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시블
제임스 롤린스 지음, 황성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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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포르투갈, 코임브라 대학.
'부르샤스 인터내셔널' 창립 멤버 다섯 여성이 대학 도서관에 모였다. 마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들은 젊은 여성 과학자들이 분야에 진출하도록 후원하고 돕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한데 모인 이유는 21살의 천재 마라 실비에라가 만든 인공 지능 장치 '제네스'를 가동해 보기 위함이었다. 마라는 직접 이곳에 참석해야 했지만, 아쉽게도 영상으로 자리를 대신했다.
막 제네스를 가동하려는 찰나 검은색 로브를 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다섯 명을 모두 살해했다. 남자들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카메라를 가린 마라는 그녀들이 살해되는 걸 목격했고, 이내 위험을 깨닫고 제네스를 가지고 도망을 쳤다.

12월 24일. 미국, 메릴랜드.
그레이와 멍크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네 명의 여자들을 집에 두고 바에서 술을 마시다 들어가는 길이었다. 그레이의 집에 다다랐을 무렵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총을 꺼내들었다. 2층으로 뛰어 올라간 멍크는 자신의 두 딸 페니와 해리엇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또한 그레이의 임신한 여자친구인 세이챈도 사라졌다. 멍크의 아내 캣은 주방에서 발견되었는데, 뒤통수를 가격 당해 의식이 없었고 몸 여기저기에도 상처가 나 있었다.
두 사람은 소속 기관인 DARPA 산하 시그마 포스의 국장 페인터에게 연락을 취했다. 페인터는 캣을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했고, 그레이에겐 본부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본부로 향한 그레이는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는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병원으로 이송된 캣의 곁을 지키던 멍크는 누가 공격을 했는지, 세이챈과 딸들을 납치한 게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최신 뇌 스캐너를 이용해 의식이 없는 아내에게 질문을 하는 시술을 허락한다.



소설은 1611년에 일어난 사건을 프롤로그로 보여주며 앞으로 일어날 일과 연관 지었다. 마녀재판이 한창이던 때에 일어난 사건 직후 현재로 넘어와 포르투갈의 도서관의 부르샤스 모임에서 일어난 비극이 일어났다. 마녀와 마녀를 처벌하는 재판소가 현재에 이르러 인공 지능과 연결된 싸움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여기에 시그마 포스 요원인 그레이와 멍크의 연인, 아내, 딸들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고통받음으로써 앞서 일어난 사건과의 연관성을 보여줬다. 마녀들을 처벌하는 집단인 '크루시블'은 제네스를 탈취해 뜻하는 바를 이루고자 했다. 그런가 하면 세이챈과 캣, 두 딸을 습격한 길드 역시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제네스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한편 제네스를 만든 마라는 어떻게든 그걸 지켜내고자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네스 안에서 살아가는 '이브'가 스스로 학습하여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망치는 와중에 많은 걸 가르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 그녀를 부르샤스의 멤버 샬럿의 딸인 칼리가 도왔다.

이렇게 여러 패거리들로 이루어진 소설은 각각의 입장을 시시각각 보여주며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게 했다. 초반에는 범인의 윤곽을 잡는 것조차 너무 어렵기만 했다. 그레이 일행과 마라 일행이 만나 손을 합치게 됐고, 크루시블에 대항하는 비밀 단체인 '라 클라브' 소속의 인물들이 나타나 그들을 도왔다. 그러는 한편으로 크루시블 소속인 토도르와 길드의 발야가 각기 등장해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다 캣의 뇌에 연결한 장치로 인해 '감금 증후군'인 그녀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습이 믿기 어려웠는데, 실제로 있는 시술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마라의 이브가 스스로 학습하고 뭔가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신비롭기만 했다.

