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은영 작가를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쇼코의 미소>라는 작품을 읽은 이후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단 한 작품일 뿐이었지만, 작가가 보여준 따뜻한 우울감-그런 말이 혹시 존재한다면-과 감정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나를 매혹시켰다. 한 작품만 읽고 최은영 작가를 최고로 좋아한다고 꼽는 것은 성급한 결론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감정들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내 자신을 떠오르게 했고, 우울하면서도 따뜻한 문체가 털어놓는 문장들이 내 마음을 자주 대변해주었기에, 나는 주저없이 최은영 작가를 내 마음 속 최고로 꼽는다.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도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질 못하고, 오히려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왜 나는 생각하는 대로 말하지 못하고 슬퍼도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으로 네 옆에 앉아 있을까.˝ 하고 고백하는 <모래로 지은 집>의 ‘선미‘의 고백을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을 창피하게 느끼던 지난 날의 나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이라고, 마치 내 일기장을 오래도록 훔쳐 보고 있던 사람의 글 같다, 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최은영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다.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던 내 마음을 세심하게 종이 위에 꺼내놓는 작가.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7편의 소설들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이번 소설집은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수이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나니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에 대한 판단이 예전만큼 겁나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 여름>의 ‘이경‘과 ˝세상 누군가는 나의 이런 변변찮은 일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저런 관계에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더라도 괜찮았다는 <모래로 지은 집>의 ‘선미‘의 이야기는 ‘관계‘들이 주는 힘을 설파한다. 어느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세상을 겉돌기만 하던 이들은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최은영 작가의 작품에서는 관계가 쉽사리 이어지질 않는다. 우리 인생에서 수많은 관계들이 그러듯 끝끝내 끊어지고, 그러면서도 다시 ˝삶을 살˝아가게 되는 현실이 소설들에서 보여진다. 삶을 버티게 만들었던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쇼코의 미소> 때와 다른 점을 언급한다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남자들이 등장한다는 것과 그 반대편에서 묵묵히 고통당하던 여자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남자 선수들에게 수치스러운 일들을 겪는 <그 여름> ‘수이‘에게 코치가 건네는 말은 극도로 분노를 일으킨다.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남자애들은 원래 다 그런 거고, 짖궃은 장난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유치한 일˝이라니. 폭력을 당연한 일처럼 여기며 행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그걸 방관하는 사람도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등장한 ‘공무‘나 <아치디에서>의 ‘랄도‘처럼 피해자가 꼭 여성만은 아니었다.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아들에게 ˝다 네 탓이라고, 네가 여지를 줬다고, 어떻게 네가 내 아들일 수 있냐고. 네 형들은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다. 치욕스럽다(284p)˝고 말하던 아버지를 둔 ‘랄도‘를 보면, ˝친인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은근한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601, 602> 속 ‘엄마‘의 고통만이 더 괴로운 종류의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작품들에서 드러나던 것은 언어적인 폭력 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날리다시피 해서˝ ‘모래‘에게 폭력을 가하던 <모래로 지은 집> 속 교사와 ˝문이 닫힌 방 안에서 셀 수도 없이 맞던 <지나가는 밤> 속 ‘효진‘이가 있었다. 이런 물리적인 폭력이 빈번하게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던 때가 있었다. 특히 선생님에게 몸이 부서질정도로 맞는 것은,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학교 내 체벌이 금지되기 이전까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야구 방망이로, 얇지도 않은 출석부로 온 몸을 얻어맞는 게 ‘체벌‘이란 단어로 용서되던 때가 있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작품집에 드러난 물리적인 폭력들은 내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고백>에서처럼 귀걸이를 하지 않았는데도 오해받아서 남자 선생님에게 여자 아이가 몸이 나동그라질 정도로 맞는 일도 더러 있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아주 요원하게 느껴지지만. 나처럼 그런 시절을 겪었던 최은영 작가가 고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그런 폭력들에 그저 겁먹고 잘못했으면 맞아야지, 방관하던 내 자신을 떠올렸다.

