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파트로 출,퇴근 하는 길은 광릉수목원을 정확하게 가로지른다. 매일 정확한 시각 아침 9시쯤 출, 퇴근을 하기에 수목이 우거진 이 길을 몇 달 전에 구입한 99년 산 마티즈를 타고 혼자서 신나게 달린다

차가 중고다 보니 카세트는 망가져서 혼자서 흥에 겨울 때면 주체를 하지 못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찬란한 햇살과 그 속에 울창하게 높이 솟은 나무들, 신선한 공기, 그리고 봄을 맞이해 솟아오르는 녹색 풀들의 화려한 색상 속에서 한층 기분이 업 되곤 한다.

오늘 출근 길, 왠지 기분이 업 돼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뚜비뚜빠빠 뚜비뚜빠빠 뚜삐뚜빠빠 빠아~

치잇! ‘웃어라 동해야주제곡을 흥얼거렸어.  

이 곳에 근무하며 드라마 폐인인 경비 반장님 덕분에 몇 달 동안 줄곧 드라마를 같이 본 탓이다. 경비 반장님 경비실에는 TV가 없어 변압실에 항상 정해진 시간에 오셔서 드라마를 보시는데 나도 같이 보다가 세뇌 당해 버렸다.

암튼 그렇게 출근해서 오자 마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집 유아들에게 미끄럼틀은 절대 서서 타는 것이 아니라고 교육을 시켜줬다. (관리사무소 옆에는 어린이집이 있다)

콧물 흘리던 꼬마 한 명이 나에게

근데 아저씨는 누구에요?’

나는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너희들의 수호천사란다

찡그리는 아이들의 표정을 뒤로 하고 쿨하게 내 근무지인 지하실로 가서 멍~때리며 앉아 있던 중.

소포가 왔다고 경비 반장님이 호출하셔서 가보니 큰 박스에 소포가 와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 부활’ 1,2권을 신청했는데 두 시간만에 배달이 오다니 놀랄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소포를 뜯으니 세상에 양철댁님이 보내주신 당신 인생의 이야기’ ‘유령이 쓴 책’ ‘통곡그리고 언제나 상큼발랄 레모나C 60’!!!

이 거대한 선물을 옆에서 구경하시던 경비 반장님

아니 왠 책이 이렇게 많아?’ 

 '네, 선물 받았어요.’

, 그래. 아가씨가 보냈나봐, 편지도 있고 정성이 가득해

, 절세 미인이세요. 마음도 되게 착하세요.’

내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모습도 목격하고, 요새 옴진리교 책만 보고 있어서 걱정하시던 경비 반장님은 양철댁님의 선물 덕분에 내가 사람들도 만나고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판단하신 모양이다.

경비 반장님께 레모나C를 한 봉 나눠드리고, 이 소중한 책들을 들고서 양철댁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편지도 읽어보며 오래 살아있기를 잘 했어라는 생각과 이런 과분한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란 부끄럼움(이미 받아놓고서!) 그리고 사회는 아직 온정과 따뜻함으로 가득찬 세상이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선물이라 불리는 것, 받아 본지 몇 년만인가그것도 이렇게 정성이 가득한 선물을 말이다.

울컥하려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말 알라딘 서재에서 좋은 분을 만났구나란 생각을 했다.

난 이 세 권을 모두 돌파하겠다! 양철댁님 정말 감사합니다! 힘 낼께요! 그리고 보내주신 레모나처럼 언제나 상큼발랄하게 살께요! 

오늘 저녁에는 경비 반장님이 통닭도 사주신단다, 정말 퍼팩트하게 산뜻한 하루다! 

'자연이, 봄 햇살이 좋은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넉넉하다는 게 아닐까요?' 

양철댁님의 이 편지글을 읽고 거짓말하지 않고 정말 눈물이 났다.

이 좋은 봄날, 이 모든 영광을 양철댁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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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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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2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ㅠ.ㅠ
쑥스럽게스리...
하긴 누군가의 글이 참 맘에 들고, 그래서 독려하고 싶고, 그래서 내가 아는 좋은 책들을 같이 나누고 싶고 한 게 쑥스러워야 할 일은 아니죠~^^

맘 착한 절세미인, 저 부분은 정정 들어가셔야 겠어요.
그래야 제가 앞으로도 맘 놓고 무슨 일을 계획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근데 이 글도 참 맘에 들어서 추천을 날리지 않을 수가 없는걸요~^^

루쉰P 2011-04-23 00:34   좋아요 0 | URL
쑥스러워하시면 안 됩니다. 당당해 지셔야 해요! ㅋㅋ

인터넷은 실체를 보지 않습니다. 다만 글을 통해 느껴지는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거죠. 전 양철댁님의 마음이 그렇게 보여요. '절세미인에 착하신 분'으로 말이죠. 푸훗. 절대 수정할 수 없어용!!

노이에자이트 2011-04-2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세미인이라...궁금 궁금.

루쉰P 2011-04-23 21:43   좋아요 0 | URL
전 항상 궁금을 유발하는 능력이 있는 듯 해요. 하지만 양철댁님이 절세 미인이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4-23 15:28   좋아요 0 | URL
'확실'이 아니라 '확신'이신게죠?
이 동네의 안녕을 위하여 절대로 실물을 들이밀면 안되겠네요~^^

루쉰P 2011-04-23 21:44   좋아요 0 | URL
이 동네의 안녕을 위해서는 제가 더 실물을 들이밀면 안 됩니다. 제가 그런 면에서는 양철댁님 보다는 위에요. (아, 이 오만함 ㅋㅋ)

쉽싸리 2011-04-2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의 일화군요!

명랑한 루쉰P(지금보니까 대문자네요?)님의 말씀과 행동에 비나리는(던)오늘이 차라리 개운합니다.

루쉰P 2011-04-23 00: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게다가 그런 글을 읽어 주시고 개운하다고 하시는 분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구요. ㅋㅋ

마녀고양이 2011-04-2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축하드려여, 루쉰님!
그런 깜짝 선물을 받으시다니 기분 좋으셨겠어요. ^^

그런데 말이죠, 수많은 누님과 형님 앞에서 오래 살기를 잘 했어라는
깜찍한 멘트를 날리실 수 있는겁니까! 버럭! 흐흐.

루쉰P 2011-04-23 21:52   좋아요 0 | URL
완전 기분 울트라 캡 숑 좋아요. ^^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얼굴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정말 제 친누이처럼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죠.
저에게는 '사자'님이라고 소중한 친구 분이 계시거든요. 몇 년부터 인터넷으로만 만난 분인데 항상 저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알라딘 서재에서 마고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을 만나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이거 뭐라도 해서 보답해 드려야 하는데...

그리고 아무래도 오래 살기 잘 했어보다는 오래 서재 들어 오길 잘 했어로 바꿔야지 안 혼날 듯!!

감은빛 2011-04-28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길이 광릉수목원을 가로지른다니!
엄청 부러운 출근길이예요!
차가 99년산이라면, 양호한거 아닌가요?
저는 96년산을 몰고 다닌답니다.
아직 쌩쌩하니 잘 달립니다.

오랫만에 루쉰님이 밝은 글을 올린 것 같네요!
선물 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루쉰P 2011-04-29 10:47   좋아요 0 | URL
아주 고요한 길이에요. 외계인에 납치되어도 좋을 정도로 고요해요. 96년산이라니 대단하신데요. ^^ ㅋㅋ

선물 받아서 너무 좋아용. 저는 밝은 글, 태양 광선과 같은 글을 쓰고자 결심하고 있습니다. 푸훗.

cyrus 2011-04-2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 들렸는데 저 역시 기분 좋게 만드는 글을 읽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시험이 끝나서 그런걸까요? 저도 요즘 하루하루가 기분이 좋고
긍정적인 마음이 샘솟네요 ㅎㅎ
뭐니뭐니해도 책을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 공유하고 나눠준다는건 참 좋은거 같아요.

루쉰P 2011-04-29 10:48   좋아요 0 | URL
기분 좋으시다니 저도 흐뭇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양철댁님 덕분 ㅋㅋ. 시험이 끝나면 긍정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맞아요. 책을 혼자서 읽은 저로서는 양철댁님의 저런 모습 속에서 이기적 자아를 반성해요. ^^

pjy 2011-05-06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절세미인에게 선물받으시는 루쉰P님은 멋쟁이 우후훗~~

루쉰P 2011-05-06 20:29   좋아요 0 | URL
아무나 그런 행운을 가지는 것은 아니죠 크흑!! 또 다시 감동의 눈물이..

2011-05-2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저도 양철댁님께 반했어요~, 편지 울컥 부분에서 저도 울컥. ^^
오래 살 만한 세상, 화이팅!

루쉰P 2011-05-22 09:05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분이에요. 양철댁님은 ^^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화이팅!!1
 
크레이지 군단 1~4권 박스 세트 - 한정판
후루야 미노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이 아파트에는 매일 아침 8시반에 정확하게 출근하는 여성이 있다. 

약간 긴 파마머리, 어떤 날은 스커트 차림, 어떤 날은 진 청바지에 마이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이 여성. 수수한 화장, 차분한 표정, 전문직에 종사할 것 같은 이미지, 얼굴은 계란형에 미인이다! 

난 항상 9시 출근이지만 어느 날 눈에 띈 이 여성을 보기 위해 매일 아침 8시 20분에 출근한다. 그런 나에게 모두 성실하다고 말한다. 푸훗. 항상 사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법. 

이 여성은 어떤 날은 뛰고, 어떤 날은 걷는다. 다급한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날은 저녁에도 볼 때가 있다. 7시에서 8시쯤 퇴근을 하는 듯 하다. 

이 여성 분은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렇지 모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여성분께 내 마음대로 이름도 지어드렸다. 지혜씨라고 말이다. 출근하기 위해 멀리서 걸어오는 그 여성에게 혼자서 말을 걸어본다. 

'지혜씨, 오늘은 헤어스타일이 멋지시네요.' 