두꺼운 분량의 책이니만큼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고, 추적과 도망, 거기에 뒤통수를 치는 반전까지 이어졌다. 또한 악의 무리들이 제네스를 복제해 세상을 파괴하려는 시도까지 이어져서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레이와 세이챈은 물론이고, 멍크와 캣, 두 딸들도 행복했으며, 마라 역시 염원하던 결말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브 또한 행복을 찾은 게 다행이었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긴 소설이지만 리뷰를 쓰기에는 너무 방대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설명하기엔 부족해서 간결하게 쓴 것이기도 하다. 물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설명이 길어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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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스의 창조물.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그 순간에 태어나 끔찍한 60초 동안 존재하면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침묵 속에서 목격했다. 그것은 피와 죽음 속에서 태어났다. - P67

그레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종말을 스스로 창조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 P90

누군가가 타락한 이브가 담긴 또 다른 장치를 소유하고 있어요. 그 이브가 풀려난다면, 더 나쁘게는 밖으로 탈출한다면, 이 이브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 거예요.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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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1992
조장호 지음 / 해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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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3살 소년 양형식은 엄마를 잃었다.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아빠를 잃은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엄마를 본 이웃집 아줌마가 교회에 데리고 간 이후 형식에게 엄마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다. 거기다 엄마는 휴거에 빠져서 교회에만 매달렸고,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나지 않게 되자 목을 매 자살을 했다.

현재.
형식은 경찰이 되어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두운 과거가 상흔으로 새겨져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새로 맡게 된 사건은 묻어버린 과거를 다시 파헤치는 것이었다.
1년 전 실종됐던 한 소년이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걸려온 위치를 추적한 결과 교외의 산속으로 밝혀져 최진혁 형사와 윤지원 형사가 찾아갔다.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을 때 웬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100구가 넘는 시체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화를 건 소년이 그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걸 발견한다.



어렸을 때 휴거 사건이 큰 이슈였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로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좀 어렸을 때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종교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지냈기 때문에 몰랐던 것 같다. 뉴스를 챙겨 볼 나이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소설은 휴거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과거를 묻은 형사인 형식이 다시금 비슷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또한 나쁜 놈들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열혈 형사 진혁과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형사 지원도 주요 캐릭터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사라진 중학생 민재가 1년 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서부터였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부모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민재가 사라진 이후 매일 지옥을 살았던 엄마는 아들을 어떻게든 다시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경찰서로 달려갔다. 마침 연락을 받은 진혁과 지원이 현장으로 출동했는데, 형사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지만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건 비단 진혁과 지원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냉철한 수사과장인 형식은 물론이고 수사 1팀 팀장인 오주연, 심지어는 서장 이치도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00구의 시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재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말을 잃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시체들 사이에서 숨이 붙어 있는 이혁세를 찾아내 수술을 했고,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입을 통해 전해 듣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설은 사이비 종교를 중심으로 흘러갈 거라 예상했다. 제목에 휴거라는 단어가 들어갔기에 다시금 휴거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모든 걸 꾸몄을 거라 여겼다.

그러다 점차 소설은 범죄에 오컬트 분위기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이혁세는 금고털이범으로 전과 7범이었는데, 처음에 그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척하다가 그들이 유명 인사들과 부유층에게 거둔 헌금을 찾아내 도망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을 도모한 동료가 어느새 그들의 교리에 빠져들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과정을 이혁세가 형사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이어지던 한편,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민재는 자신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엄마에게 죽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나중엔 상처를 내기도 했다. 마치 민재의 몸에 악마라도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목격자 중 한 명은 뭐에 씐 듯하고, 다른 한 명은 중심부에서 조금은 벗어나 맴맴 도는 기분이었다.
이 사이에 형사들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파헤쳤다. 그러다 마침내 형식의 과거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 그는 평소의 냉철함을 잃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이어진 소설은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든 게 누구이고,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계획한 건 누구인지 밝혀졌다. 결국 종교가 사람을 미치게 하고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어쩌면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헌금을 훔쳐 달아나려는 범죄를 계획한 이혁세 일당도 그렇고, 사이비 종교에 맹목적으로 빠져든 사람도,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임창도 목사나 모든 걸 계획한 진짜 범인, 그리고 에필로그의 인물까지 병든 마음으로 인해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상황을 비극으로 몰아갔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 그런 부분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긴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결말이 조금 찝찝하게 끝나서 개운하지가 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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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에 온 사람들 중 행복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휩싸여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도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믿고 싶었을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믿었을 것이다. 거짓임을 알지만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그것을 믿고 싶었으리라. 믿지 못한다면 냉정하고 생생한 진실에 직면해 고통과 마주해야 하니, 그보다는 위안을 주는 거짓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기대고 믿을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 P86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감내해야 했다. 무섭다.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아니, 이분이라면 알 것도 같다. 내 고통. 내 아픔. 그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믿고 싶다. 그리고 어디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분이 내게로 오셨다.‘ - P28.29

