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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 - 우울을 벗어나 온전히 나를 만난 시간
정재은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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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주거지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천청 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생각하면 자가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이 책을 쓴 정재은 작가도 운명 같은 한 집을 만나지 않았다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삶을 지속해야 했으리라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무너져가던 집을 사들여 그 위에 새로운 빨간 대문의 집을 짓고, 남편, 그리고 강아지 봄이와 함께 또 다른 집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무지한 상태에서 집을 지어 겪어야만 했던 불편함부터 내부를 조금씩 수리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저자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오롯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치유하는 경험을 했다. 성격 등이나 개인적인 면에서 나와 닮아있는 작가여서 그녀가 '자기만의 집'을 짓고, 또 그로 인해 현재 이 공간의 중요성을 깨닫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나와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감각은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을 쓴 최은영 작가 이후로 오랜만이다.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저자가 하는 말들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어려웠다. 당장 일어나서 방치해뒀던 집의 구석구석을 나름대로 고치고 싶어졌다. 그리고 실제로 책은 좋은 친구이고, 그와 "즐겁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깨달음과 느낌을 공유한 뒤 반갑게 헤어진다. 그 만남을 일일이 진열할 필요는 없다"라는 문장에 감탄한 후 어렵사리 조금이나마 책장을 정리해보기도 했다. 오래된 종이나 책들을 정리하면서 어쩐지 이 행위가 하나의 선언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이젠 변화를 향해 나가보겠다,라는 외침처럼 들렸다.

작가는 이 책에서 종종 '가난'이라는 단어를 꺼내놓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기도 하는 가난은 그녀를 오래도록 괴롭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결핍된 현실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풍성하게 삶을 꾸려나간다. 저자는 자신만의 속도로, 타인에게 과시하기보다 '나'를 중시하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삶의 본질을 보게 만든 깨달음은 집을 짓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건설하면서 자아를 재구축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집을 통해 절망을 이겨내고,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여행을 하며 떠돌아다닐 땐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태양을 찾아내고, 새로운 세계와 처음으로 마주하기도 한다. 이 책은 집을 짓고 수리하는 일을 예찬한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은 열망을 증폭시킨다. 또한 저자처럼 새로이 지어낸 공간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간을 새삼 다시 보게 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음을 일깨운다.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라는 책은 무척 잔잔하게 흘러간다. 이토록 고요하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사소한 행복을 안기고, 미묘하게 나를 바꾸어 놓았다. 현실을 재인식하고, 자신으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온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리 먼 길을 떠나도, 자신이 가진 집이라는 공간만큼 편안한 여행지는 없음을 책을 통해 배운다.

 

집을 지어보는 일은, 집을 지어보겠다는 결심은,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는 다짐 같은 거였다(
- P32

봄은 그저 겨울만을 이겨낸 계절이 아니라 지난해를 온전히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되는 삶 같았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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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 - 특별한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상의 기록
나란 지음 / 지콜론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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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는 다르게 에세이를 읽는 일이 잦아졌다.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거기는 어떤지 들어보기 위해서, 갖가지의 이유로 에세이 분야의 책을 집어 든다. 보라색과 형광 노란색의 조화가 돋보이는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은 내가 꿈꾸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성북동에서 인사동으로 이전한 큐레이팅 서점 부쿠에서 북 큐레이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북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고, 공식적인 아카데미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막연히 그녀가 나아간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북 큐레이터를 해보고 싶다는 나름의 소망을 내보이면, 되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하다 : "그게 뭔데", 라거나 "그거 해서 뭐 먹고 살 건데?" 사실 돈에 매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면서도, 적지 않은 양의 물질을 생산해낼 수 없는 꿈은 타인에게 컨펌을 얻어낼 수 없다. 북 큐레이터처럼 종종 돈이 되지 않는 목표를 세우던 나는 이전에도 저런 질문들을 수없이 받았다. 나는 예술을 좋아하던 아이였고, 예술은 불확실성이나 배고픔으로 연결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사람들, 주로 부모의 압박에 우물쭈물거리던 나는 먹고살기 어려운 꿈들을 놓치며 살아왔다. '나란' 작가는 서점 일도 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돈 때문에 서점하는 거 아니니까. 떡볶이 사 먹으려고 책 파는 거 아니니까"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가치 창출 전문가'로서의 북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과 그것이 주는 기쁨을 아는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포효였다. 또 그녀는 "만족이나 보람, 기쁨 따위를 쥐여주는 일이라면 그건 가성비가 꽤 좋은 일이 맞다"라고 말했다. 일정 이상의 수익을 낼 필요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신적인 충만함을 제공하는 일을 찾아야 오랫동안 견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문장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 굴하지 않고, 북 큐레이터로서의 인생을 꿈꿀 이유를 찾아냈다.

