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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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및 간략한 내용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18살이 된 순례자들은 시초지로 향한다. 그리고 1년 뒤, 순례자들은 귀환을 하지만 돌아오는 사람의 수는 떠날 때의 사람보다 늘 적다.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고 시초지에 머물기로 선택하는 것에 의아해하던 데이지는 금서 구역에서 이곳을 만든 설립자 릴리에 대해 알게 된다.

스펙트럼 외계 생명체 탐사를 위해 떠났던 할머니가 실종된 지 40년 만에 구조됐다. 할머니는 외계 지성체와 첫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를 함구했기에 허언증 환자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손녀에게만은 그들에 대해 말해줬다. 짧은 생을 사는 그들은 자신을 보호해줬고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색으로 말하던 아름다운 이들이었다고 말이다.

 

공생 가설 류드밀라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를 그리며 다섯 살 때부터 자신이 그곳에서 왔다고 말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상상이라 여겼지만, 류드밀라가 그린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행성"이라 부르는 곳을 열렬하게 사랑하게 된다. 류드밀라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가 남긴 기록과 똑같은 행성이 발견된다. 그리고 뇌 해석 연구소에서는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아기들이 류드밀라의 행성을 우리의 행성이라 하며 그립다고 말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냉동 수면 기술을 연구하던 안나는 남편과 아들을 슬렌포니아 제3행성으로 먼저 보내고 일을 마무리한 뒤 떠나려는 날, 비용 문제 때문에 운항을 중지하기로 결정된 슬렌포니아 행 마지막 우주선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안나는 100년도 더 전에 폐쇄된 우주 정거장에 자신의 낡은 우주선을 도킹해두고 가족에게 가기 위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

 

감정의 물성 어느 날부턴가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 등장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행복, 침착함, 설렘 등의 감정을 비롯해 팔릴까 의문이 드는 공포와 우울, 심지어는 분노까지 생겨나 유행처럼 번져간다.

관내분실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 보편화되어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에 죽은 자들의 영혼이 데이터로 남게 된다. 외부 자극에 반응도 하는 망자들의 재현은 가상이었지만, 누군가는 그들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기도 한다. 임신한 지민은 3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의 마인드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도서관에 찾아가지만, 여기 어딘가에 있긴 해도 찾을 수 없다는, 관내분실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터널을 통해 우주의 저편으로 넘어갈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에 발탁된 가윤은 신체 개조를 하기 전, 검진을 받다가 기록을 살펴보던 담당자로부터 전임 비행사이자 가윤이 이모라 부르던 최재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윤은 자신의 우주 영웅이었던 재경 이모가 탄 캡슐이 터널 진입도 하기 전에 폭발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담당자는 그녀가 발사 전날 대기 지역을 이탈해 도망쳤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화학을 전공한 작가의 SF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과학 소설이라 딱딱할 거라는 편견과는 달리 책표지처럼 평온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에 대해,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외계인과 수십 년을 함께 살며 서로를 이해했던 외계인 탐사원이 있었고, 냉동 수면을 반복하며 평균 수명을 훨씬 웃돌게 사는 동안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리고 생전엔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를 세상이 떠난 뒤에야 저장된 데이터로나마 찾으려고 하는 딸이 있었다.

우주에 사람을 보내고, 외계인을 만나고, 감정을 담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도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외계인 사이의 감정 교류는 지금과 같았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감정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남아있었다.

 

이런 긍정적인 면과는 다르게 어떤 단편은 인류의 나쁜 점 또한 보여주고 있었다. 배아를 개조해 완벽한 신인류를 만들어내지만, 개조되지 않아 흉터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적법한 선발 과정을 거쳐 우주에 갈 비행사를 뽑았음에도 비혼에 출산 경험이 있는, 나이 많은 동양 여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낯선 미래, 어쩌면 가까울 수도 있고 막연히 멀기만 할지도 모를 미래를 배경으로 익숙한 감정,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는 한 계속될 감정들이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성을 지닌 외계인들과도 그런 감정을 나눌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으로 본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가 떠오르던 단편도 있었다.

 

SF 소설은 대체로 국외 남성 작가들의 책만 읽어봤는데, 젊은 여성 작가의 책은 그들의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른 섬세함이 느껴졌다. 읽으면서 왠지 그리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나 외계인에 대한, 자신이 왔던 곳에 대한, 어느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따뜻함을 준 소설이었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P181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관내분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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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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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부부가 자택에서 칼에 찔려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일어난다. 부부를 살해하는 데 사용된 칼은 날이 잘려 부인의 등에 박혀 있었고 손잡이 부분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부의 신변을 조사한 결과, 근방에 세를 준 집에 집세를 직접 받으러 다녔고 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며 차용증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부부가 현금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면식범의 소행이라 보고 경찰은 수사를 시작한다.

