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클리어 2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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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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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재미있어서 주말 새벽을 반납하며 단숨에 읽어갔다.

전작인 [블랙아웃]과 연결되는 책인 바, [블랙아웃] 두 권과 [올클리어] 두 권 도합 네 권은 하나의 시리즈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따라서 [올클리어] 부터 읽으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다. 책을 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책은 타임머신 패러독스의 중핵을 뚫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 그게 꽤나 성공적이라는 생각 - 어쨌든, 결말을 보기 위해 책을 동틀녘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으니 - 을 하게 된다.

이야기는 줄곧, 과거의 문을 두드리는 옥스포드의 역사학자들이 과연 역사의 복잡계에 흠집을 내는지, 역사의 복잡계는 이를 만회(혹은, 복원)하기 위해 자정작용(!)을 펼치는 것인지에 대한 대립 사이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물리학적 기술로는 타임머신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론상으로는 과거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작은 소망 - 사실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선다면 시간을 거스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은 선형적 사고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세상은 선형적이고 단일한 시간계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다 - 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타임머신 담론은 계속 인간 상상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 이야기도 그런 상상력의 나래를 이루는 타임머신 패러독스에 대한 것이며, 미래에서 찾아든 역사학자들이 과거의 인물들에게 미치는 소소한 영향이,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복잡계를 뒤흔들고 붕괴할 수 있는가를 바탕으로 짜임새 있게 네 권의 이야기 - 약 2천 페이지 - 를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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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블랙아웃]과 [올클리어]의 결말은, 타임머신 패러독스 중 주목할만한 영화인 [12 몽키즈]의 이야기 구조와 동일한 방식의 결말을 취하고 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찾아든 주인공의 행동 때문에 그 미래가 나왔다는 순환 역설. 이 책도 결국은 과거로 찾아든 역사학자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미래가 지금처럼 흘러가게 되었다는 순환 역설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결국, 미래를 알고 있기에, 과거가 결정되어 버린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의 물줄기가 미래로부터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는 이영도의 [퓨처 워커]의 이야기 구조와 같다. 시간이 과거로 거슬러 흐르지 않는 바람에,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퓨처 워커]의 패러독스도 참 마음에 들었더랬는데... 어쨌든.

코니 윌리스는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를 통하여,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독자로 하여금 홀딱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블랙아웃]과 [올클리어] 시리즈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공간적 시점에 따라 이야기를 들쑥날쑥하게 제시하면서 이야기의 모든 얼개를 순차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다. 덕택에 복잡하기도 하고, 정신도 없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이야기가 한 줄기로 연결되면서 궁금함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만... 이상하게도, 코니 윌리스의 문장에는 집중이 좀 어렵다. 번역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문장을 좀 복잡하고 정신없이 쓰는 바람에, 간혹 무언가를 놓친게 있는 것 같은 찝찝함이 남기도 한다. 그래도 코니 윌리스의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일개독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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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2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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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2]는 완결이 나지 않는다. [올 클리어]로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런 해괴한 경우를 처음 본다. [올 클리어]가 아닌, [블랙아웃 3]이라고 해야하지 않나? 어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올 클리어]를 읽을 필요가 있고, 이미 구매해 두었기 때문에 이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여하튼.

[블랙아웃]은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 중 하나이다. 코니 윌리스는 ‘화재감시인’이라는 단편을 통해 자신만의 시간여행 맥락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둠즈데이북], [개는 말할 것도 없고] 편으로 계속 이어나갔다. 그 다음이 바로 [블랙아웃]이다.

[블랙아웃]은 앞선 시리즈와 같은 흐름 하나, 다른 흐름 하나가 있다 할 수 있을 듯 싶다. 같은 흐름이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시간여행이 이루어지는 당시 시대상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작인 [둠즈데이북]에서 이런 부분이 돋보이는데, 이 책에서는 흑사병이라는 대재앙이 유럽을 휘돌아 감았던 14세기 중반의 잉글랜드 인의 삶을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테마가 ‘역사적’ 맥락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한 바, 코니 윌리스의 맥락은 흔히 굵직굵직한 사건과 인물을 중시하는 정치사적 맥락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천착하여 이를 토대로 당대의 일상사를 복원하는 것에 그 특징과 의의가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정치사를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는 역사 교육과 사고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어찌보면 이는 쉽게 당대에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근대 이후 세상의 주인공인 시민(인민)의 삶과 생각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이러한 정치사 중심의 역사 이해는 역사의 주인공이 특별한 계층, 혹은 특별힌 사람(위인)임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전근대의 일상사를 특별한 계층이 주도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정치사 중심의 역사 이해는 거칠게 말하면 전근대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랙아웃]에서도 코니 윌리스는 충실하게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인들 삶을 복원해내고 있으며, 이는 이전의 시간여행 맥락의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굉장히 진귀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물이 평단의 격찬 - SF의 홀리 그레일인 휴고/로커스/네뷸러상을 휩쓰는 - 을 받는 것에는 이러한 부분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른 흐름이란, 전작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타임 패러독스에 깊숙히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체역사물’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꿈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가정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이영도는 [퓨쳐 워커]에서 ‘시간은 미래로부터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는, 약간은 다른 관점의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습)작가는 ‘대체역사’를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코니 윌리스는 이와 다르게, 자신의 시간여행 맥락에서 ‘분기점’의 개념을 통하여, 시간여행 패러독스가 결코 허락되지 않는 -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맥락에서 대체역사는 불가능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역사학자는 당대의 상황을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는’ 제삼자적 역할에 국한하고 있다 - 맥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당대의 삶을 치밀하게 제시하여 독자와 공명하여 왔’었’다.

