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리스본행 야간열차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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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갑작스러운 공간의 이동이 한 개인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아니, 애초에 우리가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것‘에 대한 열망이 실현 가능한 일인가,를 탐색하고자 한다. 독자는 빈번하게 상상으로만 그치던 일을 ‘그레고리우스‘는 단번에 해낸다.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삶을 살아온 것처럼. 코로나 시대를 사는 독자에게 지금 <리스본행 야간열차>만큼 필요한 소설이 또 있을까. ‘그레고리우스‘의 충동적인 행동이 나와 마찬가지로 오래도록 자신도 모르게 품어온 열망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그의 모험에 동행한다. 두고 온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과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는 그를 묵묵히 지켜본다.

나 또한 늘 공간의 이동에 관한 환상을 품고 살았다. 삶이 조금이라도 내리막길을 걷는다 싶으면 나는 자주 영영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장소들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나의 빈곤한 상상력은 현실적인 고민들에 가로막혔다. 떠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나는 언어와 책에 대한 집착으로 만회했다.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어와 한 권의 책으로 ‘리스본‘과 좀 더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외국어를 배우고 타지의 삶에 대해 읽으면서 다양한 장소와 연결되었다. 평생 온전히 정복하지 못할 수많은 외국어와 문학 작품들은 내게 구체적인 상상과 (분명 그곳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능하게 했다.
이토록 절절한 마음을 품고 막상 바라던 그곳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가. 곧잘 초심을 잊어버린다. 금세 되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만 한다. 인간은 평생을 그렇게 새로운 땅에 대한 강렬한 욕심과 ‘향수병‘을 동시에 지닌 채로 살아간다. ‘여행‘의 면에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모순성을 잃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다고 해서 내 인생이 쉽게 완전해 지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과 타인의 숱한 실패를 지켜보며 배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기차에 몸을 싣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스스로도 어리둥절할 만큼 새로운 내가 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익숙한 듯 서로 다른 풍경의 틈새에 내가 갈망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다. 거기에도 같은 불행-인간관계의 어려움, 돈벌이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동‘에 관한 희망을 놓지 못한다. 한 번의 여행으로 무엇이 뒤바뀌고 있음을 스스로가 가장 잘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일단 시작하면 중독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한다. 사실 여행만큼 모순적인 행위도 없다. 그것은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항해에 뛰어들게 하면서도, 이내 곧 안락한 집으로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극한의 외로움에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어느샌가 새로운 인연이 나의 빈 곳을 메우도록 만든다. 그러니 나는 떠나자마자 돌아오고 싶어질 것을 알면서도 리스본행 열차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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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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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성들에게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세계가 있다. 그곳에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를 생산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그녀들의 삶은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만들어낸 허구의 장소 ‘길리아드‘는 슬프게도 무척 친숙한 구석이 있다. 세상은 극적인 사건들과 함께 아주 미세한 폭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왔으나, 여성(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녀 이야기>는 여성을 매개체로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른다. 또한, ‘길리아드‘의 몇몇 모습이 내가 가진 현실과 겹쳐지면서, 나는 때때로 이것이 근 몇 년 사이에 도래할 미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의 부당한 삶도 견디기가 어렵고, 해소되지 못할 분노가 불쑥 치밀어 오르곤 하는데, 이보다도 더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니, 물론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머뭇대는 사이에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와 도망치려고 보면 이미 늦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들을 명분 없이 앗아가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보고만 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여성들뿐이었다. 그녀들은 직장을 잃고, 남편을 통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를 세상에 입증할 수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도 많은 여성이 육아의 과정 속에서 직장을 떠나고, 그런 경우에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 그러니까 ‘길리아드‘의 탄생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익숙한 광경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성되는 것이었다. 결국 무언가를 빼앗기고, 그것을 견디는 건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여성이 단순히 직장만을 잃은 게 아니라는 걸 남성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녀에 대한 완벽한 돌봄을 보장한다(이 문장에서 복수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런 장면이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녀 이야기>에서 남성의 무지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새로운 세상의 방식에 적응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초기의 분노와 탈출에 대한 염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나는 그런 그녀들의 몸을 마구 앞뒤로 마구 흔들어 대며,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라고 부르짖고 싶어진다.

못다 한 이야기

이후에 길리아드와 그 세대의 여성들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시녀 이야기>는 모든 것의 시작에 불과했으며, 상실된 이들의 이야기는 그 뒤로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도 있었을 선택의 자유를 잊게 되었을 것이다. 다른 세계로의 탈피를 꿈꾸면서도 도대체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 망설이고야 말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체념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의 타락 속에서 여성들에게 읽고 쓰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상의 구축과 기록이 가진 파급력을 ‘오브프레드‘와 그녀를 탄생시킨 ‘마거릿 애트우드‘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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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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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영상은 유영이다. 부유하는 기억. 그 가운데 착각은 말한다. 나, 여기에 있었다고. 숨죽이며 그러나 떠돌며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여기, 인식론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존재의 가장자리, 기억(혹은 시간의 흐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

116면

시인들이 쓴 산문집에는 각각이 가진 고유의 리듬이 있다. 평범한 문장에도 하나의 선율이 들러붙어 있다. 산뜻하거나 음울한 제 나름의 박자를 타며 나는 붕 뜬 발걸음을 내딛는다. 시인들은 어느 글쓰기 방식을 택하든 시에 관한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에 담긴 세상과 인간의 존재 방식은 무엇인지, 그들의 번뇌는 한없이 안으로 파고든다.

