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라는 사람을 어떤 단어로 소개해야 옳을까. 작가, 영화감독, 그녀의 이름 앞에 이런 수식어는 너무 진부하다. 그리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그녀의 삶에 한계를 부여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책 속에서 만난 ‘이길보라‘는 누구보다도 뚜렷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글과 영상은 그런 신념을 드러내기 위한 수많은 수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길보라‘는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균열을 내려는 사람이고, 또한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계급제적 질서가 없는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다. 끝없는 배움과 도전, 차이를 포용하려는 태도는 본래 ‘청년‘을 정의하는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 장류진이 추천사에서 했던 말처럼 ‘청년‘이라는 단어는 그간 눈에 띄게 오염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길보라‘가 하는 모든 일에 ‘괜찮아, 경험‘이라고 응원해 주었던 그녀의 부모님, 그리고 경험을 통해 체득한 삶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그녀 본인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청년‘을 새로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사이의 경계가 소멸되었어야 옳다. 그러나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어린아이들은 주거 형태에 따라 친구를 구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길보라‘가 보여주는 암스테르담에서의 삶은 비행기로 10시간 거리보다 더 멀리 있는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변명할 필요 없이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쓸데없는 위계질서는 배제한 채로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도 개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중받는다.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정상성을 의심받아야 하는 한국과는 천지차이다. 물론 ‘이길보라‘는 네덜란드에도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존재하고, 절대 그곳이 유토피아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조선‘을 꿈꾸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작은 기회마저 박탈당한 시대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언젠가는 그곳으로 떠날 꿈을 꾸는 것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타인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기본˝과 ˝당연한 디폴트 값˝이 적용되지 않는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년이 여전히 스스로를 ‘코리안‘으로 명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켜내고 싸우고 투쟁하는 동료들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오지랖 넓게 타인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성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사회에 팽배해 있는 차별과 배제, 멸시를 떠올려 본다면 한국에는 개선되어야 할 여지가 아주 많다. 이와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해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았고, 또 살아가고 있는 곳이기에 ˝그들과의 연대는 어디에 있든 나 자신을 ‘코리안‘으로 부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여성‘이나 ‘청년 세대‘로 명명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윗세대에게 도움을 받았듯이 나도 후대의 ‘여성‘과 ‘청년 세대‘에게 내가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꿋꿋이 살아있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돈을 버리는 시간을 버리든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보라야, 괜찮아, 경험."
- P44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아주머니는 엄마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는, 우리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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