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이름만으로도 어떤 낭만을 품도록 만든다. 그곳은 이십 년이 넘도록 서울에서만 살아온 내게 가까운 듯 멀어 닿지 않는 피난처였다. 거기에서의 삶이 여기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사람은 꽤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속 제주는 현실과 동떨어져 온갖 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열망을 충족시킨다. 김금희 작가가 발견한 ‘제주‘는 나의 것과 다르다. <복자에게> 속 제주는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189쪽)˝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한정 지어진 삶을 그러안고 그들은 다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을 호들갑 떠는 일 없이 꿋꿋하게 맞고 서 있는 그들에게 삶의 성패를 구분 짓는 일은 불필요하다. 자신이 손을 쓸 도리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든 숱한 실패들을 강인하게 밀고 나아간다. 마치 제주의 해녀들처럼.

제주의 ‘고고리섬‘에서 시작된 작고 어린 이야기는 역경 위에 올라선 인류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삶이라는 부조리함을 견뎌내며 세상을 향해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 온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긍정이 작품 안에 존재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충분히 잘해왔지만, 작가는 ˝나를 본보기로 하면 안 돼, 나보다 더 잘 돼야 해(175쪽).˝라며 작은 불꽃들을 들쑤신다. 윗세대가 자식들을 기어코 대학교에 가도록 몰아세우면서 내보이던 절박함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세상은 이렇게 여전히 아프고, 똑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들끼리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오세‘의 말처럼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220쪽)˝하다고 믿는다. 인간으로서 희망하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삶을 묵묵히 그러안을 용기가 있는 사람처럼 나는 분노하지 않은 채로 그저 오늘을 견딘다. 바람이 춥다고 엄살을 떨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분노의 목적과 명분은 사라지고 분노라는 상태만 남아 활활(37쪽)˝탄 지 오래되었다.

글을 적다가 문득 내가 삶에 대한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건 역시 삶의 실패마저 껴안고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실패에 분노가 차오르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유년기는 끝났고, 내가 알던 ‘복자‘도 나만큼이나 유년기 때처럼 실패에 상처받지 않으리란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차마 복자에게 안녕(126쪽)˝이라고 건네지 못해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마음은 저쪽에 가닿지 못한 채로 공허하게 울리고, 나 또한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수신하지 못하고서는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앉아 있다. 내가 바라본 곳에는 ˝우리는 생존하고 싶다고. 전염병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가난이나 상실이나 실패로부터(232쪽)˝ 누군가가 외치고 있다. 팬데믹 시대 이전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길고 긴 한숨 속에 ‘복자‘의 얼굴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의 ‘복자‘, 나의 ‘제주‘만큼은 유년 시절 그곳에 무사히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글을 마무리한다.

보낼 수 있다면 복자야, 나는 너에게도 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넘치도록, 자꾸 넘쳐서 네 머리맡에 그것이 고이도록, 그렇게 해서 너가 파도가 치나 아니면 태풍이 올 참인가 싶어서 잠결에 잠깐 눈을 뜨도록, 그러면 태풍이 올리가 없으니 이 밤 아주 편안하게 자고 있던 흰둥이가 귀찮은 듯 네 방문을 잠깐 보고.-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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