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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로봇 - 우리가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신화 이야기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신과로봇 #인문 #종교 #역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원래 인공생명을 다룬 SF를 좋아하고 고대그리스로마신화도 좋아하지만 두 가지 사이의 접점은 뭔가 가장 오래되고 뒤떨어진 것과 가장 앞서가는 것 사이의 충돌처럼 부조화가 두드러져보였다. 그래서 앞 표지의 대리석 조각상과 금속의 로봇의 합체도 뭔가 기묘한 jamais-vu를 느끼게 했다.
이에 반해 제목 “신과 로봇”에서는 deja-vu를 느낀 것은 아마도 우리가 최근 가면 갈수록 겉모습 뿐아니라 내면의 지성과 심지어 감정마저도 인간을 닮아가는 새로운 생명의 창조로 인해 신의 위치에 다가가고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리하는 현대의 신화에 어느정도 우리가 익숙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책의 다양한 신화와 예술, 공예 및 역사적 서술들 속에서 고대 신화와 근현대의 SF 그리고 최신 기술들 사이에 위화감이 아닌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 저자가 그리그 로마 신화 전문가여서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역사에 중점적인 것이 한계지만 가끔 중국 및 인도 신화 및 역사를 통해서 이런 실제 기술 이전에 앞서 가능성을 간접체험시키고 사색하는 신화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하지만 단순히 장차 다가올 기술의 가능성을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희망과 기대와 뒤섞인 위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경고가 뒤따르고 이는 프로메테우스의 형벌과 선물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판도라의 전설로 극명하게 나타난다.
어릴때 읽었던 판도라의 전설에선 마지막 상자에 남은 희망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풀려놓지 못한 안타까운 선물처럼 느껴졌는데 비슷하게 기묘하고 스산한 아르카디아 미소를 보이는 elpis(희망)의 도자기를 보니까 이 희망은 밝은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선물이 아니라 인간을 에피메테우스처럼 욕망에 홀려서 기술에 잠복된 도덕적/사회적 위험을 알려주는 이성적 판단에서 멀어지게하는 “눈먼 희망”의 마지막 저주가 아니었을까 싶다. 판도라의 더 암울한 버젼에서는 항아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 아닌 불행을 예지하는 능력이라는데,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실제적 미래를 정확히 그려보기 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의 환상에만 몰두하는 점을 원자폭탄이 개발되기 몇천년전부터 꼬집어낸 것이다. 즉 신화는 인간의 기술적 잠재력 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창조하고 그 기술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하여 사변을 그려내며 결국에는 인간 자신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즉 신화는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피조물을 만들면서 신의 위치에 오르면 어떻게 될지 즉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더 깊게 탐구하는 이야기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세헤라자데같은 인공지능이 천일야화같은 인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성에 대해 배우는 것을 보고 미래의 AI가 언젠가 우리가 창조한 기계들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이 신화들을 읽으며 우리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어쩌면 공감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맺음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과연 그런 미래가 도래하면 우리는 또 어떤 신화를 창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