'지혜씨, 오늘은 옷이 참 잘 어울리세요.' 

그렇게 아파트 길목에서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옴진리교에 대한 책을 열심히 보고 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겠다고 말이다. 근데 주변을 둘러보니 변압실이라 오로지 웽~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전압기와 책상, 의자, tv 뿐. 난 혼자였다.

이 녀석들에게 애정을 쏟을까 하다가 '이건 아니야, 난 사람이야, 사람을 사랑해야 해'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섬광 같이 지나간 한 여성, 매일 같이 서로 무표정하게 바라 보지만 난 그 여성에게 애정을 쏟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랑을 쏟아준다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밤에는 달을 보며 그 여성이 오늘은 좋은 하루를 보냈기를! 낮에는 해를 보며 그 여성이 오늘은 즐거운 일만이 가득하기를! 중얼거리고 있다. 

나랑 친한 경비 반장님은 지하에 나와 달 보고 해 보고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다. 저번에 무슨 책을 읽냐고 물어보실 길래 옴진리교라는 사린 가스 테러 사건에 대한 책을 보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갸우뚱 하시며 전기 공부 책은 안 읽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 택배로 배달되는 책들은 경비 반장님을 통해서 오는데 옴진리교 2탄 '약속의 장소에서' 그리고 옴진리교 교주의 어린 시절을 추적한 '황천의 개'등. 

배달 될 때마다 무슨 책이냐고 물어 보시는 경비 반장님께 내가 그 때마다 옴진리교라고 하자 더욱 더 이상한 표정으로 바뀌시고 있다. 그리고 경비 반장님께서 한 마디. 

'암튼 힘 내!' 

뭘, 힘 내란 거지...뭐 하여튼...나를 요즘 좀 피하신다. 경비 반장님. 나랑 곧잘 차도 마시며 시국을 토론 했는데 말이다. 

내 생활의 모든 사상의 원류는 후루야 미노루다.

만화가를 지망하는 오타쿠 기계과 친구와 더불어 에로계의 공고 본좌라 불리는 화공과 친구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에 한 발 담그고 있는 공고의 붉은별 전기과 나 이렇게 세 명을 주축으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써클이 형성되었다. 이름하여 '바보파' 

전태일 평전에서 전태일 열사가 활동했던 써클의 이름이 '바보파'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그런 심오한 의미의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여름이 지나고 대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는 공고생이기 때문에 놀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험은 잘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써클 동료들을 설득해 겨울 중간고사를 집중 공부를 했었다. 

서로 밤을 새가며 토론을 하고 교과서에 밑줄을 치며 우리는 공고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공고는 참 좋았던 점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페이지에 문제가 다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써클 소속은 기계과 오타쿠를 중심으로 2명, 화공과 에로 본좌를 중심으로 1명, 전기과 공고의 붉은별을 중심으로 3명이었다. 서로 과마다 시험 범위는 틀리기 때문에 각기 과별로 범위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공부를 했다. 

공고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기에 공부를 하면 눈에 확 띈다. 우리가 공부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야, 졔네 공부한다.' 

공부를 하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난 속으로 그런 아이들의 기대와 칭찬 속에서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번에 우리 전기과에서 대 반란을 일으키고야 말겠다라며 강한 각오를 품었다. 

시험 날, 전기과 우리들은 사색이 되었다. 시험 범위를 잘못 파악한 내 오류로 시험 범위가 아닌 앞 페이지들을 우리는 공부를 한 것이다. 

전 날 밤을 새서 눈이 빨개진 우리들은 너무 황당한 마음에 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를 가지 말고 가출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우리 성적이 밝혀지자, 아이들은 파안대소를 했다. 나 때문에 같이 시험을 망친 동지들도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이 모든 실패는 시험 범위를 착각한 내 실수다라고 양심 선언도 했으나 그 소리에 아이들은 더 파안대소! 

그래서 붙여진 우리 써클의 별명이 '바보파'였다. 써클 이름을 우리가 지은 것이 아니라 여론이 지어준 것이다. 우리는 한사코 그 써클이 이름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말이다. 

웃긴 것은 공고에서는 불량써클 비밀 조사를 한다. 학기에 몇 번씩 비밀 여론조사를 실시해 괴롭히는 불량써클이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어떤 녀석이 장난으로 '바보파 루쉰P'라고 내 이름을 적었다. 

우리 써클은 담배도 못 피고, 오토바이도 못 타며 지극히 순박한 친구들로 구성돼 있었다. 삥을 뜯기는 커녕 중학생들에게 삥을 뜯긴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주로 활동은 싸움 잘하는 녀석들을 피해서 점심을 어디서 숨어 먹을 것인가가 매일의 주요 주제였다. 

선도실로 불려간 나.

'너희들 바보파가 뭐하는 써클이야!' 

'저기...점심 먹는 써클인데요.' 

'뭐라고! 이 새끼가!' 

싸다귀를 맞았다. 그 이후 우리 써클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 저러한 그냥 집이나 같이 다니는 친구들 모임이다라고 말을 하고 또 말 했지만 역시나 선생들은 사람을 믿지 않았다. 

실컷 얻어 터지고 써클 해체 각서까지 쓰고 일주일에 한 번 선도실로 불려가 그 간의 활동을 보고해야 했다. 결국 보다 못 한 같은 반 친구들이 장난으로 쓴 그 친구를 찾아내 우리 써클을 다 해명해 주기까지 공포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바보파'란 명칭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고 고난의 고개를 넘던 시절, 나에게 힘을 내라며 오타쿠 기계과 친구가 준 책이 '크레이지 군단' 해적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의붓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추남 이쿠오, 스구오 형제, 자신이 낳아 준 어머니가 누군인지 모른채 공원에서 방황을 하며 사는 추남 이또킹, 시험만 잘 보라고 압박하는 집에 뛰쳐나와 가출한 잘생긴 카즈. 

후루야 미노루의 책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 추남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그린다. 주인공 추남 이쿠오를 보며 거울 속의 얼굴을 봤을 때 싱크로율 70%에 육박해 너무 놀랐던 기억도 떠 오르고 말이다.  

짙은 어둠으로 시작되는 이 만화는 이쿠오, 이또킹을 중심으로 가출한 청년들의 말도 안 되는 인생역정이 펼쳐진다. 그들을 받아 준 착한 이발소를 중심으로 말이다. 

지랄 같은 세상이다라며 그 동안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좌절하고 있던 나에게 '크레이지 군단'의 주인공들은 그런 지랄 맞은 세상에서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낱낱이 가르쳐 주었다. 

후루야 미노루는 이 작품에서 어둠을 웃음으로 한껏 포장해 주었다. 우울한 것도 힘든 것도 모두 다 이렇게 만들어 버리자! 그것이 내가 후루야 미노루에게 배운 것이다. 

정말 웃긴 만화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있는 어둠에 대한 컨트롤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도 감을 잡았다. 

이 책에는 애정 결핍증이 있는 여자아이가 나온다. 그녀는 이또킹을 너무 사랑해 집착의 정점을 보여주는데 결국 이또킹 엉덩이에 칼침을 놓는다. 

이 여자아이는 부모님도 없이 원조교제로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자신을 성적 기계로 보는 것이 아닌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이 사랑하겠다고 정한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녀는 돌아 버리는 것이다. 

그 삭막한 세계에서 그녀가 바라던 사랑이 집착증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랑을 받고 싶다는 그 마음은 참으로 공감을 했다. 

이 아파트에 있는 아름다운 여성 지혜씨, 그 분에게 들리던 들리지 않던 봄이기 때문에 나름 소중한 사랑의 텔레파시를 보내 드리려고 한다. 난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 그것이 후루야 미노루에게 배운 사랑법이다.  

이 책에서 압권은 인생 리샛 버튼이다. 

이쿠오는 이또킹에게 묻는다. 만약 외계인이 나타나 인생이 실패했다며 이 버튼을 누르면 인생을 다시 리셋할 수 있다고 하며 누를 것이냐 물어본다. 

이또킹은 싫다고 한다. 왜냐면 이쿠오를 만났기 때문이란다. 

나 역시 외계인이 리셋 버튼을 누르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추남이어도 성격이 지랄 맞아도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후루야 미노루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해줘야 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내가 돌아가면 지혜씨를 누가 챙겨주나!  

봄인데 우울한 리뷰는 좀 벗어나 나름 희망적 리뷰를 한 편 써보자는 마음에 썼는데...또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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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님.
본인을 추남 추남 하시는데, 어느 정도인데 그러시나요?
인증샷 올려주시면 제가 대신 판단해 드리겠습니다. 캬캬.

시험 범위를 잘못 알았다니, 주춧돌이 잘못 놓인 곳에 공든 탑을 쌓으신게 되었군요, 결국.
속상하셨겠어요.. 거기다 선생님의 오해까지. ㅠㅠ
지혜 씨라는 분 이야기에, 으아 했는데, 돌이켜보니 머.. 저두 누군가를 두고 이런 저런 공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분에게 폐만 안 끼친다면, 즐거운 일 좋은거잖아요. 저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후루야 미노루 작품이 또 있지 않던가요?

아하, 이름이 귀에 익더라니, 이나중 탁구부 작가군요.
으........ 그림이 너무 으..... 제 신음소리 먼지 아시죠? ^^

루쉰P 2011-04-17 21:55   좋아요 0 | URL
인터넷이란 이럴 때 유용하죠. ^^ 추남이라는 단어 만으론 정말 이 사람이 추남일까? 아주 못 생긴 것일까?하며 의구심을 가지지만 나름 다 자기만의 상상 속의 추남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상상 속에서 현실의 추남인 저보다 1%라도 잘 생겨 있진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하며 절대 네버! 제 인증샷은 올리지 않습니다. 푸하하하!

