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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거대한 산과 같다.
더 없이 커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 보이고, 한 없이 강할 것만 같았던 당신에게 약한 모습을 발견할 때, 소년은 무력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걸 애써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직 때가 아니다. 더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야 비로서 소년은 어른이 된다.
내 모든 것을 받아 줄것만 같은 편안한 사랑을 느끼는 어머니와는 달리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강한 존재여서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가장 두려운 존재.
9.11 테러 이후에야 그 이름을 인식 하게된 국가 아프카니스탄의 한 소년도 같은 시선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미르에게 아버지 바바는 거의 신적인 존재다(바바는 아버지에게 존경을 표하는 호칭이다). 190이 넘는 키에 성공한 사업가에 정의롭고 올곧은 성격, 자비로 고아원을 짓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배품으로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굳세고 강한것 이상으로 거대한 자랑스러운 존재.
아미르는 바바의 사랑에 굶주려 있다. 강하고 활동적인 아버지와는 달리 유약한 성격에 섬세한 아미르는 항상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가 인정해 준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것 같을 정도로.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자신에겐 유달리 냉담한 아버지. 아미르는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바바가 자신을 미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둘은 부자지간 이지만 너무나 다르다. 아내에게서 그가 태어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자신의 아들이라고 믿지 못했을거라는 말까지 엿듣게 된 이후로 아미르의 욕구는 더 커져만 간다.
그의 집에는 하인인 알리와 그의 아들 하산이 함께 살고 있다. 아미르의 할아버지가 데려온 알리는 바바와 함께 자라며 친구처럼 지냈고, 아미르보다 한살 아래의 하산 역시 아미르와 친구처럼 함께 자란다.
하지만 둘의 신분은 역시 하인과 주인이었다. 태어날 때 가장 먼저 했던 말이 '아미르'였던 하산은 충심을 다해 아미르를 따른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 이라도!"
올곧고 바른 성품의 하산.
자신과는 달리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바바에게 칭찬을 받곤 하는 하산을 아미르는 질투한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나서서 그를 도와주고 항상 그의 편이 되어주는 하산을 아미르도 사랑하지만, 그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더 컸을 뿐이다.
어느날 하산은 동네의 악동 아세프에게 맞을 뻔한 아미르를 구해준다. 하지만 아세프는 그냥 물러날 녀석이 아니었다. 독일인의 피가 섞여서인지 다른 아이들보다 힘이 세고 키가 큰 아세프는 아이들 세계의 지배자인데다 집요하기 까지 하다.
운동에 재능이 없고 책읽기만 좋아하는 아미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연싸움이었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승을 거머쥔 아미르. 아프칸 아이들은 싸움에서 진 연을 쫓아 그것을 전리품으로 삼는 것이 큰 영광이었다. 기막히게 연을 잘 쫓는 하산은 아미르의 영예를 위해 연을 쫓아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연을 획득하지만, 아세프를 만나서 크게 보복을 받게 된다.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하산을 쫒아간 아미르는 그 광경을 목격하지만,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숨어서 침묵하고 말았다. 자신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와줬던 하산을 외면해버린 아미르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죄책감의 화살은 도리어 하산에게로 향하게 되는데…….
소설은 무척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의 구성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어른이 된 아미르가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업자인 라힘 칸의 전화를 받고 어린시절부터 회상해가며,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와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성은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어른이 되어서도 하산을 배신했던 일을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살아가는 아미르는 러시아의 아프간 침공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와있다. 소설가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아미르는 라힘 칸의 전화를 받고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마음의 짐을 풀어 나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뉴스로만 들었던 생소한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읽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국경을 초월한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우리나라 한반도처럼 지리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수많은 침공을 당해왔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이 푹 빠져있었다.
재미있는 소설은 많지만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워 일부러 천천히 읽는 소설은 드물다. 반전이나 자극적인 것을 중요시 하는 사람(그런 요소도 충분한 소설이라고 본다)에게는 그냥 재미있는 소설일 뿐이겠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 여운을 남기는 작품, 다 읽고 나면 잊혀지는 재미보다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으면서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에 점수를 많이 주는 편이며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소설은 전쟁의 실상을 큰 비중으로 다루지 않지만, 아미르의 삶을 통해 전쟁과 사람의 이기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의 늪에 빠트리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혹은 외면하고 있는 짐은 무엇입니까?'
읽는 내내 두 소년의 모습에서 훈훈함을, 슬픔을, 인간애를 느끼며 울고 웃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결국 인간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상한 주제를, 신파적이지도 식상하지도 않게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