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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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너머로 아름다움과 영광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378쪽)

'양진'으로부터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재일조선인 4대의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렀다. 4대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인간은 고통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시작은 가난이었고, '파친코' 사업으로 우뚝 솟아오르자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들을 괴롭혔다. 이제까지 '노아'와 '모자수'를 주축으로 '재일조선인'들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슬픔을 중점적으로 드러냈다면, 2권에서는 일본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짊어진 고통의 범위는 확대된다. 여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우리 삶의 기본값이 고통이라는 점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읽어나갈수록 인간으로서 고통으로부터 분리된 인생을 획득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인간을 '희생자'라고 부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런 자기 연민으로부터 빠져나와 삶을 묵묵히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선자'와 그녀의 가족들이 알려 주었다. 그리고 시련 너머에 놓인 일상의 찬란함을 볼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고통 안에서도 한없이 순수하고 다정한 '선자'의 가족들이 보여준 삶은 역사적·사회적 맥락과는 관계없이 반짝거리고 사랑스러웠다. 어떤 순간에도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아무런 의문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와 함께 있을 때도 조선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국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118쪽)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노아'와 '모자수'를 어지간히 괴롭혔다. 국적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만큼 인정받고 싶었던 '노아'의 바램과는 달리 '재일조선인'이라는 꼬리표는 '노아'와 '모자수'를 지겹도록 따라다녔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도 모자라 사회적인 표본이 되도록 강요했다. 서울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조선인으로 이리저리 채이는 '노아' 형제의 이야기는 과거에만 속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의 디아스포라도 자신의 뿌리를 정의 내리는 데 있어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문제보다도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고향이라고 느끼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있는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일본에서 살아온 세월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모자수'를 비롯한 재일조선인은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파친코' 사업이었지만, 이 사업에 뛰어들면 '더러운 야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일본인 사업자들보다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해도 그들은 사람들의 비난을 모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재일조선인 파친코 사업자들은 흔들리는 땅 위에서도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비관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경멸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남고 또 자식들이 자신에 비해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억척스럽게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더없이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곤두박질쳐서 죽음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 아시죠?" (374쪽)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 일에 집중했던 '선자'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재일조선인의 노력이 응집된 결과가 '솔로몬'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정신적으로 결핍된 삶을 살았던 이전 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같은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로 인해 '솔로몬'은 경제적으로 좀 더 풍족한 삶을 살았고, 다양한 인종이 혼재되어 있는 외국인 학교에서 삶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일본과 일본인을 너무 많이 미워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났고, 자신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이나 타인의 시선은 잠시 접어둔 채로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 세대가 인간으로 대접받기를 바라기만 했다면, '솔로몬'은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하며,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솔로몬'의 현재와 미래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4대에 걸친 고난의 역사 끝에 우리는 나아가야 할 지점을 짚어낼 수 있었다.

'선자'를 통해 인생은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차렸다. 인생이라는 '파친코' 게임에서 얻어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는 인생의 끝에서 불현듯 우리에게 찾아오는 깨달음이 분명하다. 고통에 굴하지 않고 살아남으면 삶의 끝에서 우리의 인생 저편에 늘 아름답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끝에 마주한 뭉클한 순간 때문에 나는 『파친코』가 아주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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