 

베테랑 모가미 검사는 검사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오키노 검사를 보조로 두고, 노부부 살해 사건에 관한 조사 자료를 살펴보다가 어쩐지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다. 노부부에게 돈을 빌린 차용증에 쓰인 "마쓰쿠라"라는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던 모가미는 그가 23년 전 자신이 대학생 때 살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는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모가미는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는 마쓰쿠라를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마쓰쿠라에게 살해당한 유키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의 나이로 모가미가 기숙사에 살 때 공부를 봐주며 예뻐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살해됐다는 게 밝혀진 뒤,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같은 과 선배들과 슬퍼하면서 분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오키노에게 취조를 받던 마쓰쿠라가 공소시효가 끝난 당시 사건을 인정했다는 걸 알게 된 모가미는 치를 떨지만, 법으로만 범인을 처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반드시 마쓰쿠라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모가미가 그 기숙사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수사진들 중에는 없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도 합류하게 되면서 모가미는 티 나지 않게 그 경찰을 부추기며 마쓰쿠라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 데 동조하게 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비슷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일본은 조금 앞선 2010년에 폐지가 됐다.

그런데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전 사건의 범인을 이제서야 잡게 됐다면 어떨까. 최근 화성연쇄살인범이 밝혀졌지만, 이미 만료가 된 사건이라 어떻게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흥미로우면서 한편으로는 분통을 터트리며 읽었다.

 

마쓰쿠라라는 이 쓰레기가 반성의 기미를 보였다면 이 정도까지의 감정은 들지 않았을 텐데, 그는 유키 사건을 자백하면서 어린 소녀를 상대로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며 태생부터가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줬다. 이런 놈이 당시엔 끝까지 억울하다는 말을 하며 증거나 알리바이 때문에 풀려났다니 욕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사건의 아이와 관련 있던 모가미가 이 인간을 처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처음엔 그에게 혐의를 두고 주요 용의자로 몰아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진짜 범인이 나타나면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로서 해서는 안 될 짓까지 저지르고야 만다. 모가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으로 먹고사는 검사라 그 누구보다 법의 판결을 따라야만 했지만, 감정은 그렇게까지 딱 잘라낼 수 없었다.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얼마 뒤에 죽여놓고선 억울하다고 호소하다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가 공소시효 때문에 이제는 처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분통이 터질까. 돈만 있다면 킬러라도 고용했겠지 싶다.

법이 정의로워야 하는데 이런 경우를 보면 정의롭지 않다 못해 허점 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점이 있다는 걸 아는데도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억울한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었다.

 

비슷한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으니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모가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노부부 살인자와 마쓰쿠라 두 사람 모두 어떻게 해서든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결말은 답답함에 돌덩이를 더 얹어주고야 말았다. 사람의 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도 모자라 안타까움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살인자는 사람이 아니니 인권에 기초한 법이 아닌 죄 그 자체에 무게를 두는 법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미국처럼 감옥에서 몇 백 년 동안 나올 수 없는 판결을 내리던지, 아니면 어느 나라처럼 교도소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던지, 그것도 아니면 사형제도를 집행하던지 했으면 좋겠다!!!

 

너무 짜증 나고 화딱지 나는 내용이었지만 소설은 재미있었다. <불티>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

"마쓰쿠라와 누명을 쓴 보통 사람의 다른 점은 그가 과거에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게다가 시효가 성립되어 처벌을 받지 않았죠. 그래서 이 녀석이라면 죄를 뒤집어씌워도 상관없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 그게 마쓰쿠라의 약점인 것 같아요." - P385

"자네들은 손에 검 한 자루를 들고 있어. 법률이라는 검이지. 그건 아주 잘 드는 진검이야. 법치국가에서는 최강의 무기라고 봐도 돼. 조폭 두목도 그 칼끝을 보면 벌벌 떨지. 법조인은 그 검을 무기 삼아 사람을 심판하는 일을 해.
(……중략)
방심은 하지 말 것. 자네들이 의지하는 그 검이 만능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편이 좋아. 극악한 괴물을 상대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두려워만 해서는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지. 검을 든 자는 용자여야 해. 싸워야 하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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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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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나"는 그곳에서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만난다. 완치될 가능성이 없는 그 작은 아이는 세상에 그 어떤 족적도 남기지 못해 신문 부고란에조차 실리지 않을 터였다. 반면에 나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몰라야 할 만큼 모든 이가 다 아는 사람이다. 일군 사업과 가진 자산, 그리고 여태까지 모은 돈 등은 내가 성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자산과는 달리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소설의 도입부는 아들에게 인사를 하는 아빠의 편지 같은 글이었다. 아빠는 아들에게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인사 뒤에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게 누구인지는 아직 알려줄 생각이 없는지 뒤이어 등장한 내용은 다섯 살 여자아이와 회색 스웨터를 입고 언제나 서류 폴더를 들고 다니는 여자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등장한 인물들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병원과 차 사고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뜬금없이 등장한 이유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순으로 진행되지 않고 문득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설이었는데, 이런 스타일의 전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소설의 중심이 되는 내용에 점점 접근해가면서 마음속에서 뭔가가 울렁울렁하게 만들었다.

