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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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괜스레 아는 척만 했던 고전들을 독파하는 것을 넘어서서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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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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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89쪽)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이어지는 두 권의 책에는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시리즈명이 붙어 있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혀두고 있듯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가 어릴 적 기억에 의존해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심지어는 소설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작가 개인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유년의 기억을 옮겨두고 있는데, 이를 읽고 있노라니 애틋함에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을 붙잡을 길이 없었다. 그건 세계대전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던 시기를 버텨내야 했던 어린 '완서'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싱아'가 어떤 모양으로 생긴지도 모르고, 그 냄새나 맛은 자연히 알지도 못하는데도 '싱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번뜩 흙바닥을 휘젓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 연상되고는 했다.

그렇다면 내가 잃어버린 '싱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린 '완서'가 마음으로부터 연민을 느끼던 서울 토박이로, "너울대는 들판"이나 "풀과 들꽃과 두엄의 냄새"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다. 그 대신에 불량스러운 과자들이나 이제는 단종된 몇몇 기계들이 나와 친구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런 것들만 보면 친구들과 잘도 흥분해서 어릴 적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술술 풀어놓고는 했다. 하지만 '완서'의 '싱아'를 보니 알 수 없이 샘이 났다. 시대가 변하고 나면 언제든 사라질 가능성을 품고 있는 종류의 것들이 아니라, 항상 거기에서 나를 기다려줄 것들로 추억을 채워 넣고 싶었다. 어떤 향긋한 냄새나 탁 트인 풍경 앞으로 어린 나를 세워두고 싶었다. 시대가 진보할수록 과거를 또렷하게 기억할 만한 감각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동청도 겁나지 않았다.(312쪽)

자연의 일부로서 자라날 기회 이외에도 어린 '완서'는 어른들의 깊은 애정과 어머니의 굳은 의지 속에서 자라났다. 특히 '완서'의 어머니는 남녀 차별이 극심하던 때에도 어린 '완서'가 '신여성'으로 자라날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완서'와 그녀의 오빠를 서울에 데려와 신식 공부를 시켰다. 그건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는데, '완서'가 세상에 눈을 뜨고 자신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시대적인 암흑에 어떤 빛이나 용기가 되기에는 역부족(177쪽)"이었던 어머니였지만, '완서'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증언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을 만큼 강인하게 자라나도록 한 데에는 전쟁통에 아이들 둘을 홀로 키운 어머니의 공이 컸다.

'싱아'에 대한 추억과 고된 서울살이 속에서 느꼈던 독서의 즐거움, 가족들과의 정겨운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스무 살의 '완서'가 탄생했다. 6·25 전쟁 동안 가까스로 피난을 가면서 '완서' 본인과 그녀의 가족들은 완벽하게 궁지에 몰렸다. 그녀의 오빠를 기다리는 동안 후퇴가 지체된 바람에 격전지에서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버텨낼 각오를 해야만 했다.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자 '완서'의 안에서는 도리어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목격하게 될 미지의 사태와 거대한 공허를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책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어디에 처박혀 있던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완서'를 자극하고, 그녀는 시대적 환경이 준 공포를 초월해 작가로서의 자아를 획득한다. 후대의 우리는 또한 그녀의 글쓰기를 통해 덜 다듬어진 순수한 상태의 우리가 있었음을 기억하고, 현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또 하나의 '찬란한 예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스무 살 '완서'의 번뜩이는 결심이 만들어낸 파도는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일렁이며 다가와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증언하도록 부추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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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 나씽 - 북아일랜드의 살인의 추억
패트릭 라든 키프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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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분 아래 숨겨진 정치적 동기와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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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 중 열린책들 세계문학 268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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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도 어느새 중반부에 이르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든 일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잡힐 듯하다가도 금세 저 멀리 달아난다. 내가 '알 것 같다'라고 말하면, 작가가 '네가 알긴 뭘 알아?'하고 달아나는 식의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야기 자체가 분명히 매력적이다. 독자의 무지를 철저히 까발리는 작품이기는 해도, '부동점'으로부터 시작해 '부동점'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야기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 내기 위해 안달이 나고야 만다.

(중)권은 '게부라(악의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하급의 세피로트로서 우주가 파국한 이후에 <악마>를 탄생시켰다. '벨보'를 미지의 인물에게 쫓기도록 만든 <계획>이 여기에서 수립된 점을 감안한다면, <악마의 빛>이 틀림없는 지도 모르겠다. (상)권에서 <계획>으로 추상적으로만 언급되었던 <헤르메스 계획>이 '가라몬드' 사장의 머릿속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독자의 지적인 수요에 응답하기 위해서 해당 계획을 수립한다. 은비주의 작가들의 원고를 닥치는 대로 불러들이면서 '가라몬드' 사장은 명확한 비밀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이야기들이 서로 중복되면서 확증되면, 그게 곧 <참>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책을 시장에 내놓겠다는 '가라몬드' 사장의 발언은 위태롭게 들린다.