그 사람들 중 나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절박할 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금세 쓰러져 버릴 것만 같던 사람들. 남들보다 마음이 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 싸우지 못했을 뿐이었다. 고통을 받아들어야 했다. 죽을 것 같지만, 견딜 수 없을 것 같지만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거짓 믿음 속으로 도망갔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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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기술자
토니 파슨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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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88년.
어딘지 알 수 없는 지하실에서 한 여자가 일곱 소년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 폭행을 당해 피를 흘렸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웠지만, 그녀는 살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지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마침 소년들이 대마초를 피우느라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기에 지금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지하실을 기어 나가려던 그녀를 일부러 두고 본 듯 이내 소년들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어떤 소년은 그녀에게 다가와 보내주면 안 된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신을 붙잡은 소년의 눈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친 친구에게 소년들의 주의가 쏠린 사이 그녀는 밖으로 나가 어떻게든 도로로 도망쳤지만, 차를 끌고 쫓아온 무리에게 붙잡혀 영원히 눈을 감았다.

현재.
맥스 울프 경장은 과감하면서도 촉이 좋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 그는 휴고 벅이라는 남자가 자기 사무실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맡게 됐다. 휴고 벅은 전문가가 살해한 듯 목이 칼로 쭉 찢어진 채 죽었는데, 범인이 남긴 흔적도 없는 듯해서 사건을 수사하기 어려울 거란 예감이 들었다. 사무실 계단 통로에 피로 쓴 '돼지'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특이점이랄 게 없는 듯 보였다.
휴고 벅의 가족이나 지인들의 탐문수사를 하던 중, 다음 날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잘나가는 은행가인 휴고 벅과는 다르게 살해된 사람은 노숙자였는데, 목이 깔끔하게 찢어졌다는 점이 똑같았다. 거기다 '돼지'라고 쓴 글자가 사체 근처에서 발견됐다.
맥스 울프는 연쇄살인임을 직감하고 휴고 벅의 책상에 놓여 있던 군복 입은 소년들을 주목한다.



소설 초반에 프롤로그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먼저 보여주었기에 앞으로 일어날 살인은 모두 복수극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소년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여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죽었다는 걸 드러냈기에 이 여자의 복수는 가족이나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가 대신했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땐 후더닛(범인)이나 와이더닛(이유)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두 가지 궁금증이 충족된 셈이었다. 그래서 범인이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 복수에 성공할 것인가,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읽었다.

맥스 울프가 휴고 벅의 학창 시절에 주목하게 된 건 두 번째로 살해된 노숙자가 휴고 벅과 동창인 아담 존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부터였다. 마침 휴고 벅의 책상 위에 7명의 소년들의 사진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이 다음 타깃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들을 차례로 찾아가 두 사람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이나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무언가를 회피하는 듯한 의구심을 남겼다.
그러다 그들이 졸업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가이 필립스가 수업 도중에 학교 근처 숲에서 목이 찢어진 채 뛰쳐나오는 걸 맥스 울프와 빅터 맬러리 경감이 발견한다. 맬러리가 지혈을 하는 사이에 울프가 범인이 있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머리를 맞고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후 범인에게 붙잡혀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 상황을 찍은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울프는 곤란한 처지가 됐다.
그런 것보다 울프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건 죽은 휴고 벅의 아내 나타샤와 깊은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경찰이라는 양반이 피해자의 아내와 묘한 기류를 주고받고, 결국에는 몸까지 섞는 사이가 되자 울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아쉽게도 소설에 흥미를 조금 잃게 됐다. 그럼에도 결말은 봐야 했기 때문에 끝까지 읽었는데, 누가 복수를 한 건지 그 사건 이면에 묻혀 있던 비밀은 무엇인지 드러났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이자 원흉인 당시의 소년들을 변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결말이 그리 속 시원하게 끝나지도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찝찝함을 남겼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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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누굴 죽이려면, 그러니까 목 옆으로 칼끝을 찔러 앞쪽으로 밀면서 당기려면…." 캐럴이 잠시 뜸을 들이며 경감을 쳐다봤다. "상대를 지옥까지 쫓아가서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해야 할 겁니다." - P129