 

108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정말 짧은 단편 소설은 책에 포함된 삽화를 제외하면 훨씬 더 짧은 소설이 되겠지만, 내용은 정말 묵직했다. 화자인 아빠는 제목에 어울리는 일생일대의 거래를 앞두고 있었는데, 그 거래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건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

아내가 떠난 줄도 몰랐던 일과 아들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아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회한이 담겨있었다. 일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건 모른 척하며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후회였다. 그리고 그런 후회와 거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할 만큼 이 거래가 그에게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런 거래를 할 사람이 아닌데 선택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아빠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결정을 내린 뒤에 마지막 문장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이 글을 쓰면서도 울고 있음.)

어떻게 보면 예상할 수 있는 선택이고 다른 소설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소재인 관계에 대한 뒤늦은 후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짧은 소설로도 깊은 울림을 주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뭔지에 대해 말한다니, 프레드릭 배크만은 진정한 이야기꾼인 것 같다. 작가의 책을 어쩌다 보니 다 읽었는데, 이 소설은 정말 정말 짧지만 작가의 작품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출판된 소설이 7권뿐이긴 하지만...)

 

너무 짧은 소설이라 더 쓰면 스포일러가 되어 재미가 없어지니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진짜 좋았고 감동적이었던 소설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꾸는 건 못 해.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꾸는 거라면 모를까." - P31

나는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너를 강하게 키우려고 했는데. 너는 다정한 아이로 자랐으니.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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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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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기아안나"라는 작은 마을 근처 만에서 화재가 일어난다. 관광객을 태운 배에 불이 난 것이었다. 언덕 위, 자신의 식당에서 화재를 목격한 안드레아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지만, 언덕을 올라온 관광객들의 반응으로 화재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슬퍼한다. 그 배의 주인이 어릴 때부터 봐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불이 난 것을 보고 놀란 관광객들은 안드레아스의 가게에 머물게 된다. 미국에서 온 토머스, 독일인 엘자, 아일랜드에서 온 피오나와 남자친구 셰인, 그리고 잉글랜드 출신의 데이비드였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그들은 안드레아스를 위로하며 그가 내온 요리를 먹으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안드레아스는 이 사건이 다른 나라에도 전해졌을지도 모르니 고향에서 걱정할 가족, 친구들에게 연락하라며 전화를 써도 좋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각자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왔는지 선뜻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으로 소설은 시작되었다. 작은 그리스 식당의 주인인 안드레아스의 슬픔에서 이 아름다운 마을의 비극에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네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만큼 각자의 사정도 다양했지만, 복잡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같았다.

우선 이곳에 살고 있는 안드레아스는 9년 전 자신과 싸우고 시카고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고집스러움이 닮았는지 안드레아스와 그의 아들은 서로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아내와 이혼 후, 사랑하는 아들이 엄마의 새 남편과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을 떠나 이 먼 곳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엘자는 사랑하는 남자가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독일을 떠났다. 피오나는 부모님과 친구 모두 셰인을 싫어하고 헤어졌으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무작정 그와 여행을 떠나 어느 곳에든 둘이 자리를 잡기를 바라고 있다. 데이비드는 가업을 잇길 바라는 사업가 아버지에게서 무작정 떠나왔다.

얼마간 그 마을에 머물면서 관광객들과 안드레아스, 그리고 마을에 일어나는 온갖 일에 도움을 주는 보니가 친구가 되면서 각자가 도망치고 있었던 문제점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조언을 해줬고, 때로는 냉정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이들의 고민, 걱정거리는 서로 묘하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문제와 자신의 문제는 다르다고 여겼다.

외아들인 자신에게 사업을 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아버지를 답답해하던 데이비드는 안드레아스 같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드레아스가 아들과 싸운 이유가 데이비드의 사연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재혼한 전처와 아들에 대한 복잡한 사연이 있던 토머스는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아들까지 빼앗겨 늘 아이를 그리워했던 보니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와 자신의 문제는 다른 것이라며 말이다. 엘자와 피오나도 조금은 겹치는 감정이 있었고, 엘자는 보니에게 고민을 말했다가 말다툼을 조금 하기도 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상대방은 경험하지 못했고 상황이 다르니 해결책도 다르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비슷한 문제라고 생각해 방법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줘도 딱히 듣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다. 혜안을 가진 보니가 그 역할에 가장 큰일을 해줬다.

