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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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미술에 관한 책을 종종 읽게 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겠다고 결심한 이후 유독 미술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는데, 대부분이 서양 미술에 관한 것이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예술가에 관한 내용이나 그림 속에 숨겨진 이야기 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알게 됐다. 서양 미술에 관한 책만 읽은 내 입장에서는 학창 시절에 배웠기에 익숙하지만 관심을 기울인 적은 없어서 느낌상 처음 접하는 분야의 책이었다.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서민들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풍속화와 궁궐 내의 공공 행사 기록이 담긴 기록화로 나누어 이야기했다.



학교 다닐 때 미술이나 국사 시간에 배웠던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은 익숙했지만 설명을 통해 당시 서민의 생활을 조금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시험 과목으로만 미술을 배울 때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저자가 그림을 세세하게 설명을 해준 덕분에 알게 되기도 했다. 당시 절에 시주를 많이 해주던 이들이 부인들이나 기녀들이었다던지, 우리에게 익숙한 신윤복의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라든지 하는 것들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그림을 따라 그리던 시절과는 다르게 같은 스타일이지만 우리나라만의 그림으로 바뀐 것들 또한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 됐다.

궁중기록화는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는 행사를 담고 있었다. 기로소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의 문신이 들어가는 모임이라고 하는데, 왕은 신하들과는 다르게 60세가 되었을 때 기로소에 들어갔다고 한다. 왕이 친히 참석한 행사였으나 왕을 그려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그림 속에는 모습이 담기지 않았다. 다만 임금이 어느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는 그림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숙종 때의 '기해기사첩'과 영조 때의 '기사경회첩'인 기로소 그림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숭정전 뜰 박석 크기를 통해 융통성 있게 그린 숙종 때의 화원들과 보이는 그대로 그린 영조 때의 화원들이 그림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숙종 때의 화원은 작은 그림임에도 기로신들의 녹포단령의 자수를 그린 반면에 영조 때의 화원은 녹포단령의 자수를 생략했다. 이 부분이 문화의 변화라고 여겼다.



​​​​​​​언제나처럼 책을 통해 몰랐던 부분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서양 미술에 관한 책만 읽은 내게 조선 미술에 대한 이 책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줬다. 우리의 옛 문화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다. 이런 책이 있다면 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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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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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야기 진아는 빈티지 옷 가게에서 여는 영화 상영회에 갔다가 천희를 만났다. 그 이후로 천희와 가까워진 진아는 그에 대해 알아가며 좋아하는 마음을 홀로 키워나갔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 천희는 여자친구가 있는 일본에 가서 옷 가게를 낼 거라고 하며, 진아에게 파를 심은 화분을 이별 선물로 건넸다. 평소에도 묘한 느낌이 있는 천희 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슬퍼하는 진아를 향해 파가 말을 했다.
나주에 대하여 단이는 입사 전부터 나주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주가 자신의 연인인 규희의 전 여자친구라는 걸 알게 된 이후 그녀의 SNS를 염탐해왔기 때문이다. 나주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단이는 회사에서는 그런 것들을 모른 척하며 그녀를 대했다. 처음엔 호기심에 시작했던 나주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시에 단이는 나주에게 규희에 관해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꿈과 요리
대학 시절에는 그리 가깝지 않았던, 오히려 서로를 피해 다녔던 수언과 솔지는 사회인이 되어서야 친구가 됐다. 요리를 좋아하는 솔지는 수언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맛있는 걸 먹기도 하는 등 우정을 쌓아나갔다. 그러다 수언이 하고 싶었던 일을 마침내 하게 됐을 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던 앙금이 폭발하고 말았다.
근육의 모양
재인은 해보지 못한 것들을 했을 때 자신에게 무언가가 남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별도, 파혼도 그래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이번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재인을 가르치는 필라테스 강사 은영은 대기업에 다니다 사람으로 인해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고 직업을 바꿨다.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려고 했는데, 은영은 여전히 사람을 향해 관심을 기울인다.

