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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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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우리들의 '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낮'도 분명히 여기에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밤'을 언급하기 위해서 활용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낮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반대편에 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낮과 밤은 그제서야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낮 동안 이곳은 "잠자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들은 죽었고, 삶을 꿈꾸고 있다". 우리는 밝고 유동적인 시간 속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일시적인 순간을 본다. 어디서든 그가 보는 것은 자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작가는 행성의 반대편에 있는 '밤'으로 자꾸만 파고든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꿈을 꾸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정말로 살아가게 된다. <낮의 집, 밤의 집>에서 '꿈'이라는 것은 밤에 어디엔가 누워 자는 동안 일어난 일로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깨어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던 순간에 보았던 환상도 '꿈'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다. 꿈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꿈 혹은 꿈같은 환상 속에서 우리는 생생하게 깨어있고,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연결된다. 갈급하게 요구되는 진정한 연대는 낮보다 더 깊고,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밤이 되어서야 실현된다.

우리는 이렇게 낮과 밤이라는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실체가 있는 집"이라면, "다른 하나는 무한하고, 주소도 없고, 건축 설계도로 영원히 남을 기회도 사라진 집"이다. 하루를 끝마치면 자연스레 '밤'이라는 집으로 돌아가듯이 언젠가는 끝끝내 '죽음'이라는 집으로 기어들어가야 한다. 어떤 것으로도 존재를 입증할 수 없고, 아무것도 남길 수 없는 죽음은 비관적으로 바라봐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나쁘기만 하다면, 사람들은 죽어 가는 걸 완전히 그만두게 될" 것이다. 죽음은 그만큼 이 작품에서 신성시되고, 죽은 듯 살아가는 삶에 대한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진다. 그건 어떤 깨달음을 주고, 그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실체로서 빛을 발한다. 물론 '태양'은 아주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빛을 발할 수 있을 때까지 힘써서 살아가고, "세상의 모든 입자를 빨아들여 주인에게 돌려줄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는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그 빛도 꺼지고, 분해되고야 만다. 모든 이들에게 밤이 찾아오고 은하계의 불이 뚝, 하고 꺼졌을 때 우리는 그제서야 진정으로 살아가고, 또 삶을 공유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그러니까 낮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깨어있을 수 있을까. 이에 관해 '마르타'는 "네가 너만의 장소를 찾으면,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될 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280쪽에서 이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깨어났다. 여태까지 내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마르타'의 말을 듣는 순간에 정신적으로 내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쁜 하루가 죽 이어지다 보면 살아 숨 쉬는 시간들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느낌에 휩싸인다. 작년 이맘때쯤 사회라는 틀 속에서 내 자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장소를 찾아냈다고 믿었는데, 나는 아직도 '불멸의 존재'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 많을 때는 내 존재를 생생하게 감각했는데, 지금은 내 존재가 나로부터 멀어지고 끝내는 지워져 버린 느낌이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현재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또 "새로운 것,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낮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에도 "내가 ('나'라는 저택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싶다.



사람들이 "모든 것", "항상", "절대 없다", "모든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고, 왜냐하면 외부 세계에는 그런 일반적인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P158

"네가 너만의 장소를 찾으면,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될 거야."- P280

비록 나는 가끔 그 안에서 내가 손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기도 한다.-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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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음 / 아작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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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작가의 소설집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너무 많이 뛰어넘지 않아서 좋았다.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독자인 내게 또 물어줘서 그것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다른 모든 것들을 제치고 인간이 지금 이 세상의 '주인'으로 군림할 만한 가치가 우리에게 있을까. 아니, 세상을 잠시 빌려쓰고 있고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려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 혹은 동물은 절대 동등한 관계가 되지 못할 거라고 회색앵무 한 마리가 인간의 위선을 얄궂게 비난했다.