수록된 7편의 작품들 중에서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던 것은 <지나가는 밤>이었다. <지나가는 밤>에서는 ‘윤희‘와 ‘주희‘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로 무척이나 바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로운 자매의 인생은 나와 꼭 닮아 있진 않았지만, ‘자매‘라는 상황 설정이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동생인 ‘주희‘가 ˝또래나 언니들과 놀고 싶은데 자기에게 꼭 붙어 있으려 하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짐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하는 ‘윤희‘의 모습에서 어린 나의 모습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도 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외출하는 나에게 엄마는 동생을 자주 함께 외출하게 했다. 어릴 때는 그게 얼마나 부끄럽고, 귀찮았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에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줄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시간을 바라는 ‘윤희‘를, 즉 어린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그저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을 동생에게 ˝쌀쌀한 밤, 이불이라도 덮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윤희‘처럼 바라고 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을 알라딘에서 구입했을 때, 굿즈로 작고 예쁜 컵도 받았다. 컵에는 <손길>이라는 작품 중 한 구절이 쓰여 있다.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굿즈를 받았을 때는 책을 읽기 전이었는데도, 그 구절이 내 마음에 와닿아서 한참을 쳐다보고, 몇 번이나 읽어 보았다. 컵에 새겨진 한 문구만으로도 최은영 작가가 얼마나 따뜻한 우울함을 지닌 사람인지 느껴졌던 것 같다. 소설을 다 읽고 보니까, ‘관계‘의 시작과 끝을 두루 살피는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글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될 뿐, 산화되어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물질은 아눚 작은 부분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 과학적 사실은 어린 나에게 세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다정하게 다가왔었다.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언니. 울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싫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암흑에서 왔다˝라는 말로 소설은 시작한다. 이 책은 아주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된 ‘나나‘가 자신의 고국인 한국에 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청량리역에 버려졌던 ‘나나‘는 자신을 발견해 준 기관사에게서 받은 이름 ‘문주‘와 고아원에서 지낼 때 이름 ‘박에스더‘도 가지고 있다. 절대 한국에 오지 않겠다 생각하던 ‘문주‘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그녀의 인생사를 영화로 기록하고 싶다는 ‘서영‘의 요청 때문이었다. 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여기던 ‘문주‘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결국 한국으로 와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입양이나 입양인이 없다는 듯 모른 채 살아˝왔다는 ‘서영‘의 고백이 처음엔 의아했다. 그런데 조해진 작가의 이 소설을 읽고 보니까 나도 입양된 이들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입양을 보낸 사람은 많아도, 사람들이 입양을 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나는 TV나 다른 매체에서 접한 이야기들만 보고,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뭔가를 알고 있었다 해도, 그들이 가진 아픔이 그렇게나 크고 깊은데 ‘이해한다‘, ‘다 알고 있다‘라는 말을 어떻게 쉽게 내뱉을 수가 있을까?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멀고도 먼 여행을 한 ‘문주‘는 여러 사람들의 따뜻함을 얻은 채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입양을 보낸 아이를 떠올리며 따뜻한 밥을 내어주던 ‘추연희‘ 씨가 있었고,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배우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거라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서영, ‘소율‘, 그리고 ‘은‘이 있었다. 어릴 적 버려진 ‘문주‘를 발견한 기관사의 딸 ‘문경‘이 그녀에게 건넨 따뜻한 포옹으로 소설은 절정에 달한다. 나는 이 사람들의 존재가 마치 인생은 외롭더라도, 너의 곁에 있어주려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아,라고 하는 것만 같아 울컥해졌다. 또한 책 제목이 ‘단순한 진심‘-그들이 보여준 사소한 진심-인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입양되었다가 한국으로 온 사람들 중에 이런 다정한 경험을 하고 돌아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먹먹해졌다.

사실 <단순한 진심>은 표면적으로 ‘입양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외로움에 지친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책이자 헌사이기도 하다. ˝입양˝이라는 표면적 주제를 통해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을 조망한다. ˝나를 내려다보며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부를 터였다. 나나, 나나. 다정한 목소리로. 내가 외로워 보일 때면 그는 늘 그렇게 했으므로.˝라는 부분에서 입양가정 아버지 ‘앙리‘가 따스하고 부드럽게 이름을 불러 줄 때나 기관사의 딸인 ‘문경‘이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해서 ‘문주‘를 안아주는 등의 대목들이 ‘문주‘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기억되지 않을 이름들을 가진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달래준다. 소설 속 모든 이들의 ‘단순한 진심‘이 자꾸 속 깊이 숨겨져 있던 쓸쓸함들을 건드린다.

‘문주‘, ‘박에스더‘, 그리고 ‘나나‘. 이렇게 세 가지 이름이나 지녀야 했던 화자가 한국에 와서 다른 사람의 이름에 보이는 집착도 흥미롭다. ‘문주‘는 타인의 이름이나 지역 이름을 듣고, 끊임없이 그 이름들을 풀이한다. 샅샅이 이름들을 파헤쳐서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세 개의 이름이나 가졌지만, 그중 어느 것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내세워야 할지 불안함을 느끼는 ‘문주‘가 다른 이름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또한 소설 속에서 너무도 쉽게 잊힐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울부짖는 ‘노파‘가 내가 살면서 잊어버릴, 혹은 아예 모르고 살 이름들을 떠오르게 했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라는 ‘서영‘의 말을 되새기며, 모두의 세계가 온전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노파‘처럼 극도의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이 없도록 살아가야겠다. 최소한 그들의 이름이라도 마음에 새기면서.