"세상이 넓은 것에 비해 책 읽는 사람들의 세계는 좁다. 우울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될 테니.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서."

책덕후들의 세계는 실제로도 좁은 편이다. SNS로 책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면서 겪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다. 그러니 당신이 책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인생 속에서 언젠가 한 번쯤은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가까운 미래에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마주친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당신에게 멋진 책을 한 권 추천해줄 수 있는 큐레이터로 성장해 있다면 좋겠다.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서도, 책이라는 공통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분명히 만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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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박산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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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출판사 sns에서 <사브리나>를 읽고 박찬욱 감독 뺨치는 훌륭한 리뷰를 남겨줄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그를 넘어설 확신이 있었다기보다 책리뷰를 남기기 시작한 지 어언 6개월, 이건 꼭 뽑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책을 읽기도 전에 박찬욱 감독과 이동진 평론가의 평을 읽고, 전의를 상실했다. 설령 <사브리나>가 허술한 작품이었더라도, 그들의 소개글은 작품의 황금 띠지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단 몇 줄만으로 책을 요약해내고, 특징을 드러내며, 예비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아, 난 이들에 비하면 작품에 먹칠이나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슬픈 예감이 든다. 이렇게 좋은 평이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사브리나>라는 작품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작가의 이름이 여타 작품과 달리 맨 뒤에 새겨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서부터 자부심이 느껴졌다. 맨 앞에 작가에 대한 소개를 담거나, 뒤표지에 본문의 문장을 몇 줄 적어 넣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감하게 덜어내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독자는 <사브리나>라는 작품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책 <사브리나>는 한 인물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남겨진 사람들은 씻을 수 없는 슬픔을 떠안게 된다. 이미 삶을 버텨낼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세상은 여러 방식으로 고통을 가하고, 2차 피해를 양산해낸다. 기이하게도, 처음에는 루머생성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싶었는데, 점점 내가 믿는 진실을 의심하게 되었다. 작품 자체에서 범죄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지 않아 의혹은 증폭되다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마무리를 짓는다. 결국 진실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작가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 캐릭터의 표정과 대사만으로 작품을 이끌어 나가서, 독자가 상황 판단을 위해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적은 편이다. 캐릭터들이 극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있고, 증거물도 간략하게만 그려져 있다. 범인이 거론되었으나, 여러 루머나 기사와 겹쳐지면서 나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상황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했음에도, 피해자를 특정하고, 그들이 겪는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건 독자로서의 개인적인 편집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루머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괴로움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크게 와닿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도 수년에 걸쳐 악성 루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잃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의적인 거짓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게 많다고 우겼고, 적지 않은 사람이 거기에 동조했다. 교묘하게 그럴듯한 말을 섞어 쓰는 탓이다. 실제로도 우리가 정부나 연예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미미하므로, '음모론'이라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일단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이라도 하게 된다. 호기심을 억누르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이렇게 각종 음모론, 루머, 기사들이 퍼져 나가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뒷일은 고려하지 않은 채 누군가를 두 번 죽이는 일에 가담한다.

