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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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화재 속에서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한 아이가 있다. 예고도 없이 불타오른 아파트로부터 아이가 살아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아이는 함께 집에 있던 언니의 놀라운 기지로 11층에서 내던져져 목숨을 구했다. 어렵게 얻은 목숨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구원한 세상을 아주 많이 미워한다.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댓가로 얻어낸 생명이므로 그녀는 더 나은 인생을 살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자신을 살려준 세상에게 그녀는 끊임없이 미안해야 하고, 또 고마워해야만 한다. 아이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내고 현명한 판단으로 어린 동생을 살린 후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 십칠 세 소녀"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을 실천한 사십 대 가장(45쪽)"의 그림자에 짓눌린 삶을 살았다. 아니, 대신 살아남았으므로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 애, "'원래 계속 자는 애'를 처음으로 깨운 수현(69쪽)"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니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언니는 나를 업고 다녔다고, 나를 끔찍이 아꼈다고, 나는 엄마보다 언니를 더 따랐다고 한다. 언니는 무엇이든 잘했따고 한다. 언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고들 하는데.(30쪽)"

화재가 일어난 이후로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사건은 꼬리표처럼 '유원'에게 달라붙어 있다. '유원'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 일을 모두 알고 있고, 어떤 프레임을 씌운 채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건 때로 삶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노력해야 한다는 강압이기도 하고, 혹은 죽은 언니를 대신해서 살아났다는 데 대한 동정어린 시선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유원'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언니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언니를 칭찬하기 급급했지만, '유원'은 시끄러운 세상에 자신만 살려둔 언니가 밉기만 하다. 언니는 죽음 이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불멸하고, '유원'은 무슨 짓을 해도 언니의 존재를 연장시키며 보조하는 '증거품'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가 없다. 자신들에게도 없는 '희망'이나 '기적', '빛' 같은 단어들을 '유원'에게서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원'은 스스로가 압축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트라우마였다. 사람들은 세상일을 모든 잘 잊건만, '유원'에게만큼은 가혹하고 잔인하게 잣대를 들이민다.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198쪽)"

세상에 대한 미움과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유원'이 한없이 무거워지고 있던 시기에 '수현'이 나타나고, '유원'의 삶은 일변한다. '수현'은 '유원'이 굳게 닫혀 있다고 믿었던 어떤 문들을 자신만의 마스터키로 쉽게 열어젖힌다. '수현'과 함께하는 '유원'의 삶은 좀 더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가벼우며 편안하다. 그러니까 결국 '유원'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인해 압박받고 있었고, '수현'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자신을 깨워줄 누군가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수현'은 아주 멀리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원'이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유원'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고, 은밀한 몸짓으로 '유원'을 도와주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던 대학생 언니처럼 말이다. '유원'이 '대신' 살아있다는 데서 느끼는 괴로움과 언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털어놓았다면, '유원'을 둘러싼 세계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여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식은 다르더라도, 다들 어렵게 살아난 '유원'을 깊이 애정하고, 지켜주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분명해 보였으니까.



"너 별로 안 무거웠다. 그냥…… 사람 몸은 원래 약하다. 다 잊어버려라.(201쪽)"

세상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서있었는지도 모른다. 살 만하지 않은 세상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건 결국 우리의 자기연민과 일방적인 미움 때문은 아닐까. 여린 영혼을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미련한 감정들로 자신의 무게를 채워나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짓누르던 감정들을 훌훌 떨쳐내고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복잡하게 세상을 이해하기 보다는 가볍게 던지고 또 가볍게 받아치면서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무척 너그러워진 기분이다. 높은 곳에 서려면 그래,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고 나면 내 두려움이 얼마나 별것 아닌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니까, 한껏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곳을 향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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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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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행복해지길 바랐기에 그런 이름을 지어 줬을까, (36쪽)


운이 좀 따라준다 싶은 날에 주변 사람들이 종종 작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들의 착각과는 전혀 다르게 여기에서 '운수가 좋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사용되었다. 작가 '황현진'의 '호재'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아버지와 관련된 우울한 과거를 가졌고, 부모님에게 버려져 고모와 함께 살면서 가장 먼저 '두려움'을 배웠다. 호리호리한 몸으로도 보호자이기를 자청하던 고모부와 동생을 대신해 '호재'를 돌보아 준 고모 '두이'가 있었지만, '호재'는 좀처럼 어둠을 떼어내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이름과는 영 딴판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에게 어떻게 '호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그 이름을 지어주던 순간만큼은 아버지 '두오'가 행복했을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아버지는 '호재'를 밀어내고 이불 속으로 자꾸만 파고든다.

