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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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는 아버지의 은인인 줄 알았던 테나르디에를 고발했고, 그 집에 자베르가 습격해 일당을 모두 소탕한 이후 장 발장은 아무도 모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곧장 그 집에서 이사를 해 친구 쿠르페락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마리우스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가씨 코제트가 장 발장의 딸이란 걸 알게 되었지만, 그녀를 도통 찾을 수 없어 절망한다. 그러다 마리우스는 코제트가 사는 집을 알게 되고, 그녀와 재회한 이후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행복에 젖는다.


마리우스가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 친구들은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세웠고 각 집에서 총 등의 무기들을 들고나와 경계를 섰다. 염탐하던 사복경찰 자베르를 붙잡아 묶어두는 등의 수확을 얻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코제트가 아버지와 함께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슬퍼서 이제 죽은 목숨이라 여기며 친구들의 혁명에 동참한다.

전편에서 장 발장은 자베르에게 잡힐 뻔했지만 가까스로 도망을 쳐서 목숨을 구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장 발장은 더욱 경계를 갖고 모든 걸 주의하는 듯 보였다. 코제트가 머무는 공간과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분리해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찾아내 밤마다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는 행복한 시간을 가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터였다. 몰래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마리우스는 물론이고 코제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 발장의 경계심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채 깊어지기도 전에 이별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의 곁을 떠난 지 4년 만에 찾아가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하지만, 구식인 할아버지는 코제트가 어떤 집안의 여자인지 모른다는 점으로 인해 결혼을 반대한다. 결국 할아버지 질노르망은 다시 한번 손자를 잃고 말았다.


이러는 사이에 감옥에 있던 테나르디에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을 한다. 에포닌은 남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마리우스가 코제트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선 그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탈옥한 아버지 테나르디에가 코제트의 집을 털려고 했을 때 가로막으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가여운 여자였고, 마지막엔 마리우스 대신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 깊은 연민을 느끼게 했다.

또한 테나르디에의 또 다른 자식인 아들 가브로슈의 활약이 있었는데, 테나르디에 부부가 다른 여인에게 버린 두 아들이 길에 나앉아 가브로슈에게 도움을 받는 장면이 이어지기도 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서로가 동기간인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던 세 형제의 하룻밤이 안쓰럽고 가엽기만 했다.


이후 소설은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키며 좌절한 마리우스가 친구들의 편에 서게 되는 상황과 장 발장이 마리우스의 존재를 알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후반이 이어졌다.


이제 마지막 5권만 남았다. 갈수록 읽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마지막이니만큼 열심히 읽어 끝을 내야겠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이러한 사랑이 자기들을 어디로 이끌어 갈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도달한 사람들처럼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 P328

이날 코제트의 시선은 마리우스를 미치게 하고, 마리우스의 시선은 코제트를 떨리게 했다. 마리우스는 자신을 갖고 떠났고, 코제트는 불안한 마음을 갖고 떠났다. 이날부터 그들은 열렬히 사랑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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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20분의 남자 스토리콜렉터 10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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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스 디바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 오로지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는 이유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지만, 훈련을 받고 특수부대 레인저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훈장까지 수두룩하게 받은 디바인은 군대 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모든 걸 벗어던지고 전역해 대학에 가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로 결정한다. 월가의 투자자로 돈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디바인은 매일 아침 6시 20분에 통근열차를 타고 몸담고 있는 '카울앤드컴리'로 출근을 한다.


다른 말단 신입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해 일하던 디바인에게 메일이 한 통 도착한다. 보통의 메일 주소와는 다른, 숫자로 된 주소로 온 메일에 담긴 내용은 '그녀가 죽었어'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한때 디바인과 좋은 감정을 나누고 있었고 딱 한 번이지만 관계를 하기도 했던 세라 유즈가 52층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메일을 받지 않은 걸 알게 된 디바인은 곧장 52층으로 향했고, 메일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후 디바인은 자신을 용의자로 의심하는 형사는 물론이고, 카울앤드컴리의 CEO 브래들리 카울의 정보를 캐내기 원하는 전직 장군 애머슨 캠벨, 세라 유즈의 입사 동기이자 경쟁자인 제니퍼 스타모스, 카울의 현재 여자친구 미셸 몽고메리 등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사건들을 맞닥뜨린다.




