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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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로맨스‘라니, 부질없고 식상한 조합이다. 살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엇갈릴 수도 있을까 싶을 만큼 독자를 애태우는 로맨스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런 어이없고 뻔한 우연을 기다리게 된다. <12월의 어느 날>은 그렇게 번번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이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소설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몇몇 영화가 문장 위에 겹쳐진다. 동일한 구성의 로맨스 서사가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혀 지치지 않은 채로 이런 작품들을 찾아 헤맨다. 그건 책과 영화 속의 서사를 공유하면서 작품 밖의 우리가 더 이상 그들과 남이 아니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뒤표지에 적힌 문구가 왠지 부끄러워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가면 꼭 앞표지로 돌려놓았다. 첫눈에 누군가에게 반하는 러브스토리를 믿는다는 사실은 내 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게 일절 관심도 없었을 타인의 시선을 나 혼자 의식하면서 처음에는 ‘잭‘과 ‘로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버둥거렸다. 야, 그런 일이 세상에 어딨냐? 하고 갖은 센 척을 다하면서. 그리고 나서는 뒤로 갈수록 격해지는 애틋함에 훌쩍거렸다. ‘잭‘과 ‘로리‘ 위에 내 개인적인 서사를 얹고, 이전에 봤던 로맨스 영화들에 관한 추억까지 겹쳐지면서 나는 완전히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로맨스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대개 비슷한 것 같다. 우리 관계의 향방은 불분명하고, 그러므로 지금 눈앞의 인연에 다음을 생각하지 않은 채로 충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콘텐츠들은 온갖 애를 쓴다. 그건 모든 인간관계에 통용되는 진리라는 생각도 든다. 평생 갈 것 같던 친구들을 하나둘씩 잃어 본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한다. 이쯤에서 가장 좋아하던 대만 드라마 속 대사가 생각난다: ˝소유는 상실의 시작이야˝. 어떤 관계에서든 상실을 전제하면서도 너무 얽매이지 않은 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역시 너무 어려워서 내 전부를 내어주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멀찍이 서서 그를 지켜본다.

<12월의 어느 날>이 다른 작품과 좀 달랐던 건 ‘로리‘가 10년에 걸쳐 성장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나가는 방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로리‘는 누구에게든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가끔은 현실에 안주하기도 했고, 끝없는 실패에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에 따라 나아가는 사람이었다(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까 무슨 추도사라도 작성하는 기분이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식의 로맨스 서사가 과거의 방식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어릴 적 늘 끼고 살던 동화책을 다른 시각에서 읽어내고, 그것의 잘잘못을 가늠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 많은 ‘로리‘가 탄생하고, 그것이 전혀 놀랍지 않은 때가 우리의 현실에도 완전히 도래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어쩐지 ‘로리‘들의 서사가 절반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때가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완벽한 크리스마스 선물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말도 했어. 드물지만 가끔은 떠났던 사람이 다시 내 인생에 돌아오기도 한다고.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영원히 그 사람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P229

그러다 그가 말한다. "사랑해, 루."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P309

"네 자리는 어딘데? 내 생각을 말해줄까? 네 자리는 어딘가가 아니야. 네 자리는 누군가야."-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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