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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법정
조광희 지음 / 솔출판사 / 2021년 4월
평점 :
22세기, 미래의 한국.
AI를 위한 언어 개발을 하고 있는 EAU 언어연구원의 한시로 박사는 '안드로카인드'에서 제작한 AI에 관심이 생긴다. 그 회사가 유독 시로의 관심을 끈 이유는 주인, 소유주의 DNA를 복제해 똑같은 외형과 지능을 가진 AI를 제작하기 때문이었다.
시로는 여자친구인 미나와 AI 구입에 대해 상의하지만, 그녀는 왠지 시큰둥하다. 그러나 시로는 결심이 굳혀졌기에 안드로카인드를 방문해 자신과 닮은 AI를 주문해 받게 된다. '한시로 X'라는 명칭이 붙은 AI를 집에 데리고 온 시로는 그를 '아오'라고 부르며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아오와의 생활에 익숙해진 시로는 인간과 흡사한 외형과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괴리로 인해 그에게 불법적으로 의식생성기를 이식한다. 이식을 한 후에 아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오는 자신을 시로라고 착각해 그를 죽이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까마득한 미래인 2100년대였다. 인공지능 로봇이 실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던 그 시대에는 집에도 로봇들을 하나씩 구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AI는 비서나 집사 정도의 일을 하고 있었고, 사회 곳곳에도 사람 대신 AI가 전문적인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냥 봐서는 진짜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닮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어떤 AI들은 주인에 의해 의식생성기를 이식받은 후에 AI와 동물 등의 자유를 외치며 '포스트휴먼 해방전선'이라는 조직을 위해 움직이며 저항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한시로가 자신의 DNA를 복제한 AI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AI가 실생활에 아무리 익숙해진 미래라고 할지라도 나와 닮은 AI는 뭔가 꺼려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탄생이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AI라는 점으로 인해 일말의 거부감이 느껴졌다.
시로는 자신과 닮은 AI와 함께 생활하는 데 익숙해졌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그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아오에게 한 뒤에 오류가 나자 의식생성기를 그에게 이식했다. 포스트휴먼 해방전선으로 인해 AI에게 의식생성기를 이식하는 게 불법이었지만 시로는 개의치 않았다. 이후 의식이 생겨 자아에 대한 의문과 탐구에 골몰하게 된 아오는 어떤 사건 이후로 시로를 살해하게 된다. 자신이 시로라고 착각해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었다.
아오의 살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소설 초반에 등장한 호윤표 변호사가 그의 변호를 맡게 됐다. 그 후로는 법정 공방이 이어졌고, 지워진 아오의 데이터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다소 혐오스럽기도 한 비밀이 드러나 놀라움을 안겼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만이 존귀한 세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22세기 정도 되는 배경으로 인해 소유주의 의도에 따라 제작된 AI도 생명의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고, AI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의식생성기를 이식받게 된 경우 역시 참작해야 마땅했다. 그리고 동물 또한 생명의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지금도 동물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미래엔 그 주제가 보편화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발전된 미래이니만큼 AI 또한 폭넓은 의미에서 생명의 가치를 논할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말에서 희망적이던 그런 가치들이 단번에 무너지는 걸 보며 이기적인 건 역시 인간이구나 하는 씁쓸함을 남겼다.
짧은 소설이지만 여러 쟁점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내가 나를 죽인 건가?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내가 둘인 건가? 아니, 그건 말이 안 돼. 그렇다면 나는 누구지?‘ - P112
"어떤 때에는 자신이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거품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가 아닌지가 모호해집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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