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우주 -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에 가까운 이야기, 2018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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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약하고 외로운 한 남자 어린이와 강하고 외로운 한 여자 어린이가 운명같이 ‘안녕’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유연이 운명이 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도 그 용기는 우주가 개입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인지도.

재미있게 있었다. 이야기의 화자는 발렌시아이다. 나머지 친구들은 다 3인칭이다. 발렌시아는 청각장애가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성자 르네와만 대화 - 토로 - 를 나눈다. 우리는 그렇게 착각하게 된다. 씩씩하다고. 괜찮다고.

카오리(와 겐) 같은 인물이 우리의 곁에 있다면 아마도, 언젠가 버질과 발렌시아처럼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촉매로써 우리도 행복해 질 것이다.

버질 할머니에서 나오는 다양한 필리핀 설화(?)들이 이야기를풍성하게 만들다. 다만… 버질이 자신에게 집중할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그 많은 이야기는 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건데는 이야기들이 어린이들에게 그럴 수도 있다.

제일 마음에 드는것은, 쳇이 누구의 벗도 되지 않는 장면이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희석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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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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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의 반응이 좋아 연작으로 구성했다고 하는 이 소설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사와 생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첫 두 장은 꽤나 이채로왔다. 인간이 인간을 들여다보기위해 비인간을 덧입는 우화 소설이, 백년 전의 것임에도 꽤나 현대적인 박자를 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련미.

그러나 아무래도 계획치 않은 연작인터라 뒤로 갈수록 관조적인 느낌도 덜 하고 이야깃거리도 소품화되는 듯 싶어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 장은 마무리(!)를 작정하였다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때이른 죽음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 닿는다는 생각도 든다. 책 읽는 내내 작가가 꽤나 매력적인 모습이었겠구나 싶은 묘한 시니컬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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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를 자꾸 유형 안에 가둔다. 인간은, 변화가 필요한 존재이다. 특히 작금의 사회 안에서는. 변화의 추동을 저해하는 너무 많은 장치들이 고안되고 활용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마음에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난다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있다는 생각이 훨씬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서로 종류가 다른 마음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변이를 특정한 범주로 나누어 다루려고 애쓴다. 그들은 깔끔한 작은 상자들에 이름표를 붙이고는 사람들을 분류해 넣는다. (중략)
당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서 당신을 작은 상자들에 배정하는 성격 검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좋은 예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 를 보자. MBTI는서로 다른 성격 유형으로 분류한 작은 상자 16개에 사람들을 나누어 넣는데, 이를 파악하면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게도 MBTI의 과학적 타당성은 매우 의심스럽다. 이 검사를 비롯해 이와 유사한 성격 검사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의 실제 행동은 이 대답과 거의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MBTI보다 적은 네 개의 상자만 갖고 있고 훨씬 더 엄밀한 ‘호그와트 기숙사 배정 검사‘를 선호한다(참고로 나는 ‘래번클로‘다). - P151

당신의 마음은 여러 종류의 마음 중 하나일 뿐이며 당신이 가진 마음에 매여 있지도 않다. 당신은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한다. 대학생들은 카페인이나 암페타민을 사용하여 기말시험 전날 밤을 새울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낸다. 파티 참석자들은 술을 마셔서 딱딱한 사회적 상황에서 좀 더 느긋하고 덜 어색해하는 마음을 만들어낸다(그러면 기적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화학적 조정은 잠깐 동안만 지속된다. 더 오래 지속되도록 조정하려면, 앞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것들을 배워 뇌를 재배선할 수 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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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얼마든지 변화할 역량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소모된다. 인간은 최소한의 에너지 소모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본성이 아마도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딜레마이다. 고래로부터 뇌는 습관을 형성함으로써 최소한의 변화를 통해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고 자신의 가능성은 억제하였지만, 작금의 시대는 습관이 일상이기엔 너무나도 다채롭게 변화하는 세계에 살면서 끊임없는 자극과 도전 앞에 놓여 있다.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고정과 현상 유지의 명령을 지워버리기 위한 끊임없는 ‘학습’이 필요한 시대가 성큼 다가온 모양새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의 신체예산에 영향을 끼치고 성인이 된 뇌를 재배선한다는 것일까? 우리 뇌는 새로운 경험을 한 뒤 배선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뇌의 가소성이라고 부르는 그 프로세스 말이다. 우리 뇌에 들어 있는 신경세포들의 미세한 부분은 세부조정과 가지치기를 통해 매일 조금씩 변화한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처럼 뻗은 수상돌기는 더 무성한 가지를 갖게 되고, 신경 연결은 더 효율적이 된다. 이 리모델링 작업을 하려면 신체예산에서 에너지를 갖다 써야 하는데, 예측하는 뇌가 이렇게 많은 인출을 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한 가지 좋은 명분은 주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이 연결들이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때 우리 뇌는 조금씩 세부조정되고 가지치기된다. - P127

