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 사이코 100 : 2
One (원)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권에서 모브는 쿠로즈 중학교와의 싸움에 의도하지 않게 휩쓸리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초능력을 가진 하나자와 테루키를 만난다.

테루키는 능력을 숨기고 사는 모브와는 틀리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학교에서 여자들에게 인기짱, 남자들에게는 싸움짱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는 아이다.

 

테루키의 초능력에 의해 모든 사람들은 쓰러지지만, 모브만은 쓰러지지 않는다. 이에 놀라 테루키는 모브를 쓰러트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만 그럴수록 모브는 자신은 초능력을 사람에게 쓰지 않을거라며 능력을 쓰지 않는다.

 

자신을 쓰러트리기 위해 모든 힘을 퍼붓는 테루키에게 모브는 이렇게 말한다.

 

'알았어. 왜 이렇게 내게 적의를 품는지. 이건 동족혐오라는 거야. 너는 나와 약간 비슷해.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자기에게 전혀 자신이 없다는 점이.'

 

고시원에서 그에 대해 고민을 하며 며칠을 보냈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조차 의심이 들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지 않을까? 난 왜이리 의심이 많을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기에, 근처 정신병원에 전화를 해서 문의 해 보았다. '그' 나 '나' 둘 중에 누군가가 문제가 있을텐데 한번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싶었다.

 

전화를 걸고 횡설수설 하며 상담 받고 싶은 이유를 설명을 했다. 간호사는 얘기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간결하게 상담 비용은 1회 5만원이며 본인이 와야 정확한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5만원. 그 정도의 돈이 나에겐 없었다. 한달 밥값, 학원비 그런 걸 빼면 전혀 무엇에도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알라딘의 몇 분들에게 질문을 했다. 다행히 몇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진정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동안 그의 전화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 때는 학원을 잠깐 쉬는 기간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길을 나설 때도 그와 마주칠까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두리번 거리며 걸어 다녔다. 마치 죄수처럼 말이다.

 

어느 날, 고시원 벤치에 앉아 담배만 빡빡 피우던 내가 안 쓰러웠는지 고시원 원장님이 조용히 말을 걸어 왔다.

 

고시원 원장님은 약 60대 초반이시다. 각진 네모난 안경에, 매일 등산복 차림으로 줄 담배를 피신다. 아침 10시 정도 오셔서 하루 종일 고시원 2개 건물 청소와 사람들이 빠져나간 방의 도배, 청소 등을 하며 바쁘게 보내셨다. 그리고 나에게 항상 선생님이란 호칭을 써 주셨다.

 

벤치에 앉아 원장님과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원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있다 보면 선생님께서 말한 그런 분들이 몇 분씩 들어올 때가 있어요. 맨 처음 고시원 할 때는 그런 분들 때문에 속 좀 썩었죠. 방 구하러 올 때는 정상인 것 같은 데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니 저도 많이 놀랐어요."

 

원장님은 담배에 불을 붙이시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도 뭐 그런 쪽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선생님 얘기를 듣다 보니 그 친구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네요. 예전에 여기 와서 생활하던 사람 중에 같이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저 옆의 건물로 사람이 기어 올라 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그러면서 원장님은 옆의 건물을 가르켰다. 우리 고시원 앞에 있는 새빨간 또 다른 고시원 건물의 벽면이었다.

 

"그 사람은 저에게 여자가 벽을 기어올라가고 있다고 보이냐고 물었죠."

 

나는 원장님께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그럴 때는 보인다고 얘기를 해줬죠. 아 저 여자분 고생이 많다고 말이죠."

 

뭘까? 왠지 모브의 스승 레이겐이 생각이 났다. 원장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매우 비 논리적이지만, 자신은 그런 망상이 타인에게 들키면 아무도 안 믿어줄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교묘하게 논리적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 세계에 대한 확신이 무서울 정도 깊어요."

 

담배를 툴툴 터시며 원장님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 세계를 부정해 봤자, 그런 사람들은 되려 저를 의심하죠. 그리고 더욱 움추려 들어요. 자신의 세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말이죠. 그런데 거기에 더욱더 강하게 정신차리고 하면 자신을 병자 취급한다며 공격적으로 나오죠."

 

나는 물어 보았다.

 

"그럼 그 분은 어떻게 하셨어요?"

 

원장님은 웃으시며 말하셨다.

 

"그 사람에게 택배를 핑계로 가족들 연락처를 물어봤어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죠. 이런 상황이라고 말이죠. 이미 집에 있을 때부터 그런 징조가 있다고 하더군요. 시험 때만 되면 그런 강박증 같은 게 더욱 발생되었데요. 결국은 가족들이 와서 데리고 갔죠."

 

그리고 나서 원장님은 그런 유형의 비슷한 사람들을 이야기 해  주셨다. 뭐이리도 많은지, 마치 정신병원 치료소 같은 이야기 였다. 원장님은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내 눈을 보며 진지하게 이야기 하셨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 목적이 있어요. 선생님도 돈이 남아서 여기 오셔서 공부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자신조차 구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누구를 구할 수 있겠어요. 잘 판단해야 해요. 의욕만 있다고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마치 정신병원 원장님이 갓 입학한 간호사에게 교육하는 듯한 말투셨다. 원장님과 대화를 한 후, 착잡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누워서 여러 생각을 했다.

 

난 그의 눈빛에서 무엇이 두려웠을까. 나는 그에 대한 '동족혐오'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의 반응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눈빛 속에서 나를 본 것 같았다. 나 역시 여러 스트레스 속에서 그런 쪽으로 분출이 안 된 것일뿐 그런 위험성은 항상 간직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니 당혹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그는 나에게 말하곤 했다. 형은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고, 힘들고 그럴 것인데 그런 게 안 느껴진다고 했다.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하루에도 수천번 혼자서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와 나는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난 더 두려웠던 것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보는 게 너무 두려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비겁했다. 그를 감당하기 싫었다. 학원도 그와 다른 학원을 신청을 했다. 그를 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원장님이 가르쳐 주신데로 '티를 내지 말고 조용히 멀어져라'는 말데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 내게, 그가 문자로 걱정된다고 몇 번이나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고 무심하게 스팸으로 돌렸다.

 

넌 시험에 합격해야지, 저런 것에 신경쓰면 안 돼. 저 친구가 너의 시험을 망칠 수도 있어.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나를 합리화 하는 목소리를 계속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이 너무나 불편했다. 매정하고, 타인에 대해 이렇게까지 차가운 나 자신에 대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에 쓴 글도 내가 따뜻하고 좋았던 부분만 이야기 했지, 이처럼 매정하고 차가운 자신에 대해서는 써 본적이 없다.

 

솔직히 의심이 된다. 내가 이러고 시험을 합격을 해서 과연 진짜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눈 앞의 힘든 자를 구하지 못하고 다른 누구를 구할 수 있는 것일까?

 

매정하고 야박한 자신을 탓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갈 수 없는 자신의 이중성. 가장 최악의 인간인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자기만을 위한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타인만을 위한다는 것은 위선적이다. 이기적이지도 위선적이지도 않은 자신. 그런 자신을 찾고 싶은데 혐오감이 깊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야 말로 진정한 고시원 사이코이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정신병자는 그가 아니고 나라는 사실. 그것만이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06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브 사이코 100 : 1
One (원)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자칭 영능력자 레이겐 아라타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레이겐은 이 책의 주인공 '카게야마 시게오' 통칭 '모브'의 스승이다. 레이겐은 악령 퇴치 사업을 하고 있으나 본인은 전혀 초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 사기로 벌어 먹던 그에게 '모브'가 찾아와 상담을 하다가 발견한 진짜 모브의 초능력! 레이겐은 시급 2,800원에 그를 이용하기 위해 설득한다. 결국 레이겐을 스승으로 모시고 생활하는 진짜 초능력자 중 2 모브의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다.

 

이 만화의 매력은 반전이라고 할까? 조금 옮기자면 이런 식이다.

 

레이겐: 요즘 어깨가 무겁다고? 저주 받은 겁니다. 어깨 결림이나 요통의 90%는 저주 때문이죠.

 

상담자: 뭐요...저주?! 저주받을 만한 일이 없는데?!

 

레이겐: 원망 한 번 안 받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잘~생각해 보세요. 요 반년 안에 누군가와 싸운 적 있죠?

 

상담자: 없는데요...

 

레이겐: 본인에게는 가벼운 입씨름 이었을지 몰라도. 앙심을 품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담자: 가벼운 입씨름도 한 적 없는데요.

 

레이겐: 입씨름이라기보다 견해차 정도의 사소한....

 

상담자: 없는데요.

 

레이겐: ....그거군요. 직장 거래처나 상사, 부하에게 저주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입사원 교육이나 고객을 상대할 때 트러블이 있을 수도 있죠. 그 상대방이 앙심을 품고 저주를 한 겁니다. 혹시 직업이 뭔지?

 

상담자: 없는데요.

 

레이겐은 계속 '저주'라는 쪽으로 껴 맞추기 위해 여러 질문을 하지만 결국 모든 질문이 막힌다. 레이겐은 인터넷만 하는 이 남성이 야동으로 인한 저주를 받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거부하는 상담자에게 저주를 치료한다며 어깨 마사지를 해준다. 그때까지 거부하던 상담자는 레이겐의 마사지 솜씨에  황홀해 하며 저주가 풀렸다며 사무실을 떠난다.

 

뭐 대략 이런 내용들이 재미나게 이어진다.

 

오랜만에 미친듯이 낄낄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고시원 생활 8개월 째,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 공부 진도, 같은 책을 읽고 또 읽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 백지 같은 나의 뇌.

