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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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다산책방에서 이례적으로 서평단을 많이 모집한 일이 있었다. 1000명 정도에게 새로 출간될 책을 읽을 기회를 주다니. 20명까지는 본 적이 있다. 나도 우연히 그 안에 들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책표지에 그려진 '솜브레로'로 알 수 있듯이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소설이다. 작가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책에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여 있듯이 멕시코와 미국의 특색이 섞여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도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아마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는 분명히 미국 시민이지만, 가끔은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국가의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자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혼혈인 친구들이 알 수 없는 적대감과 끝없이 싸워야 하는 것처럼. 또한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의 적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도는 것처럼. 저자는 책에 쓰인 내용들이 단지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독자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적었지만, 그 어느 책보다도 작가의 삶이 많이 묻어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치병 말기였던 형이 인생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심지어 장례식이 형의 생일 전 날이었다는 점마저 비슷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이 편집 과정에서 맨 앞으로 배치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 사실과 결합할 때 슬픔은 배가 되는 법이니까. 이왕이면 '빅 엔젤'의 가계도도 앞쪽으로 옮겨주면 좋겠다. 책을 절반이나 읽고 나서야 나는 가계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왕 편집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뒤표지에 어떤 상을 받았는지 열거하기보다 추천사들을 적어 넣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가족의 사랑, 용서 등에 대해 언급한 글들로! 그게 이 책의 중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건 가족 간의 애정을 깨닫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는 미국과 멕시코의 문화, 사상들이 끝없이 충돌한다. 특히 미국 시민권을 위해 미국 여자를 찾아 떠난 아버지 '돈 안토니오'로 인해 갈등이 심화된다.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빈곤한 상태로 지내야 했던 '빅 엔젤'은 아버지가 미국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리틀 엔젤'을 아주 오랫동안 미워한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에 대해서 분노를 퍼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빅 엔젤'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리틀 엔젤'에게도 억울한 사연이 있었다. '돈 안토니오'는 결국 미국 여자 '베티'마저 떠나 버렸고, '리틀 엔젤'도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돈 안토니오'는 양쪽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셈이다.

'리틀 엔젤'과 '빅 엔젤'의 형제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소설 속 모든 관계에서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미움은 '죽음' 앞에서 전부 무너져 내린다.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상대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가족이 하나로 제대로 뭉쳐지는데 무려 512페이지의 종이가 필요했다. '돈 안토니오'에게서 배운 강하고 억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던 '빅 엔젤'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사과를 건네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이렇게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임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족들에게 마치 '죽음' 앞에 서나 보일 수 있는 진솔한 모습들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여러 인물이 얽혀 들어 있고, 시점이 중구난방이었다.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다른 시점으로, 다른 인물에게로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실은 중간에 덮어버릴까, 많이 생각했었는데, 완독하고 나면 그때야 어떤 깨달음이 찾아온다. 소설 속의 가족들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뒤늦게 서로의 소중함을 새로이 발견하듯이. 평소에 책을 멀리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멕시코' 소설의 매력을 엿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기꺼이 '빅 엔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뛰어들어 찬찬히 살펴봐 주길.

★내가 뽑은 문장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어차피 다들 언젠가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 거잖아? 흙 속에 망할 놈의 구덩이를 파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이보쇼, 좀 유하게 살라고. 이건 누가 빨리 가나 시합하는 경주가 아니니까 천천히 가라고요.

-가족이란 게 있으면 책임감도 참 많이 따라붙는다.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겨우 살 만해지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배우고 있는 중이야. ('빅 엔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가 삶이란 끝없이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배우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했다. 참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여태껏 살아오면서 저지른 실수들이 모조리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얼마나 답답해하고, 자책해 왔던지. 그런데 '미겔(빅 엔젤)'의 대사를 듣고 나니까 얼마든지 멍청한 실수들을 저질러도 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네가 의문을 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의미 없겠지만. 그게 바로 만사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우리를 사랍답게 만드는 거라고."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는 조금 다른 것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는 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건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친구야. 이건 우리가 아니야. 사람들은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해도,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문장들을 정리하고 보니까, 책 자체는 무척 조잡스러웠으나 눈에 띄는 글귀들이 많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한 방들이 모여서 책을 다 읽고 덮고나면 그래도 꽤 괜찮은 구석이 있는 책이었어, 하는 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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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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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 작년 12월 24일에 도넛 좀 먹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하다니."

