만 노려보고 있는 그 녀석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 걸까요... 한 번에 한 놈씩, 한 주먹씩..그러다 내가 먼저, 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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