참고로 정말 추남입니다. 제가 추남이라는 증언으로 친구들 말에 의하며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추남이다. 얼굴의 끝을 보여준다는 등! 그냥 흘끗 지나치며 보는 데도 토가 나올 것 같다는 등. 진심 어린 증언이 많습니다. 푸훗, 전 그런 친구들에게 너희들도 그다지 낫지 않아라며 비난 쓰나미를 퍼부어 주기는 하지만 홀로 거울을 보며 씁쓸해 하기는 합니다. ^^
여성 분에게도 이미 추남이다라는 증언은 많이 확보를 해 놓은 상태입니다. 여태껏 같이 일 했던 직장 여성 동지들에게도 '생긴 것에 비해 성격은 여리네'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푸하하하!

지혜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고 오로지 정말 사랑을 베풀어 드린 다짐이에요. 저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뭐 이런 일이죠. 그냥 참 예쁜 분이다라고 감탄하고 그 분이 잘 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 아! 순수하여라! 친구들은 그런 저를 보고 전투적 정신이 없다는니 거의 변태적이다라며 악언을 쏟아 붓는데 사실 여성에게는 용기가 없는 것은 맞아요. ㅋㅋㅋ

ㅋㅋㅋ 후루야 미노루의 그림체는 많은 분이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처음 이 작가의 그림을 접할 때는 정말 대충그렸군이란 생각부터 했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추남'을 그려내는 그의 대충 그린 듯한 섬세함은 거의 거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작가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는 굉장히 강합니다. 전 광적으로 좋아하는 쪽이구요. 뭐랄까? 인생에 있어서 목숨걸고 좋아할 만한 만화가 한 명 있는 것 쯤은 괜찮지 않을까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4-17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천의 개>에는 아사하라 쇼코가 어린 시절 미나마타 병에 걸려 눈이 안 보이게 된 이야기가 나와요.지방공무원들에게 아무리 문제해결을 위해 하소연을 해도 안 들어줘서 무서운 반사회적인 복수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지지요.슬슬 읽었는데도 왠지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물론 그렇다 해서 아사하라에게 관용을 베풀 수는 없겠지만...

루쉰P 2011-04-19 09:09   좋아요 0 | URL
<황천의 개>도 일독했어요. 노이에자이트님의 말씀처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언급이 나오더군요. 근데 어린 시절만 잠깐 언급되고 더 자세히는 나오지 않아 좀 실망한 책이에요. 하여튼 저 역시 아사하라에게 관용을 베풀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런 아사하라를 만든 일본 사회도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노이에자이트님의 독서의 그물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으신거죠? 반드시 추적해 볼꺼에요. ^^

노이에자이트 2011-04-20 23:09   좋아요 0 | URL
독서의 그물은 저인망으로 좍 훑고 지나갑니다.정독보단 술술 읽는다거나 일부 내용만 읽는 경우가 더 많지요.

다락방 2011-04-1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힘 내!'

뭘, 힘 내란 거지...


이 부분 읽다가 웃었어요. 암튼 힘내, 뭘 힘내란 거지.. 하하하하.

지하에서 '옴진리교'와 '사린사건' 을 읽으시다뇨, 루쉰님. 얼마전에 친구가 지하철안에서 그 책의 광고를 봤다고 이 무슨 악취미냐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지하에서 보기에 그 책은 지나치게 우울하잖아요, 루쉰님. 지하에서 언더그라운드라뇨. 저는 이십대 중반에 그 책 읽는데 책장이 안넘어가서 낑낑거렸던 기억이 나요.

루쉰P 2011-04-19 09:12   좋아요 0 | URL
아직도 뭘 힘 내란 건지 생각 중이에요. ㅋㅋㅋ 좀 걱정되시나 봐요. 항상 변압실에서 책만 읽고 있으니 말이죠. 푸훗.

맞아요. 지하에서 읽기는 완전 우울하죠. 하지만 전 독서에 대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우울할 땐 더 우울한 책을 읽으며 정면돌파하는 뭔가 비상적 방식! 전 근데 뇌구조가 정말 이상한 듯 합니다. 독을 더 독한 독으로 치유하는 방식을 사용해 여태껏 제 안의 우울과 싸워 왔어요. 이렇게 쓰니까 되게 있어 보여요. 아~ 부끄러워라...

양철나무꾼 2011-04-19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적인 리뷰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밌는 리뷰는 맞습니다.
완전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저도 몇년 전에 자전거 도로로 지나가는 김규항을 아침 출근 길에 보고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하여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합니다.
제가 차 안에서 그를 향하여 손을 흔들었겠습니까?
아님 싸인을 받았겠습니까?
심지어 아무것도 안하는 입으로 '김규항 짱~!'하고 외치지도 못했는걸요~^^

루쉰P 2011-04-19 09:16   좋아요 0 | URL
희망적 리뷰에 대한 궁극의 꿈을 항상 키워요. 원래 리뷰의 목적은 책을 소개함인데 전 이왕이면 내가 즐겁게 읽은 책을 다른 분도 즐겁게 읽으며 희망적으로 보셨으면 하거든요. 그래서 뭔가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리뷰를 쓰고 싶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쓰고 있지만 막상 쓰다 보면 뭔가 어둠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이 상황!

몰입해서 읽어주셨다니 너무 감사해요. T.T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은근히 마음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서재도 돌아다니며 보지만 은근히 마음 가는 서재도 있구요. 양철댁님 서재는 완전 마음가요. ㅋㅋㅋ

에디 2011-04-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왓 저도 정말 좋아해요. 크레이지 군단! 전 역사에 남을 세기적 명저인 이나중탁구부보다 크레이지 군단이 더 좋아요. 책에 나오는 잘생긴 남정네 (이름이 기억안나네요) 도 좋은데, 그 이상한 역원조교제(?)는 심히 안타깝지만...

언더그라운드도 좀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특히 하권이. 인생의 리셋버튼을 누르지 말라는..

루쉰P 2011-04-19 15:5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에디님 ^^ 아! 맞습니다. 후루야 미노루의 역작은 저도 단연코 크레이지 군단이라 생각합니다. 이나중 탁구부는 그의 사상이 혼란하게 섞여 있다고 하면, 그 뒤 작품들로 가면서 점점 뭔가 심화되는 흔히들 말하는 사이코패스라든가 뭔가 사회와 단절된 인간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구요.

후루야 미노루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1위는 크레이지 군단. 2위는 심해어, 낮비 3위는 이나중 탁구부, 그린힐, 두더지 4위 사가테라로 꼽고 있어요.


저는 후루야 미노루는 작품을 통해 계속 진화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읽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둠 속의 웃음을 찾는 그의 작품이 전 참 끌립니다.

다락방 2011-04-21 09:33   좋아요 0 | URL
역사에 남을 세기적 명저, 인 이나중탁구부, 라니. 아 정말. 에디님.
저도 이나중탁구부 낄낄대며 봤었어요.

루쉰P 2011-04-21 10:01   좋아요 0 | URL
아! 역시 다락방님도 이나중탁구부를 보셨다니, 어쩐지 처음 뵈었을 때부터 뭔가 사상의 흐름이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나중탁구부의 작가는 남자는 추남으로 상당히 잘 그리지만 여 주인공은 그와 반대로 굉장히 미인으로 잘 그립니다. 전 다락방님의 이미지가 이나중 탁구부의 쿄코와 겹쳐지네요. ^^

쉽싸리 2011-04-2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만화책을 안/못 본지 오래됐어요.(정확히 하자면 안본게 맞는거 같네요. 하지만 변명하자면 '그 많던 "만화방"은 다 어디로 갔는가?' 에요)

이 '이나중 탁구부'는 제 기억이 맞다면(안 맞을 확률이 거의 99%지만)아이큐 점프라는 주간만화 잡지에서 보았던것 같아요. 연재였죠. 저는 이 작품을 끝까지 보지 안/못했어요. 한 2~3회 까지는 본것 같은데, 매우 독특한 작가구나(저는 언제나, 일본만화의 다양성에 대해서 만큼은 경의를 표하는 입장입니다)라는 정도의 생각. 하지만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15,6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꼭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그당시에는 굉장한 '충격'을 주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루쉰P 2011-04-23 00:39   좋아요 0 | URL
아니? 아이큐 점프에 연재가 되다니 저도 처음 듣는 소식이네요. 이나중 탁구부는 아주 대충 그린 그림체 덕분에 아주 충격을 메가톤 급으로 주며 만화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죠. 발로 그려도 저것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등 아주 극찬이 이어졌죠. ㅋㅋ

만화책도 그렇고 어떤 책이든 그것이 내 사상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는가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전 만화책이든 어린이 동화든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제 삶에 그것이 어떻게 융화돼 나를 살려 갈 수 있는가라는 점이거든요. 그 점에서는 후루야 미노루가 탐 중요한 사상가입니다. ㅋㅋ

감은빛 2011-04-28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통과!

2. '추남'이라고 극구 주장하시는 루쉰님에 대해서는,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심지어 저처럼 외모에 자신없는 사람도 수많은 연애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구요!)

3. 리셋 버튼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읽었던 '리플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리셋과는 약간 개념이 달랐던 것 같네요.

4. 마지막으로 '지혜씨'에 대해서는,
그런 손에 잡히지 않는 짝사랑 말고,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쉬를 고려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어쨌거나 용기있는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요!

루쉰P 2011-04-29 10:34   좋아요 0 | URL
1. 책에 대해 모르신다니 저도 통과!

2. 음...감은빛님 덕분에 자신감 얻었음.

3. 결론은 리셋 버튼과 리플레이라는 소설과는 틀린다는 사실 판명

4. 누구한테 대쉬하죠???

꼬마요정 2011-06-07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루쉰p님 리뷰 읽다기 웃겨서 배꼽 빠질 뻔 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이렇게 삶과 책을 잘 섞어서 재밌는 글을 쓰시나요..?? 지혜씨와 옴진리교, 경비 아저씨, 바보파... 이러다가 루쉰p님 과거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되어 우연히 마주치면 알아보게 되는 게 아닐까..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루쉰P 2011-06-07 00:51   좋아요 0 | URL
분명 알아보실 겁니다.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은 추남이라서 풉!!