"그들이 부자라서 죽은 게 아니다. 특권층의 자식이라서 죽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부당함을 상징하는 존재도 아니고 도살자 밥과 관련되지도 않았다. 그렇죠?"
"그건 그래. 순전히 자신들의 과거 때문에 죽은 거지."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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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앨마 카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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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애니 헤블리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는 걸 단언할 수 있다. 타이태닉호에서 승무원으로 일했던 애니는 침몰 사고 이후 극적으로 살아남았는데, 그로 인해 후유증이 생긴 것일 뿐이라 단정했다. 언제든지 스스로 이 병원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친구 바이얼릿 제솝의 편지가 도착한다. 바이얼릿 역시 타이태닉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다 살아남았고 애니와는 룸메이트였다. 바이얼릿은 병원선인 브리태닉호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며 손이 모자라 애니에게 함께 일하자고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바이얼릿의 편지를 받은 애니는 조금 고민을 하다 병원을 나가 브리태닉호에 승선한다.

1912년.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애니는 첫 출항을 하는 타이태닉호에서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일등석 객실 몇 개를 담당하게 된 애니는 고객들의 승선을 돕다가 우는 아기를 안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배에 오른 남자 마크 플레처를 마주한다. 애니는 그에게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마크의 곁에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운 아내 캐럴라인이 있었다. 그래서 애니는 마음을 접으려고 하는데 도무지 쉽지 않다.
타이태닉호가 출항을 한 뒤, 일등석 승객들 몇 명이 신문기자인 윌리엄 스테드의 객실에서 열린 교령회에 참석한다. 호들갑을 떠는 부인들이 좋아할 만한 소소한 해프닝이 일어난 뒤, 애스터 부부의 꼬마 하인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일등석 승객들은 이 배에 혼령이 있는 거라 여기며 저마다 다른 공포에 휩싸인다.



소설은 너무나 유명한 타이태닉호와 타이태닉호의 자매선으로 역시나 침몰한 브리태닉호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여기에 두 배에 모두 승선했지만 두 번 모두 살아남은 바이얼릿 제솝이라는 실제 인물이 등장했다. 다만 바이얼릿은 주인공인 애니 헤블리의 친구로 등장해 일말의 핍진성을 남겼다.

1916년의 애니는 정신병원에 있다가 바이얼릿의 연락을 받고 브리태닉호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병원선으로 쓰이던 배인데, 애니는 이곳에서 마크와 재회하게 된다. 참전한 마크가 부상을 입고 브리태닉호에 옮겨졌기 때문이다. 초반엔 애니의 시선으로 진행되었기에 마크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애틋함이 느껴졌다.
이후 1912년에 타이태닉호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애니가 마크를 처음 마주하고 신경이 쓰이다 사랑에 빠진 과정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배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을 곁들였다. 재미있는 놀 거리가 필요한 고귀한 부인들에게 고령회는 그야말로 뜨거운 유행이었다. 그래서 스테드의 객실에 모였을 때까지만 해도 교령회나 유령 같은 건 유흥의 일종이었을 뿐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꼬마 하인이 죽은 이후로 혼령, 유령은 두려워서 피하고 싶지만,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배라는 점으로 인해 맞닥뜨릴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타이태닉호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은 모두 개개인의 비극이나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기인된 것이라 여겨졌다. 애니는 고향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도망치듯 타이태닉에 승선했다. 마크는 도박 중독과 사랑했던 릴리언을 잃은 절망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아내인 캐럴라인 역시 친구로 지낸 릴리언과 관련된 일을 비롯해 약물 중독 문제도 있었다. 매들린 애스터는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부자와 결혼해 임신 중이라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교령회를 주최한 스테드는 과거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었다. 또한 삼등석 승객인 권투 선수 다이와 레슬리에게도 타인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었다.
이렇게 개개인의 사연과 심리적 불안이 타이태닉호의 분위기를 뒤흔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알고 있는 비극이 다가오면서 그것들이 한꺼번에 분출되었다. 그리고 브리태닉호에서 마크와 재회한 애니의 모습을 보여주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개개인의 욕망으로 인해 비극으로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애니와 관련된 부분을 읽고, 브리태닉호까지 이어졌을 땐 소름 끼치게 무서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다.