척출기
영은은 귀에 중이염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본 결과 진주종이라는 병으로 밝혀져 수술을 앞두고 있다. 그러던 중 영은은 대학 친구를 통해 주현을 알게 됐다. 수술로 인해 준비하던 시험도 그만두고, 일도 하지 못하게 된 영은에게 주현은 마음의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영은이 그에게 고백을 하면서 주현 역시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지만, 두 사람에겐 각자의 아픔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다.
정체기
포럼에서 만난 은주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여자친구의 전 여자친구가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하는 문자를 얼떨결에 본 이후 그게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유진은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쉬운 마음
송화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회사에서는 밝히지 않았다. 어릴 때 몇 번 충동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회사 후배 현정에게 눈길을 빼앗긴다. 회사에서 누군가와 몰래 사귀었다가 헤어진 현정은 아무리 봐도 이성애자였기에 송화는 자신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다잡았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 현정이 부쩍 자신을 따르며 친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침묵의 사자
어느 날부턴가 지영에게 사자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자는 그녀의 아프고 추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 그러자 지영은 이혼 후에 영국으로 떠난 지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혼 후 떠나고 싶어 하는 지은의 마음보다 자신을 여기에 두고 혼자 멀리 가는 원망이 더 짙었다. 자신에게 왜 사자가 찾아왔는지 깨닫게 된 지영은 그래서 그때의 지은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그러면서 지영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에 대해 직접 대면하려고 행동에 옮겼다.



김화진 작가의 소설집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생긴 감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기도 했던 이야기들이다.

8편의 단편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근육의 모양>과 표제작인 <나주에 대하여>였다.

<근육의 모양>에는 재인과 은영이라는 두 여성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필라테스 강사와 회원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접점이나 대화는 오로지 필라테스 강의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이 상대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재인은 남들이 보기에 부정적인 것들도 경험이라 플러스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이별이나 절교, 심지어는 파혼까지도 말이다. 재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헤아릴 수 없었지만, 그런 단편적인 면을 봤을 때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건강하다고 느껴졌다. 은영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니는 와중에 상사로 인해 너무나 감정 소모가 심해 그만두고 필라테스 강사가 된 사람이었다. 은영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재인에 비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깊지 않아서 타인에게 조금은 휘둘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적으로 누군가에게 조금은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이 필라테스 강사와 회원으로 만나면서 필라테스를 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표정이나 행동 등을 통해 조금씩 마음이 기울어져 갔다. 낯선 타인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도 뭔가 인간적인 끌림을 느낀다는 게 조금은 공감이 되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주에 대하여>는 초반에 느낀 감정과 중반 이후에 무언가가 밝혀진 이후에 느낀 감정이 사뭇 달라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남겼다. SNS로 염탐하던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인 나주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긴 했다. 아무리 남자친구가 한 말이 있다고 해도 그건 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 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달라진 건 중반 이후 비밀이라고 할만한 게 밝혀지면서 단이를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단이에게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그날에 관해 나주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테니 조금은 심술궂은 마음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예의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려줘야 한다는 마음도 존재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넌지시 건넨 말은 나주가 알아채기에 충분했나 보다. 이후로 나주가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묘했던 건 나주를 향한 단이의 감정이었다. 분명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였을 뿐인데, 단이에겐 나주가 어느새 가까워지고 싶은 회사 동료 내지는 그 이상인 친구까지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복잡해서 스스로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이를 이해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새 이야기>와 <침묵의 사자>는 뭔가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척출기>는 나름 놀라운 비밀이 밝혀졌는데, 그 끝을 생각하면 아픔이라는 게 누군가와의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끝내버리는 거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쉬운 마음>은 뭔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 이야기였다.

짧은 이야기들이 담긴 단편집은 내가 좋아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마음을 기울이며 읽었다.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따라서 싫었다 좋았다 하게 돼.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근육의 모양> - P132.133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인은 속으로 ‘해본 것‘ 리스트에서 유독 도드라진 단어들을 읊었다. 독립, 절교, 파혼, 끊어진 관계들의 기록을. 그리고 생각했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근육의 모양> - P150