칭찬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전 사실 책 리뷰가 아니라 뭔가 자기 한탄의 리뷰를 쓰는 걸 발명하고 있어요. 흠...뭔가 이상하죠?

지나가다 2012-05-11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맘을 울리네요....
엉터리 세상에서 제대로 학창시절 보내셨네요...
후루야 미노루는 절망하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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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광풍이 몰아치던 99년, 난 공고를 갓 졸업한 취직도 실패한 한 명의 패배자였다. 나를 포함한 무직자에다가 대학을 가지도 못 했던 찌질이들에게 몰아쳤던 광풍이 있었다. 그것은 ‘다단계 선풍’이었다. 어디서부터 누군가를 통해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다단계’는 뿌리치지 못할 유혹으로 다가왔다.

아무런 자본금도 없이 쉽게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에 현혹돼 하나, 둘 그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나 역시 그런 흐름이랄까? 물결이랄까? 그런 것들이 존재하며 내 주위를 소용돌이치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재수를 하던 5월의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지만 공고를 졸업하고 서로 무직이며 대학도 가지 못한 한심한 인생들이었기에 친하건 친하지 않건 누군가가 겪는 고통은 같은 공고생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그 마음으로 우리는 결속돼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서로 연락을 했고, 편의점에서 밤을 새며 알바 했던 돈, 공사장에서 욕을 먹어가며 벌은 돈 등, 서로가 발악을 하며 모은 돈을 아까워하지도 않고 그 친구에게 전달을 했다. 근 3백여만원의 돈을 모아 그 친구에게 전달한 후 그래도 우리는 정말 인간적이라며 찌질이들은 찌질이가 지켜야 한다며 서로를 자축했었다.

그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받은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울면서 전화를 한 여동생은 오빠는 다단계에 너무 심하게 빠져 집에 있는 돈도 훔쳐 갔고, 집에는 들어 오지는 않은 채 다단계 시설에서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님에 대하여 물어보니 아프기는커녕, 그 친구가 빚진 돈을 갚기 위해 식당을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발 오빠를 그곳에 빼달라는 요청에 주소를 받아서 서울에 있는 다단계 회사로 갔다.

그곳에서 발견한 그 녀석을 멱살을 잡고 분노를 터트리며 때리고 욕을 했다. 그렇게 우리를 속이다니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광분을 해 버렸다.

나에게 맞으면서도 그 친구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 따위 연약한 소리나 하니까 맨날 바닥에서 거지 새끼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돈은 내가 다 배로 갚아 준다며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란에 나온 다단계 직원들에게 둘러 쌓여 얻어 터진 후 회사 밖으로 쫓겨난 나는 그 서울의 대로변에서 옷은 찢어지고 입술에는 피를 흘린 채 어쩔 수 없이 타박 타박 역으로 걸어 갈 수 밖에 없었다. 내 상황과는 반대로 길 건너편, 그리고 정면에 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정스러워 보이는 커플, 바쁘듯이 걸어가는 사람들. 마치 ‘언더그라운드’에 적힌 옴진리교의 피해자 증언에 나오듯이 그렇게 토를 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그 건너편에서는 다른 세상을 사는 듯이 자신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난 그 속에서 ‘이쪽’과 ‘저쪽’의 세계의 단절, 뭔가 공간이 뒤틀려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었다.

며칠 후 경찰도 찾아갔지만 불법적 단체가 아니기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무시 섞인 대답만 얻었고, 친구들을 모아서 찾아간 그 다단계 회사에서는 친구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는 얘기만 들은 채 결국 그 녀석을 포기해야만 했다. 게다가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어져버린 그 친구를 찾을 길은 전혀 없었다.

그 친구도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 어머니는 몸이 아프신 전형적인 우리와 같은 종족이었다. 그런데 같은 아픔을 공감하는 우리를 속이고 그렇게 산다는 것이 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몇 년이 지나 저녁 퇴근 길에 책이나 좀 보려고 서점이 있는 서울의 어느 전철역을 올라가던 중, 지하철 입구에서 몇 년 전 내가 그 녀석의 멱살을 잡았을 때 입었던 그 때 그 옷을 입고 전단지를 돌리는 초췌한 그 친구를 보게 됐다.

마주친 우리는 그 녀석도 나도 당황스럽고 놀라 서로 아무 말 없이 몇 초간 쳐다보기만 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전단지를 손에 쥔 채 싸구려 가방을 메고 힘 없이 서 있는 그 친구를 보며, 나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다.

침묵 끝에 나는 ‘이 개새끼야, 그렇게 사기를 치고 갔으면 성공이라도 해야지 이 꼴이 뭐냐, 이 꼴이…’ 그 한 마디를 하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그 지하철 입구 앞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친구와 더불어 말이다.

근처 순대국 집에서 밥을 사 먹이며 손을 벌벌 떨며 숟가락을 드는 그 녀석을 보며 겪었던 그 온 몸을 찢어내는 고통의 근원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추적할 수 있었다.

지표 없는 악몽 – 우리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란 하루키가 쓴 이 책 말미에 있는 맺음말은 다단계 폭풍에 휩싸였던 그 때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왜 그리고 그 때 난, 우리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책의 압권은 방대한 분량의 인터뷰보다 이 맺음말이다.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쓸데없는 장식만 걷어내버리면 매스미디어가 근거로 삼는 원리의 구조는 아주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지하철 사건이란 요컨대 정의와 악, 제정신과 광기, 정상과 기형의 명백한 대립이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많든 적든 ‘정의’ ‘제정신’ ‘정상’이라는 커다란 승합마차에 올라탔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즉 아사하라 쇼코나 옴진리교 신자에 비하면, 또는 그들의 행위에 비하면 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명한 ‘정의’이고 ‘제정신’이고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만큼 알기 쉬운 콘센선스(의견일치)는 없다. 매스미디어는 하나같이 그 흐름을 타고 그 기세를 점점 가속시켰다.’

또 이렇게 쓴다.

‘앞에서는 말했듯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기본 자세는 ‘피해자 = 무구한 존재 = 정의’라는 ‘이쪽’과, ‘가해자=더렵혀진 존재=악’이라는 ‘저쪽’을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쪽’의 포지션을 전제조건으로 고정시켜두고 그것을 이른바 지렛대의 받침점으로 삼아 ‘저쪽’의 행위와 논리의 왜곡을 철저하게 세분화하고 분석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호 유통성이 결여된 모멘트가 도달하는 곳은 항상 축소되고 패턴화된 논리이며, 혼탁함이 초래하는 무감각이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지하철 사린사건의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일으킨 ‘저쪽’의 논리와 시스템을 철저하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그와 동시에 똑 같은 ‘이쪽’의 논리와 시스템에도 병행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쪽’이 던진 수수께끼를 해명하기 위한 열쇠는(또는 열쇠의 일부는) 혹시 ‘이쪽’ 지역의 지하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옴진리교라는 ‘존재’를 자기 자신이라는 시스템 속에 또는 자신이 속한 시스템 속에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 ‘존재’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옴진리교라는 ‘존재’가 실은 나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존재’는 우리가 예상도 하지 않았던 스타일로, 우리 자신의 뒤틀린 모습을 취함으로써 우리 목에 날카로운 가능성의 나이프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애써 의식적으로 배제해야만 하는 것이 혹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이쪽’ = 일반시민의 논리와 시스템과 ‘저쪽’ = 옴진리교의 논리와 시스템은 서로를 비추는 일종의 거울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가지 상은 이상할 정도로 닮은 부분이 있고 몇 가지 점에서 호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사물을 직시하는 것을 피하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실이라는 국면에서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내적인 그림자 부분(언더그라운드)이 아닐까. 우리가 이 지하철 사린사건에 대해 마음 한구석에서 맛보고 있는 ‘꺼림칙함’은 바로 그곳에서 소리도 없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그런 것이다. 나는 오로지 그렇게 속아간 그 친구가 멍청하다고 비난하고 욕을 했었다. 단순히 매스미디어가 말하는 콘센서스에 따라 그런 흐름에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그 친구만 비난을 한 것이다. 한심하다고 말이다.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묻어 버린 채 세월을 보냈다. 마치 그것이 ‘정의’인 양, 난 속지 않았기에 ‘제정신’인양.

옴진리교의 사린 가스와 다단계라는 것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그 사건들의 이면 속에 숨겨진 지하 세계는 그 속성이 비슷하지 않을까? 또한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쪽 세계의 어둠을 벗겨낸 부분과 매우 흡사하지 않을까?

사회의 성공 = 돈을 많이 버는 것 즉 배금주의라는 도식화에 잡혀 있는 우리들은 대학이라 불리는 학벌의 딱지도 사실 저 ‘배금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었다. 그 길에서 탈락했기에 우리는 바로 그 ‘돈’이라는 교주를 직접 모시기 위해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 다단계였던 것이다. 내 시스템 속에는 이미 ‘저쪽’ 세계로 갈 생각을 이미 굳히고 다만 매스미디어가 말하는 콘센서스에 의해 마치 난 그런 존재가 아닌 것처럼 행세를 한 것이다. 이미 ‘돈’이라는 교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루키는 그 구조에 대해 이렇게 풀어서 말한다.

시스템이라 불리는 고도관리사회에서는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려 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 가치를 억압하는 것이다. 허나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사회에서 사는 이상 개인의 자유, 가치, 자아만을 위해서는 살 수 없다. 사회의 시스템과 개인의 자유, 가치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 둘이 융합 혹은 타협하는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자유, 가치를 찾으려는 자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폐쇄적 시스템 속으로 포함시키고 그들의 자유, 가치, 자아를 자신에게 모두 종속을 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 시스템의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개인의 시스템 구축을 위해 방황하다가 폐쇄적 시스템으로 떨어져 버린 그들에게 어떤 새로운 희망적 시스템을 얘기해 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

아사하라 쇼코의 폐쇄적 시스템과 사회와 개인이 병합돼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금 살고 있는 시스템이 결국은 옴진리교의 폐쇄적 시스템을 낳을 수 있는 토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하루키는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그의 확신을 증명하듯 인터뷰 글에는 사린 가스로 살해된 남편의 부인이라고 사람들이 자꾸 자신을 손가락질을 해 그것이 싫어 집을 이사한 피해자 부인도 있고, 여러 사례가 언급돼 있다. 남의 불행 따위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소모시켜 버리는 매스미디어의 행태도 나와 있고 말이다.