소설은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 애니나 마크와 관련된 건 픽션이다. 실화에 오컬트를 결합한 이야기는 예상과는 다른 흐름이라 조금 의아했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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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죽은 이후로, 아니 승선하는 마크를 본 이후로 그녀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신경 거슬리는 불안이 막연하고 서늘한 두려움으로 증폭됐다. 뭔가가 꺼림칙했다. 그녀의 마음 저 밑바닥에서 메아리치는 의구심이, 출처를 전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 배의 도처가 그랬다. 심지어 스테드가 얘기한 그 굶주린 혼령처럼 지금 그녀의 살갗을 타고 미끄러지는 차가운 공기에서도 느껴졌다. - P165.166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은 누구나 선한 욕구와 불손한 욕구를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고 불손한 짓을 탐닉했을 때 따르는 대가는 죄책감일 때가 많다. 그리고 죄책감을 너무 심하게 느끼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 우리의 분별력이 오염되는 것인데, 오염된 것은 나중에 치료하지 않으면 썩기 마련이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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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우울 법의학 교실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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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교실에서 연수를 시작했던 쓰가노 마코토는 연수를 마치고 법의학 교실 정식 조교로 발령받았다. 미쓰자키 교수에게 번번이 꾸지람을 듣는 건 변함없었지만, 그래도 죽은 자의 마지막 호소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일본어를 잘 쓰면서도 어색한 캐시 조교수와 부검을 종종 의뢰하는 경찰 고테가와와도 잘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기 있는 솔로 아이돌이 공연 도중 무대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고테가와는 법의학 교실을 방문해 현경 홈페이지에 부검과 관련된 글을 올리는 '커렉터'라는 이를 추적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추락사한 아이돌의 부검을 의뢰한다. 그 사건 이후로도 커렉터의 글은 계속해서 현경 홈페이지에 올라와 골치가 아파진다.



시리즈의 1편은 서로 관련이 없는 여러 사건이 펼쳐지다 마지막에 모두 합쳐지는 전개를 보였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1편과 같으면서도 조금 달랐던 건 시작부터 경찰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커렉터로 인해 앞으로 부검을 하게 될 시신들과의 연관성을 미리 예상하게 한 것이었다.
공연 도중 무대에서 떨어져 사망한 아이돌, 더운 여름날 차 안에 방치되어 죽은 아이, 신흥 종교 건물에 난 화재로 교주가 사망한 사건, 마을에서 산책을 자주 다니던 노인이 갑자기 사망한 사건 등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한 사건이 이어졌다. 그러다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목을 매달아 사망한 젊은 여성의 사건이 다른 비슷한 사건과 연결되었고, 마지막에는 고테가와의 경찰 동기가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사건까지 이어졌다.
사인이 여러 가지인 사망 사고였지만 때로는 사건이라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편에서는 마코토의 친구와 인연이 있는 환자의 사망 사고로 인한 여운을 느끼게 했는데, 이번에는 고테가와의 동기가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도 일어나며 불현듯 찾아온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는 한편으로 커렉터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이어갔는데, 소설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을 때 그 정체가 밝혀져 '벌써?'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체보다는 밝혀진 시점이 더 놀라웠던 셈이다. 그랬는데도 커렉터의 활동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경찰을 혼란에 빠뜨렸다. 하지만 나는 의외로 빨리 눈치를 채고 말았다. 범인 맞히기를 정말 못하는데 이번에는 눈에 뻔히 보였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밝혀진 범인으로 인해 1편에서부터 이어져 온 부검에 대한 예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경찰 예산과 법의학 교실에 할당되는 예산에 관해 훤히 알고 있던 범인으로 인해 결국 예산이 바닥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법의학 권위자인 미쓰자키 교수 덕분에 모든 게 밝혀지고 예산 문제도 조금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느끼게 했다.

이번에도 역시 재미있게 읽은 법의학 교실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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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하지만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P70.71

─피해자의 원통함을 풀어 주려는 건 괜찮아.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지 마. 감정에 몸을 맡기다 보면 눈에 보일 것도 안 보이게 되니까. - P28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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