너는 너만 그렇게 현명하고, 그래서 남이 들어오고 들어오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도 알고 있고, 그걸 나만 모른다고 생각하지. 나만 너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네가 아무리 가까이 와도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더 깊이 너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사이란 건 그 선을 조정해가며 우리 둘이 만들어가는 걸 텐데 너는 이미 선이 있고 항상 단호하고 나는 선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 <나주에 대하여> - P64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서, 가끔 너무 무섭지 않니? <척출기>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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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100쇄 기념 특별판)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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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제스는 할아버지 걱정에 마음이 심란하다. 수영을 좋아하는 제스를 따라 수영장에 와서 손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 몸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걸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는 가족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며 퇴원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엄마, 아빠와 제스가 말려도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할아버지의 고집을 아무도 말리지 못해 예정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60년 전에 할아버지가 떠났던 고향이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리버보이'라고 처음으로 이름 붙인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기에 그림을 완성하는 건 요원해 보였다. 그래도 제스는 할아버지의 바람을 이뤄드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런 와중에 제스는 근처에 수영하기 좋은 강을 발견한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을 때 혼자 수영을 하던 그녀는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을 받는다. 머무는 오두막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산책을 했던 날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을 본 이후 그 시선의 주인공임을 직감한다.



청소년인 제스의 시선으로 진행된 소설은 그녀 자신보다는 할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그 시기의 청소년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만큼 제스에게는 가족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고, 할아버지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은 덕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날로 쇠약해져가는 할아버지의 고집만큼은 꺾을 수 없었던 터라 오래전 떠나온 곳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향을 향해 가는 연어처럼 할아버지는 꼭 그곳에 가야만 했고, 처음으로 이름 붙인 그림을 완성해야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손에 붓을 쥘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제스가 있었던 덕분에 할아버지는 느리지만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제스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한 건 이름 모를 소년인 리버보이였다. 덥수룩한 머리칼에 늘 검은 반바지를 입고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리버보이가 누군지는 등장과 동시에 눈치챌 수 있었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그렇게 연관 짓지 않았을 테지만, 할아버지의 그림과 소년으로 인해 판타지가 섞인 소설이라는 걸 예상한 덕분이었다.

이렇게 초반부터 예상되는 부분이 있었던 소설은 영원한 이별로 향해 가고 있었다. 예감했던 부분이었기에 깊은 슬픔을 느끼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부분은 안타깝게 다가왔다. 작별 인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인사는 이 소설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같지만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으로 인해 제스는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고, 상대방 역시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었을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고, 특히나 어린 나이에는 그게 더욱 어려운 일인데 이 소설에서는 판타지를 섞어 잔잔하지만 진심을 담은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이별이 그렇게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

그녀는 훗날 사건을 곰곰이 되짚어보면서, 리버보이가 항상 자신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에 품은 절실한 꿈처럼, 리버보이 역시 언제나 그녀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 P9

이 그림은 할아버지에게 무척 특별한 의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림을 보면 볼수록 제스에게도 이 그림이 점점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림에는 있지도 않는 소년의 존재감이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존재감은 모든 것을, 강 둔치와 하늘과 심지어 강 전체를 압도했고, 그녀를 그림 속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바다 쪽으로 이끌었다. - P31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것을 만나든 간에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알고 있니?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 P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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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니타 프로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시멜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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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몰리 그레이는 5성급 호텔 리전시 그랜드에서 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손님이 지나간 자리를 체계적으로 말끔하게 청소한 뒤에 깨끗해진 방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메이드라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조금은 어려웠기에 호텔 직원들은 뒤에서 그녀를 놀리며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가 버린 몰리를 키워주고 사랑해 주신 할머니가 곁에 있어서 몰리는 괜찮았으나 돌아가신 뒤에 혼자가 되어 외로움을 느끼게 됐다. 그래도 직원들 중 주방 설거지 담당인 후안 마누엘과 바텐더 로드니가 있었기에 괜찮았다. 그리고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위트룸의 단골 고객인 블랙 씨가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블랙 씨의 두 번째 부인인 지젤은 어딜 갔는지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몰리는 놀라서 기절을 했다가 깨어났을 때 프런트에 전화를 했고, 곧바로 매니저 스노우 씨와 구급 대원, 경찰 등이 나타나 수습을 했다. 몰리는 블랙 씨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리는 블랙 씨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는데...