최근에 난다 출판사에서 오은 시인의 <다독임>을 읽고 리뷰를 남겨준 몇몇 독자를 선정하여 시인이 직접 작성한 ‘다독임 레터‘를 발송해 준 일이 있었다. ‘시‘라는 장르의 매력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레터를 읽는 동안에 오은 시인을 통해 ‘시‘라는 것은 어떤 단어를 아주 오래도록 생각하고, 그것을 낱낱이 해체하는 일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허수경 시인의 <오늘의 착각>에서도 ‘착각‘이라는 단어가 무척 여러 번 반복된다. 이것은 편집상의 의도였겠지만, 나는 작품에서 시인들이 단어를 허투루 흘려보내는 경우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늘의 착각>을 읽으며 내가 살면서 해온 숱한 ‘착각‘들을 되새겼다. 상대도 같은 마음임이 분명하다고 착각해서 혼자 오랫동안 끙끙 앓았고, 노력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을 거라고 착각하며 요령 없이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곤 했다. 착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을 어리석은 인간으로 변모시켰고, 회복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좋았던 과거의 회귀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순간적인 기쁨의 지속, 혹은 미래의 희망에 대한 ‘착각‘으로 나는 오늘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 그러니 ‘오늘의 착각‘이 결국 실패로 끝날지라도, 나는 인간으로서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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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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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믿음의 적이 아니다. 의심과 믿음은 동반자다.˝

살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숱한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고, 나는 한동안 그것에 대해 해명을 하려 애쓰다가 끝끝내 그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남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에게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어서, 나 또한 모든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낯선 상대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면밀하게 살펴왔다. 이전에는 크고 작은 오해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낯선 상황을 기피하며 살아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와의 대면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운 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떤 절박함으로 <타인의 해석>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상대의 오해로 인해 억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도 누군가를 쉬이 단정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이후로 현 세상과 그 안에 놓인 관계를 더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우리가 얼마나 지금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지를 일깨워 주었고, 낯선 상대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나는 <타인의 해석>을 읽으면서 여태껏 알고 있었던 내용-내가 아주 가뿐하게 상대를 오해한다는 사실-을 되새겼을 뿐이고, 내 앞에 놓인 세상과 낯선 상대가 품고 있는 광활한 복잡함-이 또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에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일에 그쳤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이 확신에 찬 채로 타인을 오해하는 경우를 무척 여러 번 목격했다. 그들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상대를 믿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평가를 믿었다. 나는 <타인의 해석>을 읽기 전에도 그런 사람들에게 종종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는데, 내 질문에 잠시 말을 더듬던 사람들은 곧 내 말을 되받아치곤 했다 : ˝느낌이란 게 있잖아˝. 우리는 타인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 스스로의 경험이 충분하다고 자신했고, 몇 마디의 문장으로 상대를 어떤 이미지 안에 가두고, 상대가 그 밖으로 벗어나려 할 때마다 그것이 굉장히 의외의 경우인 것처럼 쳐내곤 했다. 낯선 사람을 제멋대로 오해하는 일은 복잡한 신호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생존 방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내게 주어진 해석의 자유만큼 상대에게도 상당한 존중과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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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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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331면)˝

정세랑 작가가 빚어낸 ‘심시선‘과 그녀의 가족들은 종일 나를 너무 울컥하게 만들었고, 또 그들만의 사랑스러움에 안달나게 하기도 했다. 그들은 분명히 새로운 시각을 지닌 독특한 사람들이었지만, 나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존재 방식이라 여겼고, 그들만큼의 밀도와 열도를 지닌 가족을 열망하게 되었다. ‘시선‘처럼 따가운 공기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악착같이 버텨서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강력한 동기가 되고, 나보다도 더 나은 그들에게 내 자리를 물려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여기에서 ‘심시선‘은 우리 집 여자 어른들에서 내 앞에서 걷고 있는 모든 여자 어른들로 확장된다. 한편으로 나는 ‘심시선‘ 여사가 작가 정세랑과도 무척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늘 세상에 가진 거라곤 회의감뿐이던 독자에게 추악함 속 낭만과 그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주던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온갖 글들로 우리의 등을 밀어주고 있으므로 나 또한 끈질기게 버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선으로부터‘, 또 ‘세랑으로부터‘ 비롯된 조각들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곳의 공기는 여전히 한 치의 변함도 없이 오염되어 있고, 그것을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 것은 꽤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선‘과 ‘시선으로부터‘ 지속되어 온 노력들이 아이들에게 상실감보다 더 긍정적인 것들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철없는 소리를 하고 싶다. 정세랑 월드는 항상 어둠을 빨리 극복해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나면 자꾸만 순진한 바람을 내비치고 싶어지는 것 같다.

˝내 생에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었던가.˝

뒤표지에 새겨진 추천사 중에서 박상영 작가의 문장을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자주 이 문장을 떠올렸고, 그만큼 <시선으로부터>를 잘 표현해낸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 어른들은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면서 관성적으로 무기력해졌고, 누군가가 심어준 사상을 자신의 것인마냥 말하고, 쓰기를 지속한다. 동성의 어른들이 주는 갑갑함은 두 배 이상으로 나를 숨 막히게 해왔다. 그래서 ‘심시선‘ 여사 같은 인물의 존재 가능성은 어떤 희망을 물어다 주었고, 나의 시각을 트이게 했다. ‘시선‘처럼 영리하게 세상에 할 말을 던지는 사람이면 좋겠다. 쓰는 것에 대한 욕구와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고 싶은 목표 의식을 꽤 선명하게 심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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