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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ㅣ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루프 속에서 드론 조종사였던 군인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카이라는 아빠가 1251명의 적을 죽이고 괴로워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성인이 된 후에 카이라는 사람이 조종하는 드론이 아닌 알고리즘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드론 조종사의 죄책감을 덜어주고자 한다.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매디는 돌아가신 아빠의 노트북을 사용하던 중 이모티콘 같은 그림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누군가와 채팅을 하게 된다. 처음엔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아이들이 잠잠해진 뒤에 이상함을 느낀 매디는 엄마에게 그 채팅을 보여줬고, 엄마는 아빠가 죽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 연락한다. 왁스먼 박사는 아빠가 죽기 전에 뇌를 스캔해 의식을 업로드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우수리 불곰 40년 전, 어마어마하게 큰 곰에게 습격을 당해 부모를 잃고, 자신의 한쪽 팔까지 잃은 나카마쓰 박사는 복수를 위해 곰을 쫓는다. 만주족 길잡이 소년 이린과 동료들을 데리고 떠난 그는 뒤쫓던 러시아 탐험대가 습격을 받아 모두 사망했고, 복수의 대상인 곰 역시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곰이 남긴 후손에게라도 복수를 하기 위해 나카마쓰는 동료들이 다치는 것도 외면하고 앞으로만 나아간다.
1비트짜리 오류 타일러는 리디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천사를 만났었다고 주장했는데, 타일러는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그런 말을 하는 리디아에게 푹 빠져버리고 만다. 그러다 두 사람이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교통사고가 났다. 조수석에 앉은 리디아는 천사를 다시 만난 듯 이름을 부르다 세상을 떠났고, 목숨을 구한 타일러는 그날 이후 천사를 만났다는 리디아의 주장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 뉴욕의 대형 회계 법인의 인턴으로 합격한 제인은 남자친구 프레디를 따라 루라 행성으로 향한다. 외계 행성에서의 경험이 회계사 자격증을 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루라 행성의 인류 정착촌에서 지내게 된 두 사람은 외계 고고학을 창시한 클로비스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제인은 '루라 사가'에 관한 가설을 제시한다.
「장거리 화물 비행선」 '나'는 잡지에 실을 기사를 쓰기 위해 아이크의 태양광 화물 비행선에 탑승하게 된다. 비행선이 곧 집이었던 아이크는 아내 예링과 번갈아가며 운전을 맡으며 이 거대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카산드라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예측하는 능력이 생겼다. 처음엔 그저 무시했지만 본 장면이 그대로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된 후에 잘생긴 외계 슈퍼 히어로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 그는 나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결국 나는 홀로 그런 범죄자들을 미리 처단하기 시작한다.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매디는 어느새 컴퓨터 속 인격체인 아빠와 대화하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자신과 같은 디지털 인격체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고자 떠나지만, 아빠와 친구가 패배해 사라져버렸고 현실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걸 보게 된다.
북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쳐들어오자, 명의 만력제는 이여송을 보필할 사람으로 담원사를 보낸다. 그는 수많은 명의 군대를 조용히 이동시키고 평양성을 탈환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다.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 1645년. 만주족이 양주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주가 점령당하자 참새는 기생인 초록 꾀꼬리와 함께 도망쳐 숨어 지낸다. 그러다 초록 꾀꼬리는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을 막고자 미인계를 써서 만주족 장군을 구슬린다.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아빠가 떠난 뒤, 클라우드에는 자신이 매디의 동생이라고 하는 아이가 나타났다. 매디는 동생을 미스트라고 부르며 함께 어울리는 한편, 미스트가 디지털 세상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애를 쓴다.
지난번에 읽은 켄 리우의 단편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 수록된 단편 연작 '싱귤래리티 3부작'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포스트 휴먼 3부작'이 이 책에 포함돼 있었다.
디지털화된, 클라우드 속의 새로운 인류는 인간이었지만, 인간이 창조한 신과 같은 존재였다. 매디와 아빠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보여줬고, 그들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나쁜 디지털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형태는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했다. 이후 정의의 편에 섰던 아빠 일행이 사라지고 매디의 디지털 동생 미스트가 존재를 드러내면서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게 쉬운 건 절대 아니었지만 말이다.
몸에 한정되어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과 디지털 세상 속에서 무한히 살아가는 인간.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는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전제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상적인 단편은 <카산드라>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를 모티브로, 슈퍼맨의 외형을 연상하게 하는 슈퍼 히어로 '쇼맨'을 등장시켰다.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예비 범죄자와 현재에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이를 두고 벌이는 딜레마가 인상적이었다.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하게 했다. 이런 딜레마의 마찰로 인해 카산드라가 악당이 되어가는 과정에 수긍하게 만들었다.
또한 역사와 관련된 단편 이야기들도 눈길을 끌었다. 거대한 곰에게 복수를 하려는 <우수리 불곰>은 마지막에 반전이 드러나면서 큰 충격을 안겼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북두>가 있었고, 중국을 배경으로 한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가 있었다.
늘 그렇듯 단편집이라 편차는 있었지만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도 많았다. 읽다가 안 맞아서 그만둔 <종이 동물원>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우린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전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을 해낼 만큼 변하지는 않았는지도 몰라. 이제는 기술 덕분에 거의 신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는데도 말이야. 변치 않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씨앗은 절망으로도, 위안으로도 피어날 수 있어. 우리가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서."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 P266
"땅으로 추락하는 비행기를 구하는 것보단." 나는 그자에게 애타게 설명한다. "폭파범이 비행기에 타기 전에 미리 죽이는 게 더 낫잖아요." (……중략) "하지만 넌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잖아. 너 자신에게는 남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자는 그렇게 나를 딜레마에 몰아넣는다. 만약 내가 미래를 바꿔 놓는다면, 내 예지는 틀린 것이 된다. 만약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그 미래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경만 한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카산드라> - P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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