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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14살 시마자키 유키는 임신이 됐다는 걸 알았다. 엄마에게는 물론이고 집에도 말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돈을 모아 수술을 받으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2년 뒤, 히데마루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왼손을 못 쓰게 된 아버지는 일을 찾지 않고 어떻게든 상이군인 연금을 받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게 당연했다. 결국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는 나날이 늘어간다.
정신박약에 농인인 쇼하치는 누나가 결혼해 게이고를 낳자 조카를 끔찍하게 예뻐한다. 게이고 역시 외삼촌인 쇼하치를 잘 따른다. 게이고가 학교에 들어간 나이가 됐을 때, 두 사람은 집안 어른들에게 비밀로 하고 물놀이를 하러 가지만 안타깝게도 게이고에게 사고가 생긴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30년이 다 된 주 씨는 병원 사람들과 마치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병원에 보내놓고 찾아오지 않는 진짜 가족보다 매일 만나며 함께 식사를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이들이야말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주 씨는 친하게 지내는 히데마루, 쇼하치, 게이고, 그리고 외래진료를 다니는 시마자키 양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기도 한다.
이후 병원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주 씨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폐쇄병동'이라고 하면 당연히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선입견이라는 게 있어서 지금은 많이 완화됐다고는 해도 정신병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더군다나 폐쇄병동은 정신적인 문제가 커서 강제적으로 격리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정신병원을 무대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다. 주 씨를 제외한 주요 인물들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먼저 보여주며 그들의 선입견을 배제시키도록 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앞서 등장한 그들의 이야기는 이해와 공감을 하게 만들었다.
이후 소설은 정신병원을 무대로 주 씨를 화자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그리 특별할 게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루틴을 따르고, 식사를 하고, 병원 내에서 각자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환자는 병원을 청소하는 일을 했고, 글씨를 잘 쓰는 히데마루는 먹을 갈아 정성껏 글을 썼다. 쇼하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병원의 사진사 역할을 자처했으며, 외래 환자인 시마자키는 도예실을 드나들었고, 주 씨는 병원 부장에게서 매년 봄에 있는 발표회 때에 쓸 연극 대본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너무나 평범하게만 보이는 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과연 정신적인 문제가 있긴 한 걸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이후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고 개인의 문제도 있었는데, 그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 한편으로 가족도 보여주며 누가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건지 의아하게 만들었다. 특히 주 씨의 여동생 부부는 자기들 잇속만 챙기려고 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주 씨의 정신병을 들먹이며 병원에 호소를 하고 있어서 황당하게 했다. 그나마 새로 바뀐 주치의가 좋은 사람이라 주 씨의 일은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소설이 진행되는 와중에 큰 사건 하나가 일어났고, 그 사건에서 비롯된 결말이 뭉클해지게 만들었다. 세상에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듯,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라고 해도 다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정신병을 빙자한 시게무네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 누군가의 손에 죽어 마땅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으로 인해 정신병원이라는 장소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기도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 사건이 어떻게 끝을 맺는지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주 씨와 시마자키, 쇼하치, 게이고가 그랬듯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은 40년 경력의 실제 정신과 의사가 쓴 것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외면받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된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의사의 시선으로 써낸 글이라 그런지 따뜻함이 묻어났다. 마지막엔 눈물이 핑 돌았을 만큼 그들을 환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있어서 뭉클해졌다.
환자는 이미 어떤 인간도 될 수 없었다. (……중략)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이전의 직업도, 인품도, 취향도 일체 따지지 않았다.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주 씨는 자기들이 해골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환자이면서 환자 외의 것도 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 P166.167
병원은 최후의 안식처가 아니야. 오랜 여행에 지친 새들이 쉬어가는 숲일 뿐이라네. 병원에서 죽는 새가 되면 안 돼.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날아올라 자기 둥지로 돌아가길 바라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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