2019년도 벌써 며칠 남지 않았고, 특히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다. 종교적인 이벤트지만, 누구에게나 큰 축제로 자리잡은 크리스마스에 딱 걸맞은 책을 소개하려한다. 한국에서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이다. '하루키'가 쓴 글에 <하와이하다>로 나를 홀려버린 '이우일' 작가의 그림이 더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실 소설마다 성적인 이야기들을 지나치게 많이 삽입해서 책을 읽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1Q84>나 <노르웨이의 숲> 등의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단한 필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여서 책이 나올 때마다 결국은 사고야 만다.<1Q84>에서도 결말이 어딘가 엉성해서 화가 났지만, 마지막까지 스토리가 박진감이 넘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우일' 작가의 그림체는 말할 것도 없다. 그의 그림들이 내 부족한 상상력을 채워주었고, 덕분에 책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그림들이 매력적이어서 책에서 다 오려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일반 동화와 같은 구조를 가진다. 문제가 발생하고, 타인의 도움을 얻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마지막에는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 '양 사나이'라는 남자가 작곡 의뢰를 받았으나, 약속한 크리스마스가 다 되도록 곡을 써내지 못한다. 전전긍긍하던 '양 사나이'에게 '양 박사'가 어떤 해결책을 제공하고(해결책이 무엇인지는 책에서 확인해 보면 좋겠다. 워낙 글이 짧기 때문에 다 공개하기가 꺼려진다),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결국엔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주 충만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는 어릴 때 읽었던 동화들에서 자주 보던 흐름이다.

책과는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물론 현실에서는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이도 드물고, 결말이 꼭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고보니까 동화책에서는 왜 끝끝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인생은 원래 그런 법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긴 어릴 때 주인공이 좌절을 겪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면, 그 트라우마가 꽤 오래갔을 것 같다.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람은 꼭 성공해서 언젠가는 내 인생도 그렇게 되리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했으니까.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어른이나 아이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한 마땅한 선물을 찾지 못했다면, 이 책을 구매해도 좋겠다. '이우일' 작가의 그림이 삽입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구매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 그리고 초판 한정 카드도 들어있으니 책과 함께 오랜만에 편지를 써 선물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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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 빛과 색으로 완성한 회화의 혁명 클래식 클라우드 14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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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인생 여행단 12월의 도서에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모네‘는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나 대상의 물질성보다는 ‘감각‘과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다. 그는 대상과 ˝자신 사이에 있는 공기, 바람, 안개, 온도, 습기, 시간 그리고 빛 등의 요소들을 그리고자 했다˝. 한 가지 대상을 놓고, 시간이나 날씨,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여러 개의 캔버스를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하나의 대상을 그렇게 오래도록 관찰해 그려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모네‘의 그림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사물이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꾸준히 사물을 관찰하고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모네‘의 실력과 태도도 감탄스러웠다. ‘모네‘의 그림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으며, 인상주의의 특징인 간략한 붓질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 것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세세한 특징들을 잡아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대상에게서 받는 인상만 잘 살릴 수 있다면, 정확한 그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책 <모네>에는 이토록 놀라운 재능을 가진 화가 ‘모네‘의 혁명가와 같은 모습이 잘 드러나있다. ‘모네‘의 그림들을 여러 전시회에서 접해 왔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나도 그의 그림을 단순하게 ‘예쁜 그림‘이라고만 평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모네의 ‘예쁜 그림‘ 뒤에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에 미술작품을 즐긴 적이 많았던 나는 ‘모네‘의 그림에서 아름다운 색감만을 포착했을 뿐이었다. 작가가 생존을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때도 있었고, 사회가 원하는 길과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빈곤과 냉랭한 시선들을 감내해야 했던 적도 많았으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무심히 작품을 지나치던 이전의 모습을 버리고, 깊이 있게 작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장점이다.