나 역시 삶을 토대로 본다면 하루키의 글은 수십 번도 긍정할 수 있다. 돈! 학벌! 학력! 이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다단계라는 저쪽의 세계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금도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나에게도 그런 폐쇄적 시스템의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컬트적 종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를 증오하고 혹은 대화를 거부하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사는 이런 행동과 태도. 절망과 증오를 가득 품고 폐쇄적 시스템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지는 않는가란 예감도 들고 말이다.

옴진리교의 폐쇄적 시스템과 같은 종류로 일본 가마쿠라 시대에 염불종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석존의 불법에서는 석존 멸후부터 천년을 정법, 그 후 천 년을 상법,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석존의 불법이 멸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이 오는 말법이라는 사상을 대집경에서 설하고 있다. 말법의 시작은 서력 1052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때부터 일본에서는 염불종이라고 하는 종교가 기승을 부려 1220년대는 그 혼란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염불종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불리며 종교의 핵심 사상은 이러하다. 서방극락세계에는 아미타여래가 존재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빨리 죽어 그 극락세계로 가는 것이 진리라는 교리. 호넨과 잇펜으로 이어지는 염불종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런 사상을 당시 일본 민중에게 급속도로 전파시켰다. 별다른 수행이 없고 공부가 없어도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르면 극락세계로 간다는데 그것을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게다가 당시 일본은 대지진과 역병으로 엄청난 사회적 혼란기였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 였으나 정치도 사회도 대격변의 연속이었다. 결국 염불을 외우며 죽는 사람들이 많이 출현했었고, 더욱이 잇펜이 사망할 때는 그를 따라간다며 강에 뛰어 자살한 자가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혼란스럽고 힘든 사회 시스템을 거부하고 염불이라고 하는 폐쇄적 시스템으로 뛰어든 사람들을 보며 그 시대는 몇 백년이 지났어도 연속된다는 사실에 뭐랄까? 소름이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페쇄적 시스템의 공통점은 타력본원 시스템이다. 사회의 시스템에서 탈피하고자 개인의 자아를 폐쇄적 시스템에 모두 맡기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이다. 무슨 종교든 반드시 어떤 절대성을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마성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절대자라는 타력에 의한 구제를 설하는 종교 그것이 염불이며 옴진리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돈이라는 절대 교주를 모시고 있는 나 역시 그런 광신에 쉽사리 빠져들 가능성을 항상 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97년에 쓰여진 이 맺음말에서 하루키는 일본의 체질에 대해 이렇게 논하고 있다.

과실을 외부에 명확히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일본적 조직의 체질이라 말하며 사린 사건의 피해는 그로 인해 더욱 어둠 속으로 가려졌다고 말이다.

3.11 일본대지진을 바라보며 그 때의 일본 체질이나 현재나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는 당혹감을 더 금치 못한다.

사실 책을 읽은 후 이 책에 대한 리뷰를 검토해 봤었다. ‘지루하다’는 것이 대부분 리뷰의 공통점이었다. 어찌보면 반복되는 피해 사실에 대해 지루하게 적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난 그렇지만 하루키는 피해 사실에 대해 반복적으로 적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피해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매스미디어에서 말하는 그 따위 인스턴트적 사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이 ‘이쪽’ 시스템 속에 살던 인간이 그런 문제를 겪었을 때,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끔 쓰고 싶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나도 솔직히 지루한 감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민 때문에 남의 문제는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왜? 자신은 그런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것이 모두 지구 전체의 고민인 양 착각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이해를 공감을 하지 못해도 이 사회 시스템이 추상화시키고 단순한 숫자로 취급하는 인간들에 대해 그 숫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고 그것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고 느끼는 것.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하루키에 대한 나의 관점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고 말이다.

하루키를 처음 접한 고등학교 때 ‘상실의 시대’라고 하는 희대의 야설이 나왔다는 소식에 냉큼 달려가서 집어 들었던 천박한 나를 떠올리며 말이다.

여담이지만 다단계로 인해 피폐된 삶을 살았던 그 친구를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집으로 돌아가라 설득해서 결국은 그 친구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아 갔었다. 욕할 줄 알았던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동생도 모두 그를 울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세한 중소업체에서 별로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방황하며 집을 못 들어갔던 그 때 자신에게 내가 했던 말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만 그 안타까워하던 마음만은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가 힘들었을 때 격려해 주던 영업부장님, 잡지사 편집국장님, 헌책방 팀장님…말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마음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결국 폐쇄적 시스템에 빠지지 않고 이 불안한 사회 시스템에서 버티는 힘은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나름대로 추측을 한다.

근데 이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왜 내 진심이 안 통할까? 굉장한 연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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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1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루쉰님, 이거는 리뷰가 아니라 논문이잖아요. ^^
그런데 대단하시네요, 친구분에게 다시 가셔서 집까지 데려가셨단 말이예요?
저는 그냥 모른척할 가능성이 더 큰데, 굉장히 부끄러워지네요.

결국 기다란 스펙트럼이 있고, 우리는 그 어딘가 위치하겠죠.
이다 아니다가 아닌, 누군가는 좀 더 좌측으로 누군가는 좀 더 우측으로.
사회가 폐쇄적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이 낮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저편으로 떨어질까 봐 무섭고, 나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싶고. 옴 진리교 같은 사이비 종교든 다단계이든, 외로운 사람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받아들여준다는게 반가운거겠죠. 거기에 성공까지 약속하니까... 모든게 소외감의 문제인거 같아요. ㅠ

좋은 페이퍼네요. 즐거운 주말되셔요.

루쉰P 2011-04-15 20: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죄송해요. 쓰다 보니 길어져서 사실 정신을 집중해서 쓰다 보니 이렇게 긴 글을...저도 쓰다가 토할 뻔 했어요. 그 친구는 항상 똑같은 역에 있었어요. 마치 저를 버리는 것 같아서 도저히 안 갈 수가 없더군요. 마고님도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저와 같은 상황이시라면 충분히 가시고도 남았을 겁니다. 소외감의 문제 그게 맞는 말이신 듯합니다. 항상 불 타오르는 소외감으로 대 분투를 하고 있는 저로서는 필이 팍 오네요. 푸훗.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마고님도 완전 재미난 주말되세요. ㅋㅋ

반딧불이 2011-04-1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쪽과 저쪽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씀이 공감이 갑니다. 사실 쉬이 넘을 수 없는 돈, 학벌, 권력등의 사회적 시스템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다고 유혹하는 것이 폐쇄적 시스템이 가진 히든카드니까요. 자신의 상황이 암담할수록 이런 것에 대한 믿음도 커지고 그로인해 친구분같은 피해자가 생기는거 아닌가...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 잘 읽었습니다.

루쉰P 2011-04-15 23:00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저렇게 길게 늘려 쓴 글을 확실하게 정리해주시는 댓글 감사합니다. 페쇄적 시스템이 가진 히든 카드! 저도 사실 그것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는 아닌지 놀랄 때가 많아요. 저 역시 반딧불이님의 댓글을 보며 리뷰를 좀 단순하고 명쾌하게 썼으면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ㅋㅋ 주말 완전 불 태우세요!

감은빛 2011-04-16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루쉰님! 대단한 글이예요.(읽느라 힘들었어요! 왜케 길어요! ^^)
어쩜 이렇게 긴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잘 쓰시는거예요!

힘들때 마음으로 위로해주는 분들이 계시죠!
그런 분들은 정말 평생 잊지 말아야 할텐데,
조금 살만해지고나면 금새 잊혀지고 마는 건 왜일까요?
얼마나 많은 소중한 마음들이 지금 잊혀져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오늘 밤엔 하나하나 떠올려보고 싶네요.

루쉰P 2011-04-16 08: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은빛님의 격려가 한 청년을 살립니다. ㅋㅋ 변압실의 어둠 속에 앉아서 쓰다 보니 글이 길어지고 길어져 뱀처럼 늘어지네요. 쓰면서 마음을 파헤치고 파헤치다보니 아주 길어지네요. 좀 짧게 쓰고 싶은데 잘 되지가 않네요.

맞아요. 마음을 잊지 않는 것! 저 역시 오늘도 대 분투! 정말 감사합니다.

대지의 마음 2011-04-1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그 아파트 주민들은 왜 진심을 몰라줄까요. 그건 아파트라는 특수성이 그렇게 만드는 거겠죠? 별 신경쓰지 말아야 맘이 편할 것 같은데요. ㅋㅋ. 그 마지막 말이 번트였습니다. 재밌게 잘, 뭉클하게 잘 읽었습니다. 세상의 음과 양을 인간의 언어로 다 번역하려하면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단지 그 긴장을 적당히 즐기거나 아니면 느슨하게 지켜보다보면 시간이 간다는 거죠. 저는 1,2권 사놓기만 하고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읽고 싶게 만드셨으니 성공하셨습니다

루쉰P 2011-04-16 13:20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의 관계는 상호협조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이권 투구의 장이 되더라구요. 사자님 말씀처럼 사실 말만 저러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제 멋대로 근무하며 있거든요. 신경을 쓰던 안쓰던 말이죠. 푸훗.

언어로 표현할려고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가 항상 궁금해요. 어떠한 고통 그리고 희망 그런 것들을 잘 표현해서 압축적으로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고 문장만 길어지네요. 단련이 필요할 듯 ㅋㅋ

언더그라운드가 잘 읽히지 않고 지루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2권은 그래도 잘 읽히거든요.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키의 맺음말이 가장 잘 읽힌다고 할까요 ^^ 너무 무리한 독서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푸훗.