 

나 역시 레이겐 식의 대화를 자신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을 한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고프다. 배가 불러야 뇌가 돈다며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간다. 배가 부르면 졸리니까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변을 산책하기로 한다. 산책을 한 후 고시원에 올라오면 피곤함이 몰려온다. 피곤함은 공부의 적이기 때문에 잠시 잠을 청한다. 일어나면 벌써 점심. 급한 마음에 담배를 피고, 노트북 앞에 앉아 인강을 튼다. 조금 듣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하루의 소식이 궁금해 뉴스를 본다.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다가 배가 고파진다. 다시 식사, 산책, 잠 그렇게 저녁까지 반복. 그리고 다시 아침 해를 맞이한다.

 

악령이 내 몸에 들어왔나...

 

고시원은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오로지 공부만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직장의 인간관계를 피해, 하루 하루 적은 돈을 벌기 위해 소비되는 나 자신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이 곳으로 들어왔다.

 

살면서 나만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하루 종일 나와 대화하고, 내가 할 목표를 정하고, 홀로 지낸다. 그러다 보니 나란 녀석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난 책을 좀 좋아하는 편이라 공부를 제법 잘 할 줄 알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돈만 안 벌고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이었다. 정작 그렇게 공부만 할 수 있게 되었는 데 공부를 못하고 있는 이 현실.

 

난 레이겐처럼 오로지 합리화, 합리화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

 

모브는 스승 레이겐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자신이 이대로 사는 게 좋냐고 말이다. 너무 빈둥거리며 산다고 말이다.

 

그러자 레이겐은 인생에서 가장 빈둥거리 좋은 기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빈둥거리는 네가 인생의 승리자다 라는 격려를 한다.

 

모브의 두려움 난 그것을 이해한다. 이렇게 생활해서 되겠냐는 것이다.

 

고시원을 들어올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고 위해서 들어왔다. 더 이상 바닥의 인생으로 살지 않으리라! 이 곳에서 나의 신분을 세탁한다! 그런 굳은 결의로 왔다.

 

모은 모든 돈을 가지고 왔다. 아무런 결과 없이 돌아간다면 난 있을 곳이 없다. 언제나 막다른 길에 와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스스로 막다른 길을 만들어 와 본적은 없다.

 

조급한 마음과 다르게 평온한 뇌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음처럼 왜 뇌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왜 책의 한장이 지구를 들어올리는 것 만큼 힘든 것일까? 무엇이 나에게 빠져 있는 것일까?

 

모브는 자신의 초능력이 쓸데 없다고 생각한다. 초능력이 공부를 잘하게 해 주지도 않고, 달리기를 잘 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기껏 해봐야 악령 퇴치 조수로 일하며 시급 2,800원을 벌 뿐이기 때문이다.

 

모브 같은 초능력은 아니더라도, 난 이런 능력은 있으면 좋겠다. 고시식당 식권을 두 배로 늘어나게 하는 능력, 내 눈 앞에 있는 햇반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 곳에서 식사는 고시식당이란 곳에서 한다. 대학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8 곳 정도 고시식당이 있다. 아마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한끼 가격은 3,800원이다. 하지만 퀄리티가 남 다르다.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제공이 되며 식권은 한 끼씩 한 장을 쓴다. 식사는 식판으로 한다. 밥은  흑미, 백미 두 종류가 제공되며 양 껏 푸면 된다. 아침은 토스트와 햄, 달걀 후라이까지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세끼 모두 반찬은 고기류 반찬 2종, 기타 나물류 및 김치 등 8종이 있다. 국과 샐러드도 무료 제공이며, 식혜와 커피, 아이스크림까지 있다.
저 가격에 이 정도의 식단이라니, 전국 최고의 식당이다.

 

푸짐한 식단과 다르게, 먹는 사람들은 외롭다. 밥과 반찬들은 짝을 이루며 있어도, 여기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짝이 없다. 혼자 이어폰을 들으며 밥을 먹거나, 식당 맞은 편에 걸린 티비를 보며 밥을 먹는다. 여기서는 둘이 와서 밥을 먹으면 더 이상해 보인다. 먹는 사람들은 40대 아저씨들, 20~30대 남녀 고시생들 등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혼자와서 먹는 것은 공통이다.

 

그러고 보니 이 곳에서 그 친구와도 밥을 먹었다. 파마한 부스스한 머리에, 얼굴은 달걀형, 눈은 양쪽이 좀 쳐져서 순한 인상을 준다. 그 친구는 학원에서 알게 되었다.

 

학원에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안 거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홀로 뒤에 앉아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1차 시험이 언제냐고, 그런 당연한 질문을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기에 의아해 해서 쳐다 보았다. 이 친구는 진짜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모처럼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나는 항상 친절하다. 설명해 주고 그 때부터 담배도 같이 피며 여러가지 소소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가정주부 셨다. 그리고 sky대 중에서 k대 법학과를 이 친구는 졸업했다. 좋은 학벌, 좋은 부모님 부러운 환경이었다.

 

식사도 여러 번하며 대화를 했다. 대화를 하며 느낀 점은 뭔가에 압박을 느끼고 있는 듯한 이 친구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은 이 시험을 공부하는 것에 불만이라고 했다. 로스쿨을 가는 게 낫지 왜 이 시험을 공부하냐고 말이다. 사실 나도 의아했다. 굳이 노무사 시험을 왜 볼려고 하는 지 말이다.

 

그 친구는 자신을 그렇게까지 법 전공으로 하는 공부를 하기에는 싫다고 했다. 노무사 자격증을 따서 기업에 취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중에 공부하는 나에게 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 얘기가 있으니 꼭 만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늦은 밤인데 전화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절박한 듯 해서 그를 만나러 갔다.

 

어느 정도 술을 먹은 듯한 그를 데리고 근처 술집에 들어갔다. 그가 술이 너무 심하게 마셨다면 집에 돌려 보내야 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의 상태를 지켜 보았다. 술을 마시긴 했지만 취한 듯한 모습은 아니고, 말도 잘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창 밖을 보기도 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는 내가 하는 이야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무언가 나에게 얘기하고 싶은 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 입의 움직임 말을 할까 말까 하는 움직임 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 하라고 했다. 나를 이 시간에 부른 건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나 역시 고민이 많다. 그러니 걱정말고 얘기를 해라. 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고민을 하는 듯 하던 그는 나에게 얘기를 했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이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쉬지 않고 말했다. 자신을 쫓는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러는 지, 여기를 오는 내내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는 등 계속 말했다. 마치 그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해 본적이 없고 처음인 것 처럼 말이다.

 

처음 시작부터 느낌이 안 좋았기에, 난 별로 대꾸를 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이야기 자체는 믿을 수 없는 황당함이지만, 논리적 구조과 이야기의 연결은 흠 잡을데 없이 훌륭했다. 내용 자체의 황담함만 없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할 구조였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그의 눈이었다. 뭔가에 사로 잡힌 듯이, 충혈되고 집중하는 듯한 그 눈빛.

 

얘기를 마치고, 집에 가기 너무 불안하다는 그를 택시를 태워서 보냈다. 지금 집에 갈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는 그를 소리를 지르며 안심시켜 보냈다.

 

고시원에 올라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폈다. 마음 속에서 두려운 감정이 솟구쳐 올라 왔다. 그것은 내가 소화할 수 없는 듯한 두려움 이었다.

 

-----------------------------

쓰다가 지침 이어서 쓸 것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04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9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나 읽어도 감동을 준다. 지금 같은 편견의 시선이 난무할 때 이 책은 그 효과를 발휘한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5-12-0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돌아오셨군요~, 저 버선 빨아놨어요. 달려갈려고~...ㅋ~.

루쉰P 2015-12-02 02:33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허구헌날 탕아도 아니고 ㅋ 알라딘 밖을 벗어 났다고 돌아오곤 하니까요 ㅎ 저거 투표하면 적립금 준다고 해서 그냥 써 봤어요 ㅋㅋㅋㅋ
날씨도 추운데 잘 지내시죠? 독서도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네요 ㅋㅋ
조만간에 꼭 하나 쓸라구요 ㅋ 너무 감사해요 ㅠ.ㅠ

stella.K 2015-12-02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십니다. 알라딘이 전어로구만요. 앞으로 알라딘이 이런 이쁜 짓 좀 많이 해야할 텐데 그래야 루쉰님 뵐 수 있는 거 아닙니까?ㅎㅎ
잘 지내시죠?^^

루쉰P 2015-12-03 16:43   좋아요 0 | URL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요 ㅋ 눈이 펑펑 옵니다. 고시원이 산에 위치해 고립된 듯한 이 느낌 ㅋ 길이 얼면 밥 먹으로 하산 할 때는 비닐포대라도 타고 가야할 판이에요 ㅋㅋㅋ 스텔라님도 빙판 길 조심하세요 ㅋ

아이리시스 2015-12-03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오.

루쉰P 2015-12-04 06:24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헤 ㅋ

cyrus 2015-12-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
 
한 권으로 읽는 루쉰 문학 선집
루쉰 지음, 송춘남 옮김, 박홍규 해설 / 고인돌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고 사항-

이 글은 전혀 리뷰가 아닙니다. 다만 이 책이 루쉰 선생을 접할려고 하는 분에게는 정말 도움이 된다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리뷰에는 책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저도 왜 리뷰라는 이름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책의 정보가 필요한 분이시라면 이 글을 안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깁니다. 읽고 나서 화 내실까봐 미리 말씀 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서재에 가끔 들어오기는 하지만 여러번 말씀드린 데로 글을 쓰는 것이 이제는 두려워 차마 무엇을 쓰지 못 합니다. 몇 번 쓸려고 하다가 지우기 일 쑤 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쓸려고 하는 걸 보면 제가 관종(관심 종자: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자)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지금 고시원에 들어 와 있습니다. 처음 이 곳을 찾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1호선을 타고 N역에 내려서, 5516번을 타면 정류소 이름 자체가 'D동고시촌 입구'입니다.