그녀의 이름을 들으면 온 세상의 기쁨 속에서 태어났을 것만 같다.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주 당연하게 행복한 일처럼 간주된다. 가족이라는 집단이 우리 모두에게 유일한 울타리인 것처럼 강요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의 보편타당성에 대해 '호재'는 묻는다: "당연히 행복하겠습니까." '호재'는 바짝 뒤따라오는 텅 빈 어둠을 의식하면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혼란스러운 과거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아버지 '두오'에게 '호재'는 일종의 '알리바이'였다. 아버지는 멀리 사라졌다가 '아버지'로서 '호재' 눈앞으로 되돌아왔다. '두오'는 중요한 순간들에 항상 그 자리에 없었고,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확신은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호재'라는 긴긴 변명을 언제까지나 할 수는 없고, 결국엔 무위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오'에 관해 적다 보니 그는 지금 여기 대부분의 사람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습하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우리는 줄곧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한 후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나. 작가 '황현진'은 "계속 생각하는 것만으로,/ 질문을 놓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때가 있었다.(206쪽)"고 말했다. 작가의 말은 무죄를 입증하고 우리 자신의 도덕성을 보장받기 위해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게 만든다. 자꾸만 생각을 멈추고, 질문을 잊어버렸다는 죄책감이 따라온다.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이 선제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에는 회의가 드는 때가 많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불행한 건지, 당연히 불행한 건지. (69쪽)


아버지라는 그림자에 잠식된 과거는 '호재'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과거를 하나씩 되짚어가며 자신의 불행이 '우연'과 '계획' 중 어느 쪽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아내려 하지만, 답을 알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죽지도 않고 끈덕지게 따라붙는 과거와 함께 나아가는 '호재'는 "계획과 노력이 필요한 미래를 그린 적(60쪽)"이 없다. 소설 안에는 노력이나 계획의 끝에 '호재', 그러니까 좋은 일이 없을 거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자신의 인생이 왜 이렇게 되고야 말았는지를 곰곰이 따져볼 때도 있겠지만,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알리바이'를 줄줄 읊는 사람들이 '호재'의 생각을 가로막는다. 모든 잘못은 '호재'로부터 비롯된 것만 같다. 한때는 아버지 '두오'의 행복에 대한 기대가 담긴 이름을 부여받은 '호재'에게 말이다.