양철나무꾼 2011-04-17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이 생각나는걸요.
문체는 '유령이 쓴 책'의 '데이비드 미첼'을 닮았구요.
참고로 전, 데이비드 미첼을 쫌 좋아하구 말이지요~^^

명저가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힘이 있다면, 명 리뷰는 눈의 핏대를 향상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ㅋ~.

루쉰P 2011-04-17 08:29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책이 있군요.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을 읽어봐야 겠네요. 게다가 문체가 닮았다는 극 칭찬을 주신 '데이비드 미첼'을 안 읽어 볼 수야 없죠. ㅋ

ㅋㅋㅋ 명 리뷰라고 보기 보다는 눈의 피로감의 극대화 시키는 리뷰를 써 놔서 푸훗. 원래 책과 달리 인터넷 글은 눈의 피로도도 극대화 시키고 너무 길면 읽는데 힘들더라구요. 아! 근데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길게 쓰다니...역시나 혼자서 몰입한 리뷰는 무서워요. 저도 쓰다가 죽을 뻔 했으니 말이죠. 명 리뷰의 길은 멀고도 험 하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1-04-1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떤 헌책방에는 아사하라 쇼코의 <최후의 해탈자>번역본이 있습니다.이 이야기를 아는 일본인 남자에게 했더니 한국엔 정말 다양한 번역이 있다고 놀랐던 적이 있죠.

루쉰P 2011-04-17 16:0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황천의 개>랑은 다른 책이겠죠.아사하라 쇼코의 어린 시절을 다뤘다고 해서 읽었는데 그 부분은 별로 언급이 안 되서 있더라구요.

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쪽으로 다양한 번역이 있는거겠죠.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4-17 22:25   좋아요 0 | URL
'최후의 해탈자'는 아사하라가 쓴 겁니다.사린가스 사건 나기 몇 년 전 쓴 거죠.
'최후의 해탈자'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공공도서관 종교서적 서재에 있었는데 지금도 있으려나 모르겠어요.가끔 가다 깜짝 놀랄 만한 책들이 있어요.

루쉰P 2011-04-18 00:13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흠..그의 폐쇄적 시스템을 확인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듯한데요. 저도 도서관가서 한번 잘 살펴봐야 겠어요. 놀라만한 책이 있는지요. 역시나 정보력 짱입니다요!

2011-04-19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9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죄와 벌의 제 댓글에 루신피님이 다신 댓글의 의미가 좀 헤아려지는 리뷰입니다. 위 글의 루신피님의 경험, 고민에 비하면 제가 읽고 생각하는 것은 좀 할랑하게 느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루쉰P 2011-05-22 09:08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 모두 다 자기의 고민은 값지고 상대적으로 평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섬님의 경험과 고민은 제가 느끼지 못하는 다른 부분을 또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너무 열심히 읽어주셔서 제가 너무 감사한데요. 전 책을 좀 느리게 읽는 편이라 리뷰도 느리고 쓰면 길기도 해요. 섬님의 리뷰가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책을 읽으면 저도 재미로 읽는 책이 있고 뭔가 울림이 있는 책이 있고 하는데 울림이 있는 책만 리뷰로 쓰다보니 한 없이 길어지고 느려져요. ㅋ

꼬마요정 2011-06-0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분.. 집으로 돌아갔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다단계는 무서워요. 더불어 사이비 종교도 무섭구요. 무엇이 사이비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사람의 의지를 꺾고 두려움을 주고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건 무서운 범죄행위에요..

루쉰p님의 글은 아주 긴 데도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재밌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루쉰P 2011-06-07 01:08   좋아요 0 | URL
글이 너무 길어 읽는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자기 멋대로 리뷰를 많이 씁니다. 저도 사실 리뷰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얼마 되지 않아요.^^

긴 글을 읽으시는 꼬마요정님도 대단하신 듯 ㅋㅋ

인간을 좀 먹는 것들은 항상 널려 있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항상 눈이 빨갛죠! 긴장하며 살 거든요.

꼬마요정 2011-06-07 01:32   좋아요 0 | URL
앗.. 근데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밤을 좋아하시나봐요~~^^

루쉰P 2011-06-07 08:29   좋아요 0 | URL
헤헤 하는 일 때문에 새벽에 좀 늦게 잡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전기반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거든요. 초등학교 때도 반장을 못 했는데 여기서 반장을 하고 있다는 ㅋㅋ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원래 잠을 자지 않는 당직 근무인데 갑자기 꼬꾸라 지면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좀 불 성실하죠. 전 3학년 2반 이에요. 풉!!
32살의 노총각이죠 ㅋ
꼬마요정님은 세무 일을 하신다고 하니 출근하셔야 할텐데 이렇게 늦게 주무셔서 어떻해요? 전 이제 퇴근할 시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새벽에 노무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꿈꾸던 일인데 시간적 여유가 많은 이 곳에서 그 공부 도전을 하고 있죠.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 열망이 있거든요. ㅋ 근데 경제학원론을 공부하고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는 무서운 사태에 직면해 있어요. 푸하하하

이번 주도 이제 시작이네요. 꼬마요정님 덕분에 즐겁게 시작할려고 합니다. 우리 즐겁게 이번 주 보내요!! 화이팅!! 푸하! 꼬마요정님이란 친구 한 명 얻어서 대 만족 스러운 이번 주입니다. ㅋ

꼬마요정 2011-06-07 22:57   좋아요 0 | URL
와~ 멋진 생각을 갖고 계시는군요. 정말 괜찮고 훌륭한 노무사 되실 거에요~~^^ 전.. 지금 놀고 있어요..ㅜㅜ 재충전 하고 내년에 개업하려구요.. 지금이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여유를 부릴 시간인데 그 여유를 맘껏 활용 못 하고 있어서 큰일이에요..

저 역시 루쉰P님이란 친구를 얻어서 무척 기쁘답니다.^^

루쉰P 2011-06-08 00:07   좋아요 0 | URL
하하 노는 것도 일이죠. 전 1년간 백수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 정말 돈 없이 쉬게 되면 인생의 막장을 경험합니다. ^^ 여하튼 쉴 때 정말 뭔가를 해 내실 수 있는 기회가 되셨으면 합니다. 쉬는 것도 기회거든요. 내년에 개업을 하신다니 그 때까지 정말 재충전 만땅 하실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ㅋ

근데 확실히 쉬신다고 하니 완전 부럽네요. ^^
 

리뷰를 읽다 보면 저마다 사람만의 독특한 숨결을 내는 것을 느낀다. 그 숨결을 느끼며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명문과 같이 잘 쓰여진 리뷰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난 왜 저렇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할까? 어쩜 저렇게 부드럽고 살살 넘어가게 잘 쓸까? 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솟구친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주접을 떠는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을 해 본다. 다들 자기만의 고통, 눈물이 있고 힘듦이 있는데 나만 리뷰에 다가 그런 것을 주저리 주저리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마치 혼자서 모든 고통을 겪는 인간처럼 얼굴에 철판을 깔고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리뷰를 그래도 계속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얼굴이 정말 두꺼운 편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리뷰를 쓰고 있는지도 자문해 보기도 한다. 사실 칭찬 받으면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하는 습성이 있는지라. 리뷰를 읽어주신 분들의 댓글에 힘을 얻어 또 다시 자신의 상처를 파내 그곳을 즐겨서 보며 이 상처는 어디까지 파였는지를 굉장히 즐겁게 쓰는 성향이 있는 듯하다. 정말 변태일까?? 

재수 시절, 제기동에 있는 재수 학원을 다녔다. 전철을 타고 내가 살고 있는 오지를 벗어나 대학이라는 낭만이 가득찬 캠퍼스를 가고 싶다는 그 일념 하나로 감옥과 같은 재수 학원을 버티며 다녔다. 이 학원은 스파르타 식이어서 외출증이 없으면 밤 10시 이전에는 절대 나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정말 감옥 같았다. 

공고를 나와 인문계 고등학교의 공부를 모두 모르는 상태에서 선생들이 말하는 수업들은 모두 외계인들이 말하는 것 같았고, 돈은 없어서 학원비는 밀리기 일쑤라 눈치를 보며 학원을 다니던 것도, 같은 반에 있던 좋아하던 누나를 보며 가난한 집에서 기를 쓰고 학원을 보내 줬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다는 감정을 지니고 있던 스스로를 증오도 했었다. 

자의반, 타의반의 지옥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이 학원 건너편에 있는 만화 학원이었다. 이 만화 학원에는 공고 동창생이자 나를 후루야 미노루라는 거대한 사상가와 만나게 해 준 기계과를 졸업한 만화지망생이 다니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유일의 즐거움 이었던 것이다.

나와 똑같은 처지에서 공고를 와서 그곳 기계과에서 선반을 자르는 작업 등 기름 범벅이 되며 일 해도 이 친구의 꿈은 항상 딱 하나였다. 누가 봐도 대 감동하는 만화를 그리는 것! 

이혼한 어머니와 같이 살며 남동생을 하나 둔 이 친구는 자신이 만화를 그리기 위해 필요한 돈은 스스로 열정의 투쟁으로 벌었다. 야동을 컴퓨터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일본 야동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물주들과 같이 가서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를 사용해 최고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을 선정해 수수료도 받고,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을 다니며 보고 싶은 책도 구입하는 등 그야말로 오로지 자신의 꿈 하나만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그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며 공고를 졸업하고는 만화 학원을 다니며 자신의 전문성을 키웠던 것이다. 

어느 화창했던 날, 그를 만나기 위해 거짓말로 외출증을 받아 이층의 만화 학원으로 올라갔다. 조용한 학원에서 수업을 받으며 그림 그리는 책상에서 펜으로 선을 그리는 열중하는 그의 모습과 그런 그를 비추는 햇살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 봤다. 

아! 저렇게 열정을 가지며 달리는 저 모습 정말 얼마나 멋진가! 저것이 인간이 사는 모습이지 않은가! 라며 말이다. 