 

처음 이 곳에 들어왔을 때 놀랐습니다. N역에 내리면 짭짜름한 바다의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리고 비슷한 복장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급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모두 약속한 듯 손에는 두꺼운 책들을 하나씩 들고, 백팩을 맨채, 츄리닝이나 아니면 간편한 캐쥬얼 복장입니다.. 그들은 역에서 계단을 내리자 마자 모두 행동을 맞춘 영화 속 인물들처럼 n 학원, 공단기 학원 등 여러 가지 학원 건물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립니다.

 

저 역시 이 곳의 흐름을 같이 타기 위해, 백팩부터 사고, 두꺼운 책을 산 후, 츄리닝도 위 아래 같은 색으로 맞추어 입었습니다. 그러니 뭐랄까 마음이 든든하다고 할까요?

 

그들이 다 사라진 후, 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N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걸려 'D동 고시촌 입구'에 내립니다. 버스 정류장은 양쪽 모두 산을 깎아 만든 주거지 촌 한 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피시방, 당구장, 술집 및 유흥 시설이 밀집해 있고 학원이 있는 곳이고, 왼쪽은 고시원, 원룸들로 가득찬 곳입니다.

 

저는 당연히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제가 있는 고시원이 있습니다. 고시원을 가려면 45도 경사의 300미터 고갯길을 세번은 올라야 합니다.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이대로 저 하늘 끝까지 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리 높이 갔냐면 높을 수록 고시원 방 값이 쌉니다. 기묘하죠? 높은 것과 방 값이 싼 것의 상관성을 고민했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9만원 입니다. 고시원 방 값이 말입니다. 고시원 건물은 서로 마주보고 1동, 2동 두 건물입니다. 총 수용 인원은 130명이나 됩니다. 방은 모두 130개니 말이지요. 저는 2동 건물 지하에 있는 데 11개 방 중에 하나 입니다. 계단을 내려와 화장실을 정면에 두고 오른쪽에 5개, 왼쪽에 6개의 방이 있습니다. 문과 문 사이는 두 팔을 벌리면 닿는 거리 입니다. 옆 방들과 제 방은 아주 가깝습니다.

방은 5평 가량 됩니다. 가로는 눕지 못 합니다. 무릎이 꺾입니다. 세로로 누우면 충분히 누울 수 있습니다.

이 방에는 창문을 바로 밑에 커다란 책상과 책장 하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는 벽걸이용 옷 걸이가 있구요.

 

학원을 마치고 저녁에  고시원 입구에 들어서면 이 곳은 덩굴나무로 장식된 벤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곳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벤치에는 탁자가 있는 데 소주와 새우깡 혹은 소세지가 안주로 있습니다. 어떤 날은 모자를 깊게 쓴 아저씨가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휴대폰을 보며 이어폰을 끼고 실실 웃으며 소주를 먹는 스포츠 머리의 학생이 있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이 고시원은 남자 전용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이 고시원 원장님의 방침입니다. 남자만 사용하게 하는 게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듣지는 못 했습니다.

 

다만, 여자 고시원 방에 팬티만 입고 들어간 남 고시생의 이야기만 근근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의 방에 팬티를 입고 들어간 그 학생의 기구한 사연은 굳이 듣고 싶지 않아 자세히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경찰시험을 준비하던 여 학생 이었기에 제대로 얻어 터지고 나왔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이 얘기를 하며 원장님은 껄껄 웃으시더군요. 결국 그 이후 남 고시원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덩굴나무 벤치 아래 소주를 먹는 사람들은 분명 가슴에 묻어 논 얘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그들 옆에 가서 한번도 말을 걸지는 못 했습니다. 그냥 조용히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 옵니다.

 

이 고시원에는 40대 이상의 일용직 근로자가 반이고, 나머지는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사시가 폐지 절차를 밟으며 학생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일반 사람들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전 이곳에 온갖 법 서적을 책장에 진열하고, 루쉰 문학 선집 한 권만 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읽고 있습니다. 

 

아, 외롭지 않냐구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사람과의 대화도 안 하다가 보면 익숙해 지나 봅니다. 대화라면 편의점 갈 때나 마트 갈 때 가끔 하곤 합니다.

'적립 카드 있으세요?'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그러면 친절하게 웃으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인간적인 교류가 없냐구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습니다. 말씀드려 볼까요? 전 여기 옆 방 친구가 새벽 4시에 샤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화장실이 세면실 겸용인 데 씻으면 물 소리가 납니다. 조용히 말이죠. 아주 조용히...

그리고 여기 그 누구의 방이건 문을 열면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이웃 방 이웃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 합니다.

또한 아침 6시, 7시에는 진동 울림이 제 방까지 전해집니다. 신기하죠? 저도 그 진동이 어느 방에서 울리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일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합니다.

가끔은 뜬금없이 방귀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들이 아주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고 있다고 여기고 괜히 혼자 흐뭇해져 잠들곤 합니다.

 

이 곳에 학원은 크게 3곳이 있습니다. B 학원은 화장실에 휴지도 없고, 냉난방 시설이 열악해 '노무사 학원의 아오지 탄광'으로 불리 웁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곳은 시설이 괜찮아 그런대로 다닐만 합니다.

 

저도 시설 괜찮은 한 곳을 잡아 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에는 여 학생들은 23살부터 28살 때까지가 가장 많습니다. 남 학생들은 28살부터 30대 초반까지가 제일 많습니다.

 

전 학원에서 나이 순으로 넘버 3에 들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40대가 두 분이나 계셨으니까요. 다들 유명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취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대체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이 이들과 저를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 학원에 들어간 것이 작년 9월이었습니다. 몇 년만에 강의실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하니 희열 비슷하게 오더군요. 열심히 듣고 집중 했습니다.

 

전 교실에서 뒤에서 3번 째 줄에 앉았습니다. 앞에 앉기에는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뒤 정도에 있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몇 번 정도 수업이 흐른 후, 어느 날부터 인지 수업 후 10분 정도 흐르면 한 여학생이 제 앞에 빈자리에 항상 앉았습니다. 긴 생머리에 귀걸리랑 목걸이도 예쁘게 하고 티에 스키니 진 청바지를 입고 왔는 데 얼굴도 갸름하고, 몸매도 호리호리 하여 참으로 이쁘구나 하며 앞에 앉아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괜히 집중도 더 잘 되고 말입니다.

 

공부를 하러 온 여학생들은 귀걸이 조차 하지 않고 화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이 학생은 특히나 튀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이었는 지 모르지만, 하필이면 그 날 따라 제 앞 자리에 장발머리의 덩치 큰 남학생이 킁킁 대며 앉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학생이 앉으려고 할 때 의자를 발로 차서 넘어 뜨리고 싶었습니다. 왜 그랬는 지 모르지만 제 안에 악마가 있나 봅니다.

 

예상대로 그 여학생은 늦게 도착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좀 늦어 쉬는 시간에 왔는 데 자리를 앉으려고 두리번 거리더군요.

 

여러 자리가 비었지만 제 옆자리로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옆자리 의자는 두 개가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예전에 앉아 봤지만 앉는 곳에 나사 못이 조금 튀어 나와 따끔 했습니다.

 

그 의자에 앉으려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의자 못이 있다구요.

너무 급하게 말하다 발음이 꼬였나 봅니다. 그녀가 저에게 '의자가 멋있다구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못이 있다고 말하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말았습니다. 그녀도 제 이야기를 듣고 웃고 말입니다.

 

학원 강의실에서는 좀처럼 사람들이 웃지 않습니다. 웃을 만큼 기쁘진 않기 때문입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듣는 데 웃을 수 있다면 마하트마 간디 형이지 않을까요?

 

수업을 다 마치고 그녀는 저에게 커피를 한 캔 사 주었습니다. 먹고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에 주저 거리다가 학원 옥상에 같이 올라가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그녀도 저처럼 직장 생활을 하다가 비정규직을 계약을 반복하고 결국에 정규직 약속만 하던 그곳에서 배신을 당해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O시가 집인데 여기서 1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열심히 올려고 하지만 자꾸 늦잠을 잔다고 합니다. 혼자 계신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데 게으른 자신이 참으로 웃기다며 말이죠.

 

햇살이 비추는 가을의 오후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데 그 모습이 참 이쁘더군요.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스키니 진 청바지의 여성이 앞에서 웃으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저는 무슨 기분이 들었는 지 직장에서 제 이야기를 하염없이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비참함, 갈등, 그리고 속상한 것들.

그녀는 조용히 들었습니다.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며 말이죠. 제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직장에서 성추행도 당했다고 말입니다.

그녀는 너무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퇴근 후에도 쫓아다니는 50대 중년의 스토커 고객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라는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도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히 말했습니다.

 

여기서 노동법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대화를 했지만 그들에게 그 어떤 것도 벌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 실망했다고 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는 웃었습니다. 왜 웃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웃음 속에 모든 걸 날리고 싶은 지 그녀는 웃었습니다. 조용히.

 

전 교과서 적인 대답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반드시 시험 붙자고, 그리고 필요하신 자료 있으면 드릴테니 USB 하나 꼭 가지고 오시라고 말입니다.

 

가을 햇살을 맞으며 그녀와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료가 들은 노트북을 몇 번이나 살펴 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도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버리고 그녀는 학원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0월 초 고시원의 밤, 새벽에 홀로 공부를 하다가 뉴스를 봤습니다. 공부를 하다 지치면 머리를 식힐 겸 뉴스를 보곤 합니다.

