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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몬스터
이두온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평점 :
복지 회관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려던 허인회는 그 순간 정전이 되는 바람에 풀 안에서 허우적대다가 발목을 접질린다. 그런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강사 조우경이었다. 수영 강사답게 눈길을 사로잡는 건장한 체격으로 자신을 구해준 우경에게 인회는 대뜸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인회의 남편 오진홍은 결혼 전에 차였던 여자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인회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홍과 이혼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을 감내했다.
그런데 우경이 자신을 구해준 순간 이후 그에게 단번에 빠져들어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엄지민은 엄마 염보라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받고선 갚지 않는 바람에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엄마는 도통 나타나질 않았다. 연락을 해봐도 받지 않았고, 엄마가 보내온 문자는 그녀가 쓴 것이 아니라고 의심될 정도였다. 그래서 집을 뒤지다가 엄마가 혈액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진 지민은 그녀가 다녔다던 수영장을 다니며 잠복을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의 흔적은 찾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던 어느 날, 집에 누군가가 찾아온다. 엄마와 바람이 난 아저씨의 아내 인회였다.
소설은 몇몇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암에 걸린 엄마를 찾기 위해 수영장에 다니는 지민과 같은 수영장에서 젊은 수영 강사에게 빠져버린 50대 여성 인회였다. 그리고 소설이 조금 진행된 후에는 수영 강사 우경의 시점이 추가되었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수영장의 나이 든 여성 회원들의 정체가 밝혀진 뒤에는 고미선의 시선도 등장했다.
이렇게 연령과 성별이 다른 여러 캐릭터들이 모이게 된 건 복지 회관의 수영장이었다. 이 수영장에 관한 특이점은 소설 도입에서부터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도시의 미혼 남녀의 결혼을 위해 수영장이 이용됐다는 것이다. 구청에서 주관하는 단체 미팅 같은 행사라는 명분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다 읽은 후에 소설의 시작을 장식한 이 장면이 소설 전반에 대한 통찰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나 재력 등의 조건만으로 뽑힌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는 행사에 사랑이 있을 수 없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저마다 미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가만 보면 이들은 사랑에 크게 데인 적이 있어서 이렇게 미쳐버린 것 같은, 목마른 사랑을 하는 거라고 느껴졌다.
지민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한 후에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그로 인해 도망치기만 하는 사랑을 했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 태이에게서 도망친 게 그 시작이었을 터였다.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에게서도 도망치는 선택을 한 걸 보면 지민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뒤늦게 엄마의 병을 알고 백방으로 찾아다니긴 했지만 말이다.
인회는 처음부터 사랑 없는 결혼을 시작했기에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남편이 바람이 난 후에는 사랑에 대한 그 굶주림은 갈구가 되어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관심이나 눈빛만으로도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는 듯했다.
그리고 지민의 엄마 보라에게 사랑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녀와 비슷하게 우경 역시 뚱뚱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멋진 몸매를 유지하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의 시선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우경의 사랑은 등장한 캐릭터들의 사랑과는 다르게 품지 않고 내치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어딘가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영장과 그 수영장의 골수 회원들, 그리고 조우경의 관계까지 얽히고설켜 나중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로 나아갔다. 사랑에 미친 사람들이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나중엔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소설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사랑에 미쳐버린 자들이 한데 모여 나아가는 결말은 뭔가 그들 답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대책 없는 그들이 그 순간의 행복을 만끽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느껴졌다.
그야말로 미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놀라웠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로 인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게 죄가 될 순 없으니 그들 나름의 사랑을 이해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죽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여준다면 어떨까. 나는 바로 사랑에 빠지고 말 텐데. - P157
인회는 자신의 삶이 늘 그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없어서 버려진 자루를 뒤집어쓰기에 급급한 삶. 한번 옷을 잃고 나면 자신에게 맞는 옷을 되찾기가 쉽지 않아서 포대 따위에 연연하게 된다. 그저 배가 고픈 사람이 된다. 검은 산을 헤매는 사람이 된다. 사랑에, 아니 사랑의 진위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랑을 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렇게 아무 포대나 걸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74
지민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마음을 열면서도 반쯤은 닫았다. 다가가면서도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래서, 그렇게 사귀었던 사람들을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그때는 그랬던 것 같은데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좀처럼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채울 수도 없었다. - P88
그녀는 늘 확인받고 싶어 했다. 아직 예쁘고, 사람들이 뭔가를 쥐여주고 싶어 할 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했다. - P52
애정 관계라는 것은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할수록 장벽이 올라가고 포가 날아오는, 사람을 고독한 전시 상태로 몰아넣는 어떤 것으로, 사랑이 그를 외로운 죽음에 이르게 하리라는 사실을 조우경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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