‘모네‘가 인생의 굴곡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가 된 데에는 사람들의 조력이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술을 하는 데에는 돈이 무척 많이 든다. 아무리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물질적인 어려움을 뛰어넘지 못하고 다른 일에 종사하게 되는 예술가들도 많다. 하지만 ‘모네‘에게는 고모 ‘르카드르‘가 있었다. 그녀는 ‘모네‘의 재능을 알아보고,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모가 없었더라면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 속에서 화가의 길이 좌절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미술학교에 다니게 되었더라도 높은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얼마나 갖은 고생을 어릴 때부터 해야 했을까. ‘르카드르‘와 같은 이들의 도움 없이 간절한 꿈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예술가들이 존경스럽다. 또한 ‘모네‘에게는 함께 인상주의를 이끌었던 동료들의 존재도 있었다. ‘르누아르‘, ‘마네‘, ‘세잔‘, ‘드가‘, ‘바지유‘, ‘피사로‘ 등과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같이 그림을 그리러 나가기도 하면서 그들은 미술사 속에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모네‘를 인정해주고 그림을 팔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뒤랑뤼엘‘도 빼놓을 수 없다.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세계에 대항해 신념을 지켜내고자 했던 동료들이 없었다면, ‘모네‘의 그림은 아주 작은 몸짓에 불과했을 것이다.

‘모네‘는 한 학파의 처음과 끝을 모두 지켜본 흔치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보통 누군가의 전기를 읽다 보면, 사후에 비로소 주목을 받아서 자신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이 적지 않다. 11월 인생 여행단의 목적지였던 ‘레이먼드 카버‘도 작품 <대성당>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오래지 않아 죽음을 맞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모네‘는 아주 행운아였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다른 유명인들의 삶과 달리 ‘모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다정하고 좋은 ‘파파 모네‘였다는 점이다. 그는 밖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갈 때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드넓은 자연으로 나가서 형제들과 뛰어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달려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추억들은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까. 자신의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가정에 소홀하거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그런 예술가가 아니라서 ‘모네‘가 더욱 좋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프랑스‘, 특히 ‘지베르니‘에 가서 ‘모네‘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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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창문 - 2019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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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인 <호텔 창문>과 수상 후보작들이 실려 있는 책이다. 수상작이기 때문에 <호텔 창문>을 위주로 편집되었고, 뒤표지에도 <호텔 창문>의 간략한 줄거리만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호텔 창문>만이 주인공인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이 작품집에 수록된 후보작들도 전부 훌륭했고, 눈여겨볼 만했다. 애초에 작가들 라인업이 빵빵해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다른 수상작품집과 좀 달랐던 점이 있다면, 심사평이나 수상소감이 수상작보다 앞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해설을 들으려니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굳이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에 앞으로 돌아와서 심사평을 살폈다. 우선적으로 <호텔 창문>을 읽게 된 건, 며칠 전에 관람했던 영화 <호흡>과 소재-죄-가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호흡>에서는 죄가 있는 가해자가 그 죄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했다면, <호텔 창문>은 띠지에 쓰여있듯이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해 고찰하는 작품이다.

