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나 돌아와
아가타 투신스카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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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랑하는 이와 잠시 떨어져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서로를 기다리는 애틋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돌아온다'는 약속과 믿음 뿐이지요.

그러나 '돌아온다'는 약속이 죽음의 손바닥 위에 놓인 가냘픈 꽃잎에 불과하다면 어떨까요?

그 약속과 믿음은 지켜질 수 있을까요?

그림책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그 약속과 믿음이 지켜지는 기적 같은 실화입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계속되어집니다.

또 어떤 이야기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요.

반면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듣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반드시 이야기 되어야 하는 것들과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존재하는데요.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에 세워진 게토의 지하실에서 살아남은 아이 조시아가

시간과 공간을 지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앞면지를 펼치면 조시아의 엄마가 품 속에서 꽃을 꺼내 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조시아가 갖고 있던 인형 머리에 이어 붙여 원피스를 만들어 준 천의 꽃 무늬랍니다.

아이를 감싸 보호하던 엄마의 사랑이 꽃처럼 아름답게 펼쳐지는 것 같네요.

또 이렇게 이 이야기가 모두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



척박한 게토에서도 엄마는 아이를 웃게 하려고 애씁니다.

이 대목을 보고 있자니 영화 '인생은 즐거워'의 아빠 귀도가 떠오르더군요.

그들이 처한 상황을 게임하는 중이라 말하는 귀도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난쟁이 요정처럼 사는 거라고 주문을 거는 조시아의 엄마.

하지만 아이는 꽤 오랜 유년의 일부를 때때로 찾아오는 엄마를 제외하고는 홀로 숨겨진 채 완전히 박탈당하지요.

오로지 결핍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만이 기록된 어린시절을 예상하게 되지만, 놀랍게도 엄마는 어둠 뿐인 현실의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있음을 들려 줍니다.

홀로 남겨진 조시아는 상상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켜가지요.

또 다른 안네 프랭크 혹은 더 어린 안네 프랭크를 보는 것 같아서 더 놀랍고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묵묵한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지키려는 엄마의 주문 같은 문장을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했을 테지요.

"엄마는 항상 너에게 돌아와."

적막과 고독, 육체와 정신의 허기, 막연한 기다림... 이런 것들을 고작 서너 살 된 아이가 감내합니다.

두 사람은 얼마나 깊고 넓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건너와야 했을까요?

두 사람이 그 시간 속에 그대로 잠겨버리지 않게 손을 잡아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이 늘 바짝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도 언제나 삶 쪽으로 아이를 바짝 당겨주고, 살아야 할 이유를 엄마 손에 꼭 쥐어주는 것은 서로였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의지를 꼭 품고 폭력이나 전쟁, 가난이나 기아 같은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장소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아이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아이들 곁에 오로지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목숨뿐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지옥을 살아내는 엄마들도요.

부디 그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멈추지 않기를, 더 많은 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멈추기를 바라봅니다.



이보나 작가님의 그림이 조시아의 상황을 시적으로 그려주고 있는데요.

조시아가 갇혀 있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그렇지 않기도 한 불투명한 상황과 조시아의 기분과 생각들이 오래되고 낡은 트레이싱지의 투명도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기억들이 존재하겠지만 그저 잊고 싶은 그러면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그림 한 장 한 장.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그림들입니다.



책은 덮었지만 조시아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디엔가 감춰진 또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조시아의 이야기를 글로 읽고, 그림으로 보는 이 한 권의 시간 동안 우리는 투명한 존재가 되어 조시아와 함께 합니다.

기적처럼 가까스로 살아남고, 계속해서 살아 준 조시아라는 이야기 덕분에 우리는 여기에 있어요.

그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참혹한 세상에 대해 담담하게 발화된 이야기가 우리를 조금 더 깊고 넓은 슬픔의 존재를 만나게 해줍니다.

조시아가 살아남고, 살아 내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고통과 어두움 그리고 기적 같은 기다림과 사랑도요.

아가타 작가님과 이보나 작가님을 통해 우리에게 온 이 귀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지켜주면 좋겠습니다.

조시아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를 감싸고 있는 띠지가 엄마의 보호막처럼 보이네요.

살아남기 위해, 살리기 위해, 돌아가기 위해, 맞이하기 위해 엄마와 딸이 힘겹게 버틴 사랑과 인내라는 꽃이 연약하지만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요.

참 소중한 그림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보고 생각하고 느낀 것을 담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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