 

뉴스에서 '비정규직 여직원 자살'이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O시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비정규직으로 퇴사한 여자가 자기 집 방에서 자살을 했고,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다음 날, 노동법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며칠 전 노동법 선생님이 비가 엄청 내리던 날, 우울한 모습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몇 년전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 죽은 친구가 있어서 갑자기 생각이 나 우리에게 무슨 고민이 있던 간에 자기를 찾아와 대화를 해달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 입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담배를 피며, 그녀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놀라시며 사람들이 뉴스에 나온 그녀를 눈치 챌까봐 몇년 전에 죽은 학생이라고 거짓말 했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하시며 그녀가 맞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쓰레기 같은 고객들과 직장 상사들에 대해 욕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놈들은 그녀를 어떻게 해 볼까하고 지들끼리 히죽거리며 얘기 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럴 때마다 자신이 노동법을 가르키는 것에 대해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말입니다.

 

저에게 어떻게 그녀를 아냐고 물어보실 길래, 옆 자리에 앉아서 대화를 조금 하게 되었다고 애기했습니다.

 

선생님과 둘이 하염없이 담배를 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학원을 나왔습니다.

 

그후 학원에서도 고시원에서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녀와 오랜 시간을 대화를 한 사이도 아니고, 친해졌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지만 그냥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습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죽을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비난 했습니다. 왜 죽냐고 하면서 그러나 그것이 저의 생활에 어떤 흔들림도 주지 못 했습니다. 그냥 몇 분 뒤 그 소식들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근데 왜 몇 분 대화한 그녀의 죽음이 저에게 이렇게 모든 생활을 뒤흔들 정도로 힘들었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그 직장에서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전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뭐라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움, 그리고 안타까움. 그것만이 제 가슴 속에 휘몰아 쳤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한 것이 상실되고 나서 자신의 모든 노력이 산산히 부서졌을 때 그 마음을 저는 조금이나마 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자살이란 선택에 대해 그것은 잘못됐다고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낼만큼 그 무엇인가를 반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는 데 전 마음 속에서 죽지 않아야 하는 반대의 이유를 찾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이 맞다고는 보지도 않습니다. 루쉰 선생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반드시 격퇴해야 할 상대들을 앞에 놓고, 내가 죽어 버린 다면 그것은 그들만 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려면 독하게 아주 독하게 칼을 갈아야 합니다. 그것을 전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상처는 단순한 말로 해결될 그런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꽤나 뻔뻔합니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안정적이고 고정된 수입과 조금이나마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1%라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생명이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전 아무 것도 해 주지를 못 했습니다.

 

지금도 문득 어두컴컴한 방에 고시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루쉰 선생의 책을 읽으며 그냥 더듬 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는 썩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데로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히고 결국엔 그녀를 죽였지만 그런 원인을 제공한 자들은 기껏해야 직장에서 아주 작은 제재만 받았습니다.

 

어느 날 꿈에는 그들을 찾아가 빈 병으로 머리를 부수고 이빨로 물어 뜯어서 갈기 갈기 찢어버리는 꿈을 꿨습니다.

 

루쉰 문학 선집에는 열강의 내정 간섭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항의집회를 열고 정부에 대한 청원 데모를 벌였지만, 정부는 발포로 대응해 47명이 죽고 150여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벌어졌는 데, 죽은 40여명 중에는 루쉰 선생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여학생 이었습니다.

 

루쉰 선생은 2주 후에 추도사의 글을 썼습니다.

 

"나 역시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참이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대체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중략) 하지만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이 인간세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뿐이다. 마흔 여 명 청년의 피가 주변에 흘러념쳐 숨이 막히고 보기도 힘든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 비분을 글로 쓴다 해도 그것은 아픔이 가라앉은 뒤라야 할 것이다.(중략) 나는 나의 더 없는 애통을 이 비인간적인 세상에 공개하여 그것으로 나의 고통을 위안할 것이며 이것을 죽은 자에 대한 약소한 제물로 삼아 영전에 삼가 바치리라."

 

그녀는 절망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살려고 공부를 도전 했었고, 무언가 해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죽일려고 드는 사람들의 압력이 너무 세어 그녀를 압사 시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가 죽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친구들에게 다행스럽게 연락이 되어 그녀가 묻힌 곳의 주소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페이스북에서 저와 대화했던 그 때 그 미소로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닷가가 있는 가족 묘지에 묻혀 있었습니다. 전 아직도 찾아 가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꼭 갈 생각입니다.

 

루쉰 선생은 또 이렇게 쓰고 계십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을 띠고 상냥하던 그녀가 죽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거리는 다시 태평을 찾았다. 워낙 한계가 있는 몇 사람의 생명쯤은 중국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악의가 없는 한가한 사람들의 식후의 이야기꺼리로 되거나 악의를 가진 한가한 사람들이 풍문이나 만들어내는 종자로 될 뿐인다."

 

세월호의 학생들이 죽은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학생들은 죽인 자들은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고, 벌도 받지 않으며 시간이 용서를 부르듯이 그러고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그들의 이야기가 지겹다고 댓글다는 놈들만 보입니다.

 

반드시 벌해야 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며,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있는 데 그런 것을 장님처럼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참으로 구역질이 납니다.

 

루쉰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마음속에 묻혀 남지 않는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죽은 것이다."

 

"전사가 부족한 곳에서는 생명이 더욱 귀중한다. 귀중하다고 말하는 의미는 생명을 집에 깊이 감춰두려는 것은 아니고 적은 원금으로 최대의 이자를 얻으려는 것이며 적어도 수지가 맞아야 할 것이다.(중략) 이번에 희생자들이 뒷사람들에게 남겨준 공덕은, 인간의 탈을 쓴 수많은 물건들의 허울을 찢어버리고 상상할 수 없이 잔악한 마음을 보여줌으로써 뒤를 이어 싸울 전사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점이다."

 

누구나 의미 없이 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절망적인 세상이 지속되게 내버려 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녀를 추억하며 그녀가 그냥 헛되이 의미없이 그녀가 나약하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세상을 받아 들이기는 싫습니다.

 

"피로 쓴 진실은 지울 수 없다"

 

는 루쉰 선생의 말처럼 그 진실은 지울 수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피로 뒤덮인 현실을 뒤짚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찾을 수 있을 지 말입니다.

 

다만,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를 죽게 만든 세상의 논리에 따라 가고 싶지 않습니다. 역겨운 그곳에 침이라도 뱉을 정도의 그리고 그들이 조금이나마 짜증이 나도록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것이 저의 긴 편지입니다. 쓰고 싶었을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5-05-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고 계신 거죠?
루쉰님은 언제나 묘사가 정확해서 무슨 단편 소설 읽는 것 같다고 늘
생각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안타깝네요.
또한 읽으면서 난 얼마나 시야가 좁고 안일하게 사는지
반성하게도 됩니다. 내가 사는 세계가 전부가 아닌데 말입니다.ㅠㅠ
이렇게라도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요.
점점 더워지는데 건강 조심하구요, 가끔 소식 전해줘요.
힘내십쇼!^^
 
배가본드 36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년 반 전 여름. 책이 어느 순간에 집을 삼켜 버릴 정도의 수준이 된 적이 있었다. 책장이 3개나 있지만 1개당 50권 정도는 꼽을 수 있는 데 거기도 꽉 차고, 바닥에는 세로로 위태롭게 쌓여져 있는 책들. 왠지 책에 포위된 이 느낌. 탈출하고 싶었다.

한적한 토요일 오후, 너무 오래된 책들과 철이 지난 법 관련 서적들은 집 앞 고물상에 버리고 그 돈으로 담배를 사려는 창조 경제를 구상하였다.

고물상은 집에서 5분 거리다. 아침 출근할 때마다 이미 철문은 활짝 열려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수레를 들고 출발 준비를 하고 계신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올백하고 꽁지 머리, 위에는 허름한 티셔츠와 조끼차림. 바지는 군복. 수염이 더부룩한 분이 항상 철문 앞에 나와 여기를 지나칠 때면 청소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뭐라 뭐라 써 있는 영문 티와 청바지를 입고 스포츠 머리로 여기 저기 뒤에서 뛰어다니며 세수대야로 물을 뿌리고 있는 청년도 한 명 있었다. 이 두 분이 여기 고물상의 주인들 인 것 같았다. 여기 사장님은 인자하신 듯,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께 손수 커피를 타 주시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고물상에 가서 인사를 하고 수레를 하나 빌린 후 책들을 실어 갔다. 한 무더기의 책을 가지고 가는 나를 반갑게 맞이 해 주시는 두 분.

책들을 저울대에 쌓으며 법학 관련 책이 많이 나오는 걸, 꽁지 머리의 사장님은 유심히 보시는 듯 했다. 책을 모두 계산한 금액, 몇 천원을 손에 쥐고 담배를 사려고 급하게 가려는 나에게 사장님은 주저 하듯이 말을 꺼내셨다.

 

저 혹시 법 공부를 하시나요?”

? , 그냥 준비하는 시험이 있어서요.”

나의 답변에 무슨 확신이 서시는 지. 사장님은 사무실로 나를 초대했다.

 

저기 책 팔러 오신 분에게 죄송하지만 조금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사장님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여기서 일하는 스포츠 머리의 청년은 올해 25. 지체 장애인 3급이라고 했다. 몇 달 전 수레를 끌고 다니며 파지를 모아 오길래. 젊은 청년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봤다고 한다.

