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기자 시험을 합격하고 누구보다 정의를 위해 언론으로 투쟁하는 전사인 기자들(물론 몇 명 되지는 않겠지만^^)과 비교했을 때 나의 기자 생활은 거의 사기꾼에 가까웠다.

잡지의 광고를 따기 위해 글을 써서 광고를 구걸하러 여러 업체들을 다녔다. 그런 와중에 스스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더러움을 느끼고 직장 생활을 때려쳤다. 정말 내 인생에서 쓰레기 같은 직장 생활 베스트 3위에 들 정도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3개월 동안 핸드폰이 끊겨서 사람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자유의 시간을 보냈다. 나의 동지들은 내가 사라진 것에 대해 경제적 압박을 원인으로 보기 보다는 내면에 숨어 있는 아웃사이더의 본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고 평가했다. 담배를 피고 싶어 집 앞에 고물상에 애지중지 하던 책을 수레에 실어 150권을 단 돈 만원에 다 팔던 그 때 하늘은 어찌나 맑고 덥던지.. 욕 나올 뻔 했다. 웃긴건 그렇게 사서 핀 담배가 어찌나 달던지 울 뻔 한 것이다. 이건 뭐야...

노신 선생의 소설 중에 <고독한 사람>이란 작품이 있다. 한 구절 인용하자면

 - 그가 학교에서 해고된 지도 거의 석 달이 된 때였다. 그러나 그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큰 거리를 지나다가 헌책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 나는 흠칫 놀랐다. 거기에 진열된 급고각 초판 <사기색은>이 바로 연수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장서가는 아니었다. 이런 책이라면 그에게는 귀중한 것이어서 부득이한 형편이 아니라면 쉽게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업한 지 석 달도 될까말까 해서 이렇게까지 궁해졌단 말인가?-

나는 1920년대의 노신 선생이나 지금의 나와 별 차이를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읽고 집착하는 것일 지 모르지만 어쩜 그리 나의 상황을 쓰신 것 같을까...

주인공인 바라보는 위연수는 중국이 청의 영향아래 있을 적에 주인공과 함께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혁명을 바라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청년의 꿈을 현실의 비루함에 의해 퇴색해 버린채 결국 군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다가 스스로를 저주하며 죽어 버렸다. 그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을 보면...

- 나는 실패했어. 전에 스스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자처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때에는 결코 실패한 게 아니었고, 틀림없이 지금은 실패하고 말았네. 전에는 나를 얼마 동안 더 살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고 또 나 자신도 얼마 동안 더 살아보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살아갈 수 없어.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겠네.

나는 벌써 이전에 나 자신이 증오했고 반대했던 그 모든 것을 몸소 해보았네. 그리고 이전에 나 자신이 숭배했고 주장했던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지. 나는 정말 실패한 사람이야.-

마지막 편지의 독백은 그대로 비수가 돼 내 마음을 파해 쳤다. '나 자신이 증오하고 반대했던 그 모든 것을 몸소 해보았네'라는 것은 바로 나의 인생이다. 혁명을 주장하고 개혁하기를 원하던 나는 현실의 비루함에 사로 잡혀 현실에 수긍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넋 빠진 생활을 하고 있다니....

저 위에 있는 두 권은 그나마 숨 쉬어 볼려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밤은 깊었는데 윗 집 개는 계속 짓고 있다.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리는 개 짓는 소리는 스스로 고독을 만들고 또 그 고독을 스스로 씹어 삼키는 사람의 일생을 비웃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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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18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렌트와 토크빌에 대해 소개한 한국학자들을 인정사정 없이 비판하는 책!!! 재미있습니다.아웃사이더는 콜린 윌슨 것인가요? 거기 나온 앙리 바르뷰스가 나중에 소련지지자가 되었는데 윌슨은 그 전의 작품만 거론하더군요.

루쉰P 2008-10-1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아웃사이더는 콜린 윌슨의 것입니다. 근데 이 작가가 재미있는게 저 작품 이후로 SF로 빠지더니 4차원의 세계까지 탐구하더군요^^ 박홍규 교수님의 저작은 항상 너무나 재미있게 읽혀요. 요즘은 니체에 대한 책도 출간하셔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2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윌슨은 범죄의 역사라든가 그런 분야의 책도 쓰더군요.독서를 통한 독학으로 성공한 의지의 인물입니다.

꼬마요정 2011-06-21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잡문 카테고리는 무슨 책일까 싶어서 들어왔더니 이런 고뇌의 글이었군요. 제가 책을 판다고 했을 때 언급하신 일이 이 일이었군요. 단 돈 만원.. 가슴 아픕니다. 이 때의 저도.. 참 암울했답니다.ㅜㅜ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었는데, 못 가르쳐서 짤렸죠.. 전 가르치는 일은 정말 못하겠어요..ㅠㅠ

루쉰P 2011-06-22 14:06   좋아요 0 | URL
오잉! 하하하 이렇게 여기까지 들어와서 보시다니 사실 책은 정말 팔아도 돈이 안돼요. 뼈져리게 느끼는 시간이었죠.
학원 강사 일을 하시다가 짤리시다니 원장 나뻐요! 그래도 암울함을 뚫고 나아가고 계시는 꼬마요정님이니 힘 내세요. 저도 힘 내고 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