그는 나보다 더 가난해 하루 차비와 천원을 들고와 학원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저녁에는 다시 일을 하며 학원비를 벌었었다. 

근데 그 햇살 비추는 속에서 보여진 그 친구의 표정은 이루 말할데 없이 행복한, 돈이 없는 가난한 만화 지망생의 표정이 아닌 정말 천국이 있다면 그곳이라도 들어간 표정이었다. 

그 표정 속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대학을 가고자 하는 것일까? 무엇이 내가 공부를 하고자 만드는 것일까? 끝 없는 자각을 하게 만들었다. 꿈도 없이 대학만 가고자 하는 그런 짧은 인생을 탓하며 말이다. 

며칠 간 돌아다닌 다른 분들의 서재 속 리뷰에서 난 그 때 그 친구의 표정을 글로 발견을 많이 했다. 아무리 가볍게 쓴 글도 혹은 자신의 일상이라도 즐겁게 아주 즐겁게 쓰여져 있었고,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그래! 리뷰도 열정이다. 그리고 즐겁게 읽는 사람에 희망의 철학을 줄 수 있는 그런 리뷰! 그것을 써 보자라는 새벽의 변압실에서 컴퓨터에 앉아 결심을 한다. 

밑에 책들은 내가 리뷰를 써 볼 책들이다. 후훗 리뷰의 예고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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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07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어의 정의를 잘못 알고 계신게 아닐까요?
자신의 상처가 어디까지 파였는지 반추해 볼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변태'라 부르지 않고 '도인'이라고 부르는 걸요~^^
님의 리뷰는 님의 상처를 다독이는 빨간약이 아닐까요?
좀 진부하지만 상처도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루쉰P 2011-04-07 13:0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도인'이라 너무 감솨해요. 이거 너무 부끄러운데요. 빨간약이라고 한다면 완전 빨갛게 칠해서 불 태워드리겠어요. 아! 뭔가 양철댁님 덕분에 사명감이 팍팍 솟네요.

반딧불이 2011-04-0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에 대한 자책과 질투로 그보다 더 좋은 리뷰를 쓰시기 바래요.

루쉰P 2011-04-09 02:16   좋아요 0 | URL
흐흐흐 반딧불이님도 제 질투 대상 베스트 5에 들어갑니다. '궁극의 리뷰'를 쓰기 위해 오늘도 변압실의 불은 꺼지지 않고 밝아 있습니다. 아! 저 밝은 달이여!

cyrus 2011-04-0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독후감, 즉 리뷰라는 걸 썼을 때 약간은 두려움을 가졌어요. 사실 알라딘 블로그한지 1년도 안 되었고, 인터넷에서 나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글을 올린다는게 제 개인적으로 호의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구요,, 하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들의 수에 비하면 과연 내가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또는 무엇을 얻었는지 스스로 반성하면서 블로그는 나만의 사유를 위한 독서노트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블로그질을 하게 되었어요,, 저도 블로그를 통해서 몇 몇 분들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었고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던거 같아요,, ^^

루쉰P 2011-04-09 02:18   좋아요 0 | URL
아 그건 맞는 말씀이에요. 전 사실 익명성 제가 숨겨지는 것을 근거로 이렇게 못난 자신의 인생을 말하는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서재를 만들어서 하고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 나만의 사유를 위한 독서노트가 참 맞는 말인거 같아요. 그래도 댓글이 없으면 너무 서운한 양면의 마음도 있죠. ㅋㅋ 미처 알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완전 공감이에요. 정말 어디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배워요. 앞으로 자주 들려서 배울께요. ^^

마녀고양이 2011-04-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님, 위에 고르신 두권의 책은 전혀 희망적인 책이 아닌데요. ^^
저두 사놓았는데, 우리 리뷰를 쓰고 같이 비교하고 그래야겠네요.
아마 루쉰님이 먼저 쓰실 듯 해요.

글구.... 전 이대로의 루쉰님 글 좋은데요.
염려, 너무 감사드립니다.

루쉰P 2011-04-15 02:40   좋아요 0 | URL
ㅋㅋ 희망적이지 않은 책도 희망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둠의 세계의 힘을 보여드릴께요. 지금 리뷰를 쓰기 위해 엄청나게 머리를 싸메고 있습니다. 크흑! 저도 마고님의 리뷰를 기다리며 있을께요. 지금 그대로의 글이 좋으시다니 완전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이 지구상에서 댓글을 서로 남겨주는 서재 동지인데 어찌 매정하게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암튼 절대 힘 내삼!

2011-08-17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8 0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이지 않는 인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0
랠프 엘리슨 지음, 조영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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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화창한 봄 날, 병이 들어 잠시 병원에 입원하신 60대 경비 반장님을 대신해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경비실 3초소에 근무를 하게 됐다. 
경비실 업무는 지극히 단순하다. 10평 남짓한 경비실에 앉아(화장실도 포함돼 있음)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내가 보이든 보이지 않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집에 없는 주민들을 대신해 택배 받고 찾으러 오면 '택배 여기 있습니다'란 멘트와 함께 친절하게 건네 드린다. 물론 신뢰감을 듬뿍 주는 살인 미소도 더불어 함께. 이것이 경비실 2대 주요 업무다. 그 다음은 CCTV의 연속 시청이다.(주차장, 엘레베이터 6대 총 13대, 참고로 경비실에는 tv나 컴퓨터와 같은 사치품은 설치돼 있지 않다. 고독을 같이 즐겨주는 라디오 한 대 뿐)
그렇게 24시간을 앉아서 먹고 졸고 인사하고 CCTV 본다. 
3일 정도 경비실에서 근무를 하던 중 관리사무소로 불려 갔다.  
"아파트 주민들한테 민원이 들어 왔는데 인사를 무표정하게 한다더라, 좀 웃으면서 인사해라." 
아파트에서는 일본 대지진보다도 무서운 것이 주민들의 민원이다. 
"아마추어처럼 부끄러움 타면서 인사하지 말고, 프로답게 인사해. 프로는  부끄러움 따위는 타지 않아"
아! 이 얼마나 격렬한 감동을 주는 말인가. '평생 인생이 아마추어였다. 다시 태어날 곳을 결의한 이 곳에서 다시 그 따위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 나는 프로다.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겠어!'라는 격한 각오를 품었다.
하는 일이야 다시 똑같은 일의 무한 반복 재생이지만 그냥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토익책도 펴놓고 사람들이 지나가면 단어도 혼자 외우고 하며 격하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친절의 끝을 한 번 보여주겠다는 결심에 인사할 때는 입 꼬리에 경련이 일 정도로 미소를 짓고, 말할 때는 콧소리에 비음까지 넣어주는 센스 작렬! 
"안뇽하세용~" "택배 여깄습니당~" 
그렇게 24시간을 웃고 먹고 졸고 택배주고 단어 외우고 인사하고 CCTV 시청했다. 
경비 반장님 복귀 이틀 전 난 관리 사무실로 다시 불려 갔다. 
"저기 말이야, 아파트 주민들한테 민원이 또 들어왔어." 
직감상 이것은 분명 달라진 내 모습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일 것이야. 칭찬 아니면 약하게 수고한다는 격려 정도 이겠지, 그런 얘기를 하시면 난 수줍게 웃으며 '그 정도야 프로의 기본이죠'라고 말해야지 라며 상상을 하던 중.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 주민들이 너가 좀 정신이 모자라거나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그러더라고, 인사도 못 알아듣게 하고, 섬뜩하게 미소짓기도 하고, 게다가 눈이 충혈돼서 밤에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는 건 본 사람들도 있어." 
거기에 대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참을 설명을 했으나 그 후 관리사무소의 지시로 경비실에서 나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위치한 변압실에서 혼자 앉아서 근무를 하게 됐다. 
랠프 앨리슨은 보이지 않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게 다가올 때 내 주변의 것이나 혹은 자신들의 상상속에서 꾸며진 것만을 본다. 그야말로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인간 1권 11페이지  
                                              
어떤가 나도 이 정도면 랠프 앨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이지 않은가? 아파트에서 푸하하하! 
말콤 x 자서전, 마틴 루터 킹 자서전, 리차드 라이트 등 흑인들의 고통을 토로한 책들을 읽다가 랠프 앨리슨을 만나게 됐다.
이 책의 스토리는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주인공 흑인은 백인들의 사회에서 인정 받고 싶어 그들이 추천한 대학에 들어가지만 작은 실수로 인해 퇴학을 당하고, 그렇게 쫒겨 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 뉴욕을 가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실패와 좌절만을 맛본다. 할렘가의 강제 퇴거 현장에서 우연히 자신의 웅변 실력을 통해 인정을 받아 동지회라는 조직에도 들어가지만 그곳에서도 그는 배신을 당하고 깜깜한 굴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의 모든 상황을 통해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인간은 단순히 흑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작품 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위선으로 가득하고 이념과 가치를 강요하는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간 모두가 보이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언제나 좋은 문학은 그 속에 등장한 인물들을 통해 내 인생에서 등장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흑인 대학의 총장으로 주인공을 계속 방황하게 만든 블레소드의 경우는 중학교 시절 나의 미래와는 상관 없이 아무 고등학교나 보내고 그래서 자신의 고등학교 진학율을 높이려 했던 중 3 담임 선생이 겹쳐 보인다. 
 그들의 공통점은 '저 흑인 소년을 계속 뛰게 하시오'라고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꿈 속에 나와 계시를 해 주었듯이 주인공이나 나를 계속 뛰게 만든 것이다. 어디로 갈지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내 존재도 누구인지 모른 채.. 
자꾸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는 주인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고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 그와 같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나는 나의 병을 지니고 있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바깥세상으로 꺼내 놓으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에 관해 적다 보니 적어도 반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인간 2권 364페이지

 
   
공고를 나온 것, 변변 찮은 직장을 구하고 그런 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 학력과 학벌로 판정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 등. 나 역시 이 책의 주인공처럼 내 병의 원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적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적어도 반은 내 안에 있음을 느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직장이 남들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자괴감과 사람들한테 좋은 직장 다녀서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 등. 내가 괴로워하고 울부짖는 것들이 모두 내가 그런 이유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학벌 낮고 비천한 직업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인간 취급하며 살아 왔던 것은 아닐까? 
그런 모든 것들은 내가 더 필사적으로 배우고 공부하고 노력하지 못한 것을 전부 다 사회나 환경 탓이나 하며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고 저주하고, 선생이 잘 가르치지 못 했다고 성질내고, 모두 다 내가 이따위 처지에 있게끔 만들었다고 변명에 변명을 늘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난 내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인간인 셈이다. 나부터가 내 자신을 보이지 않는 인간 취급하고 있었다.  
   