◆작가 편혜영, <호텔 창문>

며칠 전 관람했던 영화 <호흡>처럼 편혜영 작가의 작품도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영화 <호흡>에서 '정주'가 유괴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들의 수술비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에서는 결이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 <호흡>의 '정주'와 달리 소설 <호텔 창문>의 '운오'가 한 행동은 죄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운오'가 형의 도움으로 생존한다. 큰어머니는 그것만으로 '운오'에게 죄가 있다고 봤다. 평소 행실이 나쁘고, '운오'를 주기적으로 괴롭히기도 했던 형은 의로운 죽음을 맞은 것처럼 평가되었고, '운오'는 살아남아 큰어머니에게 끊임없이 시달리며, 자신이 누구 덕에 살았는지를 자꾸만 되새겨야 했다. 삶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운오가 형의 제사에 강제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 호텔에서 일어난 화재를 목격한다. 가끔 야릇한 상상을 하며 호텔 창문을 바라보기도 했던 곳이다. 그리고 형의 친구들 중 한 명에게서 그의 직장에서 발생했던 화재 사건에 대해 듣는다. 형의 친구는 자신이 저지른 짓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정말로 방화를 저지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장장이 그를 계속해서 몰아세우니까 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과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범죄자라고 규정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기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 편혜영 작가는 죄와 죄의식에 대해 묻는다. 누구의 죄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오'는 그리고 형의 친구는 큰어머니와 공장 사장을 통해 강압적으로 죄를 떠안는다. 그리고 자신의 책임이 없음에도 깊은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게 누군가를 책망하면 안 좋은 일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큰어머니는 공장 사장은 그들을 몰아세웠다. 이 부분에서 의구심이 생겨났다. 정말 자신의 아들이 '운오' 살렸다면, 왜 큰어머니는 아들이 살려낸 생명을 온전히 지켜주지 않고, 자신의 슬픔만을 강요하는 것일까. 자연발화로 판명이 났음에도, 왜 공장 사장은 형의 친구를 몰아세워 책임을 전가했을까. 왜 엉뚱한 사람에게 죄가 성립되고 죄의식을 안고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자신이 아들을 혹은 공장을 잘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들은 누군가를 타겟으로 정해야만 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을 원망하면 마음은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닌 거니까. 그렇다면 죄는 생사람을 잡은 큰어머니와 공장주에게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편혜영 작가의 <호텔 창문>은 얼떨결에 가해자라는 택을 달고, 인생을 살아가게 된 이들의 삶을 고찰하여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작가 김금희, <기괴의 탄생>

'기괴의 탄생'은 소설 속 작가 '돈수'의 작품 이름으로 등장한다. '기괴의 탄생'이라는 작품에서 '돈수'는 침까지 흘려가며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는 우량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괴의 탄생>은 이처럼 불타는 듯한 열정을 쏟아붓지만, 결국엔 알싸한 맛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릴 사랑들에 대해서 묘사한 작품이다. 이런 사랑의 과정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어 버리는 사랑의 무결함도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김금희' 작가의 <기괴의 탄생>은 역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위트 있는 문체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저자의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똑같은 상황을 두고 이런 문장들을 떠올릴 수 있는 걸까, 부러운 마음이 솟아난다.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기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기괴'는 소설 속 주축인 '윤령'의 직장 동료인 '리애'씨가 말하는" 참으면 미워하게 돼"라는 문장에서 영감을 받았다. 말하지 않고 참으면서 누군가의 상황을 열의를 가지고 탐구하다가 만들어 내고야 마는 그 거짓된 진실을 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리애'씨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리애' 씨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추측하는 '윤령'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억측에서 탄생한 거짓된 진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다 못해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으므로, 충분히 '기괴'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가 생각한 '기괴'라는 건, 예측해 보건대, 한 쪽이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대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균형이 무너져 내려버리는 그 상황을 말하려던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위에서 언급한 우량아가 손가락을 침을 흘려가며 빨던 그 장면처럼 말이다. 공평한 관계가 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유지되는 사랑은 지속되기가 어렵고, 마침내 그 한 쪽을 무너뜨려버린다. 이런 면에서 작가가 '기괴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윤령'이 존경하던 선생 '진은파'의 사랑이 <기괴의 탄생>에서 중심된 화제인데, '은파'는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 관계는 아주 당연하게도 무너졌고, 애초의 순수함은 사라진 채 '기괴'로 추락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작가 김사과,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이수영'의 삶은 '한비'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에는 자신의 삶에 온통 불만을 품고 있었고, 도통 나아지지 않는 인생을 주변의 탓으로 돌리곤 했었다. 하지만 공강인 줄 모르고 학교에 간 날, 그녀는 우연히 '한비'와 마주친다. 다른 동기들도 멀리하고, '수영'으로서도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타입이었던 '한비'와의 뜻밖의 만남은 '이수영'의 삶을 뒤집어 놓는다. '한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수영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이수영'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고, 그녀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수영'에게 있어서 '한비'는 큰 전환점이었지만, 그녀는 비밀도 많고, '이수영'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신비롭기 짝이 없던 보헤미안 친구('한비')의 비밀과 급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면서 예술가 친구('이수영')는 상실감을 경험하고, 이후 '한비'가 없는 삶을 상상하며 절망하게 된다.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친구에게서 깊은 애정을 느끼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인간이라는 건 종국에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야 하니까 헤어짐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사과' 작가의 이번 작품은 친구 사이의 우정과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잃어버리고야 말았을 때에 찾아오는 막막함을 그린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김혜진, <자정 무렵>

친한 친구였던 '유리'의 사무실에서 파티가 열린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지껄인다. "점진적으로 그런 사람들도 우리가, 사회가 끌어안아야 한다"거나, 한국은 이런 면에서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다느니 하는 종류의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관계도 사실은 아주 보통의 것이라고 말한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계기로 이어져서, 소소한 이야기들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그런 사이 말이다.