SF는 인간 이외의 것들에 희망을 거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정말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온갖 것들을 항해 내비치는 기대를 지켜보면서 우리가 최상위층의 생명체로 간주될 자격이 있는건가, 그런 생각들을 했다. '필요'와 '요구'같은 자본주의식 논리를 따라가다가 퇴근길 역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니 슬퍼졌다. 우리에게 자격같은 건 역시 없는지 몰라도 지금 여기의 사람들을 잃을 일을 생각하니 우울해 지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부대끼며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표제작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가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다. 며칠 전 한 햄버거집에서 키오스크 조작이 어려운 노인과 카운터에 서서 진절머리를 내는 젊은 직원을 보았다. 그 직원도 저런 말들을 읊조렸을까. 인간이나 인간과 유사한 '안드로이드' 로봇의 관계같이 느껴졌다. 청년과 노인의 사이가. 그러고 보니 서로를 구분 짓지 못해 안달내는 도플갱어들로 가득한 것 같다. 환상에 불과해 보였던 SF 작품들이 현실이 되는 때에 우리는 어차피 스스로를 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런 행위를 덜 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심너울 작가처럼 "세계가 하나가 된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이다. 누군가는 쓰고, 또 누군가는 읽으면서 밀레니얼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퍼지면, 어디까지 같은 사람이고 어디까지 다른 존재인지 선을 그을 때 사람들이 좀 덜 과격해지지 않을까 싶은 희망을 살짝이라도 품게 된다.- P220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에서 사람의 속성을 본다는 것은 사람의 정신이 그만큼 다른 것도 포용할 수 있다는 증거 아니겠냐고.-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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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을 사랑하는 방법 100 - 매일 하나씩! 어렵지 않게 실천하는 에코 라이프
김나나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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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지구 온난화'라는 단어를 듣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건 너무도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들렸다. 그 나이 때에는 뭐든 불가해하지만, 그중에서도 '기후변화'는 현 세대 안에서 목격할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분명히 도달하겠지만, 내가 사는 동안 그로 인해 고통받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이 날씨가 극도로 더워지고 나서야, 뉴스에서 무너져 내리는 얼음덩어리를 보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선진적이고 지적인 사상을 지녔다고 평가받던 환경운동가들의 가치가 재평가되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스스로가 얼마나 환경을 위하고 있는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빈 수레가 내는 요란한 소리일 뿐이어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제는 진짜 환경을 위한 액션을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지구별을 사랑하는 방법 100>은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또, 코로나19 사태로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감하고 있는 시기에 이 책은 현대인의 필독서로 주목받을 만한 가치를 지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소하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비닐봉지와 일회용 컵의 사용량이 그나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초창기에 고객과의 언쟁을 피하기 위해, 이외에도 갖은 이유로 정부의 방침에 응하지 않는 곳들도 물론 있었다. 게다가 최근의 코로나 사태로 일회용 컵은 원상 복귀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례 없는 방침으로 무언가를 깨달아 나가는 중이었다. 타의에 의해서 지구를 보호하는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좀 실망스럽지만, 결국엔 유용한 행동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본격적인 환경 보호 운동의 시발점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이처럼 정부가 선생님 역할을 자처한 후에야 고작 사소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므로, <지구별을 사랑하는 방법 100>과 같은 책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등장이 과연 몇 사람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래도 100가지나 되는 방법 중에 분명 하나쯤은 누군가의 마음을 동하게 할 것이다. 하나의 꾸준하게 타오르는 불씨가 또 다른 불꽃을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이 학교에, 동네 도서관에, 사회 곳곳에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있으면 좋겠다. 무심코 열어본 책장 속에서 하나의 행동을 시작하고, 부지불식간에 지구별 지킴이로 자리 잡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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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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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는 감정 과잉과 열망이 엉킨 소란한 시기다. 많은 젊은이에게 슬픔은 죽음과 맞닿은 듯한 슬픔이며, 걱정과 불안이 고약하게 활개를 치는 시기이다. 고래떼 같은 격정이 몰려오거나 침대를 휘감고 사라지는 파도 앞에서 젊은이들은 슬픔의 먹이가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p180)"

박연준 시인의 <소란>은 내가 지나고 있는 청춘의 시기와 꼭 닮아있다. 온갖 감정들에 격하게 반응하느라 소란스러우면서도, 또 가장 나다운 시기로 '밑알'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란>을 읽으면서 집 옥상에 올라가 앉아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수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흥얼거리면서). 6년 정도 살면서 한 번도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옥상을 작년에 이르러서야 올라가 보았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던 풍경과 적당한 햇살을 나는 늘 잊지 못한다. 새로운 용기를 불어 넣어주던 그 순간을 <소란>은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은 봄바람처럼 가벼워서 좋았다. 또, 너무 가볍지만은 않아서 여러 생각에 침잠하게 만들었다. 마음 한구석에 일어나는 조그마한 소란이 어쩐지 싫지만은 않다. 읽으면서 아주 여러 번 누구에게 이 책을 건네 기분 좋은 소란을 일으키면 좋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나의 소란을 닮아 있으면서도, 타인의 그것마저 품으려는 작품을 어느 누구도 마다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당신도 서로의 밤에 침입해 어느 페이지부터랄 것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열렬히 서로를 읽어나간 거겠죠.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했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 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p33)"

