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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야 - 2019년 제15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다이앤 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4월
평점 :
한국계인 '나'는 이란계 남편과 결혼해 캐나다에서 딸 로야를 낳고 화목하게 살고 있다. 남편은 다정하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이었고, 로야는 어디에서 이렇게 사랑스럽고 착한 아이가 왔나 싶을 만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다.
가족의 일상은 로야의 수영과 악기 레슨, 그리고 가족 모두 가지고 있는 취미인 음악회 참석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느 날처럼 온 가족이 음악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중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으나 경찰과 구급대가 오고, 가족이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온몸에 통증이 생겨 집안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날이 이어진다.
그때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끝내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지 못했던 나는 당신에게서 늘 듣는 신세 한탄과 푸념을 듣고 이제는 지치고 말았다.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화자의 이야기는 딸 로야와 같은 수영 클럽에 다니는 고등학생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다. 수영 클럽에서는 앞날이 창창한 학생이 갱단의 총기 사건으로 허망하게 죽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잘 모르는 이의 죽음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화자는 죽음이 멀게 느껴지지 않아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8살인 딸과는 나이대가 다르긴 해도 그 아이 역시 제 부모의 자식이기에 화자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며 슬픔과 불안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냥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기에 화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고 가족을 챙겼으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여가 시간을 즐겼다.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소설의 도입이 죽음에서 가족으로 초점을 맞췄다가 교통사고와 뒤늦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야기로 흘렀기에 무슨 내용으로 흘러갈지 예상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자가 과거에 겪은 상실이 드러나면서 이윽고 진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드러났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화자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잃는 상실은 빈번하지는 않아도 여러 번 겪어왔을 만했다. 그녀가 겪은 상실에는 학창 시절의 친구가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죽은 일이 있었고, 가정폭력으로 내내 가족들을 괴롭히는 바람에 화자를 캐나다로 떠나게 한 아버지의 죽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소설 후반에는 남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화자는 죽은 이들에게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와 마음의 거리에 따라 다른 게 당연했다. 그 마음의 거리로 인해 화자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각기 달랐다. 그로 인해 화자는 마음의 아픔, 과거의 아픔이 현재 신체의 고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상실로 인한 감정을 통해 과거와 대면하게 되면서 화자의 진정한 아픔이 드러났다. 누군가의 죽음이 화자의 상처를 다시 헤집게 되기도 했는데, 그건 고인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을 나누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대체로 엄마였다. 자신이 제일 가엽고 불쌍하고, 딸이나 아들은 혼자가 된 엄마를 챙기지 않는다고 여기며, 가까이 사는 아들 내외보다 머나먼 캐나다에 사는 딸인 화자에게 시차에 상관없이 전화를 하는 그런 엄마 때문이었다. 화자의 엄마가 등장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정말이지 너무 답답해서 가슴이 꽉꽉 막히는 듯했다. 흉을 보고 욕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 나를 괴롭게 했다.
화자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울타리가 되어줬어야 할 엄마가 이런 사람이라서, 세상을 떠난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라서 화자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울타리 안에서 자랐기에 화자와 남편은 자신들이 만든 울타리를 더욱 따스하고 견고하게 지킬 줄 알았다. 뼈아픈 반면교사가 씁쓸하지만 다행이라 여겨진 건 화자와 남편, 딸 로야는 앞으로도 잘 해나갈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어야 할 관계는 없었다. 그게 설령 자신을 낳아준 부모라도 말이다. 이어지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 자신을 애정으로 붙잡아주는 이들에게 더욱 마음을 기울여야 마땅했다.
이처럼 상냥하게 마음을 쓰는 남편도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아이였다.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그도 넘어졌고,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넘어지기도 했던 아이였다. 넘어져 생긴 상처가 크면서 희미해지는 것처럼 우리 무의식에 담긴 감정 또한 희미해지면 좋을 테지만, 뚜렷한 선이 생긴 감정은 나이테처럼 흔적을 남긴다. - P175
엄마의 수법과 나의 수법은 애초부터 달라서인지 엄마는 나에게 끊임없는 채무 정산을 요구한다. 정산에 단지 금전만 포함됐다면 차라리 좋으련만, 대부분은 한도 끝도 없는 정신적 보상이다. 엄마는 빚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고 난 빚을 갚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다. 한도 끝도 없는, 정산이 불가능한, 내 생명 값이다. - P82.83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은 고백하건대 연민이었다.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에는 사랑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따른다. 아빠가 죽자 엄마는 더욱더 가련한 모양새를 했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더욱더 신경을 썼다. 그러나 정작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는 없었다. 있었지만, 없었다. - P197
남편도 나도 맏이로 태어나 자랐다. 우리는 자신을 없애서 타인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나와 남편이 쓴 면류관엔 권리는 없고 책임만 존재한다. 서로 그것을 알아서 적어도 우리가 만든 가족 내에선 책임도 권리처럼 영광스럽게 대한다. 영광스러운 그것,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사랑이다. - P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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