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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2 ㅣ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9월
평점 :
[블랙아웃 2]는 완결이 나지 않는다. [올 클리어]로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런 해괴한 경우를 처음 본다. [올 클리어]가 아닌, [블랙아웃 3]이라고 해야하지 않나? 어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올 클리어]를 읽을 필요가 있고, 이미 구매해 두었기 때문에 이어서 읽기 시작하였다. 여하튼.
[블랙아웃]은 코니 윌리스의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 중 하나이다. 코니 윌리스는 ‘화재감시인’이라는 단편을 통해 자신만의 시간여행 맥락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둠즈데이북], [개는 말할 것도 없고] 편으로 계속 이어나갔다. 그 다음이 바로 [블랙아웃]이다.
[블랙아웃]은 앞선 시리즈와 같은 흐름 하나, 다른 흐름 하나가 있다 할 수 있을 듯 싶다. 같은 흐름이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시간여행이 이루어지는 당시 시대상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작인 [둠즈데이북]에서 이런 부분이 돋보이는데, 이 책에서는 흑사병이라는 대재앙이 유럽을 휘돌아 감았던 14세기 중반의 잉글랜드 인의 삶을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시간여행이라는 테마가 ‘역사적’ 맥락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한 바, 코니 윌리스의 맥락은 흔히 굵직굵직한 사건과 인물을 중시하는 정치사적 맥락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천착하여 이를 토대로 당대의 일상사를 복원하는 것에 그 특징과 의의가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정치사를 중심으로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는 역사 교육과 사고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어찌보면 이는 쉽게 당대에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근대 이후 세상의 주인공인 시민(인민)의 삶과 생각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이러한 정치사 중심의 역사 이해는 역사의 주인공이 특별한 계층, 혹은 특별힌 사람(위인)임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전근대의 일상사를 특별한 계층이 주도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정치사 중심의 역사 이해는 거칠게 말하면 전근대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블랙아웃]에서도 코니 윌리스는 충실하게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인들 삶을 복원해내고 있으며, 이는 이전의 시간여행 맥락의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굉장히 진귀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물이 평단의 격찬 - SF의 홀리 그레일인 휴고/로커스/네뷸러상을 휩쓰는 - 을 받는 것에는 이러한 부분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른 흐름이란, 전작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타임 패러독스에 깊숙히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체역사물’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꿈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가정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이영도는 [퓨쳐 워커]에서 ‘시간은 미래로부터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는, 약간은 다른 관점의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습)작가는 ‘대체역사’를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코니 윌리스는 이와 다르게, 자신의 시간여행 맥락에서 ‘분기점’의 개념을 통하여, 시간여행 패러독스가 결코 허락되지 않는 -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맥락에서 대체역사는 불가능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역사학자는 당대의 상황을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는’ 제삼자적 역할에 국한하고 있다 - 맥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당대의 삶을 치밀하게 제시하여 독자와 공명하여 왔’었’다.
그런데, [블랙아웃]에서 코니 윌리스는 자신이 구축한 맥락을 뒤흔들어보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 과거가 바뀔 때 미래도 바뀔 수 있다는, 어찌보면 지금까지는 모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 코니 윌리스의 세계 속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왔던 - ‘분기점’ - 맥락과 연결하여, 자신의 맥락과 독자의 맥락을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환타지, 그리고 SF 장르에서만 가능한,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시도하기에는 어려운 이러한 ‘독자의 당위와 작가의 세계가 충돌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이 긴장감은 꽤 유효하게 작동하여, 일개 독자가 [블랙아웃 2]를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다만 작중 등장인물을 통하여 시간여행 패러독스에 대한 갈등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인물이 세밀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약간의 아쉬움을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런던과 교외(백베리)의 삶을 짜임새있게 복원해 낸 것을 읽는 것만으로 굉장히 재미있고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이제 [올 클리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