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6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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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텅 빈 비밀을 줌으로써 그들의 욕망을 일깨웠던 것이었다. 우리의 비밀만큼 속이 텅 빈 비밀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짜라는 것만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던 비밀이었으니까.(349쪽)

(하)권에 이르러서 '카소봉'과 '벨보', 그리고 '디오탈레비'는 좀 우쭐해져 있다. 그들은 "성서가 진실이라면 이것도 진실(122쪽)"이라면서, 스스로가 곧 '진실'임을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성전 기사단>이나 '알리에'의 뒤를 따라가는 듯한 모양새에 불과했지만, 이제 스스로만의 <계획>을 설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악마 연구가>들의 연구를 훑어보면서 쌓아온 경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꽤 흥분에 취해 있는 모양새지만, 제3자인 독자로서 지켜보기엔 어쩐지 불안하다. 지금의 그들은 바퀴 하나가 빠진 채로 엉거주춤 앞으로 나아가는 수레 같다. 하지만 아무도, 심지어는 그들 본인조차도 일의 진전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이른바 '지구의 배꼽'을 발견하여 신처럼 군림해 보려는 결심은 그들이 가짜 문서를 주도면밀하게 재조작해 어떤 진실에 이르도록 부추긴다. 때로는 자신들의 잘못을 알아차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를테면 무리 중 한 명인 '디오탈레비'가 죽을 위험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다. 한낱 장난으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카소봉'의 <계획>에는 죄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아'가 지적하듯이 그들의 변덕스러운 세계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 번의 가벼운 농담 때문에 '카소봉'과 '벨보', '디오탈레비'는 자신들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카소봉'의 <계획>을 위해서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지식들이 전환되는 장면들은 무척 흥미롭다. 천문학적, 역사적 지식 등은 『푸코의 진자』 안에서 가뿐하게 재해석된다. 분명 사실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정말로 우리가 모르는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안 될 게 뭐야?'하는 의문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카소봉'에 대한 믿음은 오래 이어진 적이 없다. 곳곳에서 그들이 얼마나 가벼운 태도로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소봉'에게 <계획>이 번뜩이는 유희였다면, '벨보'에게는 한층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벨보'는 이전에도 누누이 강조했듯이 자신의 용기를 시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인적인 신념을 끝까지 고집하지 못하고 물러섰던 경험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계획>에 무서우리만치 집착한다. <계획>은 그가 주동적으로 <누가>, <어떻게>, <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대였고, 이것이 실재하기만 한다면 그는 더 이상 패배자나 비겁자로 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훗날에 알 수 있었듯이 그는 자신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물러나야만 했다. 바벨탑을 지어 올리던 인간들이 결국은 신이 되지 못했듯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살아남을 자격을 얻게 된다. 항상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우리를 어떤 것에도 미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질문은, <암호를 아십니까?>. 대답, 곧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는 한마디의 암호는 <아니>. 진정한 암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이라야, 내가 아불라피아의 파일을 통해서 알게 된 것만큼 배울 수 있게 된다.(350쪽)

그러니까 우리가 이때까지 장광설을 참아온 것은 우리의 무지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질문들을 향해 어쭙잖게 아는 척을 하기보다는 <아니>라고 말할 용기를 가져야만 했다. 세상에 우리의 무지와 나약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우리 스스로가 유한한 생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다른 것들>이 존재하기 시작할 것이란 점을 인지하는 일이다. <지혜>는 '거룩한 원리'에 있지 않았다. 그건 오히려 '리아'의 말처럼 태어나고 또 죽어가는 우리의 육체 안('지상의 왕국')에 있었다. 가까이 있던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우리는 그 먼 걸음을 아주 고되게 걸어온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책으로부터 무언가를 뚫고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다른 독자들이 번번이 강조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역자가 만난 미국인의 대답처럼 "코가 꿰이면 읽다가 그만둘 수가 없는 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하)권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나는 아, 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감각을 얻어낼 수 있었고, 지적인 책 읽기의 재미를 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책 읽기를 또 하겠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래, 물론이지,라고 대답하련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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