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셀카로 자기 얼굴을 찍는 것이 대유행입니다. 팔을 뻗은 거리 안에서 사진발을 잘 받는 얼짱 각도를 유념해 두는 건 물론이고, 자연스러운 포즈나 표정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인터넷 상에서 어떤 분이 명화에 나오는 자화상과 흡사한 모습으로 자기 얼굴 사진을 찍어 올린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화가가 손으로 직접 그린 원화와는 또 다른 위트와 참신성이 느껴지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비밀과 미스터리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건 아무래도 자신, '나'일 것입니다. 나에 대한 신비, 그 비밀스러움,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그 뭔가를 통해 거기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점검합니다. 화장실 안에 있는 거울 일 수도 있고, 음식점 식탁에서 밥을 먹기 위해 집어든 숟가락 뒷면일 수도 있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의 반짝거리게 닦아 놓은 벽면일 수도 있습니다. 때론 타인의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이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저 사람 눈에는 내가 과연 어떻게 보이는 걸까. 무엇 때문에 내 얼굴을 그토록 유심히 바라본 것일까. 은근슬쩍 어딘가에 반사된 자기 모습을 훔쳐보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김미진 <거울의 저편-2>oil on canvas 53×46cm 2013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어쨌거나 매일 보는 얼굴입니다. 이목구비는 제대로 붙어 있는지 매번 확인할 필요는 없겠죠. 화장은 들뜨지는 않았는지, 머리카락을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그런 것도 궁금하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 본질과 뿌리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자극합니다.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그 자리에서 물 속만 들여다 보다가 수선화가 된 남자도 있다지요. 화가들 중에도 자기 얼굴에 집착했던 몇몇 작가들이 있는데 렘브란트와 고흐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 자화상> 1640년 작품
바로크 시대 빛의 화가였던 렘브란트는 사람의 내면, 그 내적인 정서 표현에 남다른 재능을 펼쳐보였습니다. 비슷한 영화를 봐도 뭔가 진하게 감겨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감독이나 배우만의 펼쳐 보일 수 있는 독특한 느낌 같은 게 생생이 살아서 관객의 마음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바로 그런 화가였습니다. 같은 얼굴을 그려도 그의 작품은 뭔가 달랐습니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오랜 생애 동안 제작한 60여점의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화가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숙해 가는 모든 내적 단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자화상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실험적인 단계’ ‘극적으로 분장한 단계’ 그리고 ‘솔직하고 자기 분석적인 소박한 단계’입니다.
위의 그림은 두 번째 단계인 성공한 상인처럼 치장한 렘브란트의 모습입니다. 렘브란트라 성공한 화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제작한 작품이죠. 두둑하니 살이 오른 자만심에 찬 모습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두꺼운 천으로 된 옷에는 족제비 털 같은 게 달려 있고 모자도 값비싼 털이 부슬부슬 하니 꽤나 세련되면서도 귀품 있어 보입니다.

<렘브란트 자화상>1661년 작품
그로부터 21년 후에 그린 그의 자화상은 뭐랄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소박한 성자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리에도 화려한 모자 대신 흰색 천으로 대충 감은 듯한 터번을 두르고 있고 손에는 낡고 오래된 책을 들고 있습니다. 젊어서 나름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는 나이 들어 재정적 압박을 심하게 받는 아주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그림을 그린 족족 빚쟁이들이 와서 들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 주변 환경 탓인지 그림 속 모습은 아주 순수하면서도 겸허한 인상을 풍깁니다. 소박한 옷차림, 순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두 눈에는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정조차 느껴집니다. 여담이지만 두 그림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네덜란드에 처음으로 설탕이 유입되었다고 하는데 단 것을 너무 즐긴 탓에 치아 상태가 아주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작은 사진을 찍은 거라 그런지 포커스가 부실한 상태입니다.)
얼굴은 여러 가지 회화기법을 실험하기에 아주 유용한 대상입니다. 고흐 역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줄기차게 자기 얼굴을 그려댔습니다. 열악한 경제 여건 탓에 따로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덕분에 우리는 그의 자화상들을 통해서 작품 성향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어떤 방식으로 무르익어 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1886년 파리에 도착한 고흐는 4년 동안 40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네덜란드 거장들의 방식으로 그린 첫 번째 자화상은 당시의 관습과 유행을 따르고 있습니다. 머리에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사색에 잠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돋아 오르는 인물 모습이 렘브란트 화풍과 비슷해 보이지만 훨씬 표현적인 색채와 붓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고흐의 자화상> 1886년 작품
같은 해에 그린 자화상이지만 이미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 짧은 붓질과 순수 색채에 대한 열정 빛에 대한 예민한 감각들이 엿보입니다. 그저 밀레를 좋아했던 소박한 화가였던 그가 초기의 신고전주의 화풍에서 인상파를 넘어 어느새 자신만의 표현주의 세계로 한 발 들어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년
고흐의 자화상은 내면의 인생 드라마를 극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은 그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스스로 귓불을 자른 사건 이후 병원에서 퇴원한 뒤 처음 그린 자화상입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림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가 전혀 없었던 한 남자의 모습이 한 장 그림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충치 먹은 치아를 숨겼지만 그는 정면으로 자신의 상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35세인 그의 모습이 꺼칠하니 60대 노인네 같은 몰골입니다. 35세의 얼굴이 이러했다면 과연 어려서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19세의 빈센트 반 고흐> 사진
모순된 감정에 괴로워하고 불안에 잠겨 있던 10대 시절, 무뚝뚝하고 성미 고약했던 한 청년이 보입니다. 그래도 제법 둥글넓적하니 투실한 볼 살과 건강미 넘치는 모습입니다. 고흐는 결국 전도사의 길에서 빠져나와 자신만이 바라던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갉아먹었습니다.
1889년 아를의 겨울은 차고 매서웠습니다. 한기만이 감도는 1월 어느 날, 노란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이젤 앞에 앉아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거울 속 세계는 일견 이쪽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다른 리얼리티에 의해 구축되어 있습니다. 얇은 판유리 안의 또 다른 세상, 그 안에 있는 한 남자가 고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현실의 꿈과 희망, 그안에 내제된 갈망과 절망의 접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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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양평>oil on canvas 61×50cm 2013
화가의 자화상은 자아 탐구에 대한 절대적인 욕구, 이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내면의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비밀을 반사하는 만화경 중에 호수나 강가에 비친 수면도 이 세상을 반사하는 또 다른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거기에 떠오른 존재의 떨림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럭저럭 괜찮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