우발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악성 루머를 생산해내는 이유가 단순히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무척 절망스럽다. 결국 전부 타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린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이 타인에게 끼친 피해는 간과할 수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거짓 정보를 생산해낸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고, 세상이 이에 쉽게 현혹되어 그들의 잘못을 용인해주었다. 물론 찌라시가 돌고, 악성 댓글이 달려서 사람 하나가 목숨을 잃으면, 누구든 소수의 잘못을 묵인한 적이 없노라고 발뺌할 것이다. 최근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잘못인지 지적되기보다 특정 한 사람이 또 다른 단두대에 올랐다. 거기에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는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사브리나>는 우리가 무감하게 만들어내고, 믿어버리는 거짓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또한 방관자로만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 때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악성 댓글을 보고도 지나치는 것으로, 때로는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고 동의하는 것으로, 온라인상에 유포된 동영상을 호기심이라는 이유를 들이밀며 시청한 것으로, 적지 않은 범죄에 가담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사브리나>에서 거론되지 않은 진짜 범죄자는 우리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에 대한 궁금증보다, 자각하지 못한 채 저질렀을 잘못들에 대한 뼈저린 깨달음만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는 차츰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지고, 드문드문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외에 또 다른 수많은 피해자들이 곳곳에서 목격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남겨진 우리가 거짓을 보지 않은 척 대충 넘어가려는 안일한 생활 태도를 견지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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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너를 생각해
후지마루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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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초반만 해도 작품이 너무 가볍고, 유아적인 방향으로 흐를까 봐 겁이 났다. '마법'이라는 소재 자체에서부터 어릴 때 꼬박꼬박 챙겨 본 만화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탓이다. 일본어로 쓰인 작품들에 관한 편견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데 그들은 독특하고, 때로는 조금 유치한 감성으로 독자와 관객의 근원적인 응어리를 녹이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냉소적으로 읽어내려가다가,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있는 때가 잦다. <가끔 너를 생각해>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순식간에 작품의 세계로 몰두하게 되고, 스토리가 생각지도 못하게 흘러 소중한 교훈과 맞닿으면서 탄성을 자아낸다. 완벽하다고 평할 수는 없을지라도, 분명히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새해에 적당한 마법이 절실한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가끔 너를 생각해>를 통해서 지팡이를 휘두르는 환상적인 마법이 아니라, 진정한, 또 평범한 사람들로서도 실천 가능한 마법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본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타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마녀인 '시즈쿠'가 사용하는 마도구부터 그렇다. 내가 아는 마법사-예를 들어 해리 포터-는 마법이라는 소재에 있어서 주체적이고 주동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시즈쿠는 마도구를 필시 남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소설 내내 시즈쿠는 죽마고우인 '소타'와 마도구를 활용해 사람들을 도와 나간다. "세상에서 가장 냉철하고, 쓸데없는 걸 싫어하는 세대"인 "사토리 세대(일본에서 1980~9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라고 스스로도 여러 번 강조하는 시즈쿠에게 타인을 도우며, 그들의 인생에 휘말리는 건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자신이 이미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며 소중함을 알아차린다. 또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그러면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수한 능력을 지녀야 마법사라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할 때 비로소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작가 후지마루는 이런 깨달음을 제공하면서 어느 독자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선천적으로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마법사처럼 비범한 생명체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작가 후지마루의 서술 방식은 일본의 '사토리 세대', 한국의 청년의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호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청년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배경을 지닌 자들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배반하는지 목격하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가끔 너를 생각해>는 현재의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사람을 도와야 비로소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은 시즈쿠가 외로움에 파고들던 모습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 경로에 과감히 뛰어들었을 때에 곳곳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사람들은 협력하고, 타인과의 연대를 시작한다. 외톨이였던 그녀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인식하면서 세상을 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 예언서라는 마도구를 통해 이전 세대의 마녀들이 시즈쿠에게 무한한 신뢰와 응원을 보낸다. 시즈쿠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장면들로 작가는 "사람의 마음에야말로 마법 같은 힘이 있"으며, 그런 마음들이 연결되려는 시도를 보일 때 우리는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게다가 누군가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휘말리기를 주저하지 않으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기쁨이나 행복을 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합리적인 것들을 중시하고, 사회로부터 비롯된 상실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타인과 거리두기를 선택한 청년 시즈쿠에게 작가는 "마음은 때때로 마법을 능가"하며, 하나로 연결된 마음을 통해 "사람이 일으키는 기적"은 무궁무진하다고. 그리고 그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당신에게도 있다,고 전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 "행복을 나르는 게 마녀의 삶"이고, 우리 모두는 행복을 나를 만한 능력을 가진 마녀다. 그러니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오늘도 누군가를 돕고, 또 구원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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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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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다산책방에서 이례적으로 서평단을 많이 모집한 일이 있었다. 1000명 정도에게 새로 출간될 책을 읽을 기회를 주다니. 20명까지는 본 적이 있다. 나도 우연히 그 안에 들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책표지에 그려진 '솜브레로'로 알 수 있듯이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소설이다. 작가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멕시코계 미국인으로, 책에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여 있듯이 멕시코와 미국의 특색이 섞여 있다. 미국에서 살면서도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아마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는 분명히 미국 시민이지만, 가끔은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국가의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자들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혼혈인 친구들이 알 수 없는 적대감과 끝없이 싸워야 하는 것처럼. 또한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의 적은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도는 것처럼. 저자는 책에 쓰인 내용들이 단지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독자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적었지만, 그 어느 책보다도 작가의 삶이 많이 묻어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치병 말기였던 형이 인생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심지어 장례식이 형의 생일 전 날이었다는 점마저 비슷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이 편집 과정에서 맨 앞으로 배치되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 사실과 결합할 때 슬픔은 배가 되는 법이니까. 이왕이면 '빅 엔젤'의 가계도도 앞쪽으로 옮겨주면 좋겠다. 책을 절반이나 읽고 나서야 나는 가계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왕 편집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뒤표지에 어떤 상을 받았는지 열거하기보다 추천사들을 적어 넣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왕이면 가족의 사랑, 용서 등에 대해 언급한 글들로! 그게 이 책의 중심 소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건 가족 간의 애정을 깨닫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는 미국과 멕시코의 문화, 사상들이 끝없이 충돌한다. 특히 미국 시민권을 위해 미국 여자를 찾아 떠난 아버지 '돈 안토니오'로 인해 갈등이 심화된다. 갑작스럽게 떠난 아버지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빈곤한 상태로 지내야 했던 '빅 엔젤'은 아버지가 미국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리틀 엔젤'을 아주 오랫동안 미워한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에 대해서 분노를 퍼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빅 엔젤'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뿐이다. 하지만 '리틀 엔젤'에게도 억울한 사연이 있었다. '돈 안토니오'는 결국 미국 여자 '베티'마저 떠나 버렸고, '리틀 엔젤'도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돈 안토니오'는 양쪽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셈이다.