디바인이 너무나 잘 하고 또 적성에도 잘 맞던 군인으로서의 삶을 버린 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고 보기엔 어려울 듯했다. 선택은 디바인이 한 것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가 겪은 상황이 인간에게 혐오를 갖게 해 모든 걸 떨쳐버리게 만든 것처럼 여겨졌다. 그로 인해 디바인은 아버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본인은 혐오 그 자체인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투자자로서의 삶이었다.

전역을 하긴 했어도 몸을 쓰고 단련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은 디바인은 새벽 4시에 운동을 하고 난 후에 남들보다 일찍 6시 20분 기차에 올랐다. 사람이 드문 시간이라서 그 시간에 기차를 탄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차가 지나가는 길에 CEO인 브래드 카울의 대저택, 일명 '궁'이라 부르는 곳에 때때로 카울의 아름다운 여자친구가 몸매가 드러나는 멋진 비키니를 입고 나와 있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칙칙한 삶에 유일한 낙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저 그런 일상을 살아가던 디바인에게 메일이 도착하면서 평범했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좋은 감정으로 만났지만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지 못했던 세라 유즈가 목을 매달아 죽은 것이었다. 사내 연애 금지 조항이 있었기에 유즈와 디바인이 데이트를 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지만, 칼 행콕 형사가 디바인의 집까지 찾아와 그녀에 대해 캐물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디바인은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듯한 남자들에게 이끌려 애머슨 캠벨을 만나게 된다. 장군은 전역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비밀리에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하며, 카울앤드컴리의 브래드 카울의 뒤를 캐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역한 지 좀 되긴 했어도 아직도 뼛속에 군인의 상명하복 DNA가 남은 디바인은 캠벨의 명령을 따르고 비밀리에 일을 해야만 했다.

디바인은 일단 세라 유즈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위장 살인이라는 걸 알고 퇴근 후에 회사에 들어갔다가 유즈의 라이벌인 제니퍼 스타모스와 사무실 책상에서 섹스를 하는 브래드 카울의 모습을 핸드폰에 담는다. 이후 디바인은 스타모스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궁의 비키니 여인 미셸 몽고메리와 얼떨결에 가까워져 브래드 카울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심지어 '51구역'이라 부르는 통제구역을 들어가 보기도 한다.


브래드 카울의 뒤를 캐기 위해 디바인은 룸메이트 중 한 명인 화이트 해커 윌 밸런타인에게 메일 주소에 대해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으로 디바인은 세라 유즈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다른 룸메이트인 법대 졸업생 헬렌 스피어스에게 상담을 하기도 했다. 칼 행콕 형사 말고 다른 두 형사가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알고 보니 칼 행콕이라는 형사가 없다는 말에 상황은 자꾸만 미궁에 빠진다.

이런 상황으로도 모자라 세라 유즈 외에 또 다른 죽음들이 줄줄이 이어져 디바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소설은 자살로 위장한 살인 사건을 발단으로 디바인이 회사의 CEO 브래드 카울의 뒤를 캐면서 돈 세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줬다. 덕분에 그곳에만 집중을 했었는데, 결말이 다 될 때까지 범인의 윤곽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아 의문스러움을 남겼다. 그때쯤이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드러내야 마땅했으나 그럴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거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 정말이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이 진짜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읽을 때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었는데 다 읽고 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 초반에 굉장한 단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여 그저 흘려넘겼으나 알고 보니 아주 큰 단서였다. 인간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데커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발다치의 새 소설은 전직 특수부대 장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워낙 능력이 출중해서 그의 활약이 이대로 끝나는 게 아쉬웠는데, 다음 시리즈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리즈는 언제나 환영이다. 이번 소설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다음에 풀어내주길 바란다.