자신을 지키기에도 모자라 보이는 몸으로 '호재'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던 고모부는 노력과 계획의 끝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런 그에게 고모 '두이'는 "거봐, 내가 그랬지. 열심히 살지 말자고.(13쪽)"라며 중얼거린다. 내게 영영 오지 않을 '호재'는 거의 확정된 현실이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고 또 살고 싶어지는 때가 있는 건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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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 - 하루의 끝에 차분히 듣는 아름다운 고전음악 한 곡 Collect 2
김태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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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나 관현악기를 배우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취미로 멋들어진 걸 내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 속에서 나는 음악 학원을 드나들었다.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나는 클래식 음악과 무척 가까워지진 못했다. 클래식 음악만 틀어주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배웠던 음악을 그만두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내가 클래식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았다. 어른이 돼서 기회가 되면 다시 배워야지, 하던 중얼거림은 쉽게 실현되지 못한 채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클래식이 내게는 음악 장르를 넘어서서 나의 과거이자 또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은 미래이기도 하다.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지내던 시기에 『90일 밤의 클래식』을 발견했고, 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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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총 90일 동안 각각 하나의 클래식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90일 동안이나 꾸준히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픈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대중과 클래식 음악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담긴 『90일 밤의 클래식』은 클래식에 문외한인 독자들까지도 포용한다. 예능을 보면서 음악퀴즈가 나올 때마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엇, 저거 나도 뭔지 잘 모르는데?' 하던 독자들이 상식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면서도 전혀 어렵지 않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90개의 장에 난해한 음악 이론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특별한 서사들을 담아 누구든지 쉽게 공감하고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하이든'의 <교향곡 45번>은 곡이 끝나가는 시점에 갑자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휴가를 떠나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음악을 공부한다는 마음보다는 하나씩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다는 태도로 책을 읽는다면 90일은 순식간에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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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클래식』은 90곡의 음악들과 얽힌 비화들 이외에 '감상 팁'과 '추천 음반'을 추가적으로 구성했다. 음악만 들을 때는 제멋대로 해석하던 부분들을 저자의 '감상 팁'을 통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고, 또한 더 깊고 풍부하게 상상을 곁들여 가며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추천 음반'이 수록된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는 음악을 듣다 보면 하나쯤 소장하고 싶은 음반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90일 동안 꾸준히 무언가를 해냈으니 나 자신에게 하나쯤 선물을 해주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물론 수록된 90곡의 음악들은 'QR코드'나 '동양북스 홈페이지 도서자료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때도 있었다. 기어코 하나를 구매해서 오래오래 듣고 싶은 열의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가 그랬고, '비에니아프스키'의 <전설>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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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만났던 곡들 중에서 'DAY 89'에서 만났던 <비올라 협주곡 2번 '항해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가 다름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책을 읽다가 무심코 '그녀'라는 대명사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커플이 등장하면 그들이 당연히 서로 다른 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던 때처럼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샐리 비미시'는 내가 기억하기로 이 책에 나온 유일한 여성 작곡가였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들이 하나의 성에 고정되어 있을까. 아니, 직업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서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하나의 성에게만 허락되어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인해 책을 쉽사리 덮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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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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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 작가 윤이형은 절필을 선언했다. 이상문학상의 저작권 계약 등을 문제 삼으면서 자신이 받은 상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했다. 김금희, 최은영 등의 작가들은 이에 동참해 수상을 거부했고, 애독자들은 sns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입장 표명글을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2020년은 문학계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기였지만, 작가 윤이형의 행보만큼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도 없을 듯하다. 작가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던 그 시기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작품이 바로 『붕대 감기』이다. 물론 직전에 발표된 최근작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거기엔 어떤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났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직감이 하나의 확신으로 변했다. 페미니즘과 문학으로 그 대상은 다르지만, 동지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작가 윤이형의 작품과 실제적 행위를 연결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쉽게 꺼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붕대 감기』를 읽고 보니 작가의 과거 행보가 크게 놀랍지 않았다.


『붕대 감기』에는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여성이라는 것 이외에 서로 닮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 나이와 직업적인 면에서의 차이 외에도 그녀들의 사고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작품은 여러 방향에서 흘러들어온 생각들이 중첩되면서 '페미니즘'의 미래를 재설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종종 어긋나면서도 대화를 통해 '자매애'로 나아가는 『붕대 감기』 속 여성들은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을 묻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의 뭉클함을 전달한다. 이 책은 단순히 '페미니즘'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유일무이한 다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꿈 그 자체에 가깝다. 무력하지만,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희망찬 꿈 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넘어서서 가부장제의 억압하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만큼 페미니즘은 일견 모든 여성의 지지를 받을 듯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이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개개인마다 큰 견해 차이를 보인다. 이런 차이를 좁히지 못해 서로 반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페미니즘은 내부에서의 분열이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 이미 외부로부터 받고 있는 자극이 무시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동지'로서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붕대 감기』는 피력하고 있다.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68쪽)

또한, 『붕대 감기』는 여성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을 압박하는 일도 경계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김 모 아나운서의 일화가 떠오른다. 해당 아나운서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여성으로서의 권력'을 강조했다. 그녀의 발언에 엄청난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나운서로서도,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여성들로서도 모든 일에는 여러 사고방식이 존재하고, 분명하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했다. '여성다움'과 '여성으로서의 권력'에는 하나의 완벽한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더 평등한 삶으로의 도약을 위해 시작된 페미니즘이 극심한 차별과 배제의 온상이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 기준점이 필요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서 일부러 악의를 품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44쪽)

최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노력들과는 별개로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점을 깨달을 만한 나이이기 훨씬 이전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미워하면서 살아왔다. 잔인하게도 악의는 불평등을 조장한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선상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길을 잃은 악의는 불신과 분열만을 초래했고, 나는 동지들을 더러 잃어야만 했다. 앞으로의 페미니즘, 또 삶에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그로 인해 치유되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붕대를 감아올리는 일처럼 말이다.

