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구역, 1구역」 w. 김혜진
˝그러므로 결코 내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너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 그것은 어김없이 비켜나고 어긋나고 말겠구나(37면).˝

살면서 참 많은 공간을 잃어버리며 살았다. 내게는 얼마든지 돌아가고 싶은 장소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용하고 낡은 것들로 치부되었다. 결국에는 효율과 발전을 이유로 내 삶에 관한 기억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본래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허물어진 옛 동네를 바라보며 나는 그들이 내 인생을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원래 낮은 집이 즐비해 있던 자리를 빼앗기는 동안 나는 이미 다른 동네로 이사 간 뒤였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간간이 가족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으로 단순하게만 접하던 광경을 내 눈으로 목격하고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실감했고, 현장에 없었던 나날들이 아쉬웠다. 그래서 김혜진 작가의 이번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소유임이 분명함에도 내쫓기는 신세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면서 나는 종종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과거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지속했을까. 수십 년 동안 머물렀던 자신의 자리를 어떤 심정으로 쓸어보았을까. 이건 ‘3구역‘과 ‘1구역‘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지금 내 바로 앞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징글징글한 싸움이다. 효용과 낭만, 새로운 시도와 익숙함의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울고 싶어진다. 스무해가 넘게 살도록 깨우치지 못한 삶의 요령은 내가 자꾸만 후퇴하도록 종용한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토록 쉽게 오랫동안 품고 있던 것들을 놓아줄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3구역, 1구역」에는 같은 인간으로서도 영영 이해하기 힘들 인간의 모순성을 내보인다. 길고양이는 가엾게 여기면서도 두발 달린 길고양이는 모른체하는 그런 모순성. 인간을 인간일 수 있도록 만드는 아이러니함은 김혜진 작가의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 「펀펀 페스티벌」 w. 장류진
장류진 작가의 소설 안에는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쳤을 법한 사람들이 있다. 찰나의 인연이 썩 유쾌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여서 자의로 추억을 꺼내보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 안에 있다. 이번 작품 안에서는 ‘이찬휘‘가 그랬다. 한 사람의 표면층인 외모부터 패배를 직감하게 만드는 이 남자는 스스로 가진 것보다도 더 세상 앞에서 당당하다. 영어 가사를 모르면서도 현란한 무대매너로 ‘퀸‘의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한편으로 진보나 상승은 이미 정해진 절차에 따라 특정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세상을 무해한 얼굴로 ‘펀‘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정해져 있고, 그 반대편에서는 노력과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펀‘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엄습한다.

˝나는 내 ‘쪼‘대로 2절부터 부르기 시작했다(90면).˝

장류진 작가의 작품은 자주 앞에서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의 저편에는 항상 밝은 면이 있음을 일깨운다. 보라, 지금도 절망의 끝에서야 그녀는 다른 것은 제쳐두고 네 방식대로 사는 게 옳은 거다,라고 귀띔해 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장류진 작가의 글을 놓지 못한다. 단 한순간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처럼 저 마지막 말을 들으려고 온갖 글을 따가움을 견디며, 잊어버리고 싶던 사람들과 마주하며 읽어 나간다.

♠ 「오늘의 일기예보」 w. 한정현
한정현 작가의 글에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외면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더러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오늘의 날씨는 맑았고, 우리의 오늘이 그러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이 훌훌 털고 지나간다. 하지만 오늘은 맑았음에도 내일은 또 뭇매를 맞아야만 하니까, 오늘은 맑았으니 그들은 세상을 용서해줄까. 그들에게도 봄은 오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 또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을까. 오늘의 일기예보를 들으며 그런 생각들을 한다. 눈부신 태양 뒤에 가려진 수많은 밤들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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