+)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아이유의 ‘이름에게‘라는 곡을 꼭 들어보면 좋겠다. <단순한 진심>을 읽은 독자라면, 그 곡을 아주 깊이 느끼고, 어쩌면 울게 될 것이다. 이전에 이 노래를 들을 때와 책을 읽고 난 후 노래를 들을 때 차이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컸다.


˝저쪽으로 전가되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가되는 실타래 같은 외로움이.인생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밑바닥에 정제되어 남는 건 외롭고 쓰라린 것.....
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생이야, 나의 아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동네 SNS에서 이 작품을 소개한 글을 읽고 완전 홀려버렸다. 안 읽고 지나칠 수가 없어서 그 날 무작정 도서관으로 뛰어가 빌려왔다. 이런 애틋하고 낭만적인 소설이라니, 안 읽어봤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주 알‘을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로, SF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우주 알‘이라는 소재마저 너무 낭만적이다. 작가의 말에서 장강명 작가는 ‘우주 알‘이라는 개념을 ‘짐 홀트‘의 책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에 나오는 용어를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그 책에서 ˝우주 알은 하나의 우주가 될 수 있는 어떤 작은 입자˝로 등장했다.<그믐>에서는 남자가 우주 알을 받아들이고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다시 살게 된다.
과거를 다시 재생할 수 있다니, 적지 않은 사람이 바라는 일일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동급생을 죽이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또한 과거를 다시 살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도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다. 디테일이 바뀌는 순간, 이야기가 틀어지고,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여자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고, 그걸 반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148p)˝라는 대사를 읊조리는 남자라니,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 싶으면서도, 여자와의 최악을 막기 위해 10분이라도 빨리 떠나는 대목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이렇게 책을 붙들고 울게 만드는 사랑 이야기는 <미 비포 유>의 ‘윌 트레이너‘라는 남자 주인공이 남긴 편지 이후로 참 오랜만이었다.

SF요소가 가미된 러브 스토리를 제하자면, 남자가 겪어야했던 ˝학교폭력˝이라는 주제가 존재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스토리의 시간 순서를 이리저리 섞으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혼동이 오게 만들었다. 또한, 학폭 피해자인 남자와 학폭 가해자의 어머니 양쪽을 등장시키고는, 판단을 독자에게 내맡긴다. 피해자였던 주인공 남자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죽이고야 말았는데, 가해자 ‘영훈‘의 어머니는 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남자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식의 잘못을 믿고 싶지 않을 아주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아들 입장에서만 사건을 재구성하는 그녀에게 맞서고 싶었다. 주인공 남자의 부모 입장에서, 왜 하필 우리 아들을 선택해서 이렇게 피를 말려야만 하느냐, 고 울부짖고 싶었다. 자신의 결말을 미리 예견하고서는 아주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모든 것이 그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말하는 남자가 가엽다는 말로도 모자라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읽기 시작한 소설이 이렇게 먹먹한 마음으로 끝나다니. 책은 굉장히 얇은 편이었는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이 폭발적이다. 앞으로 두고두고 남자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무기력하게 묵묵하게 과거의 아픔을 견디는 남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단 하나의 사랑때문에 그 과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한국판 ‘미투운동‘이 전개되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던 ‘미투운동‘이 한국에서도 시작되었고(아주 당연하게도!), 여태껏 침묵하던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당한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여성들이 세상을 향해 울부짖던 그 중심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있었다. 2016년에 출판되었고, 2018년이 되어서야 주목받은 이 책을 새삼스레 다시 꺼낸 것은 곧 개봉할 영화 <82년생 김지영> 때문이었다. 제작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던 영화는,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비판을 받고 있고, 이 영화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면 욕을 들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는 꼭 나와야만 하는 영화가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 ‘페미니즘‘ 이나 ‘여성의 권리‘라는 문제가 이전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6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편마저도 ˝자신들을 반씩 닮은 예쁜 딸을 낳은 아내가, 아무래도 아내 같지가 않˝다고 여기게 된 2015년 가을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이후에는 과거로 돌아가 ‘김지영‘씨의 전반적인 인생을 서술한다. 책을 읽는 내내 어찌나 억울하던지 자주 울컥하고, 분노로 인해 허공에다 주먹질을 몇 번이나 해댔다. ˝남학생부터 (출석)번호를 매기˝거나,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사실들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다가 책에서 타인(김지영 씨)의 이야기로 접하니까 새삼 너무 억울했다. 왜 이걸 여태껏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았을까. 내가 가져야 할 권리에 무심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 ‘오미숙‘ 씨의 인생에는 더더욱 화가 났다.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일들만 해도 화가 이렇게 나는데, 그 시절 여성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자신의 적성을 따라 일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살았던 걸까.