소설 속 '너'와 '나'는 동성 연인으로 보였다. 아마 김혜진 작가는 이런 관계도 특별하게 여겨질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다. 소설 속 사람들처럼 배려한답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대면서, 정작 그들과 "나란히 서 있는 건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들이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우리가 좀 더 나은 정책과 사람들의 시선 변화를 위해 나서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끝없이 자신들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받고, 사회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서 그들의 관계를 도와야 하는지 들어야 한다면 무척 진이 빠지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가족,연인 등-의 결합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지 간에, 제3자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말을 얹던 사람들도 사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당황스러움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그들을 위하고 싶은 호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려나 순수한 걱정이라고 부르는 건 우리의 일방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김혜진' 작가의 <자정 무렵>을 통해 또 이렇게 새로운 시선에서 세상을 본다.

◆작가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죽은 언니를 대신해서 '조지영' 씨는 '송이'라는 조카를 돌본다. 가진 게 별로 없는 가족이지만, 서로를 위한 마음만은 가득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였다. '송이'라는 한 사람만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할머니와 이모의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져서 울컥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으나, 잔잔함과 애틋함이 매력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소장해 두고 싶은 소설이었다.

◆작가 조남주, <여자아이는 자라서>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여성들의 인권을 수호하고, 도망쳐 온 여성들을 보호해주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성의 딸은 자라서 여성주의 문학을 읽는 독서모임을 대학에 개설한다. 그녀의 딸인 '주하'라는 여자아이는 자라서, 상습적으로 같은 반 여자아이들을 성희롱하던 남자아이들을 처벌할 방안을 마련해 낸다.

더 이상 당하기만 하는 여성들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주목할만하다. 그들은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여성을 보호하는 일에 나서기도 한다.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어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모를 수 없었던 할머니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놀랍다. 이렇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자 어른을 보고 자라면, 자연스레 앞으로 여성으로서 맞닥뜨릴 문제들을 해결할 용기와 실질적인 방안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하'의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성교육 캠프에 수시로 참가하고, 대학교 때는 여성주의 책 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기도 하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져 '주하'라는 딸은 남자아이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증거를 남기려고, 그들을 유인해낼 계획까지 세운다. 이처럼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수 세대에 걸친 여성들은 개별적으로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애쓴 일들은 축적되어 강렬한 힘이 되고, 뒤 세대의 여성들의 인권 향상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즉 한 세대의 여자아이의 성장은 다음 세대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여자아이들이 자라서 서로의 삶에 어떻게 보탬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조남주 작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페미니즘 소설이다.

◆작가 최은미, <보내는 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의 마음을 묘사하는 소설이다.

아이를 매개체로 친해진 관계는 위험하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들이 개입되면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아' 씨와 '영지'씨는 가깝게 지냈다. 둘 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고 있고, 아이들 이름의 끝자가 윤이라는 것도 같았기 때문에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헛헛함을 '진아'씨와의 관계에서 메꿔 보려던 '영지'씨는 사소한 일들에도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애정을 쏟던 관계이기에 '진아' 씨에게서 자신은 모르는 비밀이 발견될 때 그녀는 서운함을 느낀다. 그리고 종국에 '진아'씨가 떠나고야 말았을 때에 큰 슬픔을 느낀다.