너는 그날 밤 회사에 들어가는 데 네 보안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출입 기록에 네 이름이 떴잖아. 누군가가 네 카드를 복제했어. 문제는 누가 했느냐야. - P252

"우린 정보가 필요해, 디바인. 그것도 많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야 해. 자네는 이미 거기에 들어가 있으니 이 문제를 조사하기에 더할 나위 없지. 그게 자네가 여기 와 있는 이유야. 우리가 자네를 주시한 이유고. 자네가 지금 마운트키스코에 사는 이유, 자네가 매일 카울의 집을 지나쳐 가는 이유라면 말일세. 우리는 브래드 카울을 반드시 잡아들여야 해. 그러려면 자네 도움이 필요하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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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월급사실주의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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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 오늘도 활기찬 아침입니다   아나운서 지민은 서울에 있는 방송사 취업에 번번이 낙방을 하고 지방 방송국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공채로 입사했지만 프리랜서이기에 방송국 외부 행사로 부수입을 올리며 생활하는 그녀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진행 중이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가 되어도 그녀는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손원평 × 피아노   혜심은 어렵게 얻은 집에서 6년 동안 운영했던 공부방을 정리하고 있다. 노후를 보내고 싶은 곳에 매물로 나온 집을 매매하려다 일이 잘 안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천천히 집 정리를 하고 있을 때 4개월째 공부방 비를 내지 않은 준용이가 불쑥 찾아왔다. 돈을 내지 않은 건 아이의 잘못이 절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혜심은 괜히 심술이 난다.


이정연 × 등대   설희는 점심시간인데도 한가해 보이는 복어 전문 식당에 수습 직원으로 입사한다. 홀에서 업무를 배우다 주방에서 복어를 손질하는 법을 배우고 난 뒤에 정직원이 된 그녀는 룸에서 서빙을 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러다 설희는 이 가게의 여러 룸에서 번번이 불법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전 직장에서의 일이 되풀이될까 걱정이 된다.

임현석 ×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화장품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진영은 가맹점주들을 구슬리는 게 주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본사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점주들과 대화를 나눌 땐 본사 욕을 하는 게 스스럼없을 정도다. 물론 진영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정아은 × 두 친구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지현은 어젯밤에 빙판길에 미끄러져 어깨가 부서진 917호 환자를 보살핀다. 갑자기 다쳐서 극도로 예민해졌는지 917호는 지현에게 온갖 짜증을 내고 있지만, 그녀는 묵묵히 받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917호 환자를 보고 나온 지현은 그녀가 중학생 때 친했다가 소원해진 승미라는 걸 알게 된다.

천현우 × 빌런   군필 삼수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백수인 도지윤은 여기저기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쏟아부은 코인이 원금의 20배가 뛴 걸 보며 쾌재를 부른다. 부모님의 눈치에도 열심히 백수짓을 하며 게임에 몰입해 돈만 쓰던 지윤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는 다른 코인에 전 재산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게 스캠코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지윤은 현금 서비스를 갚아야 하는 게 막막했는데, 마침 코인 오픈 채팅방에서 물류센터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이를 따라가게 된다.


최유안 × 쓸모 있는 삶   통역사인 혜린은 선배의 제안에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온 영국 방송국의 현지 코디네이터 일을 하게 된다. 혜린은 일을 하면 할수록 감독의 각본대로 따라가는 촬영이 껄끄럽고, 거기다 다큐의 주제가 한국의 출산율이라 이 일이 업무로만 여겨지지 않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한은형 × 식물성 관상   위워크에서 식물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민지에게 비건 식당 3군데를 운영하는 보이사가 일을 제안했다. 민지가 비건 식당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보이사의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된 민지는 매니저로 승진을 하게 되지만, 보이사의 보여주기식 PC 주의가 점점 불편해진다.




8명의 작가가 쓴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월급사실주의'라는 프로젝트 2편이다. 1편은 2023년에 출판된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지만 평이 괜찮았다. 다양한 직업군의 애환을 그린 소설이라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되던 책이었다.


손원평 작가의 <피아노>는 개인적인 문제가 직업적인 고충으로 이어져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혜심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었다면 개인적인 문제가 업무로 이어져도 큰 상관은 없었을 텐데, 그녀가 어린아이들을 다루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감정적인 부분이 복잡하게 다가왔다. 집 문제로 공부방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몇 개월이나 공부방 비를 밀린 준용이 왔을 때 반갑지 않은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에겐 잘못이 없기에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혜심의 상황이 그녀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 애착이 있는 피아노까지 처분해야 했는데, 나눔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냥 버린 그 피아노가 누군가가 가져간 걸 알고선 찾아 헤매는 상황이 왠지 그녀의 처지와 닮아 있어서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 피아노로 인해 준용과 다시 얼굴을 마주한 혜심이 자신의 감정은 털어버리고 아이를 위해 보인 태도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사회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해지는 상황으로 속마음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게 눈에 띄던 소설도 있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의 진영은 본사 영업 사원으로 일하면서도 가맹점주들 앞에서는 본사 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점주의 편이라는 걸 보여주는 그 행동으로 비위를 맞추고, 본사에서는 점주들을 욕하는 상사들의 말에 대꾸를 해주기도 뭐 한 부분이 곤란하기만 했다.