나름대로의 소란스러운 시기를 지나 지금은 어느 정도 침착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다. 미리 두려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여전히 미리 걱정하며 무척 시끌벅적하게 하루하루를 쌓아간다.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라는 꼭지에 실린 시인의 말처럼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내지 못해 스스로를 미워하던 때도 있었다. 왜 감정적인 소란스러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는지, 나 자신을 억누르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젠 지나치게 애를 쓰던 단계를 넘어섰다. 또다시 일어난 소란을 웃으며 넘길 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삶 속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소란스럽게 감각할 필요성도 발견해 냈다. 타인의 시선에서 여전히 어리고, 부족하기만 한 시절을 지나고 있지만, 나는 내가 가진 소란을 긍정한다. 언젠가는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내가 다시 한번 되돌아오고 싶을 '이십 대'라는 '소란'을 열렬히 사랑하고 싶다.

서쪽은 기울어가는 것들이 마지막을 기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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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락 UNLOCK -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6가지 법칙
조 볼러 지음, 이경식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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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도전이 거듭되는 동안 나는 자주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 수준을 깨닫고 지레 겁먹어 그만둔 경우가 허다했다. 상대의 긍정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지 못한 채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쪽을 택했다. 시련을 극복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나의 시도를 큰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직장을 구하기 시작하면서 한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스스로와의 싸움을 시작할 필요성을 발견했다. 나는 비난에서 개선할 여지를 찾아내고, 시련을 기회로 볼 줄 아는 시각을 획득하기 위해 <언락>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에 담긴 다른 위축된 자아들과 그들의 극복 경험을 마주하면서 의지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에 '되찾았다'라는 동사를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 순간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락>을 읽고서야 비로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지금의 위기와 진짜 싸워볼 힘을 낼 수 있었다. 기꺼이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협력할 준비가 이제는 되었다. 책 한 권으로 삶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언제 겪어도 놀랍기만 하다.



이 책의 저자인 조 볼러는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신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모와 교사, 그리고 개인이라는 두 방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할 만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오랜 연구와 실제 인터뷰를 통해 검증된 이 방법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불확실성과 취약성을 인정하고, 여러 사람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언락' 기술은 한국 학생에게도 어려운 도전 과제인 '수학' 과목을 통해 설명된다. 미국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수학이나 과학 등의 과목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처럼 여겨졌고, 평소의 삶에서 활용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보통 사람들에게서 등한시되어 왔다. 저자는 수학을 비롯한 어떤 분야에서도 자신에게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실수하며 나아갈 것을 권유한다. 개인적으로 수포자 중 한 명으로서 머리를 싸맨다고 어려운 난이도의 수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만, 내가 만약 어릴 때부터 조 볼러의 방식대로 차분하게 문제를 다각도로 해결해 나갈 기회를 제공받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의 격려에 고무된 나는 수포자가 된 나의 삶이 안타까웠고, 실제로 수학 문제집을 구매할 고민까지 어느새 하고 있었다. <언락>을 읽다 보면 이렇게 지금까지 포기해 버린 시간이 아까워지고, 다시 한번 배움에 대한 의욕이 솟아오른다.


<언락>에 등장하는 예시들 중 학습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누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을 차단한다는 부분이 놀라웠고,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분반 수업이 시작되었고, 경쟁심이 심했던 나는 해당 교육 시스템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수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게 될 우려가 있다는 저자의 지적도 분명 옳은 면이 있다. 이 또한 발전주의 국가에서 효율을 중시한 결과다. 선택과 집중의 방식을 통해 아이들을 관리해 온 것이다. 한편으로는 수업의 평준화가 성적 향상을 위한 동기부여에 실패할 가능성은 없는지 우려스럽다.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방식이 한국에 통할지도 좀 의문이다. 물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이지만, 즉각적으로 많은 양의 결과물을 생산해 내기 어려우므로, 부모가 교사의 방식을 인내심 있게 지켜볼지가 미지수다. <언락>에서는 개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나, 사회적인 인식과 거대한 교육 시스템 자체가 불변한다면, 개인적인 노력이 물거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회 전체가 조 볼러의 방식에 따른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행동해 나가는 데 동의한다면, 분명 한국 사회에 유의미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부작용이 넘쳐나던 성과주의의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성장 마인드셋'을 강조하는 <언락>은 현대인의 필독서로 자리 잡아야만 한다.

만약 이것(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잘못된 믿음이고, 실은 누구나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얼마든지 전문 분야를 바꿀 수 있고, 새로운 방향으로 역량을 개발할 수 있으며,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고 이를 평생 이어갈 수 있다면? 매일 뇌가 성장할 수 있다면?- P8

그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대신 자기에게 도움이 될 생각을 찾아 나섰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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