이 청년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어머니는 생수 공장을 다니시다 몇 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서 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허리 디스크가 도져서 병원도 못 다니시고 집에만 계시기에 자신이라도 돈을 벌려고 파지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매미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교통방송. 찌는 듯한 더위. 그 속의 청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더 덥고 숨이 막혔다.

사장님은 그럼 왜 직장 같은 데나 공장으로 취직을 하지 파지를 모으냐고 물어 보았다. 파지 줍는 일은 정말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청년은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당시 벼룩시장 같은 걸 보고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인천까지 일을 하러 갔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지체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1년 동안 일을 시켜 준다는 명목 아래 그를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에 가두고 일을 시키며 집에 보내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을 가 보았지만 얼마 가지도 못 해 다시 잡히고 또 잡히면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만화처럼 아침에 컨테이너 박스에서 일어나니 문도 열려있고 자신을 감시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런 기회를 놓치면 탈출을 못한다는 생각에 그곳을 달리고 달려 탈출했다고 한다. 전철역에서 집에 가고 싶지만 돈이 없어, 역에 오시는 분들께 사정을 말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결국에 역의 직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집에 다가 연락을 해 무사히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후, 경찰에 신고를 하고 보내던 그에게 법원에서 하나 둘 우편이 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3천 만원 정도의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여기까지 듣고. 기가 막히더라고, 지체장애인들 데려다가 노예처럼 일 시킨다는 건 들어 봤는데 직접 들으니 어이가 없어 가지고 말이야. 내가 그래서 정운이(그 청년)에게 집에 있는 통지서들 가지고 와 보라고 했어. 근데 봤더니 핸드폰 요금이 300만원 넘는 것도 있고, 그게 한 두 개가 아니더라고. 게다가 내용들이 무슨 사기 같은 것을 했다고 법원에서 벌금을 내라고 천 만원 정도 통지서가 나왔어. 빚이 그리 많으니 핸드폰 하나 개통도 못하니, 어디 직장에 취직이나 할 수가 있나. 게다가 본인도 그럴 엄두도 못 내고 말이야.”

사장님은 파지로 돈을 벌 수는 없으니 자신의 일을 도와주며 월급을 받으라고 권유했고, 그 때부터 정운이는 이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밖에 못 나와서 말이야. 이거 뭘 도와주고 싶은 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아까 학생이 책을 버리는 데 법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고. 우리한테 사실 직접 버리러 오는 사람들은 없거든. 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가지고 오시지. 그래서 아 글쎄, 학생이 책을 버리는 데 막 감이 오더라고. 이 사람은 뭘 알겠지 하고 말이야.”

그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을 향해

정운아! 정운아! 이리와 봐! 얼른 얼른 그거 나중에 하고!”

뭐냐. 이 주체 못하는 운명적 파도의 흐름.

정운이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목에 걸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들어왔다.

사장님은 아빠 미소를 지으시며

인사 드려. 이 분이 법 전공하신 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30분 가량 앉아 있었는데 어느 새 법 전공 학자가 되어 이 곳 사무실에 존재했다.

토요일 담뱃값 벌려고 책 팔러 왔는데 법학 전공 학자가 되어버린 청년의 기구한 사연을 그대들은 들어 보셨는가.

무대는 갖춰졌고 난 그 역할을 멋지게 해 내야 했다.

마치 법 공부 몇 년 한 사람처럼 일어서서 정운이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정운이는 손을 수건을 닦은 채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는 그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등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는 땀의 열기를 보며, 그가 얼마나 고단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줄 알 수 있었다. 루쉰 선생은 서점에 자신의 책을 사러 온 노동자가 준 돈을 두 손에 받고 그 무게가 돈의 무게가 아닌 이름 모를 생명의 무게처럼 느꼈다고 쓴 구절이 있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셋 다 피 본다. 왠지 몰라도 아는 척 해야 할 것 같고,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저 눈들을 향해 외쳐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머리에선

깨끗하게 돌아서라. 모른다고 해라. 여기서 더 들어가면 큰일이다.’

입에선

사장님, 제가 지금은 경황이 없이 와서요. 모레 다시 한번 찾아올 테니 정운씨에게 온 통지서 좀 가져다 주시겠어요. 한번 저도 살펴봐야 될 것 같아요.”

망했다. 망했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노는 나란 남자. 멋진 남자.

사장님은 자신의 예견이 맞았다는 듯이.

, 그래. 그래. 학생도 봐야 더 자세하게 알 수가 있겠지? 내가 준비해 놓을께.”

환하게 웃으시며 커피 한잔을 더 타 주셨다.

밖으로 나와 사장님과 담배를 피며 옆에서 서 있는 정운이를 천천히 보았다. 정운이는 담배를 피며 하염없이 바닥을 보고 있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쑥스러운 탓인지는 몰라도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운아 우린 소개팅 하는 게 아니란다. 너가 나에게 부끄럼을 탈 필요가 없어.

난 가슴 큰 여자가 좋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고뇌, 고뇌의 폭풍우였다. 어떻게!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뭘 알아야 돕지. 나도 법 모르는 데 어쩌냐!

인간의 정지된 뇌와 다르게 자연은 규칙적으로 움직였고,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저녁에 찾아가야 하는 고물상을 앞에다 두고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이대로 튀어야 하나? 아님 사실대로 말하고 변호사에게 찾아가 보시라고 할까?

변명을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 찬 그 눈빛들이 생각났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교내 법학과 교수님 사무실을 찾아갔다.

교수님 사무실 앞에 있는 철문이 어찌나 무거워 보이던지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옥에 빠진 그들과 나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나는 문을 두드렸고, 그 안에는 한 분의 노신사가 앉아 계셨다.

읽으셨던 책을 덮으시고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시는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다.

학점 때문인가?”

교수님은 차분한 표정으로 양 손에 깎지를 끼고 책상에 팔꿈치를 올리시며 말했다.

고물상 때문입니다.”

더운 날씨, 날카로운 인상의 교수님, 연구실이라는 막힌 환경.

난 그곳에서 뇌세포가 뒤엉켜 버렸나 보다.

고물상? 신의칙 판례에 나온 거 말인가?”

이건 뭔 소리냐?

교수님의 진지한 대답에 난 더 당황하고 무슨 대화인 지 모르는 혼란감속에 자아가 붕괴되는 줄 알았다.

뽑아간 음료수를 책상 앞에 올려 놓으며 난 땀을 폭포수와 같이 흘리며 내가 겪고 있던 일들을 얘기해 드렸다.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 직원이셨군요. 저도 학생 같지 않아 보이기에 좀 놀라기는 했었어요. 민사 소송이 걸린 듯 한데 저도 근거 자료가 없으니 뭐라 답변 드리기는 힘들고, 무료법률구조공단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마 O시에도 그 사무소가 있을 테니 거기를 꼭 찾아가 보세요. 전문가들이 있으니 무료로 그 부분들을 해결해 줄 겁니다.”

무료법률 구조공단! 내 귀에는 그 단어가 천국의 트럼펫처럼 울려 퍼졌다. 교수님에게 감사하다고 고개를 푹 숙이며 여러 번 인사를 드렸다.

결전의 날. 우리는 고물상의 철문을 닫고 고요한 사무실에 앉았다. 내 상반신만큼이나 쌓여 있는 통지서들을 살펴보며 하나 하나씩 체크해 갔다. 그런데 여러 번 독촉이 왔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정운이가 참으로 이상했다. 대략적으론 이야기를 하는 데 세부적인 상황까지 물어보면 답변을 못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방금 말한 것과 지금 얘기한 것이 서로 부딪쳐서 말이 안 되는 것들도 있고, 말하던 나도 지칠 뻔 했다.

눈치를 보시던 사장님은 나를 데리고 나오셔서 얘기를 하셨다.

내가 지체장애는 뭔지 잘 몰랐었는데, 정운이 일 시키면서 어떤 건지 알았지. 쟤가 말을 표현을 잘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면 이해를 못 하더라고. 아침에 세수대야에 물 뿌리는 거 가르쳐 주려고 세수대야 가지고 오라고 하면 주저 주저 하다가 아, 글쎄. 수레를 가져 오더라구. 그래서 나는 쟤가 나 가지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까.”

사장님의 이야기는 정운이가 사람들보다 약간 떨어지는 의사소통 능력과 지능이 사람들 보다 못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얘기하다가 답답하면 정운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까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인내와 인내를 걸친 대화 속에서 결론은 정운이는 인천에서 그의 명의를 도용 당해 통장이 쇼핑몰 사기 계좌가 된 것인 것 같았다. 정운이를 가둔 그들은 물건을 보낸다고 하고 물건은 보내지 않은 채 돈만 정운이 통장으로 받은 채, 잠적을 한 것 같았다. 결국에 명의자는 정운이니까 당연히 그가 고소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운이가 알고 그 사기를 도운 건지 그렇지 않은 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일단 사장님과 정운이에게 무료법률구조공단을 내가 아는 데로 설명하고 그곳을 같이 찾아가 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무료법률구조공단을 방문했다.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한 공단은 주변에 개인회생 개인파산이라는 커다란 글귀를 써놓은 법무사, 변호사 사무실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불신지옥 예수천당이 한때 지하철을 지배했듯 이 세상은 개인회생 개인파산만이 지배한 듯 오로지 그 글귀들만 빨간 색으로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좁은 사무실에 사람들은 이미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번호표만 하염없이 보는 사람, 당신들은 뭐 땜에 왔느냐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사람. 차림새들은 모두 간단한 티셔츠나 세월 지난 셔츠 차림으로 폭풍이 지난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처럼 그들은 앉아 있었다.

안내되어 간 칸막이 친 책상 앞에서 구조공단 직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바가지 머리의 3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이 정장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이미 눈은 반쯤 풀린 채로 쉬지도 않고 떠 들은 듯 혼이 나가 있는 표정이었다.

