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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원티드 맨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6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평점 :
어느 날 함부르크 기차역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지명수배가 내려진 남자가 나타난다.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한 삐쩍 마른 남자 이사는 터키 출신의 젊은이 멜릭을 따라다닌다. 권투선수인 멜릭은 그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을 알아채지만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자신과 어머니 레일라가 사는 집에 나타났을 때에는 황당했지만, 이슬람 청년인 이사를 가엽게 여긴 어머니의 뜻대로 그가 집안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가 이사를 찾아와 그가 이 나라에 온 이유를 듣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사의 목적을 위해 아나벨이 찾은 사람은 '브뤼 프레르 개인은행'의 행장인 토미 브뤼였다. 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은행을 관리하던 토미는 아나벨을 만난 이후 '리피잰더' 계좌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한편, 헌법수호부의 해외자산국 소속 귄터 바흐만은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해커 팀원을 통해 이사가 함부르크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여러 나라에서 수배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그의 행적을 쫓기 시작하면서 아나벨과 접촉한다.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수감되어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9·11 이후 세계 여러 나라를 위협에 빠뜨리는 테러로 인해 의심을 당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존재로 함부르크의 여러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사가 독일에 체류하면서 그가 원하는 의학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변호사 아나벨, 이사의 아버지 그리고리 보리소비치 카르포프 대령이 아들에게 남긴 유산으로 인해 만나게 된 은행장 토미, 그리고 독일 스파이 귄터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소설 중반을 넘어간 이후에는 CIA와 영국정보부 요원 등까지 개입해 이사를 잡기 위해 뛰어들었다.
또한 당사자인 이사 역시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지만, 한편으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굴기도 했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나 국가적인 시선을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예민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었다. 무슬림처럼 보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종교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이사의 존재 자체가 의문투성이였다.
이사가 멜릭과 레일라 모자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이후 아나벨과 토미가 차례로 등장해 그가 함부르크에 온 이유가 밝혀졌다. 그 이후 국가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각 정부에서 그를 예의 주시하면서 아나벨, 토미와 접선하게 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당사자보다는 주변인들을 설득함으로써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각 캐릭터가 추구하는 가치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아나벨은 인권 변호사이기에 그 무엇보다 이사의 안위를 우선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이전처럼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설령 자신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련한 청년을 걱정했다. 아나벨과는 다르게 토미는 타인보다는 자신이 우선이긴 했다. 자신의 안전이나 물려받은 은행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토미는 순수한 소년 같은 목소리를 가진 아나벨에게 애정을 느끼며 그녀만큼은 무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사리사욕만 챙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사를 쫓는 입장인 귄터는 처음엔 호감이 가지 않았던 캐릭터였지만, 나중엔 테러리스트에게 협력한 자를 잡고 싶어 이 상황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보여 초반과 후반의 이미지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은 덕분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조금 다른 부분으로 인해 소설의 깊이가 느껴졌다. 각 개인이 살아가는 데 두는 가치가 저마다 다른데, 그 다름으로 인해 개인이 부딪히며 괴리가 생겨 원치 않았던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인 결과가 다른 이에게는 최고의 성과이기도 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삶은 언제나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촘촘하게 진행되어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다 읽고 나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놈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자들이 개인적인 죄책감과 집단적인 죄책감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놈들은 ‘당신도 착하고 나도 착하지만 여기 에르나는 전혀 착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착하지 않은 배교자, 신성모독범, 살인자, 간음한 자, 신을 증오하는 자이니 그냥 쳐버리자‘는 식이다. 그런 놈들한테 이 싸움은 서구와 이슬람의 대결이며, 중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 P86
by. 아나벨 그녀는 자신이 언젠가 어떤 고객 때문에 그동안 마지못해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어쨌든 지켜오던 직업적 원칙과 법적인 원칙들을 모두 버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고, 이사가 바로 그 고객이었다. - P168
by. 토미 이사의 문제는, 그게 정말로 이사의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사의 문제는 어지러운 역사와 관련된 거야. 어지러운 역사라는 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 둘의 아버지들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어지러운 조각들. 뭐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바로 그 조각들이 우리 둘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어. - P225
by. 귄터 상냥한 미소를 띠며 곁눈질을 해대는 이 사람들 중에 오늘 그의 친구는 누구고, 적은 누구일까? 이 사람들은 과연 어떤 암흑단체, 정부부처, 종교단체, 정당을 위해 일하고 있을까?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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