그런데, [블랙아웃]에서 코니 윌리스는 자신이 구축한 맥락을 뒤흔들어보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 과거가 바뀔 때 미래도 바뀔 수 있다는, 어찌보면 지금까지는 모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코니 윌리스의 세계 속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왔던 - ‘분기점’ - 맥락과 연결하여, 자신의 맥락과 독자의 맥락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환타지, 그리고 SF 장르에서만 가능한,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시도하기에는 어려운 이러한 ‘독자의 당위와 작가의 세계가 충돌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이 긴장감은 꽤 유효하게 작동하여, 일개 독자가 [블랙아웃 2]를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다만 작중 등장인물을 통하여 시간여행 패러독스에 대한 갈등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인물이 세밀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약간의 아쉬움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런던과 교외(백베리)의 삶을 짜임새있게 복원해 낸 것을 읽는 것만으로 굉장히 재미있고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이제 [올 클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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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1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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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들어 둔 시간여행의 법칙에 균열을 가하면서, 작가는 새로운 법칙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큰 얼개를 그린 듯하다. 1권까지 읽은 것으로 일단 그렇게 파악.

조금 헷갈리기는 한다. 시간여행 중인 (주로) 세 명의 역사학자 이야기가 교차하는 것까지는 수용이 되는데,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가 끼어들어, 그저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는 독자의 독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덕택에 이야기 흐름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둠즈데이북]과도, [개는 말할 것도 없도]와도 다르다. 그리고, 앞선 두 권의 사이에 놓여 있는 듯한 이 책의 방식이 더 편하긴 하다.

(그러지 않았어도 되었겠지만) 출판사는 알라딘 북펀드의 방식으로 책을 출간하였고, 덕택에 1권의 마지막에서 펀딩에 참여한 나의 이름을 발견하였다. 음. 내일부터 2권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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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허승철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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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픽션처럼 재구성한 형태로 분절하여 보여주고 있어,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여백이 도드라져 보인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그러나 때로 등장하는 ‘나는’이란 단어는, 저자가 역사의 현장을 겪었던 증인이라는 명징한 표지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로서 역사의 흐름에 동참했던 저자라서 그런지, 이야기들은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덕택에 당시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워낙 어린 시절이었던지라, 기억에 남아있는 당시의 폭풍같던 사건들이 삶에 불러 일으킨 변화를 되짚을만큼의 깊이는 없겠지만, 그 때 일어났던 일이 세계사의 대전환점이었음을 이해하는 독서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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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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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과 같은 방식으로 삽화를 이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조금 더 일상적이다.

보험, 복권, 세금, 야구, 선거 등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 속 수학 이야기를 꺼내어들고 있지만, 그러나 그 흐름을 따라가긴 쉽잖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는 수학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실전 수학에는 이런저런 수학의 영역과 범주가 분절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영역과 범주 중 핵심적인 영역에 대해서 꺼내어드는 저자의 이야기는 해당 부분을 조금 더 넓게 다루고자 하나, 너무 넓어질 경우엔 영역 바깥으로 이야기가 쉬이 흘러가버릴테니 이야기를 적정선에서 끊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적정선을 정하는데 실패한 느낌이다.

저자가 써내려가는 수학 이야기에 대해, 그래서 자꾸 몰입이 깨어진다. 뭘 말하고자 하는거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었을텐데 그것을 잘 마무리해 내지는 못한 느낌이다. 시작은 굉장히 좋았는데, 끝은...

여담이지만, ‘복잡한 세상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수학적 사고의 힘’이라는 띠지의 수식어에는 의문이 든다. 이 책은 단순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수학적 원리와 개념이 숨겨져 있다, 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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