꼭 이성과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친구 사이에도 이런 깊은 애정이 생겨나곤 한다. 나만큼의 정성을 쏟아붓지 않는 상대에게서 상처를 입는다. 모든 관계에는 바람이 들 만큼의 공간이 남아 있어야 한다, 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선을 긋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밀도 높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을 접하면, 당연히 상실감은 그만큼 깊어진다. 특히 '진아'씨와 '영지'씨는 육아나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과 외로움을 공유하는 사이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공통적인 분모를 가진 상대를 찾아내기란 꽤 어려운 일이니까. 소설 <보내는 이>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관계에는 늘 끝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마음을 절제하는 일이 중요한데, '보내는 이'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면서도, 우리는 또 그렇게 어둠이 밀려오지 않을 관계인 것처럼 모든 걸 내주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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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내려오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
김동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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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울 만큼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 사람들은 도피 방법으로 가장 먼저 여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시간적, 물질적 제약으로 인해 원할 때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삶의 권태로움을 맛볼 때마다 여행 에세이나 가이드북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마치 내일 당장 여행을 갈 것처럼 가고 싶은 지역들을 정해 놓는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지금 당장 집을 박차고 싶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면만을 예쁜 사진으로 선보인다기보다 자신이 얻은 깨달음들을 차분히 적어 내려간 일기에 가깝다. 여행지만의 특색이 담겼다거나 너무 매혹적이어서 빨려 들어가고 싶을 만큼의 사진들이 없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어디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일상적인 순간들이 가득하다. 작가가 만난 '천국'들을 함께 공감하기엔 시각적 자료가 부족했다. '천국'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소확행에 더 가까웠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평생 벗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황홀하고, 아름다운 곳이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이라는 공간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을 테니까, 하고 마음을 바꾸니 책을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외에 기이하게 여겼던 부분이 또 있는데, 바로 각 장마다 끝에 '천국'이라는 단어가 담긴 문장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참 제목에 걸맞은 문장들이다 싶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꼭 이런 문장들이 들어가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모든 여행에 좋고 나쁨이 있듯, <천국이 내려오다>에도 매력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일단 작가가 여행한 지역이 무척 다양하고 많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통의 여행객들이 자주 찾지 않는 장소들을 다녀왔다. 게다가 가는 장소마다 사건이 터지기 일쑤였다. 우크라이나에 갔는데 마침 러시아랑 전쟁이 발발했다거나,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걸 지켜본 적도 있었다. 마치 여행 작가라는 직업에 온 우주가 나서서 보탬이라도 되려는 듯 에피소드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불안정하고, 지쳐 쓰러질 만한 상황들 속에서도 '천국'을 발견해내는 작가의 긍정적인 에너지란 분명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성격이었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 동안 작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이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모든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냈다. 물론 그것이 '여행'에서 그쳤기 때문이리라. 어찌 됐든 흔하지 않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남긴 이 기록들은 읽을만한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모험하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날 열정을 제공해주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원하던 행복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천국이 내려오다>에 일상적인 즐거움들을 기록해 두었다. 특별한 모험을 하는 경우보다 한국에서도 할 법한 일들을 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누리는 때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소소한 일들도 독특한 여행지라는 배경 덕분에, 때로는 '여행'이라는 단어 때문에 훨씬 특별해졌다.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정한 배려와 한국에서는 좀처럼 누리기 힘들었던 여유도 작가의 여행에 한몫 거들었다. 예를 들어 파리에서 에스프레소에 크루아상을 곁들일 때, '김동영'작가에게 진짜 커피 맛을 알려주려고 열의를 보이는 프랑스 남성분들로 인해 보통의 하루가 한층 애틋한 추억으로 변할 수 있었다. 이 밖에 러시아 올혼섬에서 작가를 쫓아다니며 도움을 주던 검은 개도 일상적인 소재('개')가 '천국'이라는 상위 단계로 변모한 케이스다. 이처럼 별것 아닌 소재들이 여행이라는 효과를 입고 좀 더 각별해지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새겨진다.

이 책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다른 책들과 달리 함께 더 넓은 곳으로 떠나자!라고 외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가는 자신이 지내고 있는 한국의 포근한 집이 '천국'이었다고 말한다. 집 밖을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천국'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멀리 떠나보고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그렇게 끝까지 뽐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내고 있는 이 공간과 주변에 놓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일상적이지 않지만, 작가를 따라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을 꼽는다면 히말라야 산맥을 오토바이를 타고 넘던 장면이었다. 아직 멀리 항해해 보지 않아서 다른 곳에 '천국'이 있으리라고 믿는 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또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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