 
 삶이란 살기 위한 것이지 통제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다움이란 패배에 직면해서도 계속 투쟁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인간 2권 366페이지
 
   
욕을 먹으며 어떤한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던 그것이 뭐가 어떤가! 패배에 직면해도 계속 투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 격파해 내고야 말것이다! 밝은 변압실에서 이 책의 마지막을 읽으며 얼마나 감동 했는가. 어찌보면 물론 나 같은 보이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낸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에 순응해 패배한 채로 살고 있는 것도 이 시스템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책상 위에 놓인 3월에 본 토익 시험 결과가 220점이란 사실에 토익 시험을 봐야 하는 이 사회에 저주를 또 퍼붓고 싶지만...그것은 좌절감만 품은 채 죽게 만드는 이 시스템의 전략이라고 파악하고 크게 웃으며 당당히 시험 결과를 찢어버렸다. 푸훗 공부를 안 하고 시험 본 것도 있고 말이다.   
내가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주저리 주저리 써 놓은 것은
내가 낮은 주파수로 여러분을 대변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라는 랠프 앨리슨의 격려에 크게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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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0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에 저는 몽땅 인용구인줄 알았네요, 루쉰님.
안녕하세요, 서재에 첨 들렀으니 다시 인사드려요.

그리고 리뷰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리뷰였습니다.
인용구를 읽다가, 제가 방금 수업에서 들은 빅터 프랭클의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비슷한 맥락이죠?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제목 자체가 함축적이네요. 읽고 싶어지지만, 현 상황이.. ㅠㅠ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루쉰님의 글이,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탈이거든요. 호호홋.

루쉰P 2011-04-04 16:03   좋아요 0 | URL
전문대 컴퓨터과를 1년 다니고 제적당한 나름 컴퓨터 학도이지만 컴퓨터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 해 글을 써서 올렸더니 왠걸 다 인용구처럼 나와 버렸어요. ^^ 빅터 프랭클 저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프리모 레비, 엘리 위젤, 안나와 더불어 홀로코스트 4대 작가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죠. 맞아요. 비슷한 맥락이에요. ㅋㅋㅋ 리뷰를 쓰는 것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는 목적은 전혀 없어요. 전 자신만을 위해 리뷰를 씁니다.(이것도 어둠의 세계 일부분) 어찌 보면 한심한 삶 일지라도 이렇게 자신을 드러 내놓지 않고 그냥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제 내면에도 많이 좋은 것 같아요. 음.. 왠지 정신과 치료 받는 사람 같네요. 어쩔 때는 저한테 쓰고 있는 듯 느껴지고 저한테 외치고 저한테 울분을 토하는 변태적 리뷰라고 할 수도 있죠.(이것도 어둠의 세계 일부분) 과분한 칭찬 너무 감사하고 전 알라딘 서재를 조금 둘러보고 다니지만 정말 정말 마녀고양이님을 비롯해 진솔하고 좋은 글을 많이 쓰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느껴요 종종 오셔서 어둠의 세계를 보시는 것도 삶에 도움이 되실 것 같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댓글을 답니다.(이것도 어둠의 일부분 ㅋㅋㅋ)

pjy 2011-04-0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은 주파수...이거 자꾸 쌓이면 어쨌든 유용할걸요~~~
저는 토익셤같은건 신경쓰지않고 살아있는? 영어하면서 야매로 잘만 살고 있습니다ㅋ

루쉰P 2011-04-04 17:16   좋아요 0 | URL
ㅎㅎㅎ 토익 셤을 보는 것은 나름 목표한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하나의 통과선이라 할 수 있죠. 크흑! 아! 멋지다! 아~죄송해요. 자뻑에 취해서 그만. 낮은 주파수를 여러 가지로 어디다 써 먹을까 궁리하며 유용한 곳을 찾아서 꼭 쓸께요. 살아있는 영어를 하며 야매로 사신다고 하니 왠지 60승 무패의 행진으로 일본 전역을 휩쓴 미야모토 무사시가 생각나네요. 이 사람도 그 때까지 없었던 살아있는 야매 검술로 세상을 제패 했거든요. ㅋㅋㅋ 찾아 와주셔서 반가워요. 야매 영어 좀 시간 날 때 갈켜주세요.

감은빛 2011-04-0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녀고양이님처럼 몽땅 인용구인줄 알았어요.
역시 루쉰님 특유의 묵직한 글이네요.
주민들의 민원이라는 거 참 우스워요.
그리고 그딴 일로 불러놓고 설교하는 사람도 참 우습고요.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뭐라고 할 사람들인 걸요.

우습기만 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있는 일들도 있죠.
루쉰님께 가치있는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그걸로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왠지 루쉰님이 부럽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많을 것 같아서요. ^^

루쉰P 2011-04-05 17:53   좋아요 0 | URL
뭘 잘못했는지 인용구처럼 나와 버려서...주민들은 민원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살아도 열불 터질거에요. 국가에서 만든 임대 아파트인데 정작 책임을 져야하는 LH공사 녀석들은 하청업체에 밀어 버리고 또 하청 업체는 우리 쪽으로 밀고 근데 뭘 해 줄 수 없는 우리는 죄송하다고만 하고 일은 그대로 이고 카프카의 소설 '성'과 같은 상황이 반복, 반복. 좋은 분도 많이 계셔요. 먹을 것도 가져다 주시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좀 우울하다 보니 그리고 악 바쳐서 있다 보니 나쁜 일을 쓴 것 같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신세 한탄을요. 후훗. 제가 부러우시다니 완전 부끄럽네요. 책 읽을 시간은 많아도 사색을 못 해서 ㅋㅋ

양철나무꾼 2011-04-07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아도 좋고 높아도 좋으니 갑자기 주파수 변조만 하지 마세요.
아니, 주파수 바꾸시면 꼭 귀뜸해 주세요~^^

루쉰P 2011-04-07 13:06   좋아요 0 | URL
주파수 변조 될 일은 전혀 없어용. 낮은 주파수야 저에게 가장 어울리는걸요. 푸하하! 뭐든 바꿔지게 되면 반드시 귀뜸해 드리겠습니다. 부탁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 중원의 도리!

노이에자이트 2011-04-0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인문학(이 용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지만)에서 리차드 라이트보다는 문학성을 더 인정받는 랄프 엘리슨.이 고전을 독파하다니 대단합니다.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걸작이죠.라이트는 흑인과 백인을 다소 이분법적인 선악론으로 들이댔다는 평인데 엘리슨은 이를 극복했다고 하죠.사실 우리가 타자화한 대상은 모두 보이지 않는 인간입니다.

루쉰P 2011-04-09 02:21   좋아요 0 | URL
아! 저 대단한 건가요. 감사합니다. 완전 뿌듯하네요. 라이트의 '아메리카 굶주림'에서는 다른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에요. 엘리슨의 책에서는 백인도 흑인도 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거든요. 노이에자이트미의 타자화한 대상은 모두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말씀이 참 맞네요. 흠...어떻게 저렇게 멋있게 문장을 쓰시는지 항상 궁금합니다. -.- 전 계속 노이에자이트님이 감탄할만한 책만 찾아서 독서할거에용. 칭찬에 약한 남자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11-04-09 16:0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 누가 얼마나 랄프 엘리슨을 알고 또 읽겠습니까.미국문학사 공부하는 사람이나 알겠지요.물론 소수민족문학에선 중요한 소설이지만.

타자화니 하는 용어는 일상대화에서 쓰면 재수없다는 말을 듣게 되지요.이런 데서나 써야죠.좀 쉬운 용어를 찾아봤는데 잘 안 되네요.

앞으로 계속 감탄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루카스 2014-10-0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블로그글로 성석제의 `투명인간` 리뷰를 읽다가 그분의 `보이지 않는 인간` 소개를 보고 여기 알라딘을 들어와 루쉰님이 쓰신 이 글을 보았어요.
아침마다 뒷산 산책을 하는데, 오늘은 루쉰님 리뷰를 보는 것으로 대신해야겠네요.^^
대체로 마이페이지를 너무 길거나어려워서 읽지 않는데 루쉰님 글은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힘이 느껴졌어요.
더불어 루쉰님 쓰신 다른 리뷰들까지 좀더 보다가 여러 단서를 찾는 재미까지...^^(아파트 경비분이 이렇게 글도 잘 쓰고 게다가 통통 튀기까지 하다니...??에서 시작된 의문도 작용했고요.)
하튼 오늘 제 마음이 꿈틀거리네요.~게다 다른 리뷰어분들의 따뜻한 독려까지 기분 좋아졌어요.

루쉰P 2014-10-07 13:35   좋아요 0 | URL
ㅋㅋ 아파트 경비는 무려 4년 전에 그만 두었죠. ㅎ 아마 긴 리뷰를 읽다 보시면 저의 직장 이직까지 아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푸하

뒷산 산책이 참 소중한데 제 쓰잘데 없는 글 읽으시다가 놓치시다니 ㅋ 이거 너무 죄송하네요.

빨아 들이는 글이라는 표현은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너무 길게 써서 제가 기 빨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그게 읽으시는 분들에게 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여기 계신 분들이 참 좋아요. ㅋ 그게 글을 올리는 이유죠 ㅋ
저에 대해 궁금해 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