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리커버 일반판, 무선)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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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성들에게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세계가 있다. 그곳에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를 생산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그녀들의 삶은 성공과 실패로 나뉜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만들어낸 허구의 장소 ‘길리아드‘는 슬프게도 무척 친숙한 구석이 있다. 세상은 극적인 사건들과 함께 아주 미세한 폭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왔으나, 여성(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녀 이야기>는 여성을 매개체로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른다. 또한, ‘길리아드‘의 몇몇 모습이 내가 가진 현실과 겹쳐지면서, 나는 때때로 이것이 근 몇 년 사이에 도래할 미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의 부당한 삶도 견디기가 어렵고, 해소되지 못할 분노가 불쑥 치밀어 오르곤 하는데, 이보다도 더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니, 물론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머뭇대는 사이에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와 도망치려고 보면 이미 늦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들을 명분 없이 앗아가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보고만 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여성들뿐이었다. 그녀들은 직장을 잃고, 남편을 통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를 세상에 입증할 수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도 많은 여성이 육아의 과정 속에서 직장을 떠나고, 그런 경우에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 그러니까 ‘길리아드‘의 탄생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익숙한 광경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성되는 것이었다. 결국 무언가를 빼앗기고, 그것을 견디는 건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여성이 단순히 직장만을 잃은 게 아니라는 걸 남성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녀에 대한 완벽한 돌봄을 보장한다(이 문장에서 복수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런 장면이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녀 이야기>에서 남성의 무지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새로운 세상의 방식에 적응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초기의 분노와 탈출에 대한 염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나는 그런 그녀들의 몸을 마구 앞뒤로 마구 흔들어 대며,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라고 부르짖고 싶어진다.

못다 한 이야기

이후에 길리아드와 그 세대의 여성들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시녀 이야기>는 모든 것의 시작에 불과했으며, 상실된 이들의 이야기는 그 뒤로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릴 수도 있었을 선택의 자유를 잊게 되었을 것이다. 다른 세계로의 탈피를 꿈꾸면서도 도대체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 망설이고야 말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체념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의 타락 속에서 여성들에게 읽고 쓰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상의 구축과 기록이 가진 파급력을 ‘오브프레드‘와 그녀를 탄생시킨 ‘마거릿 애트우드‘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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