'진경'이 운전대를 넘겨준 젊은 사람들의 축에 속해 있는 운전수로서 나는 승객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그녀가 운전수들에게 기대하는 일은 세대를 뛰어넘은 '자매애'이다. 내가 몰고 있는 이 버스가 여성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하에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인권을 보호하고, 구제해내겠다는 본래의 목적지를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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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오늘의 젊은 작가 27
은모든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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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우리 쌍둥이들한테도 그렇게 알려 줄 수는 있다는 거지? 니모부터 꽃 한 송이까지 자연에도 공생이 넘쳐 난다고. 그게 막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을지 몰라도."

"얘기해 주면서 같이 더 많이 찾아봐. 그럼 피부로도 느껴질지 모르잖아."(152쪽)

동생과 엄마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질러 걸으면, 나는 언제나 뒤처져서 그들을 빤히 바라보는 쪽이었다. 그런 나에게서 사람들은 줄곧 '쓸쓸함'이나 '외로움'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도리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 나를 훨씬 편하게 만들었다.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상대의 변화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했던 탓이다. 그랬기 때문에 소설의 화자인 '경진'에게 몰입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재미를 찾기보다는 빨리 끝내고 혼자만의 휴식을 즐기는 일에 급급했고, 상대가 주저할 때는 굳이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없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때도 있고, 괜히 상처를 입게 되는 일도 잦았으므로, 대화를 향한 나의 오래된 적대는 옳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다는 것, 특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한 사람을, 때로는 나 자신을 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내게 이야기를 할듯 말듯 망설이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툭 터놓고 말하고 나면 편안해질 수 있었을 누군가의 절박함을 망쳐놓지는 않았을까. 또 대화를 통해 사람들 속에 섞여드는 즐거움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후회가 두서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경진'은 간만의 휴가에 질릴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경진'을 향해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한다. 이전의 '경진'은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청자'의 입장보다는 '선생님'으로서의 자아가 더 강해 보였다. 상대의 언어는 그녀가 교정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해미' 또한 '경진'에게 가로막혀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못한 채로 모습을 감춘다. 사실 '해미'에게 있어서 '경진'은 선생님이나 어른이기 이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대화 상대였다. 그런 사람마저 자신에게 이야기할 틈을 주지 않으니 '해미'로서는 어지간히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경진'에게 내밀한 사정을 털어놓는 기묘한 상황은 때로 '해미'의 복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미'와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대화가 소설의 끝까지 '경진'을 놓아주지 않는다. '경진'은 '해미'와의 일로 대화에 대한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까 대화의 기회는 영원히 주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평소처럼 흘려보낸 이야기가 누군가와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해미'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증폭되고 '경진'의 머릿속에는 이제 두 번 다시 '해미'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경진'은 서로 다른 '해미'의 이야기들로 자연스레 빨려 들어간다. 기이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경진'에게 갑작스레 다가와 각각의 은밀한 사정들을 털어놓고 말았던 것은 '해미'와의 일에 대한 후회가 그녀를 대화에 긍정적으로 호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진'이 지금처럼 대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 데에는 엄마의 질문도 한몫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77쪽)"라는 엄마의 반복적인 물음은 '경진'을 지치게 했고, '경진'은 자연스레 대화로부터 멀어졌다. 처음에는 '엄마'뿐이었겠지만, 차츰 그 범위가 늘어났을 것이 틀림없다. '엄마'와의 대화로 인한 상처는 또 한 번의 대화로 치유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엄마의 이야기는 오해를 해소하고, 더 나아가 '경진'이 활발한 대화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녹아들도록 부추긴다. '경진'과 엄마의 이야기는 경청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가진 위안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대화 행위가 주는 숱한 상처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희망참을 작가 '은모든'은 이야기하고 있다.


햇살이 드리운 거리를 느긋하게 걷고

얼굴을 마주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책을 덮은 지금에도 '해미'의 울먹거리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단지 몇 마디를 나눠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아이가 드디어 그런 상대를 발견했을 때에 느껴지던 어떤 안도가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경진'과 그녀의 친구 '웅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의 대화가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는 사소한 행복과 위로를 너무 오랫동안 등한시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듣고 또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은 금세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일처럼 아주 뒤늦게서야 응당했어야만 하는 일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일 하루 정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그 사람의 하루가 좀 더 충만해지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배신감에 휩싸여 있을 어떤 이름에게.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사람이 다 다르니까요. 결혼이든 아이든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확고하게 그 반대인 사람도 있는 거라니까요 엄마. 세상에 저나 은주 같은 사람도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요.-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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