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루프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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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마음   그럭저럭 알려진 아이돌 그룹 멤버인 '나'는 요즘 학교에 매일 출석한다. 새로 들어온 메인 보컬 언니가 그룹 내 따돌림을 폭로해 논란이 되어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회사에서는 반박 기사를 내지 않고 그저 소문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진 탓에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나를 따돌린다.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학교에 매일 나가며 반에서 원래 왕따인 '원따'와 친하게 지내려 애를 쓴다.

안녕, 장수극장   중학생 윤송의 할아버지는 배우가 꿈이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해 고향에 '장수극장'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곳이었던 소읍에서 장수극장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찾는 이가 드물어 사장이 된 아버지 윤장수는 폐업을 결정했다. 중학교 축제를 위해 장수극장의 인터뷰를 요청하는 학생회장이 귀찮은 윤송이었는데, 축제날 강당 스크린에 펼쳐진 장수극장에 대한 영상에 뭉클해진다.


엄마만큼 좋아해   주비는 바쁜 엄마 대신 자신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이모에게 머리를 땋아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한다. 이모는 약속했지만 이튿날 주비의 머리를 땋아주지 않아 속상하기만 하다. 주비가 매일같이 머릴 땋으려는 이유는 밤이 오빠 때문이다. 오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고, 또 소꿉놀이를 할 때 늘 아빠 역할을 하는 밤이 오빠라서 주비는 엄마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슨 머리 모양을 하고 가도 예쁘다고 해주는 친구 시아에게 주비는 밤이 오빠가 엄마만큼 좋다고 고백한다.

보름지구   사람들이 달로 이주하기 시작한 미래. 1차로 이주한 '나'는 수업 시간에 추석에 대한 발표를 한다.

고─백─루─프   밴드부 보컬인 우지현이 축제 전야제에 노래를 부를 때 보러 오라고 했다. 김현지는 얘가 고백을 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인기 많은 애가 나 같은 애한테 그럴 리 없다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이 되어야 마땅했지만, 김현지는 축제 전야제 날에 눈을 떴고 어김없이 우지현이 찾아오는 날들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가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서울에서 미용실에 다니며 일을 하는 언니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됐다. 엄마 없는 삶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나의 엄지손톱 밑에 가시가 박혔지만 빼내지 않는다. 그게 마치 엄마의 속눈썹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발톱   아빠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맡은 건 '나'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다. 아빠의 재혼 상대인 그 여자는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것 같다. 그 여자는 나에게 나름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에 그 여자와 함께 사는 게 내키지 않는다. 그러다 그 여자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낀 이후 나의 마음 역시 조금 바뀐다.





박서련 작가의 소설집 <고백루프>가 다른 소설집과 달랐던 이유는 비단 청소년 문학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작가가 실제로 청소년이었던 시절에 쓴 단편을 공개했다는 점이 이 소설집을 특별하게 여겨지게 했다. 나도 10대 시절에 인터넷 소설 카페에 글을 쓴 적이 있고 친한 친구에게만 알려줬던 기억이 있는데,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라 소설집에 게재한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보였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에 쓴 단편은 <가시>와 <발톱>이다. 단편 소설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정말 짧은 이야기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좋아서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여성 서사에 관심이 있었던 건지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해 말하다 언니에게로 이어진 <가시>와 젊은 새엄마와 완전한 남이지만 어느새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된 <발톱>의 엔딩이 좋았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안녕, 장수극장>이었다.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는 왠지 모를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소읍의 유일한 유흥거리였던 극장이 어느새 쇠락해 이제는 찾는 사람이라고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친구와 상영관에 몰래 기어들어가는 백수 아저씨뿐이라 윤송은 이걸 애물단지라고 여겼다. 하지만 윤송이 다니는 중학교 축제에서 장수극장을 마을 사람들이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 보여주는 영상에서 나도 모르게 뭉클해져 눈물이 날 뻔했다. 극장이 그저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가 아닌 마을 모든 이들의 삶이자 역사이기도 했다는 점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또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엄마만큼 좋아해>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주비가 주인공인데 꼬마 아이의 일상이 왠지 모를 생동감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오빠와 함께 하는 소꿉놀이에서 엄마 역할을 맡고 싶어서 양 갈래머리를 하려는 마음이 깜찍하게만 보였다. 그러다 어린이집에서 제일 예쁜 시아와 관련된 해프닝이 일어나면서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인해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게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주비가 인지하고 있었기에 밉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선 이어진 엔딩은 그 어떤 선입견이 전혀 없이 좋아하는 감정 그대로의 표현이라고 보여 흐뭇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장르가 담긴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매번 색다른 느낌이 들게 한 소설집이었다. 로맨스와 SF, 추억과 여성 서사 등등 각기 다른 매력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왜 처음에 가시를 뽑지 못했나. 당신은 왜 암에게 당신의 낡은 아기집을 내주었는가. 아니, 애초에 왜 언니와 나에게 그 아기집을 빌려주었다.
왜 몸에다 다른 삶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알게 했는가. <가시> - P177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 다른 길을 걷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서 자란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장수극장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안녕, 장수극장> - P61

내가 오빠를 얼마나 좋아하지? 사탕만큼? 돈가스만큼? 마이 멜로디만큼?
어쩌면…… 로즈 공주만큼? 아니지, 그보다는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엄마만큼."
(……중략)
응, 난 엄마만큼이나 밤이 오빠가 좋아. 밤이 오빠도 그러면 좋겠어. <엄마만큼 좋아해> - P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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