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적인 권태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짧은 질문 하나에 왠지 마음이 침울해지고, 정말이지 오만가지 방법들이 머릿속을 흘러간다. 그중에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에서 비롯되는 설렘도 있을 것이다. 25살의 수습 변호사인 ‘시몽‘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폴‘의 인생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얼마간의 돈을 벌었고, 오래된 연인 ‘로제‘도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탈진 상태에 이르러 있었던 ‘폴‘에게 어떤 것도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런 그녀 앞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시몽‘이 나타난다. 난데없이 나타나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시몽‘의 앞에서 ‘폴‘은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브람스‘는 하나의 음악을 넘어서서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57쪽)˝기 때문이다. 뒤늦게 발견된 생의 반짝임을 ‘폴‘은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망설이며 ‘시몽‘을 외면하려는 ‘폴‘에게 ‘시몽‘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53쪽)˝ 이 대목에 이르러서 나는 일상에 쫓겨가며 지하철 안으로 자신의 몸을 욱여 넣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익숙한 삶에 질려버렸으면서도 수많은 것들을 붙잡지 않은 채로 흘러가게 둔다. 어딘가 ‘폴‘의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는 그러므로 ‘시몽‘을 이대로 지나가게 둘 수 없다.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동시에 잔인해질 수 있(102쪽)˝는 사람들이 요란스럽게 입방아를 찧어 대겠지만, ‘폴‘이 그랬듯 나는 ‘시몽‘을 일생일대의 기회처럼 감각하고 있다.

‘시몽‘과의 관계는 ‘폴‘에게 욕망에 쫓겨 이리저리 쏘다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의 ˝그녀는 하나의 얼굴, 하나의 생각을 찾아 헤맸다. 요컨대 하나의 대상을 찾아서.(141쪽)˝ 하지만 격렬한 젊음은 빠르게 막을 내리고, 오랜 후에도 유일무이한 얼굴은 어디에서도 찾아내기 어렵다. ‘폴‘은 ‘시몽‘을 통해 잠시나마 그녀 안의 젊음을 그러쥘 수 있었다. 모래처럼 그것들이 빠져 나가자 그녀는 이전보다도 더 늙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난 늙은 것 같아…….(150쪽)˝ 여기에서 ‘늙다‘라는 형용사는 나이와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노년‘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욕망을 실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 더 이상의 만남이 불가능해지는 때˝. 작가 ‘사강‘은 ‘시몽‘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이 듦을 체감한다. 우리가 생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와 상관 없이 우리는 눈앞의 누군가를, 혹은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때, 즉 우리 안의 ‘브람스‘를 더 이상 듣지 못하는 때에 노년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돌아와 이번 소설의 제목을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로 읽기 시작한다. 문장의 끝에는 응당 물음표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왠지 생뚱맞게 ‘...‘가 삽입되어 있다.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이 문득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부탁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브람스‘는 때로 우리가 사랑해 마지 않는 어떤 상대이고, 또 우리가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순간들이다. 즉 작가는 우리가 노년을 유보한 채로 우리만의 ‘브람스‘를 오래도록 느끼며 살아가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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