<두 친구>는 소원해진 친구와 우연히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박선생이라 불린 이의 업무적인 태도가 기억에 남았다. 다른 선생들, 간호사들처럼 크게 화를 내거나 뒷담화를 하지 않는 박선생의 무표정이 너무 공감이 됐다. 업무보다 힘든 게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식물성 관상>은 되지도 않는 PC 주의를 매번 지껄여대는 사장 보이사의 뜻을 따라야만 하는 민지의 상황이 너무 공감이 됐다. 마음은 아니라고 하는데도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있어서 보이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게 답답해져 한 마디 했을 때 돌아온 건 현실적이라 쓴맛이 남았다.


직장 생활에 통쾌함 따윈 없었다. 일보다 힘든 게 사람이라는 것 또한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불같은 음성에 주위 선생들이 진저리를 쳤지만, 박선생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통화를 감내했다는 전언이었다. 그때 박선생의 마음에 무엇이 오갔을까. 내가 박선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짚어보던 지현은 박선생의 무표정이야말로 제 직업을 유지하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아은 <두 친구> - P142

오늘이 그가 가장 슬기롭고도 평화로운 날일 것이다. 슬기롭고도 평화로운 연기를 해왔다는 걸, 그런데 충분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야 사실을 알게 될 것이지만 오늘은 정말 그럴 것이다. 그날의 민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한은형 <식물성 관상>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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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커버 개정판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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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하지환은 고향 신해에서 일하고 있는 손지은 경감에게 연락을 받았다. 오랜만의 연락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가움을 표하고 난 후에 손지은은 하지환의 친구 황동혁이 죽은 채 발견됐다는 말을 전했다. 그것도 복부에 총상을 맞고서 말이다. 발견됐을 때의 특이점은 록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환은 휴가를 내고 친구를 떠나보내기 위해 신해로 향했다.


태어나서 고등학생 때까지 신해에 살았던 하지환은 서울로 대학에 온 이후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신해에 발령이 나 한동안 다시 그곳에서 머물게 됐었다.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 중이던 시기에 엄마가 류마티스와 위암으로 사망을 했었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다 재작년에 신해에 머물면서 고등학교 시절 후배이자 의사인 효린에게서 엄마가 류마티스 환자의 손 모양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 진단을 내린 의사 우동규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소설은 판사로 재직 중인 하지환에게 현재 닥친 사건을 먼저 보여줬고, 이후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었다. 친구 황동혁이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충격이었다. 소설의 제목이 퀸의 곡과 똑같은 <보헤미안 랩소디>인데, 황동혁이 발견되었을 때 해당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부분과 연결 지었다. 중요한 의미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후 하지환이 신해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을 때 엄마의 죽음에 오진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류마티스 전문의 우동규를 고소하고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러는 한편으로 효린의 제안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면서 하지환의 과거부터 쌓여 맺힌 응어리를 풀어나가는 과정 또한 진행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친구 황동규의 의문의 죽음, 그리고 엄마를 비롯한 류마티스가 아닌 환자들을 오진해 이득을 본 의사 우동규를 고발하는 과정을 풀어나갈 줄 알았다. 황동규의 아버지 또한 우동규에게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사망했기에 이 두 사건이 어떻게든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런 느낌을 풍기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하지환이 정신 상담을 받게 되면서 소설은 조금 다른 분위기로 흘렀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 없이 엄마의 기대를 받으며 가난하게 자란 하지환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판검사가 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엄마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았던 하지환에게 다른 선택지란 없어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반대로 인해 공부만 하며 좋은 학교로 위장 전학까지 다녀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빚이 있었기에 하지환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깨닫지도 못했기에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있었다.