그 앞에 스포츠 머리의 정운이는 눈을 깐 채 앉아 있었고, 의자를 끌어와 양 옆에 수호신처럼 앉은 꽁지머리 군복바지 차림 사장님과 정장 차림의 올백머리의 나.

우리의 이름 모를 아우라에 직원도 약간 움찔 하시는 듯 보였다. 자초지종은 내가 설명하고, 사장님은 정운이를 그렇게 만든 무리들에 대한 감정적 격노를, 정은이는 진실입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셋이서 파트를 나누어 노래 부르는 걸그룹처럼 내가 나오면 둘이 쉬고, 사장님 나오면 둘이 쉬고, 걸스데이처럼 우리는 호흡을 맞췄다. 직원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정말 진지한 자세로 들어 주었다. 우리가 말하는 거 집중 안 했다가는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힐 지 모르는 공포감을 느꼈을 지 모르지만 그의 눈빛은 참으로 진지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날아온 통지서들을 분석하며 그는 간간히 예리한 질문들을 하나씩 던졌다.

조사를 해 준 직원은 이미 정운이를 괴롭힌 주범은 3명인 데 그 중 2명은 판결을 받아 감옥에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들은 정운이 뿐만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그렇게 해 와서 고소를 당하고 사법적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나머지 한 명이 잡힘으로 정운이의 소송에 대한 해결이 된다고 해 주었다. 대신 지금 빚 진 것들이 핵심인데 나머지 한 명이 잡혀 법원에서 정운이의 무고함이 밝혀질 것이고 그러므로 빚들은 소멸될 것이라 해 주며, 지금은 그런 상황들이 진행 중이라 정운이에게 통지서들이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해 주었다. 다만 신용불량도 그 때 모두 해결될 것이기에 그 때까지 힘들어도 버티라고 하였다.

 

우리의 굳은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는 직원의 그 미소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때 그의 뒤에서 어떤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것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돈을 버는 것. 그것이 내가 꿈꿔온 길이지 않는가? 바쁜 직장 생활 속에 노무사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의욕이 넘치지 않았던 나는 직원의 모습을 보며 저것이 진정한 실력자의 모습이라 감탄을 하였다.

셋이서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은 냉면을 사주셨고, 우리는 같이 먹으며 서로를 칭찬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근데 참 신기한 것은 그를 도와주며 나 역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도 복잡한 것들 것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면 해 낼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내 안의 이런 용기가 있는가 하고 말이다. 아마 내 일이라면 이렇게 용기를 가지고 부딪치진 못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법학과 교수님과 공단의 직원을 보며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해 욕심이 생겼다.

복잡한 일은 해결이 되어 마무리가 됐지만, 제대로 말도 못하는 정운이를 같이 무언가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못하는 건 읽고 쓰는 능력이 퇴화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문득 스친 생각은 고물상 사무실 책꽂이 있던 만화책들이었다.

사장님은 그 책들은 팔기에는 아까워 남겨 놓았다고 하시는 데, 그 책들 중에는 배가본드전 권도 들어 있었다.

방랑자 배가본드

난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그릴 때 그를 반대했었다. 1권부터 한 10권까지 읽다가 내가 알고 있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무사시가 사라진 듯 해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전권이 갖춰진 배가본드는 내 마음을 흔들었고, 독서를 끊은 지 오래인 나에게도 그리고 정운이에게도 부담 없는 만화가 좋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사장님의 배려 속에 조용한 사무실에서 배가본드를 읽었다. 타케히코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며 그냥 눈으로만 봤던 그의 책들이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17년간 그리고 있는 미야모토 무사시. 그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배가본드는 어느 정도 읽을 무렵 정운이는 자신은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나에게 말을 했다. 무언가를 향해 전력으로 도전한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바랬던 바 아닌가!

난 며칠 뒤 노트와 필기구를 사서 정운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가 글을 쓴다면 좋을 거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을 향해, 천하무적을 향해 달려가는 무사시를 보며 나 역시 몸을 단련하자 마음 먹고 직장 근처 수영장을 끊었다. 7 ~ 8시까지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5시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수영장에 가서 기초 수영을 배우며 잠도 밀려오고 피곤한 마음에 하라는 수영은 되지가 않고 물 속으로 자꾸만 가라 앉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은 나무토막처럼 둥둥 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동안 사장님은 정운이가 일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이면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며 노트에 열심히 뭘 적더라고 얘기해 주었다. 내심 기대가 되었던 나는 정운이에게 한, 두 달이 흐를 무렵 무얼 그리 적고 있냐고 물어 보았고. 정운이는 연애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3부작으로 구성 중인 데 그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네 건방진 입술을 뺏어봐!’

내용은 건방진 아가씨의 입술은 순수한 청년이 뺏어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자신의 소설을 낭독하는 정운이에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조용히 듣기는 했는데 여자 대사를 할 때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정운이를 보며 감정 안 넣어도 이해하니 이상한 여자 목소리 내지 말라고 멱살을 잡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말을 잘 못하는 것과 다르게 이야기도 논리적이고 잘 쓰는 정운이가 대단한 생각이 들어. 한번 연애 소설 사이트 같은 곳에 올려 보자고 했고, 우리는 글을 올린 후 그 반응이 기대가 되어 설레는 마음을 품은 채 며칠 기다리며 댓글을 기다리기로 했다. 며칠 뒤 사이트를 열어본 우리는 100여개의 댓글 수를 보며 이러다가 소설가로 책 출판 하는 거 아니냐며 자축을 하고, 댓글 내용을 보았는데.

똥구멍으로 글을 쓰냐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입술을 뺏는 게 왜 주제냐. 도대체 무슨 의도로 글을 쓴 거냐

엄청난 악플의 현장을 목격했고.

가장 나은 댓글은

그래도 쓰느라 고생했네요.’

댓글을 다 보며 우리는 말이 별로 없었고, 정운이는 고개만 하염없이 숙이고 있었다.

그 때 난 요시카와 에이지의 무사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월, 모두 새해를 맞이해 분주하던 날. 무사시도 무사 수행 중 이었으나 가족이 그리워 자신의 이모가 보고 싶어졌다. 추운 밤 배가 고픈 무사시는 이모를 찾아 갔다. 늦음 밤에 찾아간 이모는 오랜만에 만난 무사시에게 소문에 너가 흉폭하다하며 곳간이라도 좋으니 재워달라는 무사시에게 차갑게 집에서 재워 줄 수는 없다며 먹던 떡 2개를 싸서 무사시에게 쥐어 주었다.

무사시는 그 얼은 떡을 먹으며 잠도 못 잔 채 거리를 나와 새벽에 강가에서 찬 물로 목욕을 하며 스스로 외쳤다.

난 여기서 정운이에게 말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빠질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무사시는 검으로 인생을 찾겠다는 자신이 잠시 사람의 정이 그리워 찾아가고 이런 대접을 받았다고 약해져 있다니 아직도 자신은 멀었다며 반성을 했다.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정운이를 향해 손을 펼치면 열변을 토하는 내 자신!

우리는 스스로를 단련해 보자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댓글이 무어냐! 우리를 모르는 사람이지않는가. 무사시는 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위에서 뭐라 한다고 못났다고 금방 풀이 죽어 글 쓰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래! 똥구멍을 쓴다고 하면 똥구멍도 좋다. 써보자! 한번 써보자! 다 쓰자! 계속 써 보자!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나자 뭔 일인가 달려온 양동이 든 사장님도, 멍하니 눈을 깔고 있던 정운이도 신들린 듯한 나의 목소리!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은 듯한 소나무와 같은 나의 팔 놀림. 게다가 난 내 말에 내가 취했다.

이름 모를 감동이 우리 세 명을 덮쳤고, 사장님은 또 말 없이 냉면을 시키셨다. 정운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기를 결의하고 말이다.

정운이와 <배가본드>를 읽으며 미야모토 무사시도 우리도 인간. 그가 걸었던 그런 집념의 길이 그리고 그런 열정이 우리 안에도 다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각자의 내면의 무사시가 있다. 그가 천하무적의 길을 걷든, 아니면 그런 것들을 아지랑이로 보든. 어떤 벽을 향해 전심전력으로 움직이고 모든 것을 다 연소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 그걸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내 안의 무사시의 싸움이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말이다.

무사시. 그것은 하나의 인격의 이름일 것이다. 그를 통해 내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도 같은 무사시가 있기에 밖에 타케히코를 통해 보여진 무사기가 내 안의 무사시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배가본드 20편의 작가의 말

인연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 소설이나 만화와의 인연 한 편의 영화나 한 곡의 노래와의 인연 자신이 진심으로 원했을 때. 그것들은 마치 미리 알기라도 하듯 거기에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살려준다.

 

그러하다. 참으로 그러하다.

 

우리는 <배가본드>를 읽으며, 스스로의 나약함을 비웃었다. 그리고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그리는 무사시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그의 집념에 감탄을 했다. <고백>이라는 타케히코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휴재하는 동안 인터뷰한 글들이 출판된 것도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리얼’이란 만화는 그릴 것이 정해져 있고 생각할 필요가 없듯 그대로 그리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무사시는 다르다고 했다. 거기엔 소재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이 찾아야 하고, 자꾸 창작해 가야 한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저 작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배가본드>의 한 주인공 마타하치의 어머니 혼이덴 할머니가 죽을 때 자신의 아들을 위한 유언을 할 때 글을 읽었다.

 

흔들리지 않고 외길을 걷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법.

헤매고...

실수하고...

멀리 돌아가기도 하지.

그래도 좋아.

뒤를 돌아보렴.