'리틀 엔젤'과 '빅 엔젤'의 형제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소설 속 모든 관계에서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미움은 '죽음' 앞에서 전부 무너져 내린다.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상대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는다. 가족이 하나로 제대로 뭉쳐지는데 무려 512페이지의 종이가 필요했다. '돈 안토니오'에게서 배운 강하고 억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던 '빅 엔젤'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사과를 건네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이렇게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임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족들에게 마치 '죽음' 앞에 서나 보일 수 있는 진솔한 모습들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는 여러 인물이 얽혀 들어 있고, 시점이 중구난방이었다.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다른 시점으로, 다른 인물에게로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실은 중간에 덮어버릴까, 많이 생각했었는데, 완독하고 나면 그때야 어떤 깨달음이 찾아온다. 소설 속의 가족들이 '죽음'을 앞두고서야 뒤늦게 서로의 소중함을 새로이 발견하듯이. 평소에 책을 멀리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멕시코' 소설의 매력을 엿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기꺼이 '빅 엔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뛰어들어 찬찬히 살펴봐 주길.

★내가 뽑은 문장

-"인생이 그런 거라고, 멍청아. 너 말이야. 물결은 처음에 세차게 시작하지만, 해안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지지. 그러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물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존재해서 세상을 바꾸는 법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본인이 뭔가 성취했는지 어떤지 의심이나 하고 있잖아."

-어차피 다들 언젠가는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 거잖아? 흙 속에 망할 놈의 구덩이를 파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이보쇼, 좀 유하게 살라고. 이건 누가 빨리 가나 시합하는 경주가 아니니까 천천히 가라고요.

-가족이란 게 있으면 책임감도 참 많이 따라붙는다.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겨우 살 만해지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멍청한지 배우고 있는 중이야. ('빅 엔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가 삶이란 끝없이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배우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했다. 참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여태껏 살아오면서 저지른 실수들이 모조리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얼마나 답답해하고, 자책해 왔던지. 그런데 '미겔(빅 엔젤)'의 대사를 듣고 나니까 얼마든지 멍청한 실수들을 저질러도 된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네가 의문을 품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도 의미 없겠지만. 그게 바로 만사를 현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우리를 사랍답게 만드는 거라고."

-"자네의 인생 여정이 나와는 조금 다른 것뿐이야. 죽음이란 시카고행 열차를 잡아타는 것과 같아. 노선은 백만 개나 되고, 기차는 모두 밤에 운행하지. 어떤 기차는 완행이고, 어떤 건 급행이야. 하지만 모두 낡고 커다란 기차 보관소에 있어."

-"우리는 이러면 안 돼, 친구야. 이건 우리가 아니야. 사람들은 우리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해도,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문장들을 정리하고 보니까, 책 자체는 무척 조잡스러웠으나 눈에 띄는 글귀들이 많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한 방들이 모여서 책을 다 읽고 덮고나면 그래도 꽤 괜찮은 구석이 있는 책이었어, 하는 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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