2015년도의 ‘김지영 씨‘가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자신을 잘 챙겨주던 여자 선배 ‘차승연‘씨와 어머니 ‘오미숙‘씨가 김지영 씨의 몸을 통해 목소리를 드러내면서, 김지영 씨를 변호하고 그녀가 겪어야만 하는 고생들을 토로한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라는 어머니의 말이나, ˝대현아,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거야.(...)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줘.˝ 라는 ‘차승연‘ 씨의 말은 결국 여성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여성의 도움 덕이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은 여성이 겪는 문제들을 등한시하지 않고, 함께 분노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200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출석번호 시스템이 남자아이들이 우선인 것은 변함 없었지만,) 여자 회장으로 선출 될 수 있었고, 당연히 대학을 가야하는 시절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시대의 여성들 덕분인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훌륭한 점은 정확한 통계나 기사자료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껍지도 않은 장편소설 책에 ‘객관적 자료‘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여성들이 느끼는 부당함이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이것은 ‘팩트‘이고, 부정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한 수치들이 일깨워주고 있는 듯 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지나치게 여성들의 편에서 호소한 것 아니냐, 는 의문은 접어둘 수 밖에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고 어렸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살던 때와 나의 시대는 분명 달랐지만, 세상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는 데에 무력함을 느꼈다. 20년 가까이 흐른 세월동안 많이 바뀌지 않은 현실을 통감하면서도, 세상 곳곳에 여성들이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여성학자 ‘김고연주‘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김지영이기 때문˝이고, 후대의 여성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높은 학력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 자신의 몸이 부서져가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 딸들을 교육시킨 어머니들이 존재했듯이, 더 많은 여자 교수들이 탄생하고 높은 관리직에 여성들이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라기에, 지금도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출구를 향해서 달리고, 안될 걸 알면서도 벽을 뚫기 위해 몸을 부딪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다, 읽다, 쓰다>는 작가 김연경이 쓴 친절한 세계 문학 안내서이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세계 문학은 거의 이 책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저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책을 선정하고 분류해, 책과 배경, 또한 작가들에 대한 설명까지 달아놓았다. 각 책마다 평균 2장이 할애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놀라웠다.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세계 문학편>이 될 수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여진 세계 문학들을 읽는 일을 손에서 놓았다. 세계 문학을 떠올리면 엄청난 부담과 강압적인 분위기가 떠오른다. 부모님께서 꼭 읽어야 한다며 없는 돈 긁어모아 사주신 세계문학전집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책장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기만 해도, 왠지 모르게 절대 해결하고 싶지 않던 여름방학 숙제를 연상시켰다(어릴 때의 나는 다른 또래에 비해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빽빽한 책장에 꽂혀 있던 전집 중에 내가 읽은 책은 과연 몇 권이나 되었을까. 읽었던 책들도 그나마 생각이 제대로 나질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은, 대학교에서 전공때문에 무진장 접해야 했던 영문학 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좀 더 또렷하다.

이런 나에게 <살다, 읽다, 쓰다>를 접한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 고전들을 다 접하기에도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 일에 비한다면, 짧은 요약서는 부족하겠지만, 김연경 작가가 쓴 책만 읽더라도 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아는 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책 자체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언급하는 배경이나 작가들 이야기도 한 권의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세계적인 고전들은 앞 세대에 쓰여졌고, 한국을 벗어나 다른 장소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실 완벽하게 깊이 읽기가 쉽지 않다. 배경이나 작가의 개인사까지 알아야 무슨 책이든 제대로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몇 번이나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현실을 책에다 옮겨놓은 작가들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이 책은 세계 고전 문학을 영원히 읽지 않을(!) 이들에게도 간편하게 지식을 심는 데 유익하겠지만, 앞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에 대해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고전을 분명 읽기는 했으나 <살다, 읽다, 쓰다>를 읽고서야 비로소 '아!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는 독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담, 작가가 서문에 쓴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9p)"라는 글귀에 처음에는 어찌나 반항심이 일던지.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이렇게 깊이 문학을 탐구하고, 작가와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지는 공부가 꽤 즐거웠다. '모범생'이라는 단어에 또 뜻모를 청개구리 심보가 생겨났지만, 이런 모범생이라면 기꺼이 되고 싶다. 다른 데서는 몰라도, 이 책을 읽다보면 누구든 문학 모범생이 되고, 그 일을 기꺼이 즐기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