여기 부딪히고 저기 부딪히고 이리저리 헤맨 너의 길은...

분명 누구보다도 넓을 테니까.

지나온 길이 넓은 만큼 너는...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게야.

나도...무사시도...되지 못한 인간이 될 수 있을게야.

 

마타하치..

이 세상에 강한 사람 같은 건 없단다.

강해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

있는 건 오직 그 뿐이야.

약한 사람은 자기를 약하다고 하지 않지.

너는 이미 약한 자가 아니란다.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자.

이미 그 첫걸음을 뗀 게야..

내가 뭐랬니?

너의 미래는 활짝 펼쳐질 거라 했지?

여덟 팔자 모양으로

지지마라. 마타하치. 지지마!

 

지지마라 마타하치 지지마를 읽는 데 정운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자기에게 한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자신은 약하고 한 없이 나약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타하치처럼 부모님께 칭찬 받기 위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말이다. 나 역시도 똑같았다. 만만치 않은 허풍의 거성을 쌓았다.

 

우린 그 후 약하지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갔다. 정운이는 작년 겨울, 고물상에서 일하며 다닌 장애인 센터에서 여자친구까지 사귀었다. 속으로 정운이는 연애능력은 나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을 했다.

 

정운인 열심히 글을 쓰고, 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 중이다.

 

고물상 동지들은 나에게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1년 그랬듯이,

나아가자. 난 O시의 미야모토 무사시다!

지지마라! 루쉰p! 지지마!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4-07-1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무척 안타까워 아 이걸 어쩌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나 전전긍긍했는데, 루쉰피님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그들 옆에 있어주었네요. 어렵고 고단한 삶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지만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루쉰피님.
지지말고 지치지도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하고자 하던 일 꼭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루쉰피님.
응원합니다. 진심으로요!

루쉰P 2014-07-18 12: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응원해 주시는 진심의 마음이 모니터를 뚫고 저에게 전달되네요. 너무 감사해요. ㅎ
그들 옆에 제가 있던 게 아니라, 그들이 제 옆에 있어주었어요. 그래서 의욕을 다시 가지게 되었죠. 어렵고 고단한 삶에도 유머는 있고, 즐거움은 있다고 믿어요. 물론 지금 사회 돌아가는 게 웃음을 찾기도 힘들고 사람 힘 빠지게 하는 것들의 연속이지만 주위 만큼은 제 책임 영역이라 생각해 뭔가 즐겁게 만들어 볼라구요. 허허허

지지말고 지치지도 말고! 음~~~너무 맘에 들어요!
다락방님도 이 여름 지지마세요. 전철에서 책도 많이 읽으시구요. ㅎ 전철도 잘 타면 시원할 때 많아요 ㅎ

노이에자이트 2014-07-2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료법률구조공단 같이 우리가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곳이 꽤 있죠.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모르면 무용지물입니다.그런 곳에서 법률상담 해주는 사람들은 대단해요.대부분 법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상담하러 오고 그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해주고 질문을 이끌어 낸다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아, 그리고 워낙 요시카와 에이지 것이 유명합니다만, 사바다 렌자부로가 쓴 미야모도 무사시도 잘되었다고 합니다.혹시 읽어보셨는지요?

루쉰P 2014-07-21 09:14   좋아요 0 | URL
무료법률구조공단은 대단하다고 생각들더라구요. 그치만 그 곳에 오신 사람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다시는 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더라구요. ㅎ

사바다 렌자부로가 쓴 무사시도 있다고 들었는 데, 읽지는 않았어요. 요시카와 것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말이죠. ㅎㅎㅎ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 볼려구요. 무사시는 참 대단한 거 같아요. 계속 여러 작가들에 의해 재탄생을 하니 말이에요. 뭔가 사람들을 울리는 그런 것이 있나봐요.

배가본드의 무사시를 그린 타케히코는 무사시가 천하무적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 할 것이다. 음 그러니까 어찌됐든 승부라 해도 살인이다. 그 죄책감으로 인하여 보통 사람과 같은 평범한 삶은 살기 어려울 것이다. 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더라구요.

요시카와 에이지는 없던 새로운 시각이라 보면서 대단한 데 그런 생각이 들었죠. ㅎ노자님 무지 더워요. ㅎ 건강하셔야 됩니다. ㅎ

쉽싸리 2014-07-19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과 웃음, 활력, 진한 페이소스 이 모든 걸 가진 당신께 경배! ㅎㅎ

루쉰P 2014-07-21 09:16   좋아요 0 | URL
이거 부끄러워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 지, 여태 받은 칭찬 중 한 줄로 이렇게 과한 칭찬을 받기가 얼마만 인지 후후후
모니터보고 울 뻔 했어요. 푸하

잘 지내시고 계시죠?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방랑하고 다녔네요. ㅎㅎㅎ
이제는 정신 차리고 살려구요.

감은빛 2014-07-27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님 특유의 글을 아주 오랜만에 읽었네요!
무척 반가워요!
루쉰님의 용기가 대단하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법률 상담을 자처해 나서고,
잘 알지 못하는 이를 위해 글쓰기 공부도 함께 하고......

대단하세요!
애쓰신 만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루쉰P 2014-07-27 17:14   좋아요 0 | URL
저도 감은빛님의 댓글을 보니 왠지 고향에 돌아온 이 기분...

아니에요. 전 용기가 없어요. 제가 알기론 감은빛님이 저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도와주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 뭐랄까 포위됐다고 할까요?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없었기에 한 발 나간 것 뿐이에요. 덕분에 더 많이 배웠죠. ^^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인 지 알게 되고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 계속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있어요. 지금도 도서관이에요. 하지만 한 달에 한 권은 책을 읽으려구요. 그래서 서평도 길어도 쓸라구요. 푸하
감은빛님만 읽어 주신다면 쓸 겁니다. ㅋㅋㅋ

꼬마요정 2014-07-2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식간에 읽어내렸습니다. 같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마침내 일이 잘 해결될 것 같다는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다행이야'라고 외쳤지요. 루쉰님 멋지세요~ 무료법률공단에 계신 분들도 멋지세요~ 아.. 그래도 세상은 이렇게 살 만한 곳인가 봅니다. 저도 더 노력해야겠어요..

사실, 저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하고 싶어서 수수료가 얼마 안 되어도, 동네 사람이니까, 혹은 세법을 잘 모르니까 싶어서 친절하게 이것 저것 해 주고 하는데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막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힘이 빠지거든요. 안 그런 사람들도 많은데 한 번씩 그런 사람들 만나면 참 힘이 드네요. 그래도 또 혹시 힘든 사람 도와주게 될 지도 모르니 힘을 내 봐야죠. 루쉰 님 글 읽고 힘 내서 갑니다.^^

루쉰P 2014-07-28 08:51   좋아요 0 | URL
멋지시다고 해 주시다니 갑자기 눈물이 ㅋ

꼬마요정님은 동네 분들에게 세법을 가르쳐 주시는 군요. 움직이는 무료법륭공단이네요. ㅎ
근데 그런 사람들은 있어요. 내가 선의를 베푸는 것에 대해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 좀 뻔뻔하다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 보면 힘이 빠지는 게 당연하죠!!
대신 그런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시는 꼬마요정님이 상처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전 그렇게 대놓고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하거든요.

사실 정운이도 옆에서 도와주기는 하지만 이 친구도 거짓말이 습관이 되어서 책을 안 읽었는 데 읽었다고 하거나, 경제적으로 많이 안 좋은 데도 불구하고 피시방을 가거나 하면서 저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많이 있어요. 처음에는 도와주려는 마음도 모르고 어떻게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속일 수 있지 하고 배신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그의 모습 속에 내가 있더군요. 저 역시 피시방도 많이 가고 공부해야 하는 데 그냥 시간 대충 보내고 말이죠. 마치 제가 정운이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 역시도 정운이가 하는 행동들을 똑같이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느꼈죠.
나 자신도 바뀌는 것이 참 힘든 데, 하물며 타인을 뭔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은 참 힘들구나,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그런 것이 아닌 내가 성장해야 정운이도 성장한다. 우리 같이 성장하자라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어요.
내가 정운이 쪽으로 잡아 먹히던 가, 아니면 내가 정운이를 잡아 먹는 가의 싸움이더라구요. ㅎ

꼬마요정님도 예의없고 그런 사람들에게 잡아 먹히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서 스스로의 삶을 무너뜨리잖아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동요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ㅎ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으시자구요.
전 사람들이 예의없고 자기 입장만 내세운 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은 만나기가 힘들어요. ㅋㅋㅋ
저를 봐도 그렇거든요. ㅋㅋㅋ

꼬마요정님이 사람을 상대로 해 주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신다면 그 즐거움을 깨뜨리지 않도록 그런 저급한 3류의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마세요. ㅎ
저도 휘둘리지 않을거에요 ㅋ

아이리시스 2014-08-02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운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또 만나면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응원한다고도. 예전에 우리동네 주민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 되게 좋아요. 아마 그 분위기를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물 좋고 산 좋은 군이나 읍 같은 동네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는 지도 몰라요. 물론 확실한 직업이 있어야겠죠. 통장 아주머니들이 대표로 주민센터 2층에서 행사 있으면 삼계죽, 떡, 과일 등 점심시간마다 막 돌리고 매일 잔치하듯 행사가 있기도 하고 그래요. 대학생때라 사무장님은 시킨 일만 대충 하고 딴짓하지 말고 영어공부 하라 잔소리하시고. 주민센터에서 제일 힘든 건 아마 상식 이하 민원손님일 겁니다. 근데 더 힘든 건 사회복지담당이에요. 부자동네라면 사정은 많이 다르겠지만 쌀, 라면, 지원금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나가지만 아슬아슬하게 법적으로 대상이 안 돼서 사정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거의 나이 많으신 분이라 한분한분 붙잡고 설득하지만 말이 잘 통하지도 않죠. 그런데 복지사가 올려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아도 법이 하는 일이니 냉정해야 하잖아요. 스트레스는 알지만 조금 더 친절하고 상냥하면 좋을텐데 늘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절, 공정을 잃으면 의미 없는 게 공무원의 일이니까.