그걸 풀어주는 과정을 통해 소설은 황동혁, 우동규 사건과는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중요한 건 하지환의 심리적 요인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현재 일어난 사건과 겹쳐지면서 다소 놀라운 결말을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힌트가 정말 많았는데 소설 전개에 그저 휩쓸려버린 바람에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라 가볍게 읽기에 괜찮았다.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악이 되기도 한다. 합법인 행동이 악이고 위법인 행동이 선일 때도 있다. 한 사람이 선과 악을 번갈아 저지르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법정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더러 자신이 선의 영역에 있음을 선포해달라고 한다. - P9

"다양한 감정을 정확하게 사용하면 인생이 훨씬 다채롭고 즐거워지겠죠.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각 감정이 충분히 소화돼서 갈등이 남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슬픔을 느껴야 할 때도 분노를 느끼면 슬픔의 감정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몸속에 남아서 다른 갈등을 일으키게 되거든요."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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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미야모토 테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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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노 고헤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중화소바집을 운영하며 세 자녀를 키워냈다. 아내 란코도 시집을 온 후부터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소박한 일상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2년 전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고헤는 가게 문을 다시 열지 못했다. 란코의 빈자리가 컸다기보다 아내를 잃은 후에 그 무엇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를 좋아하는 고헤가 한 번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을 펼쳤을 때 30여 년 전에 란코 앞으로 온 엽서를 발견하게 된다. 고사카 마사오라는 대학생이 란코 앞으로 보낸 것이었지만 그녀는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며 잘못 보냈다는 엽서를 애써 써서 보냈었다.


등대가 그려진 엽서를 들여다보던 고헤는 문득 직접 등대를 보고 싶어져 등대 순례를 떠나게 된다. 이후 고헤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한편으로 란코와 그녀에게 엽서를 보냈던 대학생의 이야기를 마지막에서야 알게 된다.




몇십 년 동안 함께 산 아내를 하루아침에 잃은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병이나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게 아니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가게 준비를 하러 간 아내가 바닥에 쓰러져 죽어있는 걸 발견한 고헤의 입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펐을 터였다. 가게 일 때문에 아내를 괜히 고생시킨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을지 몰랐다.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란코가 떠난 이후 고헤는 중화소바집을 열지 못했다. 그리 넓은 가게는 아니라서 어떻게든 혼자 꾸려나갈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오래전 아내에게 온 낯선 이의 엽서를 발견한 이후 문득 등대 순례를 떠나게 된다. 차를 빌려 가까운 등대를 보고 온 고헤는 조금이나마 살아갈 힘을 얻은 듯했다.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등대가 마치 인생과 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컴컴한 늦은 밤에도,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에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배들을 향해 빛을 비추는 등대야말로 삶의 지표와도 같았다.

고헤가 내내 등대만 보러 다닌 건 아니었다. 잠깐씩 등대를 보러 다녀왔고, 돌아온 집에서 자식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간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간짱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다고 또다른 친구 도시오가 말해주었다. 나중엔 간짱의 그 아들인 다키가와 신노스케와 함께 고헤는 등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함께 사는 큰딸은 물론이고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 둘째 아들,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과 각각 시간을 보내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엄마에 대한 이야기, 자식들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나중엔 세상을 떠난 란코에게 엽서를 보내왔던 대학생 고사카 마사오를 만나기도 했다.


소설은 그렇게 특별한 사건 없이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흘러갔다. 보통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은 일상의 담백함이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게 해서 즐겁게 읽었다. 마치 고헤의 중화소바처럼 담백해서 특별한 느낌은 없는데 맛있어서 계속 찾게 되는 음식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포근해지는 게 참 좋았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일이 숱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딸, 아들, 몇 안 되는 친구.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는 멀리서만 봐왔는지도 모른다. 삼각형도 육각형도 멀리서 보면 전부 원으로 보인다. 아니, 너무 가까워서 진짜 모습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 P206

하늘색과 바다색과 안개 속에서 등대는 스스로의 빛깔을 지우고 숨죽인 듯 보이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불을 밝혀 항로를 비춘다. 숱한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름 없는 인간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저것은 조부다. 저것은 조모다. 저것은 아버지다. 저것은 어머니다. 저것은 란코다. 저것은 나다.
저것은, 앞으로 살아갈 내 아이들이며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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