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과 영혼을 뜨겁게 하고, 내 가슴속에서 말을 들끓게 하고, 나의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순히 주제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바로 동시대인들의 삶이고 그 삶에 섞여드는 사물들의 동시대적 운동이다.

p. 9

심보선 시인은 서문에서 ‘동시대인들의 삶‘과 ‘그 삶에 섞여드는 사물들의 동시대적 운동‘이 글쓰기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그건 자신의 글쓰기가 어떻다 하는 주장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게 세상과 하는 약속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와의 다짐을 지키려는 듯이 그의 글 안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추상적인 개념어˝가 아니 보통의 ˝입에서 터져 나온 육성이요, 일상의 고통으로부터 터져 나온 파열음(p18)˝을 기록한 이 작품은 망각의 동물이었던 나를 일깨우고, 영혼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다. 다른 독자에게도 나와 같은 깨달음을 주기 위해 심보선 시인은 시를 쓴다. 그리고 장르로서의 ‘시‘는 종종 타인의 질투를 야기한다. 다른 글쓰기에 비해서 길이가 짧아서 그 정도라면 ˝나도 사실은 저렇게 할 수 있는데, 딱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는데.(p181)˝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짧은 글 안에는 사소하면서도 결코 사소해질 수 없는 어떤 삶들이 담겨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원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존재 자체로서 불법˝ 취급을 받는다. 심보선 시인의 글쓰기는 그런 사람들을 인지하고, 또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시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공통의 말이 되기를 소망˝한다. 문학을 읽고 쓰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향상시키려는 그의 문학적 소명은 헛된 꿈처럼 들리기도 한다. 시인 자신이 말했듯이 지금 여기의 전쟁터 같은 삶을 떠올린다면, 문학을 논하고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좌절되기 쉬워 보인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움직임이다. 익명의 바통이다. 그리고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p37

우리는 더 나은 세상과 이를 향유하는 행복에 대한 질투심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건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쥘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살짝이라도 발을 담글 수 있을까 싶은 신기루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희망에 관해서는 지독한 집착을 품고 있다. ‘헬조선‘과 같은 단어들로 세상을 비관하면서도 ˝끝나지 않았어˝라고 적힌 바통들을 발견하고는 꿈에 부풀고야 만다. 특히 한 세대 내에서 우리의 근본적인 고질병들이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이것은 동시대인들을 넘어서서 세대 간에 이어지는 이어달리기다. 세대와 성별, 지위, 모든 것들의 유무를 막론하고 우리는 하나의 조짐으로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문학적인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급박하고 위태롭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하나하나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그러니 ˝익명의 바통˝을 이어받은 당신, ˝미래를 향해, 미래 너머를 향해 달려라.(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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