하루는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지만 이제는 안부조차 모르는 동네 친구 어머니가 주민센터에 오셨어요. 수급품을 타러 오신 것 같았는데 인사를 하기도 안 하기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먼저 다른 쪽으로 숨어 버렸어요. 어머님은 알아보셨는데 제가 그냥 미적거리며 모른 척을 한거였는지도. 머리만 숨고 몸통은 그대로 있는. 아버지가 아프고 형편이 그렇다는 건 알았지만 주민센터에서 수급품 받으러 가세요 한 날인 걸 뻔히 아는데 거기 서 있을 수가 없었던 제가 조금 더 크고나선 되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적어도 그런 걸 부끄러워하면 안된다고, 생각과 행동과 글과 행동이 다른 나를 그때부터 용서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서로 채찍질하고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

루쉰P 2014-08-02 21:14   좋아요 0 | URL
도대체 아이리시스님은 안 해 본 일이 어떤 거에요? ㅎ 마치 평행이론을 달리듯이 저와 같은 분야의 업무를 많이 경험하신 것 같아요. 혹시나 마주쳤을 때 저와 똑같이 생기셨는 데 머리만 기신 거 아닐까요? ㅎ 도플갱어처럼 말이죠 푸하

주민센터에서 일도 하시고 대단하세요. ㅎ 근데 전 아이리시스님이 몸을 숨길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은 이해해요. 저 역시도 그랬을 것 같아요. 친구 어머님이 저를 보면 민망해 하실 수도 있으시잖아요. 머리만 숨은 게 어디에요. ㅎ 정성이 보입니다.

친구 중에 9급 공무원으로 일하는 녀석이 있는 데 그의 고민은 아이리시스님의 말씀처럼 민원 상담이래요.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느껴지면 바로 민원이 들어와서 다시 그 사람에게 죄송하다고 얘기해야 하고 곤욕이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 보면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해도 나는 저렇게는 못한다고 생각을 많이 해요.

공무원도 진상도 만나고 진짜 안된 사람도 만나는 데 그 피로감이 엄청 날 것 같아요. 게다가 본인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폐인 결제, 결제 또 결제를 하며 법이라고 하는 기준에 맞춰서 수행만 해야 하니 아마 속병이 무지 날거에요.

정운이는 잘 지내요. ㅋ 요즘은 기타도 배우고 있어요. 13만원이나 주고 기타를 사서 저녁에 고물상에 걸터 앉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자친구 불러 줄 세레나데를 연습하고 있어요.
뭐,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는 데 어쩌겠어요. 질투가 나긴 하지만 이해를 하고 있어요. 여자친구도 고등학교 남동생을 키우며 부모님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정운이가 날로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미래의 진로를 제빵사로 잡고 공부도 하고 있어요. ㅎ 무척이나 흡족합니다.
장애인센터에서 제빵 교육을 시켜 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보다 더 바빠요. 일하고 가서 공부하고 또 와서 기타치고 ㅋㅋㅋㅋ

저도 공부 때문에 얼굴은 자주 못 보지만 왠지 정운인 성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 결혼할 때 기념 케잌을 정운이가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어요. ㅋㅋ
다만 제가 결혼한다면 말이죠. -..-

사람이 사람을 최선을 다해 보호한다는 말 참 좋아요. 함께 일어선다는 것도 ㅎ 전 사람과의 사이가 필요할까? 왜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에 대해 더 안다고 할까요? 그런 걸 느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것 같군요.
벌써 35살인데 ㅋㅋ 언제까지 성장해야 할 지 기대만땅이에요 ㅋ

아이리시스 2014-08-03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그때 그거 보고 듣고 느끼며 철밥통이 문제가 아니라 적성을 찾아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 많이 했어요. 실은..저는 같은 소리 두 번 하는 거 듣는 거 딱 싫어해요.. 별로 다정한 성격이 못 돼요. 사람이 징징대는 거 죽기보다 싫어해서.. 친절과 봉사의 정신이 절대 없거든요.

그나저나 우와 제빵사 뭔가 되게 멋져요. 정운이랑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빵 만드는 정운이는, 기타를 치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습하는 정운이는, 루쉰님도 없는 여자친구를 가진 정운이는, 어쩌면, 루쉰님보다 먼저 자기 케잌 만들어 결혼할지도 모름.. 분발하세요!! :)

루쉰P 2014-08-03 15:22   좋아요 0 | URL
맞아여 적성이 문제에요. ㅋㅋㅋ 왠만한 인격이 아님 버티기 힘들거에요.

그나저나 루쉰님도 없는 여자친구를 가진 정운이...거기서 약간 울컥했네요. 후후 아이리시스님 전 그녀가 분명 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전 그녀를 만나면 손을 꼭 잡고 이야기 해 줄거에요. 어디 갔다 이제 오냐고 그럼 그녀도 수줍게 웃으며 저에게 널 기다렸어라고 말하겠죠. 후후후후
갑자기 마구 흐뭇해 지네요. 전 24시간 분발하고 있어요 분발할 대상이 아직 나타나지 못 했을 뿐이죠 ㅋㅋㅋ

아이 참, 아이리시스님처럼 오랜 시간 연애를 하시는 분들은 제 마음을 모를거라니까요. 이 기대감, 있어요. 그녀는 분명히...있겠죠? 있어야 되는 데....

stella.K 2014-08-0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소설은 처음엔 X구멍으로 쓰는 건데.
정운 씨 그걸 몰랐군요. ㅎㅎ
그래도 그렇게 자신을 깨달아 가는 정운 씨가 기특하군요.

별 관련이 있는 얘긴지는 모르겠는데, 영화 배우 최민식이 영화 명량을 찍고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묻죠. 당신에게 12척의 배가 있다면 그건 뭐냐구요.
그러자 최민식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건 일과 가족이라고 말해요.
그것이 나를 지켜 주며, 12척의 배라고.
순간 이 사람 진짜 인생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구나 싶더군요.
정말 공부해서 깨우치고, 일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겠더라구요. 이걸 저도 최근에야 알 것 같더라구요.
예전엔 일이 마냥 두렵고, 하기 싫은 거였는데 말이죠.
그래서 늦었지만 저도 지금이라도 열심히 일하고, 무지를 깨우치려구요.ㅎ
정운 씨도 그걸 차츰 알아가게 될 거라고 믿어요.
루쉰님도 잘 하셨어요. 홧팅!!! 입니다. 고물상 아저씨도요.^^


루쉰P 2014-08-04 09:15   좋아요 0 | URL
그랬나요? 푸하 근데 정운이는 그새 소설을 잠시 쉬고 있어요. 제빵사가 된다나 하하하하;;;

스텔라님의 말씀이 맞아요. 루쉰 선생께서 대학에서 <인형의 집>강연을 하실 때 여학생들에게 노라가 집을 나갔지만 나간 후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 아느냐 하시며 무엇보다 경제력을 길러야 한다고 얘기 하셨거든요.

전 그걸 읽으며 사회에서 누군가를 도와야 하고 그리고 스스로를 도울려면 일이 필요하고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30짤 넘어서 알았어요;;; 넘 늦었죠 ㅎㅎㅎ
최민식 얘기는 저도 왕 감동이네요. 파이란 때부터 팬이 었는 데 ㅎㅎ

스텔라님은 많이 아시는 것 같은 데 무지를 깨우치시려 하신다고 하다니 먼지에도 짓밟힐 정도의 이 겸손함...경건해 집니다.
저도! 저도! 스텔라님과 함께 무지를 깨우치는 삶을 살아갈 거 랍니다. ㅎ

루카스 2014-10-06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편소설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혼자 마구마구 비스비슬 웃다가 급기야 걸스데이 운운하며 치고 빠지는 대사 장면에선 미친 듯이 학학댔지요.

해피앤딩이라 정말 다행이네요.~~
하신다는 공부에 에너지 팍팍 드리고 싶군요.^^

루쉰P 2014-10-07 13:38   좋아요 0 | URL
올라오신 댓글들을 보며 모처럼 만에 너무 격려를 받아 부끄럽기도 하고 힘도 나네요. ㅋ
저는 완전 고시생으로 하루 종일 원 없이 공부를 하며 머리가 회전하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노량진에서 성처럼 높이 솟아 있는 공무원 학원들 속에서 츄리니을 입은 채 아니면 간편한 복장으로 험난한 세상의 파도에 살아 남으려고 애 쓰는 청년들을 보며 저도 같이 그 흐름에 가고 있어요. ㅎ

공부가 제일 쉬었다고 어느 책에 쓴 거를 본 적이 있었는 데, 개뻥이더군요. ㅎㅎㅎ
정말 머리가 아퍼요 ㅎ

하지만 써주신 댓글 덕분에 무지하게 에너지 받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ㅎ

랄랄라 2016-06-2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연이 ㅠㅠ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중이신 루쉰P님 더위에 지지마시고, 꼭 좋은 성과있길 기도하겠습니다
더운데 힘내세용!!

루쉰P 2016-06-29 23: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 도서관 안 다니고 고시원 들어온 지 꽤 됐어요 ㅋㅋㅋ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고시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화이링 ㅎ

천사 2016-07-31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 정말 최고, 넘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