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그러니까 프랑스혁명 전후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얼굴이 있다. 텔슨 은행의 직원 ‘로리‘, 그는 직업인으로서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종의 노동으로 받아들인다. 근면함과 성실함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리‘는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점이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중심점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 그의 이름은 ‘마네뜨 박사‘로 18년 동안 바스띠유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의사이다. 그의 증언으로 인해 낱낱이 폭로되는 프랑스의 민낯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귀족과 일반 시민의 격차는 너무 벌어져 있고, 한 쪽은 ˝우리 이 불쌍한 종족이 멸종(490쪽)˝하기를 바라고 있다. 더 이상의 차별과 배제를 견디지 못하고 혁명을 통해 국왕 부부를 처단하고 공화정을 수립한 시민들의 부재가 우리와의 유일한 차별점이다.

˝자유, 평등, 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412쪽)˝는 시민들의 구호는 퍽 감동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던 프랑스의 혁명은 점진적으로 비이성적인 형태로 변화한다. 그들은 ‘기요띤‘을 성녀로 추대하고, 사람들을 데려와 온갖 이유로 사형을 집행한다. 애초에 그들이 추구하던 자유나 평등, 우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오래다. 마지막에 죽어가던 소녀의 말처럼 ˝만약 이 공화국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그래서 그들이 덜 배고프게 된다면, 그리고 모든 면에서 고생을 덜하게 된다면(564쪽)˝ 좋겠지만, 이제 시민들의 공화국은 저속한 앙갚음을 하는 데에 급급하다. 그리고 그들의 불타는 복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고한 생명들이 활용된다. 혁명이 하나의 놀이처럼 전락한 가운데 그들의 모습은 ‘마네뜨 박사‘를 납치한 귀족들과 다를 바 없었다. 상대 집단을 무심하게 짓밟았고 그로 인해 집단 사이의 갈등을 오히려 더 심화시켰다. 심지어는 동일한 집단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도록 부추긴 것이다.

길을 잃은 혁명으로 인해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 순간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건 타인을 향한 누군가의 ‘사랑‘이자 ‘연민‘, ‘희생‘이다. 귀족에게 착취당하고 유린당한 채 죽어간 가족들을 외면하지 않으려던 ‘마네뜨 박사‘에게서, 혹은 사랑하는 여인 ‘루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던 ‘씨드니 카턴‘에게서 우리는 몇몇 감정들이 혼돈에 대항하는 무기이자 대안처럼 간주됨을 목격한다. 낭만적인 감상에 불과한지도 모르지만, 거대한 사회 앞에서 무력한 개인을 떠올린다면 그것만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개개인의 노력이 광기 어린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추측이 도리어 비이성적인 지도 모른다. 격변하는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또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 전부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오늘도 그런 물음이 남는다.


˝다시 살아나고 싶겠지요?˝
그리고 오래된 대답.
˝잘 모르겠소.˝

82쪽

이 대화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마네뜨 박사‘에게 하는 질문처럼 들렸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선의로 18년 동안 감금되어야 했던 ‘마네뜨 박사‘는 ‘로리‘와 ‘드파르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딸 ‘루시‘와 만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다시,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의사는 절대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18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었다. 나는 ‘마네뜨 박사‘가 시민들의 공화국이 태초에 가지고 있던 선의를 일깨우기 위해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길을 잃은 혁명이 실제로 사회를 올바르게 개혁하고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마네뜨 박사‘는 되살아나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다, 이 오래된 대답 속에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미래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아니, 때로는 우리 사회에게 묻는 질문처럼도 들린다. 사회는 이대로 죽어있고 싶은지도 모른다. 퇴락한 사회에서 자신의 안위만 위협받지 않는다면 자유, 평등, 우애의 행방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두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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