이것은 때때로 사람들이 자신과 달라 보이거나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왜 공감하지 못하는지, 그런 경우 공감을 시도하는 것이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뇌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하려면 신진대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사람들이 자기의 기존 믿음을 강화해주는 뉴스나 견해들로만 이루어진 이른바 반향실echochamber에 안주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따르는 불편함과 신진대사 비용이 줄어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울 확률 역시 떨어뜨린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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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반짝 - 제16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4
김수빈 지음, 김정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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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학년 소녀의 성장기이다. 이 소녀는 무슨 이유에선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중이고, 마침 엄마가 외국으로 공부하러 간 까닭에 외할머니 댁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린아에겐 이 외할머니 댁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골’살이라는 것이 낯설고 어색한 터, 5학년 소녀는 이를 표현하기 쉽잖아서 아마 심드렁한 표정과 짜증나는 말투로 이를 여과없이 드러냈을 터. 이야기는 그 시점에서 시작된다.

린아의 곁에는 이런 린아를 마뜩찮아하는 사월이, 린아에게 조금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 - 음이 이야기 내내 드러나 - 는 유하, 그리고 둘만으로는 이야기의 전개가 쉽잖기 때문에 필요한 지호, 세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유하의 사고로 인한 죽음, 그리고 사십 구제가 끝날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이승에서의 삶을 함께 정리해가며, 린아는 한 뼘 더 성장한다. 그 성장의 모습은…

잘 모르겠다. 린아는 과연 이 에피소드를 통하여 어떤 성장을 이루어내었는지. 상당히 색다른 방식으로 - 비눗방울과 일곱 번의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7분에서 1분으로 줄어드는 네 인물의 만남 - 짜여진 에피소드의 전개는, 글쎄. 이 책의 제목처럼, 린아의 여름이 반짝거리는, 이야기의 처음에 거부했던 물놀이를 말미에 받아들이면서 유하의 유품 - 이자 관계의 완성 - 을 발견하는 그 반짝임을 린아의 성장과 연결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이해일 뿐이다.

왜 어른 독자가 이 이야기를 헤아리며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이 어린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른 독자는, 어린이에게 이 책을 안내하며 이 책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서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니까, 어른 독자는 독서 내내 이 책의 매시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작가의 이야기 진행을 헤아릴 수 밖에 없다. 만약에 이 책이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라면? 나는 좋은 평을 내리긴 어려울 듯 싶다.

사월이와 린아의 갈등은 너무 전형적이다. 이를 드러내고 해소하는 사건과 대화도 성글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서사의 유려함을 찾기 쉽잖다. 대화로 서사를 이어가는 것. 결국 자잘한 에피소드로 이야기의 끈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나마도 몰입하기 쉽지 않다. 특히, 린아를 설명하는 초반부의 장면이 너무 불친절하다. 생소한 환경과 원치 않는 삶의 방식에 던져진 5학년이라면, 이런 퉁명스러움과 얹짢음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 같은 시작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많은 것을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든다.

어린이들과 읽을 책으로써, 이 책이 가진 미덕은 망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을 비눗방울로 형상화한 독특한 장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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