몰리는 체계적인 것, 눈에 명확히 보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메이드라는 직업이 몰리에겐 천직이나 다름없는 듯했다. 쌓인 먼지나 버리고 간 쓰레기, 손님이 남긴 지문 등과 같은 것들은 눈에 확연히 보여서 깨끗하게, 흔적도 없이 치울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몰리가 하는 일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었기에 더없이 잘 해낼 수 있었다.
반면에 몰리는 누군가와의 대화나 몸짓, 표정 등을 읽어내는 기술이 많이 부족했다. 비꼬는 말을 꼬아서 듣지 못했고, 비웃음 또한 웃는 거라 여겼을 정도였다. 말에 뼈를 담은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조금은 문제가 있던 셈이었다. 그런 모습은 몰리가 순수하다는 반증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꼬인 이들은 뒤에서 그녀를 비웃었다. 그중에 단연 앞장선 캐릭터는 수석 메이드 셰릴이었다. 정말이지 나쁜 사람들이라 몰리가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몰리는 스위트룸에서 죽은 채 발견된 블랙 씨를 살해한 용의자로 몰리게 됐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잘한 일들이 벌어져 조바심이 나게 만들었는데, 결국엔 그 사달이 나고야 만 것이었다.
몰리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할머니는 9개월 전에 돌아가셔서 그녀에게 남은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게 어려웠던 몰리에게 친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블랙 씨의 부인인 지젤이 몰리를 친구로 여기며 아껴줬지만, 이런 상황에 지젤과 친하다고 경찰에 말했다간 그녀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몰리는 알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다행히 몰리의 선함을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머니의 친구이자 호텔 도어맨인 프레스턴 씨는 몰리를 전적으로 믿으며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프레스턴 씨 덕분에 그녀의 딸이자 변호사인 샬럿이 몰리의 편이 되어주었다. 또한 다정한 후안 마누엘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착한 몰리를 위해 앞에 나서기까지 했다. 몰리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해도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다는 걸 알아본 선한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용의자로 구속되긴 했어도 일단은 보석금으로 풀려난 몰리는 진짜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야 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선하게 살아온 몰리가 블랙 씨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한 연극을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그녀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뒤였던 터라 맡은 임무를 충실히 잘 해냈다. 여태껏 몰리가 쌓아온 성격 덕분에 상대방이 금세 속아넘어가기도 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진짜 범인을 찾은 뒤에 모든 게 잘 해결된 거라 여겼는데, 마지막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비밀이 밝혀져 놀라움을 안겼다.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반전이었기에 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과응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몰리가 선택한 결정도 조금은 놀라웠다.

차별과 편견에 맞서서 나쁜 이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는 선택을 한 몰리의 앞날은 이제 조금은 더 행복하고 덜 외로워질 것 같다. 그녀의 진가를 알아봐 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또 안심이 된다.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책만큼이나 영화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

당신이 남긴 먼지와 때는 진공청소기의 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깨끗하게 닦은 거울은 당신에게 자신의 해맑은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은 마치 아무도 머무른 적이 없는 듯하다. 당신의 오물과 거짓, 기만이 모두 지워진 듯하다.
나는 당신의 메이드다.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당신은 나에 대해 뭘 아는가? - P6.7

그녀에게서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느껴진다. 전에도 이런 태도를 본 적이 있다. 자기들은 쉽게 이해하는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날 바보 천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218

"가끔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나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어. 세상은 사람들 생각처럼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아. 특히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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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 미사키 요스케의 귀환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6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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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가이 후히토라는 남자가 어느 유치원에 침입해 유치원생 3명과 교사 2명을 살해하고 도망쳤다. 고테가와 가즈야와 와타세 형사가 렌터카를 타고 도주 중인 용의자를 붙잡기 위해 애를 쓰는 와중에 본부에서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해 알려줬다. 용의자 센가이의 특이사항으로는 마약 소지 혐의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로 인해 고테가와는 벌써부터 용의자가 심신 상실을 이유로 처벌을 받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을 한다. 다행히 용의자를 발견해 붙잡았는데, 센가이는 두 형사에게 붙잡히기 직전에도 마약을 하고 있었다.