 

등장인물 중 가장 답답했던 사람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싹수가 훤히 보였던 셰인만을 사랑하던 피오나였다. 삐딱하고 부정적이고 심지어 염치까지 없던 셰인은 임신했다고 말하는 피오나를 때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아테네로 추방되었다. 안타깝게 유산한 피오나는 셰인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거라 했지만, 그는 아테네에서 마약을 팔다가 붙잡혀 보석금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녀에게 연락을 하려 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피오나를 말려도 듣지를 않았다. 고향에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고, 그것 때문에 도망쳐왔으니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씌어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다. 그것도 자기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런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니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그 사람을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는데, 피오나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인지 그런 게 전혀 보이질 않았나 보다. 그래도 마지막엔 그 나쁜 놈과 완전히 끝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감정을 나누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아 마음이 좀 상하기도 하고 섭섭해질 때도 있었지만,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엔 미안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게 참 신기했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포근한 이야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에게 감정이 언제 생겼나 조금 의아했고 문제가 딱히 해결되지 않은 몇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일단은 해피엔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인 그리스가 배경이라 마을을 상상하며 읽으니 좋았다.

"우리의 행운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거죠." - P307

"우리는 각기 다른 네 나라에서 왔어요. 독일, 잉글랜드, 아일랜드, 미국요.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떠날 때는 모두 그 기억을 가지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갈 거예요."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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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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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 센스 만점의 그림으로 재미와 감동을 모두 주었던 키크니 작가님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에 이어 최근 출판된 두 번째 책을 읽었다. SNS를 통해 주문을 받아서 그림을 그렸던 지난번 책과는 달리 이번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4컷 그림과 글이 담긴 책은 작가 특유의 개그 코드가 많아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편한 복장, 때로는 후줄근한 복장에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기도 하는 프리랜서라 오해를 많이 받기도 하는 부분이 웃겼다. 편의점에서 백수 취급을 받기도 하고, 대기업 작업 미팅이라 나름 잘 차려입고 갔는데 역시나 좀 후줄근했다던 곤란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키크니라고 알리지 않아서 별로 하는 일 없이 집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던 부분도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됐다. 나도 주변에서 블로그 하는지 아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고 블로그 주소까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둘뿐이니 말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거리감을 두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작가님처럼 내 글을 본다고 하면 오글거려서 알려주기 민망스럽다.

 

저번에 읽은 책에서 눈치챘지만, 아무래도 작가님은 치킨을 아주 잘 알고 계신 것 같다. 또래오래 갈릭반 핫양념반이 여기서 또 나와서 확신을 했다. 나도 애정하는 치킨 조합인데 못 먹은 지 꽤 됐네. 먹고 싶다.

 

키가 커서 "키크니"라는 필명을 쓰고 계신 작가님은 무려 188센티미터의 장신에 살도 잘 찌는 체질이라고 한다. 근데 먹는 걸 좋아해서 금방 몸이 불어난다고. 심지어 태어났을 때는 5.3킬로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말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에 내가 눈물이 다 나네.

아무튼 그래서 먹는 얘기가 몇 번 나오는데 점심 먹으면서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는 거 왜 이리 공감이 되던지. 돼지들의 돼지런한 하루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개그는 아재개그라고 취급했을 텐데 웃기는 걸 보니 아재의 나이가 됐나 보다. 월세 까까에 상평통보 읽으면서 빵 터져버렸다. 이런 개그 정말 좋아!

본인이 올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웃기고, 제주도 행 비행기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한 말도 너무 웃겼다.

 

그런가 하면 가족분들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특히 아버지는 짧게 등장한 4컷 그림에서보다 실제론 더 유쾌하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2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형제지만 역시 형은 무섭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초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내 동생에겐 누나의 무서움 따윈 없는데.. 부럽다.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뭉클하게 했다. 글과 그림에 다 표현하지 못했을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작가님의 일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프리랜서도 직장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든 일은 모두에게 있었다. 사람에 치이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도, 의뢰를 받아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에게도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힘듦은 모두에게 존재했다.

결론은 우리 모두 힘내자는 이야기.

 

 

 

 

 

책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었던 삶의 이야기였다. 일상다반사 아니고 일상 다 반사! 해버리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떤 부분은 공감되기도 해서 맞아맞아 하며 끄덕거렸고 뜨끔하기도, 때로는 뭉클하기도 했다.

센스 넘치는 개그와 말장난, 그리고 일상마저도 코믹했던 책이었다. 작가님은 왠지 살면서 재미있던 일이 많았을 것 같아서 가끔 이런 일상 코믹 시리즈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리뷰는 샘터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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