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탬버린‘은 우리에게 헉헉거리며 뛰어놀던 광란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유담 작가의 ‘탬버린‘에서 울려 퍼지는 삶의 소리들은 세상만사를 잊게 만드는 즐거움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복될 수 없는 억눌린 마음으로 살아가고, 동경하던 서울에 올라와서도 자신이 끝끝내 가지지 못할 삶을 깨달을 뿐이다. 그들이 목적지에 어렵사리 도달한 후 느낀 것은 희열이 아니라, ˝떠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공설운동장」, 82면)˝라는 사실이다. 탬버린을 흔들면 잊을 수 있던 아픈 시간들과 흥분의 도가니는 이곳에 없다. 소설집 <탬버린>을 읽다 보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삶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으리란 사실을 직감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오지 않을 티타임˝을 알면서도 외면하지 못한 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핍진한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 속에서 ˝삶을 견디는 힘이 되는 동시에 삶을 옭아매는 족쇄(「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 314면)˝인 ‘탬버린‘이 주던 환상적인 밤에 대한 갈망을 놓지 못한다.

˝이미 실패한 사람은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후회에 사로잡힌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두고두고 후회」, 275면).˝

노력이 최적의 보상을 장담해 주지 못하는 삶의 대열에서 ‘아버지‘들은 힘없이 낙오된다. 절대 뛰어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권력의 추락은 당황스럽다. 묵묵히 가정을 이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고집스레 대접을 강요하는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생계 문제 해결이 급급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돌볼 여력은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없다. ˝밥 물 자격˝을 운운하는 아버지들에게 남은 것은 외면뿐이다. 그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들의 노력도 자식들이 가진 결핍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실패와 후회로 점철된 부모의 삶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이 펼치는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결핍의 공간(소설집에서는 ‘지방‘)으로부터 탈출해도 그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스타트 라인‘이 되어주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나아지는 것은 없고, ˝티타임˝은 우리에게 영영 도달하지 않는다.

오늘도 사람들은 볼링공을 굴린다(「핀 캐리」). 나에게 볼링공은 글을 쓰는 일인데, 그건 우리를 살게 만듦과 동시에 현실을 포기하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종용한다. 또한 그것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이어서 언젠가 우리는 본래의 슬픔이 자리한 곳으로 되돌아 오고야 만다. 물론 삶에도 굴곡이 있고, 곳곳에 산재한 기쁨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김유담 작가는 꿋꿋이 패배에 지친 사람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글들을 읽어내는 게 싫지 않았다. 내가 늘 고집하듯이 이건 분명히 누군가의 현실이고, 쓰여야만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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