(상)권에서 '국립 공예원'에 매달려 있던 '푸코의 진자'가 (중)권에서 또 한 번 등장한다. '벨보'는 자신이 처음 '푸코의 진자'를 보았던 순간을 '카소봉' 앞에서 회상한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대이지만 우주 어딘가에는 불변하는 단 하나의 고정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크게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벨보'는 얼마 안 가 '유일무이한'이라는 수식어를 뒤집어 버린다. 사실 우주의 모든 점이 부동점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니까 불변하는 고정점을 <진리> 혹은 어떤 <의도>라고 가정한다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상정해 놓고 세상을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도처에 있으며 모든 가설이 <진리>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벨보'의 문장에서 내가 느끼던 두려움이 아예 잘못된 예감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엉터리 원고들을 읽던 와중에 '카소봉'은 "형상이 없는 것에 형상을 부여하고, 사람들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던 환상을 환상의 실재로 변용시키고 싶다는 욕망(215쪽)" 때문에 또 다른 <계획>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이제까지 축적된 '카소봉'의 지식은 여기에서 폭발 상태에 이른다. 이제는 성전 기사단의 비밀을 캐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이 개시되었다. 비합리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인류는 일련의 비밀을 밝혀내고 좀 더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가 될 가능성, 혹은 본인들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갈 확률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누구의 눈에도 여태껏 띄지 않았던 지하의 비밀인 만큼 어쩐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손에 쥐게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감이 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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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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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같은 노동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수록, 아마존 노동자들의 야영지는 점점 더 국가적 재앙의 축소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RV 주차장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당연시해왔던 중산층의 안락함에서 까마득히 아래로 추락한 노동자들로 꽉 차 있었다. 이 사람들은 최근 몇 십 년간 미국인들을 괴롭혀온 모든 경제적 재난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107쪽)

노마드적인 삶에 대한 열망에 한껏 취해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어느 한 곳에 매여 기계처럼 일을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던 고등학생 시절의 일이다. 단기성 일자리들을 전전하며 필요한 만큼만 돈을 벌고, 떠돌아다니는 삶의 자유로움과 행복을 친구들에게 거의 다그치듯이 강조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그런 꿈을 꾼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우주 어딘가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부동점이 존재한다는 안정감이 없었다면 나는 노마드로서 살아가는 상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노마드'를 언급할 때 그건 주어진 삶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얕은 반항에 불과했다.

결국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내 치기 어린 상상과 달리, 『노마드랜드』에서 '밴 생활자'들의 삶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만큼 절박하다. 국가라는 거대 시스템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리는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노마드적인 삶은 과거에 품고 있던 낭만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다. 그건 급박한 위기로서 실제로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내 앞날을 심각하게 우려하도록 부추겼다. 『노마드랜드』를 읽고 난 지금의 나에게는 20대 특유의 낙관이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제시카 브루더'가 취재한 '린다'의 삶을 신중하게 새겨듣고, 내 앞날을 가늠하고 있다. 한편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삶의 끝에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현시대의 부조리함과 자본주의의 비극 속 우리 모두에게 닥쳐올 미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우리 모두에게 "미래란 어떤 그림일까?(55쪽)" 하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곳에서만 살아갈 필요는 없어요. 그게 이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요!(215쪽)

'린다'를 비롯한 노마드들은 RV 차량을 집처럼 개조해 삶을 꾸려 나간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캠핑이라면 몰라도, 끝을 알 수 없는 밴에서의 생활은 불안정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밴을 끌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삶은 수많은 변수와의 날선 전쟁에 가깝고, 그들은 언제든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할 준비가 된 사람들 때문에 항상 긴장된 상태로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켜내야만 한다. 전통적인 거주공간은 거주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밴 생활자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취약한 부분을 드러낼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노마드들이 굳이 밴에서 거주하려는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위기에 처해본 적 없는 우리에게 그건 유일한 선택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좀 더 나은 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종종 우리의 상상 속 긍정적인 대안이 되어주었던 아메리칸드림과 코로나 발 경제 위기는 미국 중산층 노마드들과 우리를 동일선상에 세우고, 그들의 몰락과 그로 인한 참담한 선택이 마치 우리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다급하게 RV 차량을 대체할 만한 선택지들을 재빠르게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린다'와 그녀의 동료들은 절망적이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들은 집값을 덜어냄으로써 재정적으로 살아남는 데만 목표를 두지 않고, 진정한 성취와 자유를 찾아내 자신의 삶을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들이 기어코 찾아낸 그 새로운 대안에도 물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유색인종에게는 이런 불확실한 대안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 '제시카 브루더'도 3년간 노마드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녀 자신이 밴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약간의 안정이라는 특권을 누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 같이 몰락해 가는 와중에 그 안에서도 계급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터무니없이 느껴지고, 삶을 크게 비관하도록 만든다.


점점 커지는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는 질문 하나가 매달려 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까?(400쪽)

밴에서 생활하는 노마드 대부분은 자신들을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로 규정하기를 원한다. 미국에서 'HOME'과 'HOUSE'는 똑같이 집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원어민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홈리스'는 집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 전체를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적극적인 부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노마드들이 '홈리스'로까지 나아가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일자리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때에 그들에게 솟아날 구멍은 전혀 보이지 않는 때도 있다. '노마드랜드'에서는 60대 이상의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므로, 신체적인 컨디션도 고려한다면, 위기로부터 벗어날 구멍은 점점 좁아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 따라붙은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지금 여기의 우리와도 전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하우스리스'를 넘어서서 '홈리스'가 될 가능성이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 오고 있다.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서 걷잡을 수 없는 때가 되면, 그래, 그때 우리는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까. 막상 하나씩 소거하려고 보니 죄다 중요한 것들 투성이다. 눈앞에 놓인 삶이 갑자기 애틋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의 시선 바로 아래까지 다가온 '노마드랜드'가 눈을 뜨고 보면 실은 아주 멀리 있는 상상 속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제시카 브루더'는 '노마드랜드'의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도서를 몇 권 적어 놓았다. 『찰리와 함께한 여행』은 밴 생활자들 사이에서 문학적 정전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간주될 정도이다. 이외에 '윌리엄 리스트 히트-문'의 『블루 하이웨이』, '에드워드 애비'의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 '존 크라카우어'의 『야생 속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가 있다.(본문 265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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