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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 반양장 ㅣ 동화 보물창고 17
오스카 와일드 지음, 소민영 옮김, 나현정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6월
평점 :
'행복한 왕자’를 읽고 -오스카 와일드 글, 나현정 그림, 소민영 옮김, 보물창고, 2007.
이 책에는 아홉 편의 동화가 들어있다. 오스카 와일드! 무심코 읽다 보니 어떤 것은 언젠가는 한번쯤 읽어본 적 있는 동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스토리만 담긴 동화가 아닌, 풍성한 배경과 묘사가 있는 것이어서 처음 대하는 듯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들이었다. 이를테면 이 책은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는데, 요즘 읽은 동화들과는 또 다른 충격을 주는 책이었다. 작가는 가고 세월은 참 많이 흘렀다는데 2007년도 6월, 여전히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을 독수리보다 더 세게 낚아채고 있으니, 그 매력을 어찌 말로 다 표현을 할까.
우선 이 작품들은 삶의 모든 면을 다 보여준다. 어린이가 보는 동화라고 해서 여기서 못할 말과 표현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신랄하게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독자로 하여금 바라보고 깨닫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냥 무심코 넘길 만한 삶의 이면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돌아보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이 작품들 속에는 들어있는 것 같다. 기쁨, 행복, 슬픔, 고통, 죽음, 우정, 사랑 등 총 망라하여 논하고 비평하고 사고하게 만들고 있으니.
다 읽고나면 이 작가는 시인인가? 비평가인가? 달변가인가? 철학자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사상들은 복잡하고도 풍부한 것이어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생각의 나라로 이끌려가게 된다. 작품마다 깊은 사유들이 드러나는데 읽으면서 가치관과 사고방식, 옳고 그른 것, 지식, 지혜 다양한 것들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 등장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논쟁을 즐기고 비평을 하게하고 말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인 것 같고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인 것 같다.
실제로 이 이야기들은 서술방식이 좀 색다른 것 같다. 처음은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확장된 느낌이었다가 점점 집중적으로 이야기가 풀리는 그런 인상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큰 배경이 되는 이야기 속에 진짜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웅크리고 있다가 전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스토리가 부각이 된다. 구조상 갈등은 계속되어 복잡한 듯 보이나 그 속에서도, 이야기를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더구나 이 책에는 행복한 결말 보다는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행복한 왕자>, <나이팅게일과 장미>,<헌신적인 친구>,<비범한 로켓 폭죽>,<스페인 공주의 생일>, <어부와 영혼>, 여기서 말하는 비극적인 결말이란 등장하는 주요인물의 비극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작품 속에도 비극적인 내용은 모두 들어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에 인생의 부조리한 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본다면 전부 비극적이 삶을 다루었다고 할 수 없다. < 어린 왕>이나 <별 아이> 가 그렇다. <욕심쟁이 거인>은 좀 다른 성질의 내용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죽음으로 끝난 것은 매한가지다.
게다가 이 책에서 특별한 점은 대부분 착한 인물들이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행복한 왕자>에서 왕자와 더불어 제비는 자기 몸을 희생하였다.<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는 나이팅게일이 저 혼자 아무도 모르게 희생양이 되었다. 또<헌신적인 친구>의 한스는 더 말해서 무엇 하랴. 그 외 어렵게 살다 간 백성들의 삶도 비극적이다. 이 작가는 왜 이렇게 착한 인물들을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게 했을까. 그것이 작가가 바라는, 어쩌면 진정한 아름다운 삶을 드러내주는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숨어있는 진실을 보이기 위한 장치 같은 것. 더불어 그런 이야기 속에는 항상 예상을 뒤엎는 진짜 반전이 숨어 있다. 그것도 읽는 묘미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아름다운 문장에 있다. 추상적이지만 우아하면서 화려하기까지 하다. 온갖 미사여구와 비유들이 많이 나온다.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표현을 눈물나게 잘해 놓았다. 읽고 있으면 행복이 바로 여기 있구나 싶은 문장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아름다운 문장 주위에는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불러내는 가시 같은 그림자가 붙어있다. 부조리. 극과 극인 것이다. 그래서 더 표현들이 두드러진다. 아니 삶이 더욱 아프게 보인다. 문장은 아름답고 삶은 지독히도 고통스런 것 그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읽는 동안에는 감동과 재미와 교훈까지도 배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끼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현실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문명과 물질만능도 비판한다. 왕이 등장을 하는 시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가난한 사람과 부자, 제도와 권력 등에 대해 논하면서 비평하게 한 것이 그것이다. 특별하게는 불의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것을 꼬집기도 한다. 어리석은 사랑과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논증도 벌인다. ( 사랑의 연가라도 읊조린 듯한 <어부와 영혼>은 아름답고도 특별했다. ) 교만이나, 우정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작가는 계속 문제를 던져준다. 그러고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시대상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은 흉내 낼 수도 없을 것 같은 그 시대의 화려한 생활이나 그와는 반대로 혹독한 가난을 견디며 사는 백성들의 소리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모든 사물이나 동물, 식물들이 이야기를 한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작가의 대단한 상상력이 발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작가의 이야기 그물에 걸려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럴 것이다. 부조리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것인가는 계속 풀어가야 할 고난도의 문제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탄탄한 문체에 환타지 적인 면도 있고 구성상 단순하지 않은데다가 비극적인 내용들이 더욱 글의 맛을 살리고 있어서인 것 같다. 게다가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지 않는가.
< 2007, sj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