극악무도한 범인은 바로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청사 내에서도 유난히 출세욕이 두드러지는 아모 다카하루가 센가이 사건을 맡게 된다. 그는 법으로 죄를 처벌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인지라 센가이의 잔인한 범죄 사실이 속을 끓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피의자 소환 조사 때는 냉철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센가이를 조사하는 와중에 졸음이 쏟아졌다. 사무관인 우가 마사미 또한 이상함을 느꼈는지 화장실로 향했고, 아모는 곧바로 쓰러지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무렵 집무실 바깥에 대기 중이던 경찰이 총소리가 났다며 들어와 아모를 깨웠다. 놀랍게도 센가이는 가슴에 총상을 입고 즉사했고, 아모의 눈앞에 권총이 놓여있었다. 그 즉시 아모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검사로 언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됐다.
졸지에 범죄자가 된 아모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밀실에 가까웠던 집무실 내에 두 사람뿐이었고, 과학 증거 역시 아모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 소설은 <다시 한번 베토벤> 이후 10년 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사키 요스케는 그동안 콩쿠르에 참석했고, 폴란드에서의 사건으로 유명해져 세계 투어를 다니게 됐다. 그리고 미사키가 연수원 시절에 친하게 지내며 그가 음악의 길을 걷도록 얼떨결에 도운 아모 다카하루는 검사가 됐다. 미사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검사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아모는 하루아침에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자신이 아무리 아니라고 결백을 주장해도 증거는 아모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아모의 모습은 마약을 한 뒤에 5명을 죽인 센가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에서 모순적으로만 느껴졌다.
검사가 청사 내에서 용의자를 죽였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아모의 사건을 미사키 교헤이가 맡는다. 미사키 요스케의 아버지인 엘리트 검사였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미사키가 아모와 약속한 게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리라는 건 당연했고, 그로 인해 이번 소설에서 아버지와 어떤 모습으로 대립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됐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있던 아모 앞에 미사키가 기적적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사건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센가이가 유치원에서 벌인 살인과 아모가 검찰 조사 도중 그를 죽였다고 하는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 시작하면서 오래전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사건에는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개입되어 있었는데, 허망한 죽음으로 복수의 칼을 갈던 이들의 존재가 마지막에서야 드러나 역시,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를 죽인 건 너무 끔찍한 짓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할지라도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죽인 건 천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면서 소설은 심신 상실이라는 상태에 대해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 소설에서는 마약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술을 마시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심신 미약을 이유로 주취감형을 해주는 걸 예사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대체 왜 그딴 제도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읽는 동안 남의 나라 얘기로만 보이지 않아서 분노가 치밀었다. 다른 소설을 읽을 때도 생각했었는데, 일본이나 우리나라 법체계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두 나라 모두 반드시 개선해야 될 부분이다.

아무튼, 아모를 돕는 사람은 미사키 요스케에서 시작되었는데, 이후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작가인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속 캐릭터들이라고 한다. 작가의 소설은 이 시리즈만 읽었기에 캐릭터들을 찾아봤는데, 잠깐 등장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 해당 주인공들의 시리즈도 모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는 음악에 대한 표현이 아주 짧게 등장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그 아쉬운 마음을 미사키 요스케가 법정에서 아모를 변호하는 멋진 모습으로 대신 채워주었다. 피아노 천재에다가 대리지만 변호사로서의 모습도 완벽해서 너무나 멋진 주인공이다.
이번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다.

"아모 씨가 그러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내가 피고인이 되면 도우러 와 달라고요.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 P144

"방법과 기회, 동기. 그로부터 도출된 용의자, 그리고 자백. 일련의 화음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면 그건 어딘가에 불협화음이 잠재돼 있다는 뜻이에요." - P153

"뭐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중요합니다만 그 이상으로 놈을 죽이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면 제 손으로요. 그러지 못하니 검찰과 법원에 역할을 넘긴 거죠. 하지만 그놈이 유치원을 습격했을 때 심신 상실 상태였다면 놈을 벌하지 못할 거라고 누군가가 알려 주더군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사람을 다섯 명이나 죽인 인간쓰레기가 무죄라뇨. 정말로 그런 판결이 나온다면 누가 그런 엉망진창인 법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 P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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