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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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영상은 유영이다. 부유하는 기억. 그 가운데 착각은 말한다. 나, 여기에 있었다고. 숨죽이며 그러나 떠돌며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여기, 인식론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존재의 가장자리, 기억(혹은 시간의 흐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

116면

시인들이 쓴 산문집에는 각각이 가진 고유의 리듬이 있다. 평범한 문장에도 하나의 선율이 들러붙어 있다. 산뜻하거나 음울한 제 나름의 박자를 타며 나는 붕 뜬 발걸음을 내딛는다. 시인들은 어느 글쓰기 방식을 택하든 시에 관한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안에 담긴 세상과 인간의 존재 방식은 무엇인지, 그들의 번뇌는 한없이 안으로 파고든다.

최근에 난다 출판사에서 오은 시인의 <다독임>을 읽고 리뷰를 남겨준 몇몇 독자를 선정하여 시인이 직접 작성한 ‘다독임 레터‘를 발송해 준 일이 있었다. ‘시‘라는 장르의 매력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레터를 읽는 동안에 오은 시인을 통해 ‘시‘라는 것은 어떤 단어를 아주 오래도록 생각하고, 그것을 낱낱이 해체하는 일이라고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허수경 시인의 <오늘의 착각>에서도 ‘착각‘이라는 단어가 무척 여러 번 반복된다. 이것은 편집상의 의도였겠지만, 나는 작품에서 시인들이 단어를 허투루 흘려보내는 경우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늘의 착각>을 읽으며 내가 살면서 해온 숱한 ‘착각‘들을 되새겼다. 상대도 같은 마음임이 분명하다고 착각해서 혼자 오랫동안 끙끙 앓았고, 노력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을 거라고 착각하며 요령 없이 맨땅에 머리를 부딪히곤 했다. 착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을 어리석은 인간으로 변모시켰고, 회복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좋았던 과거의 회귀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순간적인 기쁨의 지속, 혹은 미래의 희망에 대한 ‘착각‘으로 나는 오늘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 그러니 ‘오늘의 착각‘이 결국 실패로 끝날지라도, 나는 인간으로서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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